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히]יִרְמְיָהוּ · [그]Ἰερεμίου · [라]Prophetia Ieremiae · [영]The Book of Jeremiah

글자 크기
9
예레미야 예언자.
1 / 3

예레미야 예언자.

구약성서의 예언서 가운데 하나. 예언서 중 내용이 가 장 길다.
예레미야서는 내용과 형성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복합 적인 책이다. 이 책의 명목상 저자인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4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예레미야서에는 서로 다른 운문과 산문 사료들이 연대나 순서와 상관없이 뒤 섞여 나온다. 더구나 히브리어 성서와 그리스어 성서인 칠십인역이 서로 달라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칠십인 역에서는 예레미야 46-51장이 25장 13절 바로 다음에 이어진다.
겉으로 보기에 이처럼 복잡하고 혼란스럽기까지 한 문 헌이지만, 학자들은 이 책이 뚜렷한 신학 사상에 따라 편 집되었음을 인정한다. 예레미야서의 저자는 신명기와 전
기 예언서들(히브리어 성서의 분류에 따름)이 강조하는 모 세의 시나이 계약 정신을 강조하고 선포한다. 그래서 어 떤 이들은 예레미야서의 저자를 바빌론 유배자들인 신명 기계 역사가로 보기도 한다.
〔정경에서의 위치〕 예레미야서는 히브리어 성서의 4 대 예언서 가운데 가장 긴 예언서이다. 히브리 정경 목록 에서는 이사야서 다음에 위치하지만, 탈무드에서는 마소 라 본문의 순서보다 더 오래된 순서에 따라 열왕기 바로 다음에 놓는다. 이렇게 한 이유는 예레미야서 마지막(52, 1-34)이 열왕기의 마지막 부분(2열왕 24, 18-25, 30)과 내용 면에서 일치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이 두 책이 동 일 저자, 곧 예레미야 예언자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판단 하였기 때문이다.
〔본 문〕 예레미야서의 마소라 본문과 칠십인역 본문은 구약의 다른 책보다 심각한 차이를 드러낸다. 둘 사이에 외관상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차이점은 본문의 길이 이다. 마소라 본문에 비해 칠십인역 본문이 8분의 1가량 짧다. 마소라 본문에 나오는 단어나 문구, 심지어 대목 전체가 칠십인역에는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 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이는 주님의 말씀이 다" 등의 문구와 예레미야나 하나니야의 고유 명사에 붙 이는 '예언자' (28, 5. 6. 10 ; [LXX 35, 5. 6. 10]) 칭호가 칠십인역에는 빠져 있다. 하느님의 이름에 대해서도 마 소라 본문은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 '만군의 주님' 이 라고 비교적 긴 호칭을 쓰는 데 비해, 칠십인역 본문은 단지 '주님' 이라는 짧은 호칭을 사용한다. 물론 이런 표 현이나 문구들의 유무가 본문의 메시지에는 하등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대목이 빠지거나 첨부되면 본 문의 메시지가 달라지기 쉽다. 히브리어 본문 11장의 신
탁에서 예언자는 7-8ㄱ절의 유배와 관련된 내용과 더불 어 이전 세대들이 주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 께서는 신명기적 계약에 따라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7-8ㄱ절이 빠진 칠 십인역의 신탁에서는 백성들이 계약을 지키라는 예언자 자신의 요청을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사실만 지적한다.
이 밖에 마소라 본문을 길게 만드는 요소는 똑같은 절 의 반복이다(6, 13-15=8, 10ㄱ-12 : 30, 10-11=46, 27- 28). 이런 반복은 칠십인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 때마다 마소라 본문에서도 똑같은 반복이 나타난다(10, 12-16=51, 15-19[LXX 28, 15-19] ; 23, 19-20=30, 23- 24[LXX 37, 23-24]). 그러나 반대로 칠십인역이 마소라 본문에 없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거짓 예언자' 라는 칭호가 그것이다. 이 칭호는 칠십인 역에 모두 9번 등장한다.
