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수련

靈性修練

〔라〕exercitia spiritualis · 〔영〕exercise of spirit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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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수련을 위해서는 분심을 없애고 하느님께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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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수련을 위해서는 분심을 없애고 하느님께 집중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온전히 본받고 완덕(完德)에 이르기 위하여 자신의 영성을 수련하는 것. 기도를 효과적으로 하는 수련이 대표적이다.
〔기도의 준비와 자세〕 구송 기도 · 묵상 · 관상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비우고,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모든 죄악과 악한 마음, 즉 분노 · 미움 · 시기 · 질투 · 앙갚음 · 거짓 · 욕망 · 고민 · 근심 걱정 · 불안 · 두려움 · 슬픔 · 짜증 · 욕구 불만 등을 제거하고, 내적인 안정 · 평화 · 고요함을 되찾는다. 신체적 · 심리적 긴장을 풀고,모든 생각과 상상을 제거한다. 하느님 앞에 나아가 과거의 모든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빌고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성령께 구송 기도 · 묵상 · 관상을 잘할 수 있는 은총을 청원한다. 특히 묵상과 관상을 하기 전에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후 마음을 따뜻하고 부드럽고 온순하게 한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만남 · 대화 · 친교이지만, 사랑의 만남, 마음의 대화, 감정을 활용하는 감동적이고 감격스러운 친교이다. 기도는 어떤 형식, 방법보다 의식적으로 '사랑하는 행위' 이다.
분심을 없애고 하느님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영성 지도자와 정신 수련 지도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들을 권장한다. 십자가 · 감실 · 성상 · 성화 등을 바라보고, 눈을 감아 상상으로 하느님 아버지, 예수님, 성령, 성모님을 바라보고 거기에 의식을 집중하도록 한다. 또는 촛불 · 하늘 · 별 · 바다 · 산 · 나무 · 꽃이라든가 어떤 추상적인 그림이나 도표(☆, ◦, □, △, ♡, ♣) 등을 바라보고 거기에 의식을 집중시키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떤 숫자나 단어, 특히 신앙과 관련된 단어(하느님 · 사랑 · 예수님 · 십자가 · 평화 등)를 하나 뽑아 반복해서 외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떤 조용한 음악을 듣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한 상태를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자신의 호흡이나 심장의 고동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의식하고, 그분께 대한 감사 · 찬양 · 사랑을 일깨우는 것이 기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준비와 방법이다.
구송 기도 · 묵상 · 관상을 잘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자세가 요구된다. 첫째는 하느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의식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지극한 사랑으로 자신을 보고 계시고 자신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시는 것을 강하게 느끼도록 한다. 그분의 사랑이 넘친 눈길을 뜨겁게 느끼고, 자기도 하느님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둘째는 자기 심정을 하느님께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하느님 앞에 자신이 제일 절실히 느끼는 바를 털어놓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느님께 대한 감사 · 찬양 · 사랑 · 의지 · 봉헌 · 맡겨 드림 · 순종 · 통회 · 용서를 청하는 것, 어떤 은총을 청원하는 것 등의 심정 중에서 가장 간절히 느끼는 심정을 간절하고 절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구송 기도 수련〕 구송 기도는 '구도' (口禱), '구경' (口經)이라고도 부르며, '일정한 형태로 정해진 기도문'을 의미한다. 구송 기도는 전례 기도를 비롯하여 기도서에 나오는 모든 기도문을 포함하는데, 공동으로 외울 경우와 개인으로 외울 경우가 있다. 구송 기도는 입으로 외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느님과의 진정한 만남 · 대화 · 친교가 되도록 외워야 한다. 하느님과 만나고 대화하고 친교를 나눈다는 의식 없이 그냥 외우는 것은 기도가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 대한 감사 · 찬양 · 사랑 · 봉헌 · 통회 · 간청 등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형식적 · 기계적으로만 기도문을 외우는 것은 기도가 되지 못한다.
기도문을 외우는 것은 기도의 '목적' 도 '본질' 이나 '중심' 도 아니며, 기도의 '수단' · '방법' 에 불과하다. 기도문을 외우는 것이 기도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도문을 꿰뚫어 그 뒤에 숨어 계시면서도 살아 계시는 하느님과 인격적으로 친교를 나누어야 한다.
