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영천시 성내동 168번지 소재. 1936년 1월 1일 용평(龍坪) 본당에서 분리 · 설립 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승천. 관할 구역은 동부동, 중앙동, 서부동, 완산동, 남부동, 화남면, 화북면, 북안면 전 지역과 청통면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고경(古鏡) · 괴연(槐淵) · 자천(慈川) · 송포(松浦) 등 4개소. [교 세] 1967년 2,337명, 1973년 2,230명, 1978년 2,818명, 1983년 2,737명, 1987년 3,116명, 1991년 2,920명, 2000년 4,059명. [역대 신부] 초대 프루와드보(R. Froidevaux) 레이몬드(1936. 1~1940. 4), 2대 델랑드 (L. Deslandes) 루이(1940. 5~1950. 3), 3대 이명우(李明雨) 야고보(1950. 4~1959. 9), 4대 강찬형(姜贊亨) 파스칼 (1959. 9~1966. 12), 5대 신상도(辛尙道) 프란치스코(1966. 12~1967. 12), 6대 박도식(朴道植) 도미니코(1967. 12~ 1968. 9), 7대 이상호(李相浩) 베드로(1968. 9~1970. 1), 8대 박원출(朴元出) 토마스(1970. 1~1972. 10), 9대 최영수 (崔榮壽) 요한(1972. 10~1976. 10), 10대 이정추(李正秋) 바오로(1976. 10~1980.5), 11대 최봉도(崔奉道)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80. 5~1983. 5), 12대 김상규(金尙奎) 필립보(1983. 5~1986. 5), 13대 원동수(元東秀) 바오로(1986. 5~ 1989. 7), 14대 정성우(鄭聖羽) 바오로(1989. 7~1993. 10), 15대 맹봉술(孟奉述) 세례자 요한(1993. 10~1996. 8), 16대 장영일(張永 日 그리산도(1996. 8~1999. 11), 17대 김준우(金俊雨) 마리오(1999. 11~현재).
[공소 설립과 용평 본당 시기] 기해박해(1839년) · 병오박해(1846년) · 병인박해(1866년)를 겪으면서 경상도 북부 지역의 신자들이 남부 지역으로 이주함에 따라 경주 · 울산 · 언양 · 기장 · 동래 등지에 많은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며, 화산면 용평동의 교우촌도 1870년대 초 박해를 피해 정착한 신자들의 후손에 의해 형성되었다. 또한 1885년 이전 영천 지방에는 원당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이어 석촌 공소도 설립되었다. 1888년 석촌 공소의 김노탁(라우렌시오) 등 신자 몇 명은 대구 감영에 구금되는 등 박해를 겪으면서도 로베르(Rober, 金保祿) 신부의 관할하에서 신앙 생활을 유지해 나갔고, 1893년에는 김태호(金太鎬, 프란치스코)가 석촌동(石村洞)에서 용평동으로 이주하여 자기 집에 공소를 마련함에 따라 용평 공소가 설립되었다.
이후 용평 공소는 1907년 5월 30일 용평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이 지역 출신인 김승연(金承淵,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임명되었다. 김승연 신부는 본당 회장 집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 뒤, 성당과 사제관의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912년 1월 6일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와 함께 성당 내에 서당을 개설하여 교리와 한문을 가르쳤는데, 서당은 이 마을에서 교육 기관이면서 신앙을 전파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인 신부들이 본국으로 귀국하게 되자 성직자수 부족으로 인해 1915년 6월 7일 김승연 신부는 제주도로 전임되었고, 용평 본당은 1919년까지 대구(大邱) 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1919년 11월 2대 주임 유흥모(柳興模,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함으로써 공소는 용평 본당으로 재승격되었는데 , 1925년 유흥모 신부는 성당을 증축한 데 이어 운영 중이던 서당의 규모를 확대하는 등 본당의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1934년 5월 3대 주임으로 부임한 델랑드 신부는, 교구에서 용평 본당이 외곽 지역에 위치하고 있음을 고려하여 중심지인 영천읍에 본당을 설립할 것을 결정함에 따라 1935년 영천읍 과전동의 여관 집을 매입하여 과전(果田) 공소를 설립한 후 성당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듬해 1월 영천 본당이 설립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프루아드보 신부가 임명되었다. 델랑드 신부는 15년의 재임기 동안 보육원 · 재활원 · 양로원 · 무료 진료소 · 급식소 . 나환우 정착촌 등을 운영하며 다양한 사회 복지 사업을 전개하였다. 1940년 4대 주임으로 부임한 루카스(R. Lucas, 柳嘉鴻) 신부는 일제 말의 종교 탄압으로 사목 활동을 거의 수행할 수가 없었으며, 1948년 대구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지도 신부로 전임되었다. 루카스 신부의 전임 이후 용평 본당은 영천 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으며, 1966년 신녕(新寧) 본당이 설립된 이후에는 동 본당 관할 공소가 되어 현재까지 공소 공동체를 이어 오고 있다.
