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송

榮光誦

〔라〕Doxologia · 〔영〕Dox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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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송은 삼위의 신격에 대한 본질적 동등성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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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송은 삼위의 신격에 대한 본질적 동등성을 표현한다.

하느님께 영광과 영예를 드리는 내용을 표현하는 경문 또는 양식문(formula).
"영광송" 이라는 의미의 '독솔로지아' (doxologia)는 "영광"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독사' (δόξα)와 "말" · "말씀"이라는 의미의 '로고스' (λόγος)를 합성한 단어로서 "영광을 드리는 말"이란 뜻이다. 전례의 거행 전체가 영송적(榮誦的) 특징을 지니며, 이러한 특징은 전례에서 사용되는 여러 가지 영송적인 기도문을 통하여 더욱 풍요로워지고 뚜렷해진다. 전례는 고대부터 성서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영광송들을 사용하였다. 대영광송· 소영광송 · 사은 찬미가 · 감사 기도의 마침 영광송 등이 두드러진 예이고, 다른 여러 가지 찬양과 환호 양식문들도 많다.
[일반적인 역사] 영광송은 창조와 구원 활동을 하시는 하느님의 크고 놀라운 일들에 대하여 풍요로운 감사와 영광을 표현하는 전례적 문학 유형이다. 그 기원은 유대인들 최고의 기도이며 핵심인 '브라카' (מַתָנָה, 찬양 기도문)에서 찾을 수 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찬양과 영광으로 마감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성서는 다양한 영광송 양식문을 수록하고 있는데, 특히 시편집은 이러한 관습을 잘 보여 준다. 시편의 각 권이 끝나는 41편, 72편, 89편, 106편, 150편들은 영광송으로 끝난다. 이러한 유대인의 관습은 그리스도교에도 이어졌다. 서간이나 묵시록에 보면 책이나 주요 항목의 시작 부분이나 끝 부분에 영광송이 나타난다. 어떤 영광송들은 성부를 지향하고(로마 9, 5 ; 11, 36 ; 갈라 1, 5 ; 필립 4, 20 ; 디모 1, 17 : 6, 16 ; 1베드 5, 11 ; 묵시 4, 11 : 7,12 : 19, 6), 어떤 경우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지향되고(로마 16, 27 : 1베드 4, 11 : 유다 1, 25) 성부와 그리스도를 지향한 경우(묵시 5, 13)와 그리스도만을 지향하는 경우도 있다(2디모 4, 18 : 히브 13, 21 : 2베드 3, 18).
고대 전례에서 영광송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공적인 기도는 예수의 이름으로 바치면서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 곧 영광송으로 끝내는 것이 정상적이었다. 이 규범은 기도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중요한 기능으로 변하였다. 《디다케》(Διδαχή)에는 감사 기도에서 영광송이 후렴처럼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9-10). 같은 시기에 교황 글레멘스 1세(90/92~101?)는 그리스도께 드리는 영광송을 전한다(《제1 고린토 서간》 20, 11-12 : 32, 4 : 36, 2 : 38, 4 ; 43, 6 : 45, 7-8 : 61, 3 : 64, 1 : 65, 2). 성 폴리카르포(69~155)는 성부께 드리는 영광에 다른 두 위격을 결합시킨 삼위 일체적 영광송을 전하고 있다. "영광이 성부와 성령과 함께 그분께 세세이 있으소서. 아멘" (《폴리카르포 순교록》 14 : 참조 : 20-22). 이 양식문이 2세기 이후 교회의 고유 영광송이 되었다. 히폴리토(170~236) 가 저술하였다고 주장되지만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는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은 일반화된 삼위 일체 소영광송이 사용되었다고 전한다(《사도 전승》 3, 4, 6, 7. 21,25).