하느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느끼고 자기 심정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기도문의 내용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외워도 되고, 기도문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 기도문의 내용을 하나하나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이 느끼는 심정 (감사 · 찬양 · 사랑 · 봉헌 · 통회 · 간청 등)을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기도문을 그냥 외우는 것이 더 나은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하느님께 집중하기 어렵고 자꾸 분심이 들 때는 기도문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실 모든 구송 기도는 하느님께 감사 · 찬양 · 사랑 · 봉헌 · 통회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기도문을 외우기만 하면 기도를 했다고 생각하는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 구송 기도문을 외우는 것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안정시켜 하느님께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마음을 점점 부드럽고 따뜻하고 온화하게 하여 진정으로 하느님과의 감동적인 만남 · 대화 · 친교를 갖는 데에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더구나 많은 신자는 구송 기도를 외우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한다. 구송 기도를 외우지 않으면 분심이 들고 눈을 감으면 여러 가지 상상이 떠오를 경우,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하느님께 집중시키기 위해 구송 기도를 외우는 것은 참 좋은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문을 외우는 일에 너무 신경쓴 나머지 하느님과의 만남 대화 · 친교의 의식이 약해지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오히려 하느님과의 생생한만남 · 대화 · 친교에 중점을 두고, 기도문을 외우는 일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지 않은 신자들에게 기도문을 외우는 것이 하느님과의 진정한 만남 · 대화 · 친교를 가지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기도문을 외우는 일에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구송 기도와 묵상 기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구송 기도에는 묵상적인 요소가 이미 내포되어 있다. 기도문을 외우면서 하느님과의 살아 있는 만남 · 대화 ·친교를 갖고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묵상이기 때문이다. 한편 묵상 기도도 구송 기도를 외우면서 할 수 있다. 구송 기도를 외우는 것은 하느님께 마음을 집중시키고 그분과 친밀한 대화, 친교를 나누는 묵상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구송 기도를 외우는 가운데 이미 묵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짧은 구송 기도와 묵주 기도를 외우면서 심오한 묵상과 관상을 체험하고 있다. 짧은 기도문이나 화살 기도를 반복하여 외우는 것은 바로 심오한 묵상과 관상을 하기 위한 보편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구송 기도를 묵상 기도와 관상 기도보다 수준이 낮고, 영성 생활의 초기에나 하는 기도라고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영성 생활이 진전함에 따라 묵상과 관상이 심화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구송 기도를 경시하기보다 더욱 소중히 여겨 경건하게 바치게 된다. 특히 규칙에 정해진 구송 기도와 공동 기도를 정성껏 바치게 둔다. 이리하여 구송 기도가 점점 묵상적 · 관상적 양상을 띠게 된다.
이에 대해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1567~1622)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약 구송 기도를 바치다가 묵상에로 마음이 끌린다면 거절하지 말고 고요히 마음을 그 방향으로 흐르게 하시오. 설사 구송 기도를 예정대로 끝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묵상 기도가 그 이상으로 하느님의 마음에 들고 당신의 영혼에도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15~1582)에게 자기가 관상을 할 줄을 모른다고 말했다. 성녀는 그녀에게 어떻게 기도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공경하기 위해 '주님의 기도' 와 '성모송' 을 다섯번씩 외우지만 그 이상은 아무 기도도 바치지 못하게 된다고 대답했다. 성녀는 그녀가 기도를 바치는 모습을 살펴보고 말했다. "당신은 벌써 관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설명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대로 계속하십시오."
〔묵상 기도 수련〕 묵상 기도는 '염도' (念禱) 또는 '염경' (念經)이라고도 하며, 정해진 기도문을 외우지 않고 내심에서 자유로운 형태로 하느님과 대화, 친교를 나누며 자기 심정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기도' 이다. 묵상 기도는 각자가 자기 심정을 자유로운 형태로 표현하는 것인 만큼 그 방법은 수없이 많으며, 최종적으로 각자가 자기에게 제일 맞는 방법을 찾고 구성하여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묵상 기도의 네 가지 근본 구조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독서' · '성찰' · '감동적 대화' · '결심' 이다.
