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 공동체가 감사 기도 중에 축성된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어 먹고 마시어 그분과 한 몸을 이루며, 그를 통해 믿는 이들이 서로 한 혈육을 이루는 예식.
I . 역사와 의미
영성체를 가리키는 라틴어 '콤무니오' (communio)는 어원적으로 '공동 책임' 과 관련이 있으며, '공동' 또는 '친교' 란 의미를 갖는다. 이 단어는 고대 교회에서 그리스도와의 친교 · 교회적 친교를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차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이루는 일치' 란 의미로 정착되었다. 영성체 예식(Ritus commmunionis)은 주님께서 최후 만찬을 하시는 동안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신 후 제자들에게 주신 동작에 상응한다.
〔역 사〕 영성체의 역사는 예수의 최후 만찬에서부터 시작한다. 초기 신자들에게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은 정상적인 관례였다. 4세기에 이르러 신자들의 영성체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아리우스주의에 반대하여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강조가 '두려운 신비' (mysteirum tremendum) 사상과 연결된 성체에 대한 과도한 공경으로 이어진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또한 중세 시기에 성찬례 거행보다 그 효과에 대한 관심, 영성체 전 고해성사의 요구 등이 신자들을 영성체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는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부활 시기에 영성체할 것을 규정하였다. 한편, 서방 교회에서의 양형 영성체는 12세기 이래 집전자에게만 유보되었다. 축성된 포도주를 부주의로 흘릴 위험성과 빵 형상만으로 이루어지는 성체 분배의 편의성 등 현실적인 이유로 이 관습이 보급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당시 발전한 그리스도께서 두 가지 형상에 각각 온전하게 현존하신다는 교리는 이 관습을 더욱 굳게 하였다.
영성체가 드물어지면서 축성된 성체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사 중 거양 성체가 출현하고 성체 공경 신심이 급속히 발전하였다. 성사적 영성체와는 다른 이른바 영적인 영성체〔神領聖體, communio spiritualis〕 관습이 도입되었다. 그리스도와 영적인 일치를 추구하여 실제로 성체를 모시지 않고 마음으로 성체를 모셔도 같은 효과가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으며, 이로써 성사적 영성체는 더욱 줄어들었고, 신자들의 영성체가 없는 미사가 예사로 거행되었다. 한편, 영성체하는 순간에도 변화가 있었다. 신자들은 영성체를 성찬례 거행과 관련 없이 미사 중 어느 때라도, 심지어는 미사 전이나 후에도 하였다. 이 경우 당연히 미리 축성된 성체로 하였다. 이에 따라 성체를 미리 축성하여 성합에 모셔 두는 관습이 생겨났다. 이러한 관습은 성사적 영성체와 성찬례 거행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결과였다. 신자들의 성찬례 참여는 참여하는 미사에서, 또한 거행의 순서에, 따라 요청되는 순간에 그리고 그 미사에 축성된 성체로 영성체함으로써 예식적 관점에서나 심리적 관점에서나 그 의미를 더 잘 드러낸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신령성체를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신자들이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실제로 성사적으로 영성체할 것을 권장하였다. 교황 베네딕도 14세(1740~1758)가 이 정신을 이어받아 신자들에게 신령성체뿐만 아니라 성사적 영성체를 하도록 권고하였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황 비오 10세(1903~1914)와 비오 12세(1939~1958)도 신자들의 성사적 영성체를 강조하였다.
[영성체 예식의 역사] 교회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주님의 만찬을 계속하면서 감사를 드린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셨다. 초대 교회는 영성체의 중요성과 준비의 필요성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1고린 11, 20-28). 2~3세기 문헌들은 영성체와 성체 분배에 대해서 언급하지만 동반하는 예식에 대해서는 침묵하였다(유스티노, <호교론> 1, 65. 67 : 히폴리토, 《사도 전승》 22). 4세기부터 영성체 예식의 형성을 알려 주는 자료들이 나타났다.
로마 전례에서 영성체의 주요 예식은 그레고리오 1세 교황 시대(590~604)를 전환점으로 크게 바뀌었다. 이 교황은 빵 나눔, 주님의 기도, 평화 예식, 영성체로 이어지던 이전의 영성체 예식을 주님의 기도, 평화 예식, 빵 나눔, 영성체 순서로 바꾸었다. 《로마 예식서》 시대에는 혼합 예식이 도입되었다. 이에 따라 예식은 주님의 기도, 빵 나눔, 혼합 예식, 평화 예식, 영성체 순서로 확정되었고, 이 순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전까지 지속되었다.
