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대 평양 지목구장 모리스(J.E. Morris, 睦怡世) 몬시 놀이, 한국 천주교 박해 시기 수절과 동정을 지키며 교회에 봉사한 여성들의 맥을 이어받아 수도 생활에 뜻을 가진 여성들의 소명을 싹트게 하여 1932년 6월 27일 평양 상수구리(上水口里)에 설립한 최초의 방인 수녀회. 본원은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산 1-15번지에 있다.
[수녀회의 설립]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의 모리스 신부는 1923년 11월 한국 선교사로 파견되어 우리 언어와 문화를 배웠고, 이듬해 8월 영유(永柔) 본당 제4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하던 중 한국 복음화를 위한 방인 수도회 설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소명을 받은 많은 여성들을 육성하였다. 1930년 제2대 평양 지목구장으로 임명된 모리스 신부는 수도회 설립을 준비하고, 이듬해 상수구리 257번지의 기와집 두 채를 매입하여 수녀원으로 개조하였다. 이곳에서 1932년 6월 27일 모리스 신부가 5명의 입회자와 함께 첫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가 창립되었다. 수녀 양성은 비즈(G. Beez), 콜린스(S. Collins), 헤세(T. Hesse) 수녀 등 메리놀 수녀회 수녀들에게 일임되었다. 1935년 3월에는 일본 성심여자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메리놀 수녀회의 장정온(張貞溫, 앙네다) 수녀가 지도 수녀로 부임하였다. 1935년 6월 27일 지원자 5명의 청원식이 있었고, 이듬해부터는 지원자 2명이 평양 기림리(箕林里) 본당으로 파견되어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시련과 성장〕 1938년 2월 25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는 교황청의 인준을 받았으며, 같은 해 6월 18일에 16명의 수련자가 탄생하였다. 장정온 수녀를 수련장으로 하여 7월 3일부터 이들은 수련을 시작하였고, 오랜 기다림과 수련 끝에 1940년 6월 27일 11명이 첫 서원을 하였다. 이후 이들은 평양 관후리(館後里) 본당, 대신리(大新里) 본당, 서포(西浦) 본당, 평안북도의 비현(枇峴) 본당, 신의주(新義州) 본당, 마전동(麻田洞) 본당으로 파견되어, 학교와 복지 시설 등에서 활동하면서 복음 선포의 길을 개척하였다. 이에 따라 30여 년 간 평양에서 활동하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녀들은 그 소임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에 인계하고 서울 본원으로 돌아갔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의 미국인 선교사 강제 추방령으로 메리놀회 선교사 전원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제3대 평양 대목구장 오셰아(W. O'Shea, 吳) 주교는 장정온 수녀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장정온 수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동체 생활을 유지해 나갔으나, 1949년 5월 14일 제5대 평양대목구장 홍용호(洪龍浩, 프란치스코) 주교가 수녀회 첫 종신서원 예정자들을 면접하고 귀가하던 중 납치된 사건을 시작으로 수도회 건물 및 재산이 몰수되고, 수녀들 또한 강제로 해산되었다. 1950년 10월 4일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하던 장정온 수녀가 공산 정권에 피랍되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그 해 10월 중순에 이르러 연합군이 평양을 장악하면서 근교의 회원들이 다시 모여 수도 생활을 하던 중, 유엔군의 갑작스런 후퇴로 17명의 서원 수녀와 3명의 수련 수녀들이 11명의 서원 수녀와 1명의 수련 수녀를 북널 땅에 남겨 둔 채 급히 남하하게 되었다. 피난한 수녀들은 잠시 피했다가 다시 만나려고 했으나 5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현재로서는 그러한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남하한 수녀들은 부산에서 전쟁 고아들과 미망인들을 돌보는 등 어려운 피난 생활을 하면서도 수련소를 재개하였고, 1955년에는 서울 흑석동으로 본원을 이전하였다.
1966년 11월 본원이 현재 위치인 정릉에 자리잡게 되면서 국내외 본당 · 의료 · 사회 복지 · 교육 사도직 활동 등을 활성화하기 시작하였다. 1972년에는 복음 말씀에 목말라 하던 한국 교회에서 '가톨릭 성서 모임' 을 시작하였는데 청년들을 비롯하여 성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2002년 창립 70주년을 앞두고 있는 수녀회는 창립자의 정신과 창립 목적을 새롭게 되새기고 있으며,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사회 선교 · 통일 사목 · 북방 선교 · 외방 선교 등을 적극적으로추진하고 있다. 2001년 12월 현재 종신 서원자 380명, 유기 서원자 99명, 수련자 40명, 청원자 14명, 지원자 16명이 있다.
〔영 성〕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의 영성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라" (1고린 9, 22)는 사도의 정신으로 민족 복음화에 투신하며, 이를 위해서 "한마음 한뜻"(사도 2, 46)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마음을 드높이" ·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고" (골로 3, 1-3)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사도직 활동〕 우리 민족과 온 인류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창립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는 초창기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이 신앙과 복음 선포를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정신으로 선교 활동에 임하고있다. 창립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본당 사도직과성서 사도직을 우선으로 하고 있으며, 교회와 사회가 필요로 하면 지역과 선교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현재 국내 13개 교구의 86개 본당과, 독일과 미국의 7개 본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1972년 시작된 가톨릭 성서 모임은 현재 국내 9개의 센터와 국외 1개의 센터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유아 교육 사도직으로는 유치원 15곳과 어린이집 6곳을 운영하고 있으며, 의료 사도직으로 강남 성모병원 외에 4개 병원 원목실에서 일하고 있다. 선교 대상과 지역에 제한을 두지 않으나 소외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고 최선을 다해 희망과 믿음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바오로 선교 · 무료 급식소 · 가출 소녀 쉼터 · 공부방을 운영하며 빈민 사도직에도 종사하고 있다. 문서 사도직으로는 1984년 10월부터 성서 전문 월간지 《성서와 함께》를 출간하여 성서 말씀을 생활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민족의 수난사와 함께 시작된 수녀회는 이제 한국 교회의 성장과 더불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실현하고자 주교 회의 민족 화해위원회와 서울대교구 민족 화해위원회에서 국내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을 돌보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 신포의 KEDO 원자력 건설 본부 의무실에 2명의 간호 수녀를 파견하였으며, 1994년 4월에는 중국 용정에 3명의 수녀를, 1995년부터 페루 리마 시에 6명의 수녀를 파견하였다. 이와 함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는 2001년 12월 8일 서울대교구 소속에서 교황청 설립 수도회로 전환됨으로써 지역 교회를 넘어 보편 교회의 일원으로 선교의 지평을 넓혀 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 가톨릭 성서 모임 ; 메리놀수녀회 ; 메리놀 외방전교회 ; 모리스, 존 에드워드 ; 평양교구)
※ 참고문헌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50년사》, 1983/ 平壤教區史編纂委員會 편, 天主教平壤教區史》, 분도출판사, 1981/ 이정순, 《목요안 신부》,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1994.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편찬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聖母修女會
〔라〕Congregatio Beatge Mariae Virginis de Perpetuo Succursu · 〔영〕Sisters ofOur Lady of Perpetual 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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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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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상수구리 모원 모습( 930년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