두 본문 사이에 언어적인 차이보다 더 심각한 차이는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신탁' 의 위치에 있다. 칠십인역에 서는 25장 13절의 '이 책에 기록된 모든 말' 이라는 표현 다음에 바로 이 신탁이 등장하여 본문(25, 14-31, 44)을 이루는 데 비해, 마소라 본문에서는 이 책의 마지막(46- 51장)에 가서야 나온다. 각 이방인들에 대한 신탁의 순서 도 서로 다르다. 칠십인역에서는 엘람 · 이집트 · 바빌 론 · 불레셋 · 에돔 · 암몬 · 케달 · 다마스커스 · 그리고 모압의 순이고, 마소라 본문에서는 이집트 · 불레셋 · 모 압 · 암몬 · 에돔 다마스커스 · 케달 · 엘람 그리고 바빌 론의 순으로 되어 있다. 칠십인역에서는 바빌론에 관한 신탁을 한가운데에 놓고 마소라 본문에서는 맨 나중에 놓는데, 둘 다 이 신탁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같다.
아래의 표는 두 본문의 서로 다른 순서를 나타낸 것이 다.
마소라와 칠십인역 본문 외에도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본문은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예레미야서 본문이다.
1947년부터 사해 서북부 연안의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들은 구약성서의 원전 비평에 엄청난 파문 을 일으켰다. 특히 제2 동굴에서 발견한 예레미야서 히 브리어 사본의 단편(2QJer)과 제4 동굴에서 발견한 히브 리어 사본의 단편들 세 가지(4QJera, 4QJerb, 4QJerc)는 이 예 언서의 마소라 본문과 칠십인역 본문 사이의 관계를 밝 히는 일에 뛰어든 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사본 의 단편에 붙여진 약호, 예를 들어 4QJera는 동굴 이름· 쿰란 문서 · 책 제목 · 단편의 분류 번호 순으로 되어 있 다. 이 단편들 가운데 2QJer(초세기 중엽)과 4QJera(기원전 200년경)와 4QJerc(기원전 30~1)는 나중에 편집될 마소라 본문에 존속하는 표준 히브리어 본문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4QJerb(기원전2세기)는 칠십인역 본문의 히 브리어 대본(Vorlage) 또는 원초적 그리스어 역본을 탄생 시킨 이집트 유형의 히브리어 본문 전통에 부합한다. 이 단편 사본은 예레미야서 9장 22절에서 10장 18절을 포 함하고 있는데, 그나마 본문의 왼쪽 단만 남아 있어 매 행의 오른쪽 시작 부분을 재생해야 할 어려움을 안고 있 다. 전문가들의 신중한 관찰 결과 이 히브리어 단편 사본 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마소라 본문보다는 칠십인역 본문 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본에는 16장 6-8 절과 10절이 칠십인역 본문처럼 빠져 있고, 칠십인역처 럼 5절이 9절 다음에 나오며, 10장 4절의 어순이 마소 라 본문이 아니라 칠십인역 본문과 일치한다.
한 동굴에서 두 종류의 서로 다른 히브리어 사본이 공 존한다는 사실은 당시에 예레미야서의 히브리어 사본들 이 여러 가지 형태로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사람들 사 이에 널리 읽혀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칠십인 역 예레미야서 본문은 마소라 사본을 번역하면서 축소한 것이라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가 오류임이 판명되었다. 그렇다면 마소라 사본이 원전에 가까운 옛 사본을 확장 시키고 변경시킨 것일까? 마소라 본문과 칠십인역 본문 가운데 어느 본문이 원전을 더 충실하게 반영하는가? 이 와 관련하여 세 가지 다른 견해가 학자들간에 제시되었 다.