첫째, '독서' 는 영성 서적을 읽는 것이다. 읽은 내용과 장면을 상상으로 꾸며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특히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하는 것은 그분들과 감동적 대화를 나누는 데 도움이 된다. 서적을 읽는 대신에 어떤 기도문을 천천히 외워 그 내용을 생각할 수 있고, 어떤 제목이나 장면을 생각하고 상상할 수도 있다.
둘째, '성찰' 은 읽은 내용을 자신과 연결시키고, 자신의 생활에 적응시켜 반성하는 것이다. 그 내용이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고, 자신의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그 내용을 자신이 얼마나 실천하고 실천하지 않는지 살펴본다. 서적을 읽지 않고 처음부터 어떤 제목을 자신에게 적응시켜 반성할 수도 있다.
셋째, '감동적 대화' 는 읽고 성찰한 내용에 대해서 마음을 움직이고 감정을 일으켜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것이 묵상의 중심이며, 엄밀한 의미의 묵상이다. 자신의 심정과 감정, 즉 찬양 · 찬미 · 감사 · 사랑· 믿음 · 희망 · 예배 · 봉헌 · 순종 · 통회 · 뉘우침 · 죄송스러움 · 부끄러움 · 용서를 청하고 어떤 은총을 청원하는 것 등을 느끼는 대로 다양하고 생생하게 표현하여 진정한 대화와 친교를 나누도록 한다. '감동적 대화' 가 없는 '독서' 와 '성찰' 만으로는 묵상 기도라고 할 수 없다. '영적 독서' 와 '자기 성찰' 은 그 자체로서 기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독서' 와 '성찰' 부분을 생략하고 처음부터 하느님과 '감동적 대화'를 나누어 묵상할 수도 있다.
넷째, '결심' 은 묵상한 내용을 자신의 생활에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 사항을 실천에 옮기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결심' 은 실천하기 쉽고 간단한 단 한 가지의 구체적인 일을 정하고, 하루에 한 번이라도 실천에 옮기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너무 추상적이고 일반적이고 복잡하고 어려운 결심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영적인 욕심을 부리며 큰 결심을 세우지만 실행하지 못할 경우가 많다. 크고 많은 결심보다 자신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한 가지를 세우고 큰 사랑과 정성으로 실천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 '결심' 은 기도와 묵상을 자기 생활과 연결시키기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기도와 묵상이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이 되지 않고,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고 자신의 생활과 유리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결심을 세워 실천해야 한다.
'독서' , '성찰' , '감동적 대화' , '결심' 중의 어떤 요소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묵상 기도 방법에 차이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독서' 와 '성찰' 부분이 줄어들고 '하느님과의 감동적 대화' 가 늘어나는 것이 묵상 기도의 올바른 진전이고, 관상 기도로 가는 길이다. 또한 '하느님과의 감동적 대화' 는 여러 가지 찬양 · 감사 · 사랑 · 희망 · 믿음 · 봉헌 등의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에서 점점 한 가지의 감정만을 표현하는 대화로 가는 것이 묵상 기도의 올바른 발전이고 관상 기도로 가는 길이다. 또한 하느님의 모습과 복음서의 장면을 상상하는 것과 어떤 기도문을 되풀이해서 외우는 것이 줄어드는 것도 묵상 기도의 성장이고 관상 기도로 가는 길이다. 감정의 외적 표현보다 내면의 심오한 곳에서 느끼고 깨닫고 체험하는 것이 올바른 발전이고 관상으로 가는 길이다. 요약하면, 묵상 기도의 내용과 방법이 더욱 내면화 심화 ·단순화 · 순수화하는 것이 올바른 진전이고, 관상 기도로 가는 길이다.
