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신 아버지>

永遠

〔라〕Aetermi Pat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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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교황 레오 13세(1878~1903)가 1879년 8월 4일에 반포한 회칙. 이 회칙의 원 제목은 '가톨릭 학교들에서 천사적 박사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신에 따라 교육되어야 하는 그리스도교 철학에 관해서' (De philosophia chris- tiana ad mentem Sancti Thomae Aquinatis Doctoris Angelici in scholis catholicis instauranda)이다.
[배 경] 근대 이후 서구 사상을 주도해 왔던 합리주의와 실증주의는 19세기 후반에 들어 서구 세계 전체에 총체적 위기를 초래했다.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1788~1860) , 니체(F Nietzsche, 1844~1900) , 포이어바흐(L. Feuer-bach, 1804~1872) 등의 등장으로 근대를 사로잡고 있던 진보적 진화주의와 낙천주의는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많은 가톨릭 교수들은 변화된 상황이 제기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해서 방향성을 잃고, 스콜라 철학과 데카르트 철학 및 독일 관념론을 무비판적으로 혼합하는 절충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준합리주의와 맹목적인 신앙주의를 배격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의 정신을 이어 받은 교황 레오 13세는, 침체되어 가던 가톨릭 사상에새로운 자극을 줄 깊이 있는 사상 체계를 찾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사제들을 올바르고 효과적으로 양성하며, 가톨릭 세계에 철학과 신학의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일반 과학과 예술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교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필요한 사상을 찾기 위해 가톨릭 사상사를 면밀히 검토했다. 그리고 이성과 신앙, 철학과 신학 사이에서 어느 것도 격하시키지 않고 조화롭게 종합시켜 웅장한 체계를 이룬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품들 안에서 이 모든 요구를 충족시킬 사상을 발견했다. 따라서 그는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를 반포하고, '중세 사상, 특히 성 토마스 사상으로의 복귀' 를 호소하게 되었다.
[내 용] 교황 레오 13세는 서론에서 교회 교도권이 근대 과학과 철학에 대해 지니고 있는 호의적이고 개방적인 관심을 강조했다. 제1부에서는 신학과의 관계 때문에 교회가 진정한 철학을 가르치는 데 쏟고 있는 관심을 언급하며, , 신앙과 이성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했다. 우선 교황은 현대 많은 악의 근원이 잘못된 철학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지적한 다음(3항), 철학이 오직 하느님의 도움을 통해서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4항).
이런 사실을 토대로 계속해서 이성이 신앙에 가져다주는 도움들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성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 차원' 에 속하는 것이다. 또한 이성은 하느님의 존재를 알려 주고 있으며 "하느님의 말씀에 충만한 신뢰와 권위를 인정해 드릴 수 있다"(8항). 이와 같이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전통에 따라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강조하였다.
제2부에서는 가톨릭 교회 내에서의 철학 전통을 묘사하면서 그중 특별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뛰어남을 부각시켰다. 철학을 올바로 사용하는 모습들의 예로 교황은 초대 교회에서 이교도들에 대항한 호교론자들, 여러 그리스 및 라틴 교부들, 특히 아우구스티노를 언급하였다. 이어서 교황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라는 입장에서 '교부들의 방대한 저술들 속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풍부한 가르침들을 끈기를 가지고 수집해서 후대인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거의 한곳에 모아 놓았던' (19항) 스콜라 학자들의 위대함을 지적하였다. 교황은 스콜라 학자들 중에서 특별히 토마스 아퀴나스를 '왕자요 스승이라고 불러야 할 가장 위대한 학자' 로 꼽았다(22항). 그에 따르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과 신앙을 날카롭게 구분' 하였으나 '이 양자를 조화시켜 각각 자신의 권리와 품위를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게' (23항) 하였다. 레오 13세는 선임 교황들이 한결같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지혜를 격찬했던 전통에 따라(25항) 그를 극찬하였다. 즉,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톨릭을 반대하는 적수들로부터도 찬탄과 칭송을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 (26항)이라는 것이다.
제3부에서는 가톨릭 학교들에서 이 귀중한 전통과 가르침이 전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면서, 이러한 권고의 타당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회칙을 마무리하였다. 교황은 "오늘날 어떤 거짓된 학문의 기교와 교활함을 가지고 그리스도교 신앙에 반기를 드는 것이 유행"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반대자들을 건전한 가르침으로 안내하고 설득할" 해답으로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재건과 그의 정신에 따라 탐구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였다(32항).
교황은 회칙의 끝에서 합리주의의 영향이 가톨릭 신학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교회의 모든 스승은 제자들의 정신이 진정한 가르침 대신에 타락한 이론들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을 익힐 수 있도록 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36항).
[평 가] 교황 레오 13세는 이 회칙을 통해서 침체되었던 당시 가톨릭 사상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던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는 이 회칙이 나온 이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큰 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이 회칙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신앙과 이성>(Fidess et Ratio, 1998. 10. 15)이 발표될 때까지 100년이 넘도록 "온전히 철학만을 위해 작성된 유일한 권위 있는 교황 문헌" 이었다. 새 회칙은 교회 생활을 위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보를 내디딘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가 반포된 지 한 세기 이상이 지났지만, 그 회칙이 담고 있는 실천적이고 교육적인 통찰들은 그 중요성을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평가하였다(57항).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영원하신 아버지>가 발표될 당시의 상황과 그에 따른 한계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에는 정치적인 고립과 더불어 근대주의(Modernismus)의 위협이 매우 심각했으므로 이에 대한 대안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만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 회칙이 토미즘을 토마스 아퀴나스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하나의 통합된 일관성을 지닌 학파로 소개하고 있고, 스콜라적인 전통이 다양한 관점을 함의하고 있음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실제로 지난 100년 동안 철학의 놀라운 다양화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 헌장>(GaudiumetSpes)의 개방적인 정신을 경험한 후 발표된 회칙 <신앙과 이성>은 새로운 학문적 발전을 토대로 <영원하신 아버지>의 근본 정신을 더욱 개방적인 방향으로 이끌었고, 발전시켜 나갔다. 새 회칙에 따라 그리스도교 교리를 특정한 철학에 귀속시키기보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진리를 추구하는 전형을 발견하는 자세야말로 <영원하신 아버지>의 정신을 변화된 현대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계승하는 길일 것이다(78항 참조). (⇦ <에테르니 파트리스) ; → 레오 13세 ; <신앙과 이성> ; 토마스주의)
※ 참고문헌  교황 레오 13세, 이재룡 역, <영원하신 아버지>, 《신학과 사상》 11(1994. 6),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pp. 248~27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재룡 역, <신앙과 이성>,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9/ 이재룡, <토미즘의 형성 및 발전과 근대 철학>, 《신학과 사상》 11(1994. 6),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pp. 158~187/ - <현대 신 토미즘 부흥 운동>,《신학과 사상》 12(1994. 12),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pp. 176~220/ 색 본소, 이태하 역, 《이성과 신앙》, 철학과 현실사, 1999/ W.F. Hogan, 《NCE》 1, p. 165/ B.M. Bonansea, Pioneers of the 19th Century Scholastic Revival in Italy, 《Nschol》 28, 1954, pp. 1~37. [朴勝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