공의회 개혁은 기본적으로 그레고리오 1세 교황에 의하여 확립된 순서를 유지하면서 더욱 유기적이고 단순한 모습의 영성체 예식을 마련하였다. 현행 예식은 준비 예식(주님의 기도부터 축성된 성체의 현시), 영성체, 영성체 후예식(씻음, 침묵 기도, 다른 노래, 영성체 후 기도)으로 구분된다.
〔의 미〕 성찬례의 식사적 본성 및 기념적 특징에 따라 영성체 예식은 거행의 핵심적 구조를 이룬다. 그래서 영성체가 드물었던 시대에도 적어도 집전자는 영성체를 하였다.
우선 영성체는 주님께서 최후 만찬에서 하셨던 행위를 반복하며 그분이 명령하신 것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주님께서는 성찬례를 제정하시며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몸과 피로 제자들에게 내주시어 먹고 마시도록 하셨다. 또한 주님께서는 자신을 기억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교회는 주님의 명령대로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주님의 파스카를 기억하고 선포한다.
나아가 영성체는 새롭고 결정적인 계약의 제사인 성찬례의 의미를 충만하게 드러내는 행위 이다. 예수께서 제정하신 성찬례는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데서 정점에 이른다. 사도들은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받아 모시며 주님의 제사에 참여하였다. 마찬가지로 신자들은 영성체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께 드리는 살아 있는 찬미가 되려 한다.영성체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주님께서 바치신 제사, 새롭고 결정적인 계약을 인준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성체는 필요한 응답이며, 감사 기도의 필수 불가결한 완성이다.
마지막으로 성찬례의 식사적 의미는 영성체를 통해 완성된다. 공동 식사는 가족성과 우정의 표현을 담고 있다. 또한 공동 식사가 종교적 특징을 지닐 때 그것은 초월과 친교의 유효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영성체는 성찬례가 거룩한 공동 식사인 점을 탁월하게 드러낸다.
II 영성체 준비 예식
〔주님의 기도] 영성체 준비 예식은 주님의 기도로 시작한다. 4세기경의 문헌에 미사에서 영성체 전에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관습에 대한 증언이 있다(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신비 교육》 V, 11 : 암브로시오, 《성사론》 V, 4, 24 : 아우구스티노, 《설교》 227). 주님의 기도는 언제나 감사 기도와 영성체 사이에 배치되었다. 이 점은 주님의 기도가 지닌 영성체 준비 기능을 설명해 준다. 주님의 기도 낭송에는 초대의 말, 부속 기도 및 영송(榮誦) 등의 다른 양식문이 결합되었다.
기도의 초대 : 고대의 성무 집전서들에 수록되어 있는 (Ge 125) 초대 양식문 본문과 비슷한 문장들은 치프리아노(?~258)의 저술 등 고대 문헌에서 발견된다(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2). 현행 라틴어 미사 통상문은 전통적인 초대 양식문 한 가지만을 제시하지만, 다른 본문의 사용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말 미사 전례서에는 "주님께서 몸소 가르쳐 주신 기도를 다 함께 정성들여 바칩시다"라는 초대 양식문을 기존 초대문과 함께 수록하였다. 초대의 말은 회중에게 주님의 기도의 제정자는 주님이심을 상기시켜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자들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것같이 그리스도인의 용기를 가지고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신뢰감을 가지고 아버지께 말씀을 드린다.
주님의 기도 : 미사 전례서는 복음서에 수록된 두 개의 주님의 기도 본문 중(마태 6, 9-13 : 루가 11, 2-4) 마태오 복음서에 수록된 본문을 불가타역에 따라 사용하였다. 그러나 빵에 대해서는 "초본질적" (supersubstantialis)이라는 마태오 복음서의 본문 대신에 "매일의" (cotidianus) 라는 루가 복음서의 단어를 채택하였다. 주님의 기도는 영성체 전에 배치되었다. 본래는 빵 나눔 후에 바쳤으나, 그레고리오 1세 교황 시대에 빵 나눔 전 감사 기도 뒤에 곧바로 바치게 되었다. 교황은 축성된 제물에는 주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기도를 바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서간) Ⅸ, 12).
주님의 기도가 미사에 도입된 동기는, 우선 이 기도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과 죄의 용서에 대한 청원이 영성체의 적절한 준비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미사 전례서는 이 동기를 지지한다(《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56). 두 번째 동기는, 고대 교회가 일용할 양식과 성찬례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주님의 기도를 통한 하느님의 용서를 영성체 준비에 필요한 순결과 관련된 구체적 방법으로 이해하였다. 세 번째 동기는, 주님의 기도가 갖는 종말론적 차원이다. 하느님 나라 도래의 기원은 성찬례의 종말론 식사적 측면과 연결된다.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주님의 기도를 감사 기도에 결합시킨 데서 드러나듯이 어떤 의미에서는 앞서 바친 감사 기도를 종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 주님의 기도는 결정적으로 영성체를 지향한다. 이 때문에도 감사 기도와 잘 연결된다.
