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동 90-1소재. 1954년 10월 1일 광주대교구 나주 본당 소속의 영산포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관할 구역은 나주시 이창1 · 2 · 3동, 영산1 · 2동, 삼영1 · 2동 · 부영 아파트, 운곡동, 관정동, 왕곡 공산, 신월 양산, 세지 봉황 전 지역. 관할 공소는 동강, 옥산 등 2개소. [교 세] 1955년 241명, 1960년 1,284명, 1965년 1,624명, 1971년 1,244명, 1976년 1,622명, 1981년 1,264명, 1986년 1,475명, 1991년 1,781명, 1996년 1,872명, 1999년 1,461명. [역대 신부] 초대 던(J. Dunne, 도) 요한(1954. 10~1956. 9), 2대 클리어리(J. Cleary, 신) 요한(1956. 9~1961. 8), 3대 우즈(F. Woods, 우) 프란치스코(1961. 8~1967. 6), 4대 라일리(M. Reilly) 마태오(1967. 6~1968. 8), 5대 오리니(A. O'Leany, 오) 안드레아(1968. 8~1970), 6대 로이어(F. Royer, 노) 프란치스코(1970~1973. 3), 7대 린츠(C. Lintz, 인) 가롤로(1973. 3~10), 8대 오리니(1973. 11~1975.4), 9대 돌란(J. Dolan, 도) 요셉(1975. 4~5), 10대 오네일(N. O'Neill, 천) 노엘(1975. 5~8), 11대 캠피언(L. Campion, 파) 라흘린(1975. 8~1979. 5), 12대 에반스(J. Evans, 한) 요한(1979. 5~1983. 9), 13대 갤라거(W. Gallagher, 갈) 굴리엘모(1983. 9~1986. 3), 14대 쉬한(D. Sheehan, 간) 다윗(1986. 3~1987. 1), 15대 이천수(李淺水) 라자로(1987. 1~1988. 1), 16대 황양주(黃量柱) 안토니오(1988. 1~1990. 1), 17대 김종주(金宗柱) 루가(1990. 1~1992. 1), 18대 권병석(權柄碩) 세례자 요한(1992. 1~1996. 1), 19대 정도식(鄭道植) 즈가리야(1996. 1~1999. 8), 20대 왕승수(王承洙) 안드레아(1999. 8~현재).
〔설립과 발전] 영산포 본당이 설립될 당시의 관할 구역 안에서 복음 전파의 선구적 역할을 한 곳은 옥산 공소와 다시 공소였다. 영산포 본당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원래 신자가 없었다. 영산포읍 주민들이 나주 본당을 비롯한 인근 지역 신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비로소 이 지역에서 신앙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신자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 나주 본당의 미사와 성사에 참여하게 되자 나주 본당의 5대 주임 박문규 신부가 1948년 나주군 영산포읍 대성동 90번지(현 나주시 영산동 90-1번지)의 옛날 집 한 채(건평 26평)가 딸린 126평의 대지를 매입하여 공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나주 본당의 7대 주임 로한(P. Lohan) 신부는 장차 영산포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기 위하여 부지를 확보하기 시작하였는데, 1952년경 사제관으로 활용할 기와집 한 채(건평22평)와 부지 476평을 매입하였으며, 또한 사택으로 이용할 초가집 한 채(건평 24평)가 딸린 300여 평의 부지를 추가로 구입하였다. 교구청에서는 1954년 여름 던 신부를 영산포 공소에 파견하여 본당 설립을 준비하도록 한데 이어 그 해 10월 1일 영산포 공소를 영산포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초대 주임으로 던 신부를 임명하였다. 영산포 공소가 더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도 컸던 다시 공소를 제치고 본당으로 승격된 것은, 그것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 교통의 중심지이자 상업의 중심지이며 읍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던 신부의 활발한 전교 활동에 힘입어 많은 기관장들이 성당에 나오게 되었다. 이로써 신자수가 증가하자 1954년 말경 양철 집(22평)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갈수록 늘어나는 신자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새 성당을 신축해야만 했다. 던 신부는 골롬반 외방선교회를 통하여 외국에서 건축 기금을 모아 1956년 9월 26일 80여 평의 새 성당을 건립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2대 주임으로 부임한 클리어리 신부는 1956년 말경 인보 성체 수도회 분원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인보성체 수도회가 3대 주임 우즈 신부 때인 1964년 8월 10일에 철수하면서 대신 까리따스 수녀회의 분원이 마련되었다. 라일리 신부가 주임으로 있던 1968년에 영암 공소가 신자들의 증가로 본당으로 승격되어 영산포 본당에서 분리되었다. 5대 주임으로 부임한 오리니 신부는 주일학교 어린이 교육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실시하는 등 신자 교리 교육에 치중하였으며, 6대 주임으로 부임한 로이어 신부는 직접 노동 일을 하는 등 실천적인 사목을 하였다. 로이어 신부는 성당의 지붕을 개량한 뒤 마을사람들의 일들을 도와 주었으며, 가난한 병자와 불구자들을 돌보아 주었다. 하지만 주임 신부의 잦은 교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냉담자가 늘어나 교회는 침체되었다.
그러나 12대 주임으로 부임한 에반스 신부는 오래 전부터 사도회와 성모회를 중심으로 추진해 온 교회 묘지 조성 사업을 실천에 옮겨 1980년 9월 8일 2,000여 평의 교회 묘지를 매입하였으며, 영산포 지역에서는 최초로 자선 바자회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교회 묘지의 운영이나 자선 바자회의 개최는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초 중 · 고등학생들을 위한 독서실과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설치하고 학생들을 상대로 전교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 결과, 많은 학생들이 성당에 나오게 되었다. 13대 주임 갤라거 신부는 신자가 한 명만 있어도 그곳을 공소로 삼고 매주 순회 방문하였으며, 불쌍한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에 힘입어 영산포 본당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14대 주임으로 부임한 쉬한 신부를 끝으로 영산포 본당의 사목은 한국인 사제에게 맡겨졌다. 15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천수 신부는 한국인 사제의 부족으로 영산포본당과 나주 본당을 겸하여 담당하였다. 16대 주임 황양주 신부는 1988년 6월 12일 광주 쌍촌동 본당과 자매 결연을 맺었고, 18대 주임 권병석 신부는 1994년 3월 13일 동강 공소에 성모상을 안치하고 축복하였으며, 19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도식 신부는 1997년 3월 10일 수녀원과 교육관을 준공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20대 주임을 맡은 왕승수 신부는 지역 사회와 하나가 되는 본당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하여 신자들과 다 같이 노력하고 있다. (→ 광주대교구 ; 나주 본당)
※ 참고문헌 광주대교구 50년사 편찬위원회 편, 《광주대교구 50년사》, 천주교 광주대교구, 1990. 〔徐鍾泰〕
영산포 본당
榮山浦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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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