〔묵상 기도 수련관상 기도 수련〕 묵상 기도의 '독서' 와 '성찰' 부분이 없어지고, '감동적 대화 의 여러 가지 다양한 감정 표현이 한 가지로 모아지고, 그 한 가지 감정의 표현이 외적이고 피상적이고 복잡한 것에서 내적이고 단순하고 순수한 표현이 될 때 묵상 기도는 관상 기도로 옮아 간다. 동시에 대상자 하느님을 상상으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는 것도 줄어들고, 하느님을 그대로, 아주 가까이, 거의 직접 바라보고 사랑하고 인식하게 된다. 하느님과 사람 간의 대화와 친교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 · 중개 수단(언어 · 상상 · 이미지 · 감정 · 감각 등)이 줄어들고 거의 없어지기 때문에 하느님을 간접적으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관상은 사람의 존재와 생명의 심오한 차원에서 하느님과 일치하고 그분께 의존하는 체험으로, 그분을 앞에 모시고 마주보고 대면하기보다 그분 안에 들어가 하나가 되는 '상호 내재(內在)' 의 체험이다. 사람은 하느님께 사로잡히고 매혹 · 매료되어 인간적인 능력(지성 · 의지 · 사고 · 감정 · 감각 · 상상 등)의 사용이 일시 중단된 상태가 된다. 생각도, 말도, 감정의 표현도 없어지고, 침묵 속에서 오직 하느님을 맛들이고 그분께 잡힌 상태이다. 그로 인해서 하느님이 전부이시고, 절대자이시며,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무(無)임을 깨닫고 체험한다. 유한한 사람이 무한한 하느님의 본성을 전적으로 체험하기 때문에 관상은 막연하고 몽롱한 체험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관상 기도는 그 자체가 '수동적' 체험으로서, 하느님이 원하는 사람과 시기에 원하는 만큼 베푸시는 은총이다. 따라서 관상 기도 수련을 얼마나 하거나 또는 하지 않는다고 해서 얼마나 잘 되거나 또는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준비와 수련을 다한 후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 드리고 기다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관상 기도를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준비와 수련을 잘하면 광범위한 의미의 관상 체험을 할 수 있다.
광범위한 의미의 관상이란 자기 의식이 무의식 수준의 직전까지 내려가 의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특정한 생각 · 상상 · 느낌이 전혀 없이 고요하고 선명하고 집중된 정신 상태를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다른 여러 종교와 여러 정신 수련에서도 체험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종교와 정신 수련의 관상이 자기 혼자, 자기 자신과 자기 의식과의 관계에 있어 체험하는 무아(無我), 몰아(沒我), 무사고의 상태인 데 비해, 그리스도교 관상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 무아, 몰아, 무사고의 상태이다.
관상 기도 방법은 주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어떤 짧은 기도문 · 화살 기도 · 성서 구절 또는 어떤 단어를 반복하여 외우는 것이다. "무지의 구름"은 '하느님' 과 '사랑' 이란 단어를 권장하고, "이름없는 순례자"는 '예수의 기도' 즉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를 호흡에 맞추어외우는 것을 권장한다. 단어는 신앙에 관련된 세 음절 이하의 것이 효과적이지만 약간 많은 음절의 단어라도 괜찮다. 기도문이나 단어를 그 내용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차분하고 저절로 외워지게 한다. 외울수록 자기 의식이 깊이 내려가 아무 생각도 느낌도 상상도 없어지며, 더욱 고요하고 선명하고 집중된 상태 즉 광범위한 의미에서말하는 관상 상태가 된다.
둘째는 하느님께 대한 여러 가지 감정(찬양 · 감사 · 사랑 · 순종 · 통회 등) 중 하나의 감정을 점점 열렬하고 간절하게 느끼게 하고 고조시키는 방법이다. 외적이고 감정적으로 흥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적으로 더욱 심화되고 순수화되고 단순화되는 감정이다. 하느님께 대한 어떤 감정을 매우 강렬하고 애절하게 느낄 경우, 인간적인 감정과 말과 생각으로 도저히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차원을 넘어 감정도 말도 생각조차 사라지고 고요하고 선명하고 집중된 상태에 머물게 된다. 이것도 역시 광범위한 의미에서 말하는 관상 상태이다.
남자에게는 아무 생각 · 상상 · 감정의 움직임도 없는 '순수 관상' 이 알맞지만, 여자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약간 상상하고 애정을 약간 표현하는 것이 알맞는 관상이다. 위의 두 가지 방법을 쓰지 않아도 경우에 따라 차분하고 고요한 상태에서 눈을 감기만 해도 관상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다.