동방 교회에서는 주님의 기도가 일반적으로 회중의 기도였다. 그러나 서방 교회에서는 그레고리오 1세 시대부터 감사 기도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인식 때문에 주례자의 기도로 간주되었다. 이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회중 전체의 기도로 복구되었다.
부속 기도 : 주님의 기도 마지막에 사제는 홀로 부속 기도를 큰 목소리로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현행 부속 기도는 옛 미사 전례서에 있던 성인들의 전구, 성호 긋는동작 등 몇 요소를 삭제하여 한층 단순하다. 부속 기도문은 주님의 기도에 첨가된 양식문으로 주님의 기도의 마지막 청원을 발전시키면서 신자들의 공동체가 악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청한다. 또한 평화에 대한 언급은 주님의 기도와 뒤따르는 평화의 예식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에 주님의 재림에 대한 언급을 첨가하여 종말론적 희망을 제시한다.
영송 : 이 양식문은 이미 마태오 복음서의 몇 사본에서 주님의 기도 마지막에(6, 13) 첨가된 본문으로 발견된다. 《디다케》도 주님의 기도 마지막 청원에 즉시 이 영송을 첨가하고 있다(《디다케》 8). 여러 고대 전례에서 비슷한 첨가문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전례에서 이 영송은 주님의 기도에 이어지는 부속 기도가 도입되었을 때 사라졌다. 로마 전례도 이 경우에 속한다. 오늘날 미사 전례서는 이 영송을 복구하여 부속 기도의 끝에 배치하였다. 내용은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다. 어떤 이는 이 영송이 대부분의 동방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도 사용된다는 점을 들어 일치적 가치가 있다고 지적한다.
〔평화 예식〕 역사 : 성찬례 거행 안에 평화 예식이 도입된 것은 초세기부터였다. 순교자 유스티노(100~16)는 전구의 기도가 끝나고 성찬례를 위한 예물을 가져오기전에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를 하는 관습을 전하고 있다(《호교론》 I . 65. 68 : 참조 : 마태 5, 23-24). 이 예식은 로마에서 처음에는 보편 지향 기도가 끝난 후 봉헌 전에 이루어졌지만, 4세기 말 또는 5세기 초에 주님의 기도 후 영성체 전으로 위치가 옮겨졌다. 평화의 예식은 이렇게 영성체와 연결되었다.
초기에는 모두가 평화의 인사를 하였지만 차츰 성직자에게만 유보되었다. 한편, 처음에는 신자들이 입맞춤으로 평화의 표시를 하였지만 후에는 포옹으로 변하였다.후대에는 조그만 판에 십자가가 그려진 '평화의 도구' 가 입맞춤에 사용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화의 표시가 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 모든 신자들 사이에 서로 교환되도록 하였다. 지역 백성의 특성과 관습에 따라 평화의 표시를 교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주교 회의의 권한이다. 이 예식은 평화를 위한 기도, 평화의 전달, 평화의 표지 상호 교환에 대한 초대, 평화의 표지의 상호 교환 등의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평화를 위한 기도 : 평화를 위한 기도는 그리스도께 지향된다. 먼저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도들에게 주신 평화의 선물을 기억하고(요한 14, 27), 이어서 교회에 평화와 일치의 선물을 주시기를 간청한다. 이 기도문은 11세기 독일 지방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처음에는 사제의 사적인 기도(apologia)로 간주되어 사제 혼자 침묵 중에 바쳤으나, 오늘날에는 공적인 기도로 변하여 사제가 모두의 이름으로 큰소리로 바친다.
평화의 전달 : 이 양식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다(요한 20, 19. 21). 이 양식문은 평화를 위한 기도문보다 먼저 영성체 예식에 도입되었으며, 평화의 동작의 직접 준비로 바로 앞에 배치되었다. 하지만 곧 빵 쪼개과 혼합 부분으로 이동되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양식문에 옛 위치를 되찾아 주었고, 초대 기능을 복구시켜 주었다.
평화의 표지 교환에 대한 초대와 평화의 표지의 상호 교환 : 새 미사 전례서는 필요에 따라 모든 신자들이 서로 평화의 표시를 교환할 기회를 배려한다. 평화에 대한 초대의 말과 상호 교환 동작을 통해서 전례 개혁이 복구하기를 원한 평화 예식의 수평적 차원이 드러난다.
