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본당

盈德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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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소속 본당.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덕곡리 173-2 소재. 1962년 4월 1일 포항 죽도(竹島)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주보는 성모 성심. 관할 구역은 영덕읍, 달산면, 지품면 전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강구(강구면, 남정면), 신애(지품면 신애리), 갈릴레아(청송 교도서 제1 감호소) 3개소. [교 세] 1963년 355명, 1989년 955명, 1992년 811명, 2000년 1,036명. [역대 신부] 초대 비도(J. Bideau, 도광주) 요한(1962. 4~1969. 7), 2대 페브리에르(L. Feuvrier, 허진섭) 루도비코(1969. 7~1978. 4), 3대 김기(金基) 바오로(1978. 4~1980. 9), 4대 정호경(鄭鎬庚) 루도비코(1980. 9~1982. 6), 5대 이정모(李廷模) 요셉(1982. 6~1986. 1), 6대 남정홍(南廷洪) 스테파노(1986. 1~1989. 3) , 7대 전장호(全壯鎬) 프란치스코 (1989. 3~1992. 2), 8대 이춘우(李春雨) 프란치스코(1992.2~5), 9대 김욱태(金旭泰) 레오(1992. 5~1995. 6) , 10대 허춘도(許春挑) 토마스(1995. 6~1998. 8), 11대 박재식(朴在植) 토마스(1998. 8~현재).
[본당 설립과 성장] 1958년 11월 8일 영덕군 남석1동 146번지에 포항 죽도 본당 관할의 영덕 공소가 설립되었다가 1962년 4월 1일에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비도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비도 신부는 4년여에 걸쳐 현 본당 부지 874평을 확보하여 1964년 3월부터 성당 건립을 시작한 뒤 그 해 12월 10일 서정길(徐正吉,요한) 대주교의 주례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영덕 본당은 안동교구가 설립되자 1969년 7월 30일 대구대교구에서 안동교구로 이속되었다. 2대 주임 페브리에르 신부는 청년회 · 성모회 · 학생회 · 성가대 등 많은 사도직 단체들을 조직하여 본당 공동체의 활성화에 주력하였고,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 소속 수녀 3명을 초빙하였다. 3대 주임 김기 신부는 본당에 부임한 첫 한국인 사제로 대전교구에서 안동교구로 파견되었는데, 영해 공소와 신애 공소를 매주 방문하여 미사를 드렸고 본당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였다. 김기 신부가 대전교구로 복귀한 후 부임한 4대 주임 정호경 신부는 1981년에 사제관 내부를 수리하였고, 강구 공소 대지 998평을 구입하였으며, 군 유지로 되어 있던 신애원 부지 692평을 매입하여 교구청으로 이전시켰다. 5대 주임 이정모 신부는 강구 공소를 신축하였고, 나눔 모임 행사를 만들어 본당과 관할 공소를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하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특히 공소의 자립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자 힘썼다. 6대 주임 남정홍 신부는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신자 재교육에 힘쓰며 청송 감호소를 신자들과 함께 여러 차례 방문하였다. 7대 주임 전장호 신부의 재임기였던 1989년 5월 도시 계획에 따라 성당 부지가 도로에 편입되자 그 해 10월에 사제관을, 11월에 유치원 및 교육관 공사를 시작하여 1990년 4월 1일 준공하였다. 또한 전장호 신부는 성당 묘지 마련을 위해 울진 본당과 합의하여 이듬해 8월에 영덕군 축산면 대곡리 산 54-1번지 임야 7,740평을 양도받아 묘지로 활용하도록 하였다. 또 1991년 7월 3일 영해 공소 수녀원을 준공하였는데, 영해 공소는 1992년 4월에 신설된 후포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11대 주임 박재식 신부는 2000년 4월 본당 사제관을 증 · 개축하였다. (→ 안동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안동교구, 《안동교구사 자료6집-본당, 활동 수도 단체, 교구 단체 · 기관》, 1997.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