〔생활 중의 기도 수련〕 생활 중에 어떤 활동이나 행동을 하면서 기도를 끊임없이 계속하는 수련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활동을 하면서 어떤 기도문, 화살 기도, 성서 구절 등을 계속해서 외우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기도문이나 성서 구절을 몇 개 마음에 담아 놓았다가 수시로 반복하여 외운다. 묵주 기도를 활동하면서 바치는 것도 좋으나, 각 단 신비의 내용을 간단하고 가볍게라도 묵상하면서 외워야 한다.
둘째, 자유 기도를 수시로 바치면서 활동을 한다.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을 마치 친밀한 아버지, 친구, 애인, 어머니처럼 모시고 그때그때 느끼는 심정을 표현하고, 원하는 대로 말씀드린다. 어떤 기도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찬양 · 감사 · 사랑 등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별것 아닌 내용을 자연스럽게 친구에게 말하듯이 말씀드리는 것도 기도가 된다. 예를 들어 "예수님, 좀 늦었으니까, 집에 빨리 돌아가야겠어요" , "비가 올 것 같네요. 성모님, 빨래를 빨리 걷어야겠어요"라고 말씀드리는 것도기도가 된다. 그러기 위해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이 자기 앞에서 자기를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자주 의식하고 그분들의 눈길을 느끼며 사는 것이 도움이 된다.
셋째, 아무 기도문도 바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없이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한다. 하느님께 대한 찬양 · 감사 · 사랑 · 의지 · 순종 · 통회 등의 감정을 말없이표현하며 사는 것이다. 이것을 "하느님 현존(을 의식하는) 체험"이라고 부른다.
위의 세 가지 중 어떤 방법으로도 끊임없는 기도를 하는 것은 가능하며, 실제로 교회 역사에서 많은 영성가와 신자들이 끊임없는 기도를 실천했다. 끊임없는 기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음처럼 세상의 만물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체험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첫째,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체험한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피조물이며, 성령이 그 안에 머무시는 성전이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이며 영성체로 예수님을 받아 모신 몸이다. 생활하면서 수시로 자신 안에 침잠(沈潛)하면서 그곳에 현존하시는 삼위 일체의 하느님을 만나 뵙고 그분과 친밀한 친교를 나눈다.
둘째, 타인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체험한다. 다른 사람도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피조물이며, 성령이 그 안에 머무르시는 성전이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이자 영성체로 예수님을 받아 모시는 몸이다. 따라서 타인을 하느님 모시듯이 모시고 예수님을 사랑하듯이 사랑해야 한다. 외면을 당하는 사람 안에서 하느님이 외면을 당하고 계시며, 고통받는 사람 안에서 예수님이 고통을 받고 계시는 것을 보고,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이 외면을 당하지 않고 예수님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곧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봉사와 선행이 되며, 그대로 기도가 된다.
셋째, 사물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체험한다. 사물은 하느님의 존재에 참여하고 존재하며, 생명체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산다. 만물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존재하고, 존재함으로써 하느님을 찬양한다. 만물을 그렇게 보고 받아들이고 만물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 바로 만물 안에 기도하는 것이다. 새 한 마리와 꽃 한 송이도 하느님이 돌보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것(마태 26, 30 참조)이 곧 기도의 삶이다.
넷째, 사건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체험한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람의 개인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다. 가령 사람이 범하는 죄와 고통과 불상사를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것은 그분이 거기에서 더 큰 선을 이끌어 내시기 위해서이다. 모든 사건과 일을 하느님의 섭리와 연결시키고 그분께 순종하여 받아들이고, 그 안에 주어지는 메시지를 감사와 찬양으로 받아들인다면, 사건 안에 하느님을 보고 체험하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이다.
다섯째, 행위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체험한다. 사람은 모든 활동과 행위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할 수 있고, 또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해야 한다. 모든 활동과 행위의 원천이 하느님인 만큼 모든 활동과 행위의 목적과 동기도 하느님이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활동과 행위를 하느님께 의지하고 맡기며 실천하고, 하느님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기 위해 행한다면 활동과 행위 안에 하느님을 보고 체험하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이다. (→ 관상 ; 기도 ; 묵상 ; 영성 ; 예수 기도)
※ 참고문헌  김보록, 《기도하는 삶》, 생활성서사, 1988, pp. 53~182/ - 《영성의 시냇물》 1, 생활성서사, 2000, pp. 55~80. [金保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