평화의 의미 : 평화는 모든 축복의 요약, 최고의 메시아적 선물, 성령의 결실을 뜻한다. 이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것이다(요한 14, 27). 주님께서 수난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평화는 제자들이 주님께서 살아 계시고 자신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요한 20, 19-23) 하나의 파스카 체험으로 그들에게 선사된다. 평화는 교회의 힘찬 파스카 체험이다. 평화 예식은 파스카 신비를 특별한 방법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한편, 평화의 예식은 평화, 화해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형제애를 기억시킨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회에 현존하시며 교회에 평화를 주시고 교회를 일치시키신다. 평화는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삽입시키고 항상 하느님과 형제들의 사랑 안에 더욱 침잠시킨다. 그러므로 평화는 사랑으로 변하여 영성체를 위한 선행 조건이 된다. 즉 신자들이 하느님과 형제들과의 일치를 실현하는 표지로서 영성체를 하도록 준비시킨다. 그리스도의 몸을 합당하게 모시기 위해서는 형제들과 평화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1고린 11, 28). 그러므로 평화의 동작은 인간적인 긴장 완화 순간이 아니며, 평화의 표지의 충만한 의미가 드러나야 하는 거룩함의 순간이다.
〔빵 나눔〕 빵 나눔 예식은 분배를 위하여 축성된 빵을 나눔(fractio panis), 그 작은 조각을 성작 안에 혼합(im-mixtio), 그리고 이 동작을 동반하는 '하느님의 어린 양' (Agnus Dei) 양식문으로 구성된다.
빵 나눔 : 신약성서는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에서 빵을 나누어 제자들에게 주신 사건을 전하고 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동작을 반복한다. 초대 교회에서 빵 나눔은 성찬 모임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였다. 빵 나눔의 동기는 우선 현실적 이유에서 볼 수 있다. 고대 교회에서는 영성체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빵을 나눌 필요가 있었다 (OR I , 101-104). 실제로 작은 제병은 9세기에, 큰 제병은 중세 후기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빵 나눔에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하나의 빵이 여럿으로 나누어지고 모두가 그것을 함께 먹는 것은 교회의 일치와 친교의 상징,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상징이었다(1고린 10, 16-17 ; 《디다케》9). 빵 나눔 예식은 성찬례 거행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모두에게 표현적이고 가시적인 방식으로 이 예식을 수행하는 것이 좋다(《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283항).
하느님의 어린 양 : 기원적으로 '하느님의 어린 양' 양식문은 빵 나눔 예식을 동반할 목적으로 세르지오 교황(687~701) 시대에 성찬례 거행에 도입되었다. 이어서 이 양식문은 빵 나눔과 혼합 후로 이동되고, 그 결과 평화 예식의 요소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이것이 마지막 청원이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로 바뀐 이유이다. 제2차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은 이 마지막 평화에 대한 청원을 유지시키면서 이 양식문의 고대 위치와 기능을 되찾아 주어 빵 나눔을 동반하게 하였다(《로마 미사 전례서총지침》 17항).
이 양식문은 자비송(Kyrie)처럼 그리스도를 지향한다. 양식문 본문은 본래 세례자 요한이 구세주를 가리키기 위하여 외친 말이다(요한 1, 29). 이 양식문에는 구세주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과 함께 희생당한 어린 양의 주제가 드러난다. 빵 나눔에서 주님의 영광스런 수난의 상징인 어린 양을 보기 때문이다. 이 양식문은 세례자 요한의 외침 외에 요한 묵시록에 수록된 어린 양의 영광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느님의 어린 양 양식문의 풍요로운 내용은 참여자들의 믿음을 활성화시켜 어린 양의 저녁 식사에 맞갖게 다가서도록 준비시킨다.
혼합 예식 : 유대교 회식과 예수의 최후 만찬 및 사도 시대에 거행된 빵과 포도주의 혼합에 대한 증언은 없지만 이미 고대 교회는 이 관습을 알고 있었다(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 《교리 설교》 Ⅵ). 로마에서는 '명의 사제들' (tituli)이 교황이 일치를 드러내기 위해 보낸 '성체 조각' (fermentum)을 성작에 넣는 관습이 있었다(416년 인노첸시오 1세, 굽비오의 데천시오에게 보낸 편지, 5). 로마 예식서는 '성체 조각' 관습의 유산으로 보이는 예식, 즉 교황이 미사의 동일성과 지속성을 상징하기 위하여 그전 미사에서 축성된 성체의 한 조각(Sancta)을 성작에 혼합하는 예식(OR I , 95)과 성체와 성혈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일치를 상징적 동작으로 드러내는 두 번째 혼합 예식을 언급하였다(OR I, 107).