이러한 관습에 충실하였던 동방 교회는 전례 기도를 영광송으로 마치는 관습과 아울러 독립된 영광송 양식문들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동방 교회와는 달리 로마 전통은 모든 전례 기도를 영광송으로 마감하는 관습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주요 기도 특히 감사 기도를 영광송으로 마치는 것은 동방 교회와 공통적이었다. 《사도전승》이 전하는 감사 기도의 "마침 영광송"은 가장 오래된 예이다(《사도 전승》 4). 서방 교회에서는 사제적 기도의 마감 양식문인 경우 통상적으로 구세주의 중개를 전면에 내세웠다. 또한 동방에 기원을 둔 소영광송 · 대영광송 · "주님, 당신께 찬미" (Te decet laus) 등의 영광송들을 도입하여 사용하였다. <사은 찬미가>(Te Deum)도 서방 교회에 기원한 탁월한 영광송이다. 또한 로마 전례는 찬미가들을 영송적인 단락으로 마감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소영광송] 발전 : 소영광송은 일반적으로 '영광송' 이라고 통칭되는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이라는 기도문이다. 학자들은 이 소영광송이 삼위 일체적 세례 양식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 19)의 영송적 발전에 "이제와 항상" 구절이 첨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와 항상"이라는 표현은 유대인들과 사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표현이었다. 양식화된 삼위일체적 소영광송 형태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미 《폴리카르포 순교록》에서 증언되고 있다. 또한 이 시대에 현재 동방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소영광송 양식문인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이 형성되었다. 여기에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처음과 같이" (sicut erat prinicpio)라는 표현이 포함된 것은 서방 교회에서 기원한 것이다.
소영광송의 역사에는 4세기 그리스도론적 논쟁이 담겨 있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당시 교회에서 관습적으로 사용되던 전례 기도와 영광송들을 지적하였다. 즉, "영광이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라는 양식문이다. 그런데 성자를 통해서 성부께 기도를 바치는 것은 성자를 성부 아래 단계에 있는 중개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우스주의에 반대하는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양식문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를 대항 양식문으로 전파시켰다. 이 양식문은 3위의 신격에 대한 본질적 동등성을 잘 표현하였다.
소영광송은 시간 전례에서 사용된다. 초대송으로 시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각 시간 기도의 도입은 소영광송으로 끝난다. 또한 시편과 찬가도 소영광송으로 마감된다. 짧은 독서 후 응송에도 소영광송의 전반부가 사용된다. 소영광송은 전례 밖에서도 언제나 매우 대중적인 기도 양식문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중세에는 고대 교부들의 모범을 따라 소영광송으로 설교를 마감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 영광송의 첫 부분은 신앙 서약으로 이해되어 십자 성호를 그을 때 항상 이 영광송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시편에서의 소영광송 : 다른 그리스도교 지역처럼 서방 전례에서 영광송은 시편과 관련된 오래된 규범이었다. 시편 낭송 때 마지막 구절에 규칙적으로 영광송을 붙였는데, 이 관습은 시리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서방 교회에서는 4세기 말 프로방스 지방에서 이 관습이 거행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요한 가시아노, 《제도집》 2. 8). 이어 《베네딕도 규칙서》(9, 2 ; 13, 9 ; 17, 2 ; 43, 4. 10 ; 참조 : 《스승의 규칙서》 33 : 43)에 채택되었으며, 이 관습은 느린 속도로 서방에 전파되었다(OR I, 50-51 : 117 참조).
시편 낭송에 소영광송을 삽입시키는 관습의 기원은 아리우스주의를 거스른 삼위 일체에 대한 확인뿐만 아니라 수도승들의 시편 낭송 방법과 관련이 있었다. 시편으로 기도하는 수도승들은 매 시편에 따르는 침묵을 마감하는 표시로 소영광송을 이용하였으나, 나중에는 침묵 기도의 순간이 사라지고 시편 끝의 소영광송 양식문만 남게 되었다. 또한 성 베네덕도(480?~547?)는 이 영광송을 수도승들이 낭송하는 시편의 구분에 채택하였다.
