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벌

永罰

〔라〕damnatio, reprobatio · 〔영〕eternal punishment, dam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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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으로의 추락(루벤스 작, 1620년)

지옥으로의 추락(루벤스 작, 1620년)

세상에서 하느님을 거절하고 하느님과 이웃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이 죽은 후 하느님의 심판을 거쳐 지속적으로 받게 되는 벌.
[정 의] 영벌은 영원한 단죄 · 멸망 · 죽음과 지옥 등으로 묘사되는데(마태 3, 12 : 5, 22 ; 13, 42 : 마르 9, 43 : 루가 13, 28 : 2데살 1, 9)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표상이 지옥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악마와 그 심부름꾼들을 위해서 마련된 영원한 불속으로 가라"마태 25, 41). 신학자들은 영벌이 근본적으로 지복직관(至福直觀)의 상실 즉 하느님 면전에서의 추방이라는 점에는 의견 일치를 보았지만, 그 밖에 부가적인 처벌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오리제네스(Orignes Alexandriae, 185~254), 예로니모 (Hieronymus, 341?~420) , 니사의 그레고리오(Gregorius Nysse-nus,335?~395?) 등의 교부들은, '영벌의 불 은 하느님께로부터 소외됨에 따르는 심리적 고통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위험한 사태를 분별하게 하고 회개로 이끄는 기능을 한다고 하였다. 인간은 지옥의 영벌을 생각함으로써 선한 생활을 하도록 자극받는다는 것이다. 한편 그들은 영원한 지옥 형벌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은 성서에 근거하여 지옥의 영벌이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DS 780). 영벌은 하느님과 뽑힌 이들이 이루는 친교를 결정적으로 거부한 상태이며, 인간의 목적이자 궁극 대상인 생명과 행복을 주는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히 격리된 처지이다.
[성서의 증언] 영벌과 저주는 기쁜 소식이 아니지만, 성서에 나오는 주제이다. 성서의 근본 주제는 선하신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당신 자비에 자신을 여는 모든 이들에게 용서를 베푸신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좋게 만들고, 죽음을 원하지 않고, 그것을 만들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죄인의 회개를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자비와 구원의 하느님을 계시한다. 하느님은 무한히 인내하면서 잃어버린 이들을 찾으신다. 그러므로 영벌은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며, 하느님이 원하신 것도 아니다. 반면에 영벌의 장소인 지옥은 성서 안에서 여러 가지로 묘사된다.
예컨대 뜨거운 불이 꺼지지 않고 영원히 타는 곳(히브 10, 27 : 묵시 19, 20), 캄캄한 어둠이 있는 곳, 절규가 있고 이를 가는 곳(마태 13, 42), 구더기들이 우글거리는곳, 갇힌 곳 혹은 감옥(1베드 3, 19)이다. 이 표상들은 끝없는 고통, 미래가 없는 절망의 상황, 슬픔과 비탄 및 후회, 절대적 폐쇄, 무의미와 단절을 가리킨다. '셔올'(שְׁאוֹל)은 모든 이가 죽은 후 가는 곳, 어둡고 불만스러운 곳, 악인이 벌받는 곳이다. '게엔나' (γέεννα, 마태 5, 22 ; 10, 28 ; 마르 9, 45)는 죽음 및 치욕의 장소, 악인이 죽은 후 벌받는 '불가마' (마태 13, 50)이다. 지옥은 생명의 상실(마르 8, 35) · 추방(루가 13, 23-24) · 부정(마태25, 10-12) 등으로도 묘사된다. 이렇게 지옥은 그 자체를 묘사하기보다는 영생을 부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부수적으로 제시될 뿐이다. 지옥은 생명에서 소외된 상태, 생명에 상반되는 죽음을 가리킨다. 그것은 절대적 부정 즉 상실, 추방, 소외의 상태이다. 따라서 영벌은 하느님을 영원히 상실함으로써 겪는 고통이다.
예수는 지옥의 설교자가 아니고 하느님 나라의 선포자이지만 지옥을 언급하였다. "자기 형제더러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입니다" (마태 5, 22). "당신의 오른손이 당신을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당신에게서 내던지시오. 당신의 지체 하나가 없어지더라도 당신의 온몸이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당신에게 이롭습니다"(마태 5, 30 : 18, 8)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은 죽은 뒤의 지옥 문제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호기심을 결코 만족시켜 주지 않았다. 즉 지옥에 관해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호기심도 만족시켜 주지 않았다. 다만 인간에게 막중한 책임을 일깨워 주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애쓰시오"(루가 13, 24). 지옥은 회개를 촉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관련되어 언급된다.