성체와 성혈의 혼합 예식은 두 형상으로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완전한 인격체를 의미하는 성체와 성혈을 합침으로써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통합적이고 살아 있는 현존을 드러낸다. 영성체는 그리스도 전체를 모시는 것이다. 또한 고대부터 혼합은 십자가에서 분리된 주님의 몸과 피가 다시 일치하는 것을 의미하여 부활의표지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혼합 예식을 위한 현행 양식문은 '축성' (consecratio)이란 단어를 삭제하고 옛 미사 전례서의 본문을 그대로 사용한다. 사적 기도 형식이지만 복수를 사용함으로써 공동체를 대표하여 바치고 있음을 드러낸다.
〔직접적 영성체 준비〕 영성체를 위한 마지막 준비 예식들은 짧은 개인 기도, 성체의 현시, 겸손의 동작 등으로 이루어진다.
기도 : 영성체 전에 짧은 침묵의 순간은 참여자들에게 영성체의 큰 선물에 대하여 성찰할 기회를 준다. 사제는 미사 전례서에 제시된 두 개의 양식문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조용히 기도한다. 이 양식문들은 중세 전례서에 포함된 영성체 준비를 위한 사적 기도의 내용에서 취한 것이다. 두 기도 모두 기도의 초대와 마지막 "아멘"이 없고 일인칭 단수로 표현되어 있는 개인 기도이다.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으며 결실 있고 맞갖은 영성체를 청원한다. 첫째 기도는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과 파스카 신비에 대한 삼위 일체적 차원을 상기시키면서 죄의 용서와 주님에 대한 충실성을 청원한다. 둘째 기도는 맞갖지 않게 영성체하지 말라는 사도 바오로의 권고를 묵시적으로 상기시키며 영혼과 육신의 치유를 기원한다(1고린 11, 27-29).
현시 : 양식문의 전반부 "하느님의 어린 양"은 비교적 늦은 16세기에 최초의 규정이 나타나고, 후반부의 "이 성찬에"는 새로운 것이다. "하느님의 어린 양은 이미 대영광송과 빵 나눔 및 혼합에서 나왔던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다(요한 1, 29) "이 성찬에"는 요한 묵시록에서 취한 것이다(묵시 19, 9). 양식문의 라틴어 본문은 성서 본문을 따라 '주님' 이 아니라 '어린 양 의 저녁 식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현시 동작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 때문에 속죄의 죽임을 당하신 제물로 명료화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구원의 양식으로 모시라고 초대한다. 양식문은 집전자의 성체 현시 동작을 매우 효과적으로 동반한다.
겸손의 기도 : 사제와 신자들은 영성체의 마지막 준비로 겸손의 기도를 바친다. 양식문은 가파르나움의 백인 대장이 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마태 8, 8). 10세기에 출현한 이 양식문은 처음에는 한 번만 했으나 이어서 매번 가슴을 치면서 세 번 반복하였다. 현재는 다시 한 번으로 축소되고 가슴을 치는 동작도 사라졌다. 이로써 신자들은 구세주와 만나기 전에 백인 대장과 같은 겸손과 신뢰의 감정을 드러내도록 하였다.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기에 부당함을 고백한 다음 그분께 신뢰를 보이면서 구원의 말씀을 해 주시기를 간청한다. 신자들은 비록 자격은 없지만 감히 받아 모시기를 소망하는 영성체를 통하여 구원받음을 확신한다.
Ⅲ. 영성체
사제가 먼저 영성체하고 이어서 신자들이 한다. 과거 여러 세기 동안에는 사제 영성체와 신자들의 영성체 사이에는 분리를 표시하는 특정 양식문들이 있었다. 1960년 새 지침 발표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과 함께 이 분리는 사라졌다.
〔참여한 미사에서 축성된 성체로 영성체〕 초세기에는 일반적으로 그 성찬례에서 축성된 성체와 성혈을 모시곤 하였다. 성체를 보존한 목적은 병자들의 영성체를 위해서 또는 위에 언급한 로마의 관습(fermentum)에 따라 지속적인 성찬례의 일치성을 표현하기 위해 다음에 거행되는 성찬례에서 성혈에 혼합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중세 시기부터 신자들이 보관된 성체로 영성체하는 관습이 생겨났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자들이 그 미사에서 축성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더욱 완전하게 미사에 참여할 것을 권장한다(<전례> 55항).
