영광 본당

靈光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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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영광군 영광읍 도동리 143 소재. 1937년에 설립되었다가 폐쇄된 후 1965년 12월 15일에 재설립되었다. 주보는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관할 구역은 영광읍 전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염산, 백수, 법성, 홍농, 영민 5개소. [교 세] 1965년 583명, 1977년 986명, 1983년 1,727명, 1989년 1,632명, 1995년 1,894명, 2000년 2,293명. [역대 신부] 초대 멀컨(T. Mulkearn, 姜) 토마스(1937~1938.4), 2대 김재석(金在石) 요셉(1938. 4~1942. 2), 3대 오록(C. O'Rourke, 吳) 가롤로(1965. 12~1969. 11), 4대 투히(P. Toohey, 李) 베드로(1969. 11~1970.5), 5대 갤라거(W.Gallagher, 葛) 굴리엘모(1970. 5~1973. 12), 6대 머피(P. Murphy, 闕) 파트리치오(1973. 12~1977. 12), 7대 오고르만(D. O'Gorman, 殷) 다니엘(1977. 12~1981. 11), 8대 캠피언(L. Campion, 巴) 라흘린(1981. 11~1982. 5), 9대 코스그로브(P. Cosgrove, 高) 바오로(1982. 5~1983. 10대 켈리(J. Kelly, 李) 예레미야(1983. 6~1985. 9), 11대 다게(B. Dagge, 탁승현) 베르나르도(1985. 9~1988. 9), 12대 던(J. Dwan, 원하림) 요한(1988.9~1990. 4), 13대 맥뮬란(P. McMullan, 안인성) 파트리치오(1990. 4~1992. 1), 14대 박재완(朴宰完) 아우구스티노(1992. 1~1996. 8), 15대 이영선(李永宣) 골롬바노(1996.8~2000. 1) 16대 이준형(李濬炯) 모세(2000. 1~현재).
[전 사] 영광 지역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920년대 초 나주 노안 본당의 서 미카엘 가족이 영광군 백수면 대신리로 이주하면서부터였다. 이들의 이주와 함께 당시 노안 본당의 카다스(J. Cadars, 姜達淳) 신부는 서 미카엘의 가정을 방문하여 성사를 베풀었고, 그 후 정읍 본당의 김사언(金士彥, 요셉), 목포(현 산정동) 본당의 박기철(朴基喆, 토마스) 등이 이주해 옴으로써 영광 지역에는 10여 명의 신자가 거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설립된 영광 공소는 1930년대 초까지 노안 본당의 헨리(H. Henry, 玄海) 신부가 관할하였고, 1937년에는 광주 지목구가 설정되면서 본당으로 승격되어 골롬반 외방선 교회 소속의 멀컨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멀컨 신부는 대지 1,851평과 20평 정도의 한옥 1동을 매입하여 성당 겸 사택으로 사용하였고, 이듬해에는 성당을 신축하여 본당의 기반을 다져 갔다. 또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모흥집(牟興集, 베드로)을 전교 회장으로 초빙하여 전교 활동에 전력하였고, 성심학원이라는 3년 과정의 초등학교를 설립하여 200여 명의 학생들을 교육하였다. 이어 2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재석 신부는 1941년 준적성 국민으로 분류된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들과 접촉하였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수감되었다. 다음해에 김재석 신부는 석방되었으나 목포 본당으로 전임되었고, 이후 본당의 사정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944년 김재석 신부가 요양을 겸해 다시 영광 본당으로 부임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까지 존속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후 영광 본당은 폐쇄되어 산정동 본당, 함평 본당의 공소가 되었다.
[본당의 재설립과 발전] 한편 1960년대에 들어와 영광 지역에는 신자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었지만, 이들을 관리할 본당이 없었다. 이에 교구에서는 미국인 그리스머의 도움으로 1965년 5월 한국 전쟁 당시 전소된 성당 자리에 72평의 새 성당을 재건하고, 그 해 12월 15일에 영광 공소를 함평 본당에서 분리하여 다시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본당의 설립과 함께 부임한 오록 신부는 1966년 5월에 박명재(朴明才, 아우구스티노)의 도움으로 성모상을 건립하였고, 6월에는 홍농 공소의 부지를, 12월에는 염산 공소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또 이듬해 5월 13일에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를 주보 성인으로 정하고 성당을 봉헌하였으며, 7월에 본당의 종각을 건립한 데 이어 1968년 7월에는 군남 공소의 경당을 완공하여 축복 미사를 거행하였다. 이처럼 본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는 가운데, 5대 주임 갤라거 신부는 성심 신용 조합을 설립하는 데 적극적인 지원을 하였으며, 공소의 활성화를 위하여 공소 순회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1973년 8월에는 염산 공소의 경당을, 9월에는 백수 공소의 경당을 신축하였다. 이어 6대 주임 머피 신부는 1975년 7월 관내에 거주하는 나환우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영민 농원' 을 창설하였고, 7대 주임 오고르만 신부는 1979년 12월에 홍농 공소와 법성 공소의 경당을 신축하였다. 또 10대 주임 켈리 신부는 1983년 8월 본당 건물을 증축하는 한편, 염산 공소의 교리실을 신축하고 경당을 확장하였으며, 이듬해 8월에 수녀원을 준공하였다. 그리고 11대 주임 다게 신부는 1987년 4월에 교육관을 건립하였고, 14대 주임 박재완 신부는 소공동체의 활성화 및 신자 재교육 중심의 사목 활동에 주력하였으며, 핵 발전소 반대 운동을 교회 전체 운동으로 승화시키기도 하였다. 15대 주임 이영선 신부도 우리 농촌 살리기 · 소공동체 활성화 · 핵 산업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으며, 16대 주임 이준형 신부는 전임 신부들의 사업을 이어받아 본당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출판사, 1990. [李恩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