예수는 또 지옥과 관련하여, 인간이 스스로 만사를 획득하거나 상실할 수 있다고 천명했다. 영원한 죽음의 가능성은 현실성과 절실함을 띠고 있다. 그 가능성을 제시하는 목적은 인간에게 근본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데 있다. 이는 회개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권고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옥에 관한 언급을 통하여,청중이 처해 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근본적인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지금 당장 결단을 내려야 함을 급박하게 깨우쳐 주려 하였던 것이다. "두 눈을 가지고 불타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애꾸눈으로 생명으로 들어가는 편이 당신에게 낫습니다" (마태 18, 9). 지옥이나 영벌에 관한 성서 본문의 언급은 생명을 낳는 생활을 함으로써 지상에서 회개해야 할 필요성이 절박하다는 것을 경고하는 데에 본뜻이 있다.
[신학적인 조명] 영벌의 가능성 : 영벌은 인간이 자유를 남용하여 최악의 지경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다. 죄를 만들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하느님은 영벌 또한 마련하지 않으셨다.
지옥은 하느님이 만들어 인간에게 부과하는 처벌이 아니다. 그것은 짐승이 아니지만 스스로 짐승이 될 수 있는 인간이 지은 것이다. 악하고 이기적이며, 자신 안에 폐쇄되고 교묘히 자기 자신만을 추구하는 인간 때문에 지옥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가 최악의 지경까지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을 도구로 삼음으로써 하느님께 대항하는 자가 스스로 빠져들 수 있는 무시무시한 처지이다. 하느님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배척하는 자의 상태이다. 인간이 지상에서 경험하는 소외, 자기 상실의 궁극적 상태이다. 인간은 완전히 파멸된 삶을 경험할 때 "여기가 생지옥이다"라고 내뱉곤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궁극적으로 잃을 수 있다. 인간의 삶이 절대적인 실패로 끝장날 수도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괴물로 전락시킬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다. 영벌의 현세 체험은 극도의 상태로 이를수 있다. 자유로운 인간은 이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지옥은 인간의 인격 자체에서 나오고,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자유 의지에서 나온다. 우정과 사랑을 받아들일 수도 거절할 수도 있는 가능성과 자유가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영원한 단죄는 실질적 가능성이다. 인간은 하느님과 동료와의 관계 및 친교에서 결정적으로 자신을 폐쇄시킬 수 있다. 그는 쓰디쓴 고독 안에 고립될수 있다.
영벌의 본질 : 영생의 부정인 영원한 죽음은 하느님께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이탈이다. 자기 존재의 무한한 공허이고 무의미이다. 영벌은 하느님을 철저히 거부하고 배척한 자의 최종 상태이다. 그것은 세상 안에 있는 인간 존재의 전도(轉倒)이다. 세상을 다스려야 할 인간 존재가 세상에 예속되어 버리는 상태이다. 자유로운 존재가 자기 자신에 전적으로 예속되고 자신 안에 갇히는 노예 상태이다. 영벌은 하느님과 이웃과의 사귐 및 통교가 단절된 상태, 철저한 고립이다. "울고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루가 13, 28). 현세에서 우리는 군중 사이에서도 극심한 고립을 맛본다.
죄가 존재하므로 지옥이 있는 것이다. 지옥은 무한의 차원에 걸쳐 죄를 최후의 목적 또는 종착점으로 선택한 것이다. 영벌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에게 자기 장래를 위하여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영벌은 만사에 있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자유로운 인간이 자신 안에서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최고의 선물인 자유는 끝까지 책임을 짐으로써 성취된다. 자유로이 창조된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영벌은 부정적인 방식이지만 자유에 따르는 책임의 중요성을 확증하며, 따라서 자유로운 인간의 위대함을 입증해 준다. 영벌을 부인하는 것은 자유에로 부름을 받은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 영복 ; → 셔올 ; 종말 ;지옥)
※ 참고문헌  G. Greshake, 심상태 역, 《종말 신앙-죽음보다 강한 희망》, 신학 선서 3,성바오로출판사, 1980, pp. 113~127/J.B. Liba-nio · M.C. Bingemer, 김수복 역, 《그리스도교 종말론》, 분도출판사,1989, pp. 308~328. 〔崔榮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