첫째, 보다 긴 마소라 본문이 원전에 가깝다. 이 주장 에 따르면 칠십인역의 번역자들이 번역 과정에서 원래의 본문을 줄이고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순서에 따라 원전의 자료들을 재배치했을 것이다. 둘째, 이와는 정반 대로 칠십인역 본문 또는 좀더 정확하게 이 역본의 히브 리어 대본이 원전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당연히 마소라 본문은 원전을 확장시키고 순서도 변경시킨 변질된 사본 으로 추정된다. 셋째, 처음부터 예레미야서의 본문은 서 로 다른 전통을 갖고 공존해 왔으며 권위 있는 표준본을 만들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다. 쿰란 동굴의 서로 다른 사 본들이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우선 마지막 견해를 받아들이면 예레미야서의 '원전' 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다. 처음부터 예레미야서의 서로 독립된 '원전들' 에서 여러 사본들이 흘러 나와 이들 가 운데 오직 두 사본만 살아 남았다고 가정할 때, 이 둘 사 이에 정확한 우열을 가릴 수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입장이라면 두 사본을 다 같이 원전의 증인으로 받아들 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나 둘째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둘 중 하나를 예레 미야서 원전의 가장 충실한 증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첫째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일부 학자들은 이집트 유형으로 짐작되는 사본들에 중복되는 자음의 탈락(Haplo- graphy)이 빈번하게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서는 팔 레스티나에서처럼 성서를 베끼는 작업이 그리 활발하지 못했던 것 같고 따라서 마소라 본문에서와는 달리 원전 의 뜻을 더욱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 합리적인 표현이나 문구 또는 설명을 필사 과정에서 원전에 첨부시키는 일 이 드물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들은 원 마소라 본문을 탄생시킨 편집자들이 바빌론 사본과 같은, 다른 유형의 사본들을 참조하여 더 원초적인 본문 을 편집해 내려고 노력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서사(書士)들을 '쇼페림' 이라고 하는 데 이 말 자체는 본디 '숫자를 세는 사람들' 이라는 뜻이 다. 실제로 티베리아의 마소라 학자들은 본문을 손상시 키지 않기 위하여 글자와 단어와 절을 일일이 세어 자신 들에게 전달된 원문을 정확하게 필사하려고 노력하였다. 본래 서사들에게 맡겨진 일차적인 임무는 성서의 본문을 오류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서사들의 이같이 신중한 태도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성서의 원문을 재구성하려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본들을 만났을 때 더 오래되고 원 초적으로 보이는 사본을 참조하려 했을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이런 태도는 칠십인역의 여러 수정본을 탄생시키 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더구나 예레미야서의 경우 쿰란에서 발견된 극히 단편 적인 히브리어 사본을 바탕으로 칠십인역 본문이 마소라 본문보다 더 원전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리스어 번역본이 참조한 히브리어 원 전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입장에서, 그 번역본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원어로 된 히브리어 본문을 제쳐놓고 번 역본을 원전에 충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기가 석연치 않 다. 실제로 최근 예레미야의 마소라 본문 4-6장을 북서 부 셈족의 운문체에 비추어 분석한 결과 예레미야서의 반복 구문이나 절은 셈족어 운문 특유의 반복적 병행법 을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이런 히브 리어 시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그리스어 번역자들이 이를 원전의 불필요한 반복으로 보거나 아니면 필사 과 정의 오류로 생각하여 생략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상 두 본문의 진정성에 관한 고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먼저 어느 본문을 원전에 가까운 것으로 주장하든지 양쪽의 주장 모두 다 충분한 자료의 연구에 근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쿰란에서 발견된 히브 리어 사본의 한 단편을 바탕으로 아니면 히브리어 본문 의 일부를 뽑아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두 본문의 우열 을 가리기란 아무래도 무리이다. 예레미야서의 부분적인 연구가 전체적인 연구로 확대해 나가면 문제 해결에 좀 더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다만 현재까지 제시된 학자들의 견해들을 종합해서 평
가해 볼 때, 마소라 본문의 진정성을 증명하기가 다른 쪽 을 지지하는 것보다 논리적으로 더 타당하고 용이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칠십인역 본문이 진정성에서 뒤떨어 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번역본이 대본으로 삼은 히브 리어 본문의 부실함 때문이 아니라, 번역상의 어려움과 미진함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마소라 본문과 그리스 어 본문의 독립된 전승 과정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고 본 다.
