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복

永福

〔라〕beatitudo · 〔영〕eternal blessedness

글자 크기
9
영복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영복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죽은 후 뽑힌 이들이 누리게 될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 영원한 생명, 낙원, 지복직관(至福直觀) 하느님의 나라 등으로 표상된다.
[성서적 표상]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마련해 둔 나라를 상속받아라 .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러) 갈 것입니다" (마태 25, 34. 46). 영복은 성서에서 영원한 생명, 빛, 평화, 혼인 잔치, 하늘 나라의 포도주, 아버지의 집, 낙원, 지복직관 등으로 묘사된다.
영원한 생명 : 인간은 최종 목표가 성취될 때 하느님을 직접 대면할 것이며 낙원에서 무한한 행복 중에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죽지않고 무한히 연장되는 생물학적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기쁨 · 행복 · 건강 · 평화의 충만 속에 영위하는 삶이다. 하느님을 아는 것(요한 17, 3),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친교에 참여하는 것(10, 14), 사랑의 충만(17, 26)이 영원한 생명의 요소들이다(6, 39. 47).
낙원 : 다른 표상들과 마찬가지로 인격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당신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 (루가 23, 43). 낙원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표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낙원보다는 '함께 있음' 을 역설한다. 낙원은 의인이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누리게 될 가족적이고 친밀한 상봉의 완전한 기쁨을 드러내는 표상이다. 의인은 실제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그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풍요로운 친교를 맺게 될 것이다. 이 친교는 선물이며, 완전한 일치요 대화인 사랑의 교환이다. 낙원은 하느님이 스스로 음식이 되어 주는 잔치로 비유되는데, 이 음식은 육신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하느님이 당신 자신과 결합시켜 당신처럼 의인을 영이 되도록 하는 음식이다. "나도 여러분에게 나라를 맡깁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내 나라, 내 식탁에서 먹고 마실 것이며 또한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입니다"(22, 29-30). "주인이 (허리를) 동여매고는 그들을 (식탁에) 자리잡게 하고 다가와서 그들에게 시중을 들어 줄 것입니다"(12, 37).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일시적이거나 썩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다. 생명은 유일한 참 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파견한 예수를 알기 위하여, 심오하고 해소할 수 없는 존재적 친교 안에서 예수에 의해 그분의 영광 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고, 그분과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낙원이 있다. "내가 가서 여러분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여러분을 내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여러분도 있게 하겠습니다"(요한 14, 3). "제가 있는 곳에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그들 또한 저와 함께 있게 하시고···"(17, 24). "주님 곁에 눌러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2고린 5, 8). "나는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원하니, 사실 그 편이 훨씬 낫습니다"(필립 1, 23).
지복직관 :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을 뜻하는 지복직관은, 초월적인 하느님이 스스로 인간이 직접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고, 인간이 천상 영광의 하느님을 뵙는 것이다. 보는 것은 성서에서 생명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현존 안에서 살아감을 뜻한다. 그것은 이론적 지식 혹은 수동적 관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실존적 친교를 가리킨다. "올바른 자 그 얼굴 뵙게 되리라" (시편 11, 7 : 24, 6). "우리는 그분을 실제 모습 그대로 뵈올 것입니다"(1요한 3, 2). 예수 그리스도를 봄으로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사람은 지복직관을 충분히 누릴 것이나 기쁨의 핵심은 하느님을 소유하는 데에 있다(시편 73, 23-26). 영복은 이렇듯 하느님을 완전히 소유하는 데에 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을 통해서 어렴풋이 보고 있지만 그때가 되면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할 것입니다"1고린 13, 12). 우리는 더 이상 하느님을 어떤 매개체(표징)를 통하여 또는 믿음으로써 보지 않고 직접 볼 것이다. 하느님을 직접 보기 때문에 관찰의 매개 역할을 하는 피조물 없이 하느님이 몸소 당신 모습을 명백히 보일 것이다. 하느님의 실체를 직접 파악하고 즐기므로 참으로 행복하고 영생과 안식을 갖게 된다. 하느님의 무한한 생명이 무한한 선을 알고 사랑하고 즐기는 데에 있듯이 그분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이들로 하여금 당신의 내면 생활에 깊이 참여하게 할 것이다. "와서 네 주인의 기쁨을 함께 누려라" (마태 25, 21).