현행 <시간 전례서 총지침>에서는 시간 전례의 시편 낭송에서 이 관습이 보존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왜냐하면 영광송은 "시편의 적절한 종결이고 구약의 기도에다 그리스도론적이고 삼위 일체적인 의미와 찬미의 의의를 부여하는 것" (<시간 전례서 총지침> 123항)이기 때문이다.
의미 : 전례에서 사용되는 영광송의 배경은 하느님의 속성(1디모 6, 16), 창조 안에서의 활동, 특히 구원의 거룩한 역사(묵시 4, 11)에 대한 기억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세 위격에 환호되는 '영광' (gloria)이라는 표현은 희망적 의미 즉 삼위 일체께 영광이 있기를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의미 즉 그 안에서 삼위 일체적 특성과 초월적 위엄의 실재 및 구원 경륜적 활동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아멘"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감사 기도의 마침 영광송] 감사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이라며 바치는 '마침 영광송' (doxologiafinalis)으로 끝난다. "이 기도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노래이며, 교우들의 환호인 '아멘' 은 이를 인준한다”(〈로마 미사 경본의 총지침> 55항). 마침 영광송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소영광송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영광송이 갖는 일반적인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여야 한다. 현재의 각 감사 기도문들은 모두 로마 전문(감사 기도 제1 양식)의 마침 영광송본문을 사용하고 있다.
역사 : 최초로 주일의 성찬례 거행을 묘사한 성 유스티노(?~165)는 마침 영광송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고 감사 기도에 이어지는 회중의 "아멘"만을 언급하였다. 마침 영광송을 명시적으로 전하는 최초의 본문은 《사도 전승》으로, 이 문헌이 전하는 본문은 로마 전문의 마침 영광송 본문과 비슷하다(성 암브로시오, 《성사론》 Ⅵ, 26). 주요한 차이점은 《사도 전승》 본문에서는 3위의 칭호들이 지향에서 하나로 모아지는데, 로마 전문에서는 그리스도교 구원 경륜에 맞추어 장엄한 찬양 구조를 따른다. 또한 로마 전문의 "성령의 일치"가 《사도 전승》 본문에서는 "거룩한 교회" 로 나타난다.
현행 마침 영광송 형태는 로마 전문의 초기 전통 안에서 발견된다. 고대 전통에서 사용된 이 영광송의 구조는 하느님께 대한 찬양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이 찬양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봉헌된다는 중개 사실이 드러난다. 동방 교회에서는 아리우스 논쟁의 영향으로 이 사상이 전례 기도 마감에서 상실되었다.
의미 : 감사 기도 전체는 하느님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는 기도이다. 그러나 이 특징은 감사송과 함께 마침 영광송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소영광송은 아리우스주의를 반대하는 과정에서 단순하게 위격들의 동등성을 강조한 반면, 마침 영광송은 거룩한 위격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강조한다. 모든 찬미와 영광을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는 신약성서와 로마 전통에 잘 부응한다. 이 영광송 안에는 그리스도의 상승적 중개 사상 외에 내재적 삼위 일체와 교회에 대한 주제도 담고 있다.
첫째, 삼위 일체적 의미를 담고 있다. 마침 영광송은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이다. 하느님은 성부를 지칭하며, 성부는 모든 축복의 기원이다. 그분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축복하시며, 우리에게 주신다. 교회는 모든 영광과 찬양을 그분께 되돌린다. 둘째는, 그리스도론적 의미이다. 영광송 안에는 그리스도의 상승적중개에 대한 명백한 언급이 있다. 아버지가 영예와 영광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다. 현대어 번역들에서 대명사(ipsus) 대신 "그리스도"를 명시한 것은 말씀에 의하여 취합된 인성에 대한 강조를 뚜렷하게 하는 것이다. 주 그리스도는 위대한 중개자로 간주된다. 성부께서는 그분을 통하여 모든 것을 이룩하신다.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바친다. 이 기도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친다는 의미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역사적 사건으로 우리를 구속하였다는 사실과 그분이 아버지와 우리를 이어 주는 우리의 중개자임을 지속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셋째로, 학자들은 "성령과 하나 되어"(in unitate Spiritus Sancti)라는 표현을 교회론적 의미로 이해한다. 성령에 의하여 교회 안에 생성된 일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는 충만한 유대 안에서, 교회는 아버지께 영예와 영광을 드린다. 이렇게 마침 영광송 안에서는 내재적 삼위 일체 관계만이 유일하게 우선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구원 경륜이 드러나 있다.