〔양형 영성체〕 초세기에는 동방 교회와 마찬가지로 서방 교회도 모든 신자들이 양형 영성체를 하였으나 중세에 들어서 서방에서는 하나의 형상에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현존하신다는 신학을 기초로 신자들의 양형 영성체가 사라졌다(DS 1198~1200 ; 1726~1733 : 1917년 교회법 852조). 그 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으로 양형 영성체에 대한 고대의 전통은 복구되었다(<전례> 55항 ; 1967년의 훈령 <성체 신비>와 1970년의 훈령 <성사적 영성체> ;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242항). 현행 규정에 따르면 교구장은 적절한 교리 교육을 전제로 하고서 세례 · 견진 · 혼인 · 서품 · 서원 · 독서직과 시종직 · 선교사 파견 · 병자 등의 미사나 예식 때에 성사를 받거나 서원을 하는 당사자와 대부모 · 부모 · 교리 교사 등에게 양형 영성체를 허용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공동 집전 미사 · 피정 미사 · 은경축이나 금경축 미사 · 새 사제의 첫 미사 등에서도 당사자 또는 참석자들은 성혈을 영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지역 주교 회의는 일정한 기준과 조건을 정하여 교구장들이 어느 공동체나 신자 집회의 영성 생활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양형 영성체를 허락할 수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는 이 모든 경우에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명시하였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80조).
성찬례는 기본적으로 예수께서 빵과 포도주를 드시며 최후 만찬에서 하셨던 것을 계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형 영성체를 통하여 더욱 완전히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240항). 성혈을 모시는 방법은 직접 잔으로 마시거나, 또는 준비된 빨대나 수저를 이용할 수도 있고, 또는 성체를 성혈에 적셔서 할 수도 있다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200~206, 243~252항). 물론 표지로서는 직접 잔으로 마시는 방법이 가장 탁월하다.
[영성체 양식문] 고대 교회는 영성체 양식문을 알고 있었다(히폴리토, 《사도 전승》 21). 모든 전례가 이 관습을 보존하고 있다. 새 미사 경본은 사제 영성체와 신자들의 영성체를 위하여 구분된 양식문들을 제시하고 있다. 사제 영성체를 위한 양식문은 이전에 사용하던 청원 양식문을 조금 단순화시켜 보존하고 있다. 이 본문은 영성체와 종말론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기억시켜 준다. 성찬례는 거룩한 식사이며, 이 안에서 주님의 약속에 따라 미래에 드러날 영광의 보장이 주어진다(요한 6, 54). 나아가 성찬 식사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의 영광스런 몸과의 친교로 진입한다. 신자들의 영성체를 위해서는 고대에서 사용하던 매우 단순한 긍정적 양식문을 다시 취한다(아우구스티노, <설교> 272). 즉 성체만 분배할 때는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피)"이라 하고, 성체를 성혈에 적셔서 분배할 때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 말하며, 영성체하는 이는 성체와 성혈을 받기 전에 "아멘" 하고 대답한다. 이렇게 그리스도 실제 현존에 대한 자신 신앙을 고백하며 영성체 준비를 완성한다.
〔영성체송과 행렬〕 영성체 예식에서 시편을 노래하는 것은 매우 오래된 전통이다(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신비 교육》 V, 20 ; 암브로시오, <신비론> 9, 58 ; OR 1, 117). 시편 33편 및 144편이 선호되었는데, 처음에는 영성체하는 신자들이 노래하였으나 후에는 성가대가 노래하였다. 10~ 11세기에는 시편이 사라지고 후렴(antiphona)만 부르게 되었다.
현행 본문들은 일반적으로 영성체 또는 성찬례의 결실을 언급하거나 구원의 신비를 표현한다. 많은 경우 그날의 복음과 연결된다. 특별 시기나 축제를 반영하기도 한다. 영성체송은 영성체하는 이들의 영적인 일치와 기쁨을 드러낸다. 이 목적은 영성체에 참여하는 이들이 노래할 때 충만하게 도달된다. 이것은 기능적 성가이므로 영성체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만 필요하다. 때때로 성가를 부르지 않고 영성체 예식을 진행해야 할 필요도 있지만, 침묵 속에 이루어지는 영성체는 성찬례가 지닌 축제의 성격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지나치게 엄숙하게만 거행되는 성찬례는 참례자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영성체송이 동반하는 행렬은 영성체하는 신자들이 이루는 일치를 드러내고 영성체의 공동체적 특징을 강조한다. 또한 다른 행렬처럼 순례하는 교회의 주제를 상기시킨다. 천상을 향한 여정에서 참된 여행 음식인 성체로부터 용기와 힘을 얻어 희망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굳게 한다.
