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험

靈驗

〔영〕spiritual po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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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험을 바탕으로 신탁 행위를 하는 무당.

영험을 바탕으로 신탁 행위를 하는 무당.

신령으로부터 받는 영적인 힘. 신들린 사람으로서 샤먼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그의 영혼을 지배하는 몸주 신령과의 관계 속에서 신령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얻게 된다. 영적인 힘 혹은 영험은 신령의 '선물' (gift)과 같은 것으로 샤먼이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샤먼의 의지에 반하여 강제로 부과되는 것이다. 그리고샤먼에게 어떤 특별한 힘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일생 동안 지속될 근심과 고통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외재하는 영적인 힘의 영향에 놓인 샤먼의 특이한 정신적 상태를 '무병' (巫病, shamanic illness)이라고 부른다. 샤먼의 무병은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긍정적인 종교적 사명 의식으로 발전한다. 우선 신령과의 교섭을 지시하는 그들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든지, 이상한 모습의 조개 껍질이나 돌 · 짐승 등과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이를 통해 운명적으로 영감에 빠지면서 신령의 소명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무병은 입무(入巫) 과정에 필수적이며, 샤먼은 무병 경험을 통해 신령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획득한다. 남아메리카 아마존에 사는 구아지로족(Guajio)은 샤먼을 신령과 동일시하여 샤먼 곧 신령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이 말은 샤먼이 실제로 신령이라는 뜻이 아니라 샤먼이 신령의 신비한 세계와 관계를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샤먼은 이 세상과는 다른 신령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증언자이며 그 세계에 대해 보통 사람과는 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현자이다.
샤먼이 신령의 영적인 힘을 얻는 입무 과정은 상징적 죽음과 재생을 동반하는 매우 강렬한 신체적 · 정서적 경험이다. 예를 들어 상상의 육체적 분해와 재조합, 극심한 단식이나 환각제를 사용한 환시 추구(vision quest), 혹은 신령과의 성적인 결합이나 결혼 등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정신 분석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유아기적인 퇴행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샤먼의 입무 과정은 보통 사람보다 완전하고 강한 인격을 완성하기 위한 영적 성숙의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령이 샤먼에게 외재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힘은 샤먼 외부에 남아 있어서 습득하기도 힘들며, 쉽게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한국 무당의 경우 내림굿을 받은 지 얼마 안되는 애기 무당의 영적인 힘이 더 강하게 나타나며, 나이가 들수록 그 영적인 힘은 쇠잔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무당들은 자신의 영적 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일 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입무 의례와 유사한 의식을 수행한다. 이러한 의식에는 무당의 단골들이 초대되는데, 무당은 이러한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자신의 몸주 신령을 대접하고 몸주 신령과의 관계를 돈독히 다진다. 이때 무당은 그의 단골들에게 무당의 몸주와 그 이름 · 속성 등을 알리게 된다. 이는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그 믿음이 공유되는 기회가 된다.
샤먼은 이러한 영적 능력을 바탕으로 신탁 · 치유 행위등을 수행한다. 이때 관중들은 짐승의 몸짓이나 목소리를 흉내내는 샤먼의 극적인 행동 앞에서 즉흥적으로 흥분하며 유희적 분위기에 들뜨게 된다. 샤먼의 의식이 공중들 앞에서 진행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샤먼의 영적 능력 또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현현하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샤먼의 영적인 능력은 그가 행하는 기괴한 행위들 속에서 증폭되지만, 동시에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에 의해 확보되기도 한다. 관중이나 환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키는 샤먼의 테크닉은 나아가 신령의 권능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재강화시킨다. 인류학자 모스(M. Mauss, 1872~1950)가 모든 주술은 "믿는 것이지 인지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 것과 같이 믿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샤먼의 능력이라고 볼 때, 이러한 능력은 고정적으로 공식화된 것이 아니고 늘 의례 수행을 통해 시험받고·재수정된다고 할 수 있다. 샤먼의 영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의례 수행의 능력이 공중에 의해 인지되고 평가될 때 비로소 샤먼의 영험이 신뢰받으며 또한 치유 의식의 효과도 나타나게 된다. 시베리아 북극 지방의 유목민 추크치족(Chukch)의 경우, 샤먼이 신령과 내놓고 대화를 나누고 여러 술수를 사용할수록 그 영험에 대한 평가는 낮으며, '진정한' 샤먼은 마음속으로만 신령과 대화를 나누고, 극도의 자기 억제를 취하며, 일단 경지에 이르러서는 과음도 피하고 술수도 중단한다고 한다. 결국 샤먼의 영험은 샤먼 자신의 치유 능력의 한계와 그 잠재력에 대한 인식, 적절한 수단을 동원하여 환자를 치유하겠다는 도덕적 책임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 참고문헌  M. Eliade, 이윤기 역, 《샤머니즘》, 까치, 1992/ Piers Vitebsky, The Shaman, Macmillan, 1995/ 김승혜 · 김성례, 《그리스도교와 무교》, 바오로딸, 1998/ 박일영, 《한국 무교의 이해》, 분도출판사, 1999. 〔金成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