아멘 : 회중은 사제가 하느님께 바치는 영광을 환호 "아멘" 으로 인준하고 마감한다. 또한 회중의 "아멘"은 자신의 능동적 참여의 표지로 전체 감사 기도에 동의한다는 표현이다. 《디다케》에도 수록되어 있는 이 "아멘"은 성 유스티노가 언급하였다. 이렇게 회중은 한 목소리로 "아멘" 을 외치며 사제가 유일한 전례 거행자라는 개념을 극복하면서 회중 자신이 전례, 특히 성찬례 거행의 주체임을 표현한다. 성 예로니모(347/348-419/420)는 당시 로마의 그리스도 공동체가 이 "아멘" 을 외칠 때 마치 천둥 소리와 같았다고 증언하였다(《갈라디아서 주석》 2. 3). 그렇기 때문에 그 의미와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 환호를 그냥 외우지 말고 성대하게 노래로 불러 성부께 찬양과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옳다.
동작 : 마침 영광송은 사제의 동작으로 강조된다. 사제가 성체와 성작을 들어올리는 것은 말로 발설한 것을 동작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동작은 축성된 형상을 백성에게 보여 주는 목적을 갖는 현시가 아니다. 현시는 이미 축성의 순간에 행해졌다. 그러므로 이 동작은 희생 제물이 된 그리스도를 하느님께 교회가 마땅히 드려야 하는 영예와 영광의 최고의 표현으로, 아버지께 봉헌하기 위하여 아버지께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마침 영광송은 구원된 사람들이 속하는 그리스도 신비체를 활성화시키고 모으는 성령의 전망 안에서 아버지하느님을 묵상하고 흠숭하는 기도이다. 이 장엄한 기도로 우리는 대사제이며 중개자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교회적 친교 안에서 모든 영광과 영예를 아버지께 바친다. 또한 이 기도는 기도하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삼위 일체적 영감에 젖어 모든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 그 시작이 있고, 성자 안에 성부께 되돌아오게 하는 길이 있으며, 성령 안에 필요한 위로와 힘이 있음을 다시 한번 기억시켜 준다. 하지만 신자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마침 영광송을 사제와 함께 큰소리로 바치지 못한다. 이 기도는 대사제인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사제의 몫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오로지 이 기도를 경건히 그리고 조용히 경청하며, 규정된 환호로 참여하여야 한다(〈로마 미사 전례 총지침> 55항 8절 ) . (→ 글로리아 ; 대영광송 ; 미사 ; 성찬 전례)
※ 참고문헌  P. Borella, La dossologia finale del canone, Ambrosius 41, 1965, pp. 183~200/ J.A. Jungmann, Missarum Solemmia 1~ II , Wien, 2nded., 1949(The Mass of the Roman Rite I ~ II , Westminster, 1992)/ A. Nocent, Les doxologies des Prières eucharistiques, Gratias Agamus. Studien zum eucharistischen Hochgebetfur Balthasar Fischer, A. Heinz · H. Rennings eds., Freiburg · Basel · Vien, 1992, pp. 343~353/ J. Pinell, La grande conclusion du canon romain, 《LMD》 88, 1966, pp. 96~115/ M.Righetti, Mamuale di storia liturgica, Milano, 3rded., 1964. [沈圭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