〔다른 특징들〕 손으로 하는 영성체 : 고대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손으로 축성된 성체를 받아 모셨다(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신비 교육》 V 21-22). 서방에서는 9~10세기에 입으로 영성체하는 관습에 대한 증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성체의 남용에 대한 우려와 성체에 대한 과도한 존경이 입으로 하는 영성체 관습을 초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성찬례에 누룩 없는 빵이 사용되면서 동전 모양의 흰 제병이 출현하여 이 관습을 촉진하였다. 입으로 또는 무릎을 끓고 하는 영성체 관습의 배경에는 성찬례의 식사적인 측면보다 그리스도의 성체 안의 현존을 강조하는 사상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신자들이 손으로 영성체하는 옛 관습이 복구되었다(1969년 전례 성사성의 성체 분배 방식에 대한 훈령, <주님의 기억>).
서서 하는 영성체 : 중세에 무릎을 끓고 영성체하는 관습이 시작되었다. 이 관습도 성체에 대한 존경의 표현과 관련된다. 또한 사제가 신자들의 입에 쉽게 분배할 수 있는 현실적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누룩 없는 빵으로 만들어진 동전 형태의 제병은 이 관습에 더욱 적합하였다. 이 관습은 사제석과 회중석을 가르는 분리대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전례 개혁을 통하여 오늘날은 서서 영성체하는 방식이 복구되었다(전례 성사성, 1967년 성찬 신비 공경에 대한 훈령, <성찬 신비> 34항). 서서 하는 영성체가 고대의 전통에 충실한 것이며, 또한 영성체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사이에 만남이 실현됨을 더욱 잘 드러낸다. 선 자세는 존경을 표현하는 자세이며 부활하신 분의 조건을 기억시키는 자세이다.
하루에 두 번 하는 영성체 : 교회 전통은 같은 날 여러번 영성체하는 것을 허용하는 데 매우 신중하였다. 그러나 미사와 영성체의 관계가 본질적이라면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영성체를 할 필요성이 있다. 미사의 참여는 영성체로 충만하게 실현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같은 날 두 번 영성체하는 것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였다(<성찬 신비> 28 : 전례 성사성, 1973년 훈령 , <한없는 사랑> 2 : 교회법 917조). 그렇다고 하루 영성체 횟수에 대한 규정을 완전히 철폐한 것은 아니다. 본당 신부, 선교 지역 사제 등 사목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모든 사제는 주일과 성탄과 위령의 날 외에는 하루에 한 번 미사를 지내듯이, 모든 신자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루에 한 번 영성체하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하루에 두 번 미사에 참례하면 두 번까지 할 수 있지만, 세 번이나 네 번도 할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공심재 : 고대부터 교회는 영성체하는 데 조심스러운 태도를 강조하였다(테르툴리아노, <부인에게> 2, 5). 영성체하기 전에 음식과 음료를 절제하도록 하는 규정은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났다. 비교적 엄격했던 공심재 규정은 차츰 완화되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더욱 완화되었다. 현재는 영성체 전 한시간의 공심재를 규정하고 있다. 환자와 노인 그리고 간호인 및 여러 미사를 거행하는 사제 등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한없는 사랑> 3 ; 교회법 919조). 공심재의 목적은 영성체에서 받아 모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며, 영원한 생명의 음식임을 상기시키고 강조하기 위함이다. 음식과 음료를 절제함으로써 천상 음식에 대한 배고픔과 천상 음료에 대한 갈증을 기억시켜 영성체를 준비하게 한다. 육신으로도 그리스도와 만남을 준비하는 것이다.
성체 분배 : 고대 교회는 성체 분배 때 부제의 협력을 받았다(유스티노, 《호교론》 Ⅰ, 65). 그러나 교회는 평신도에게 성체 분배를 위탁하는 데는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현재 정상적인 성체 분배자는 주교, 사제 및 부제이고, 임시 분배자는 시종직을 받은 자 또는 다른 신자이다(<한 없는 사랑> 1 ; 교회법 290조). 지역 직권자는 필요한 경우 사제들이 적절한 사람에게 그때그때 성체 분배 임무를 위탁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 영성체 예식은 자격 있고 책임 있는 이의 봉사로 더욱 충만한 의미를 갖는다.