지복직관은 하느님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성령 안에서 얼마나 완전한 일치를 이루며, 성령 안에서 아들이 아버지께 얼마만큼 자신을 바치며 얼마만큼 나누고, 또 선택된 이들과 함께 친교를 나누는지를 실제로 보게 됨을 뜻한다. "그날 여러분은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여러분은 내 안에 있으며 나도 여러분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요한 14, 20). 지복직관은 삼위 일체의 완전한 사랑의 일치 안으로 우리를 이끌어 들일 것이다. 영복은 이렇듯이 영원토록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그분으로부터 사랑받는 데 있다. "눈으로 본 적도 없고 귀로 들은적도 없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떠오른 적도 없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해 두셨도다" (1고린 2, 9).
하느님의 나라 : 하느님의 나라는 장소가 아니라 존재 양식이고, 하느님의 생명과 기쁨에 참여함이다. 그것은 새 존재 곧 하느님 안에서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새 방식이다.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 1), 하느님의 영에 의해 변형된 물질과 우주 전체의 충만한 실현이다. 영복은 인간 생명의 완전한 실현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인간의 궁극 목적이며, 가장 간절한 열망의 실현이고, 결정적 행복의 상태이다. 그것은 죄와 시공의 제한 및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이다. 완성된 삶은 인간 상호간에 흐르는 깊은 사랑의 생활이다. 우리의 개인적 자율성과 개성이 하느님의 실체로 흡수되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격적인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에 직접으로 참여하는 인격체로 존속할 것이다.
[신학적 조명] 영복은 완성된 형태의 사랑이며 통교이다. 인간이 자신 안에 폐쇄되지 않고 자신을 포기하고 사랑을 실천할 때에 인간으로서 자기 충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삶의 근본 체험 중 하나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며 자기 자유를 자신만을 위하여 이용하지 않고 이웃을 위한 봉사에 투신할 때 비로소 자신을 완성한다. 인간이 현세에서 사랑으로 자신을 내놓을 때 비로소 인생이 충만한 것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삶의 완전한 충만인 영복은 곧 사랑의 완성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는 곧 사회적 실재, 공동체이다. 잔치의 비유 · 그리스도의 '몸' · 하느님의 나라 등은 천국의 공동체적인 면을 나타낸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그분과 비슷하게 되며 유대를 이루고, 또한 이웃들과 아낌없는 사랑의 교환으로 서로 일치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영복은 사랑을 베푸는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상태이며, 이것은 지상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인간이 서로를 위해서 존재하고 서로 사랑하고 있는 곳에 이미 영복은 시작된 것이다.
영복은 지금 이미 자신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아주 먼 훗날 시작하게 되는 이질적인 실재가 결코 아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여러분에게 왔습니다"(루가 11, 20). 믿고 사랑하는 가운데 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요한 3, 36 ; 5, 24 ; 6, 47 ; 1요한 3, 14). 영복은 현세에서 이미 우리의 삶 가운데 성장하고 있으며, 이미 전개되고있고, 또 될 수 있다. 영복의 삶은 소유하는 삶도, 정체되어 있는 삶도 아니다. 하느님은 끊임없이 일하는 분이시고, 활력으로 충만된 삶을 누리는 분이시다. "아직까지 내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며 나도 일하고 있습니다"(요한 5, 17). 천상의 활동은 쉬는 수고이며 수고하는 휴식이다. 영복은 자신을 선사하고, 또 남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기쁨의 삶이다. (↔️ 영벌 ; → 낙원 ; 영원한 생명 ;지복직관 ; 하느님의 나라)
※ 참고문헌  G. Greshake, 심상태 역, 《종말 신앙-죽음보다 강한 희망》, 신학 선서 3, 성바오로출판사, 1980, pp. 110~112/ J.B. Liba-nio · M.C. Bingemer, 김수복 역, 《그리스도교 종말론》, 분도출판사,1989, pp. 329~358/ L. Boros, 이홍근 역, 《미래와 희망》, 분도출판사,1970. [崔榮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