〔설립과 발전〕 1936년 1월 1일 영천 본당 설립과 함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프루아드보 신부는 과전 공소 건물을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스위스에 있는 친척들로부터 성당 건립 기금을 기부받아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같은 해 10월 성당을 완공하였다. 이어 2대 주임 델랑드 신부는 이전 용평 본당에서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과 활동하는 동안 일본의 탄압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본당 사목과 더불어 용평 본당에서 시작한 사회 복지 사업을 꾸준히 전개하였고, 1950년 3월에는 본격적인 수도 공동체의 성장과 활동을 위하여 포항 영일만의 송정 바닷가로 이주하였다.
3대 주임으로 한국인 이명우 신부가 부임하면서 본당은 지역 사회와의 활발한 교류 속에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명우 신부는 외국인 신부들의 잇단 선교로 천주교를 외국인의 종교라고 인식하고 있던 비신자들의 인식 전환을 위해 노력하였고, 1951년 8월 20일 샛별유치원의 개원 이후 지역민의 천주교에 대한 호감이 커짐에 따라 결실을 보게 되었다. 그 결과 신자수가 급증하자 전쟁 이후의 어려운 시기였으나 1957년 7월 성당 증축 공사를 시작하여 그 해 11월에 완공하였다. 4대 주임으로 부임한 강찬형 신부는 농촌 신자들이 좀더 활발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일면 일공소' 설치를 시행하였는데, 그 결과 자양(紫陽) · 평천(平泉) · 고경 · 송포 공소 등이 설립되었다. 또한 1962년 5월에는 환경이 어려운 소년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직업 소년 교도 학교 를 개교하여 현직 교사들의 무료 봉사로 1968년 12월까지 운영하였다. 한편 1959년 12월에는 본당 관할의 의성(義城) 공소를, 1965년 5월에는 신녕 공소를 본당으로 분리 · 승격하였다.
〔성장과 정착〕 5대 주임 신상도 신부의 부임 이후 8대 주임 박원출 신부의 부임 전까지 본당은 주임 신부의 빈번한 교체로 안정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8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원출 신부가 신앙 교육 실시, 꾸르실료의 도입 등 사목 활동에 전념함에 따라 본당은 점차 안정되었고, 9대 주임 최영수 신부가 신부 중심의 본당 운영에서 탈피하여 사목 위원회를 조직하고 신자 중심의 사목을 전개함으로써 활기를 띠게 되었다.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정추 신부는 종래에 발간되던 월보를 폐지하고 1977년 2월부터 본당 주보를 발간하였는데, 이는 1983년 5월까지 발간되다가 교구 주보로 대체되었다. 1978년 5월에 성당 내부 공사를 통해 성당 마룻 바닥을 콘크리트 바닥으로 개조하였고, 1980년 5월에는 성당 돌담이 도로 확장 공사로 헐리게 되자 돌담 공사를 실시하였다. 11대 주임 최봉도 신부는 신자들의 신심 활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성령 쇄신 세미나 · 묵상회 · 철야 기도 등을 개최하였다. 또한 각 공소에 매주 주임 신부의 강론 테이프를 담아서 보급하고 예수 성심상과 성모상을 봉헌하는 등 공소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영천 본당 출신으로 12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상규 신부는 연령별, 계층별로 요한회 · 요셉회 · 바오로회 · 루가회 · 마태오회 · 하상 바오로회 · 미리암회 · 청년회 등을 조직하여 신자들의 화목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와 함께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영천 제2 본당을 설립하기 위하여 야사동 212번지 소재의 부지를 마련하였고, 1985년 8월에는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2층 규모의 사제관(200평)을 재건축한 데 이어 9월에는 자천 공소 새 강당(42평)을 완공하고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14대 주임 정성우 신부는 신자들이 지속적인 성체 조배를 할 수 있도록 성체 조배실을 마련하였으며, 16대 주임 장영일 신부는 1998년 6월 지역 복음화와 신자 재교육을 위해 사용될 지하 1층 · 지상 2층 규모의 교육관 (280평)을 완공하고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또한 그 해 9월 3일에는 임고(臨皐) 공소 · 평천(平泉) 공소의 181세대 379명의 교적을 이관하여 임고 본당을 분리 · 설립하였다. 17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준우 신부는, 2000년 7월 자천 공소 강당이 협소하여 신자들이 어려움을 겪자 공소 증축을 위하여 화북면 자천리 1808번지 소재의 부지(306평)를 매입하였으며, 2001년 4월에는 괴연 공소강당을 증축(131평)하였다. 또한 같은 날 본당에서는 신자들의 신앙 교육의 장소로 사용될 '피정의 집' (106평)을 완공하였다. (→ 대구대교구 ; 예수 성심 시녀회)
※ 참고문헌 천주교 대구대교구 편, 《교구 총람》, 대구대교구 홍보국, 1986/ 천주교 영천 교회 본당사 편찬위원회 편, 《본당 오십년사》, 천주교 영천 교회, 1986/ 마백락, 《옛 공소의 어제와 오늘》 (1815~1910), 영남교회사연구소, 2000/ Compte-Rendu de la Société des M.E.P. [金善美]
영천 본당
永川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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