Ⅳ. 영성체 후 예식
〔성체 보관과 성반 · 성작 닦음〕 신자들에게 분배하고 남은 성체는 모아 감실에 보관한다. 이는 성체에 대한 믿음과 존경을 전제로 한다. 성체 보관의 일차적 목적은 노자 영성체, 병자 영성체 등 미사 밖 영성체에 있다. 나아가 빵의 형상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흠숭하기 위해서도 보관한다. 성체 흠숭은 흔히 공동체적으로 저녁 기도나 성체 현시와 강복 등에서 이루어지지만 신자들이 매일 개인적으로도 흠숭의 기회를 갖도록 배려된다.
성체 분배가 끝나면 주님의 몸과 피가 닿았던 성찬 그릇을 닦는다. 새 미사 전례서의 닦는 예식은 매우 단순하다. 설거지 예식은 순수하게 기능적인 동작이 아니라 축성된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한 정성과 조심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설거지는 보조 탁자에서 한다. 또한 신자들 해산 후로 미루는 것도 좋다. 새 미사 전례서는 이 예식을 동반하는 양식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양식문은 성찬 그릇 닦음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영성체를 언급하고 있다. 이 기도는 여러 고대 성무 집전서에서 영성체 후 기도로 나타난다.
〔침묵 기도와 성가〕 영성체 후에 배려된 침묵 기도는 과거에 미사 후 있었던 개인적 감사의 순간이 영성체 직후로 옮겨진 것이다. 신자들은 영원한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받은 데 대하여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침묵 기도에서 각 신자들에게 공통된 내적 감정을 회중 전체의 노래로 외적이고 공동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영성체후 성가는 영성체송과 중복되는 것이 아니다.
[영성체 후 기도] 고대 교회는 이 기도를 알고 있었다. 새 미사 전례서는 기도의 위치와 그 내용을 잘 드러내는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의 '영성체 후 기도 (post com-munionem)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비오 5세 미사 전례서>도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의 '마침 기도 (ad com-pleta ; ad complendum) 대신 이 이름을 사용했다(post com-munio) .
영성체 후 기도는 영성체 예식을 마감한다. 영성체 후 기도는 구조적으로 본기도와 마찬가지로 기도의 초대, 짧은 침묵의 순간, 사제의 기도 그리고 회중의 환호인 "아멘" 으로 이루어진다. 침묵의 순간은 선택적이며, 이미 회중이 영성체 후 침묵 가운데 기도했을 때는 생략된다(《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122항). 이 기도는 사제가 모두의 이름으로 바치는 기도로서 다른 기도들과 마찬가지로 손을 펴들고 바친다.
영성체 후 기도는 신자들이 침묵 중에 개인적으로 드린 감사들을 모으는 기능과 거행한 성사의 효과들을 분명히 하는 기능을 갖는다. 흔히 거행된 성찬례 특히 성사적 영성체를 언급한다. 또한 거행된 축제와 전례 시기 또는 다른 상황에 대한 언급을 한다. 한편, 받아 모신 성체에 대하여 직접 감사하는 언급은 드문데, 그것은 미사 전체, 특히 영성체를 포함한 성찬 전례가 하느님께서 베푸신 모든 선물들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성체 후 기도를 특징짓는 것은 무엇보다도 영성체의 결실에 대한 청원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성화, 치유, 정화, 힘, 천상에 대한 그리움 등이, 공동체 차원에서는 은총, 일치, 사랑의 선물 등이 언급된다. 이러한 성체 신학적 요소들이 신자들의 구체적인 매일의 삶에서 지속되기를 청원한다. 이렇게 성찬례와 삶 사이의 강한 관계가 확립되고 성찬례는 하느님의 선물들에 대하여 신자들이 삶 안에서 일관되고 지속적인 응답을 위한 힘의 원천으로 변한다. (⇦ 신령성체 ; 양형 영성체 ; 영성체 후 기도 ; → 공심재 ; 미사 ; 부속 기도 ; 빵 나눔 ; 성찬 전례 ; 성체 분배자 ; 성체성사 ; 영성체송 ; 제병 ; 평화 예식 ; 하느님의 어린 양)
※ 참고문헌 P.-M. Gy, Spiritualité de la communion d'après la liturgie, 《LMD》 203, 1995, pp. 39~491 J.A. Jungmann, Missarum Solemmia I-II , Wien, 2nd ed., 1949/ 一, The Mass of the Roman Rite I-II West-minster, 1992/ V. Raffa, Eucaristia, Roma, 1998/ R.F. Taft, Reconstructing the history of the bizantine communion ritual. Principles, methods, results, (EO) 11, 1994, pp. 355~377. [沈圭栽]
영성체
領聖體
〔라〕Commmunio · 〔영〕Comm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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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체는 예수의 최후 만찬에서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