[내 용] 예레미야서의 구조는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 다. 첫째 부분(1-25장)은 유다를 거슬러 행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신탁과 행동을, 둘째 부분(26-45장)은 이스라 엘과 유다를 위한 구원의 신탁 및 예레미야의 예언직을, 셋째 부분(46-51장)은 이방 민족들을 거슬러 한 신탁을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52장)은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열왕기 하권 24장 18절-25장 30절에서 따온 역 사적 문헌으로 예루살렘의 함락을 다룬다.
제1부(1-25장) : 1장은 소명 설화이다. 이 소명 설화 는 모세의 소명 설화와 아주 비슷하다. 모세처럼 매우 어 려운 소임을 맡으면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무력을 호소한 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세에게 하신 것처럼 그와 함께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2-6장에서는 주님께서 예레미 야에게 왜 자신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슨 말 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이어지는 7-10장에는 여섯 가지 메시지가 나온다. 첫째, 성전을 거슬러 행한 설교(7, 1-8, 3)에서 드러나듯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께 돌아오지 않으면 예루살렘 성전도 엘리 시대의 실로 처럼 파괴될 것이다. 둘째,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특히 예언자들이 성서의 말씀을 소홀히 하거나 변질시키는 것 을 결코 용인하지 않으신다(8, 4-17). 셋째, 백성은 더 이 상 회개할 가능성이 없다(8, 18-9, 5). 넷째, 하느님은 징벌을 되돌리지 않으실 것이다(9, 6-24). 다섯째, 주님 은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과 완전히 다르시다(9, 25-
10, 16). 여섯째, 하느님께서는 우상을 섬기고 유다를 지 나치게 억압한 이민족들-비록 당신 징벌의 도구로 이 용되었다고는 하지만-도 징벌하실 것이다. 11-20장에 는 다섯 개의 '고백' 이 나온다(11, 28-12, 6 : 15, 10-21 ; 17, 12-18 : 18, 18-23 : 20, 6-18). 그러나 이 대목들에 '고백' 이라는 이름보다는 '탄원시' 라는 이름이 더 어울 릴 것이다. 여기에는 저자 자신의 죄 고백이나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고백이 나오지 않고, 그 대신 탄원 시편 처럼 저자의 고통과 분노와 하느님께 대한 호소가 포함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2부(26-45장) : 이 대목은 7장의 성전 설교와 같은 상황에서 행한 설교로 시작된다. 이 두 성전 설교의 역사 적 배경은 기원전 609년 요시야 임금이 므기또 전투에 서 전사한 직후 이집트인들이 그의 아들 여호아스를 내 세웠다가 3개월 만에 폐위시키고 말 잘 듣는 여호야킴을 앉히는 등 유다의 내정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예레미야가 7장에서는 성전 대문에서, 26장에서는 성전 뜰에서 설교를 한다. 두 설교는 동일한 역사적 상황에서 나왔으면서도 형식과 내용이 서로 다르다. 전자의 형식 은 일반적 서술문으로 예언자 자신의 예언에 관심을 집 중시킨 반면, 후자는 전기 형식으로 예언자와 청중 사이 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27-29장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에 대한 임금과 거짓 예언자들의 반응을 다룬다. 이 대목의 역사적 배경은 기원전 597년의 제1 차 바빌론 유배이다. '위로의 책' 이라고 불리는 30-31 장은 백성의 단죄와 징벌을 선포하는 이전의 내용과는 달리 하느님 백성의 놀라운 앞날을 묘사한다. 그들은 지 금 흩어져 학대받고 있지만 주님께서 완전히 새로운 환 경 안에서 다시 팔레스티나로 데려와 시온에 모이게 하 실 것이다. 위로의 책은 완강히 반항하는 백성에게 필요 한 교훈인 고통의 불가피한 특성만을 강조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과 하느님의 뜻을 인간의 마음속 깊이 새기고자 하시는 그분의 은총도 강조한다. 하느님 께서는 당신 백성이 옛 계약을 깨뜨린 것을 용서해 주시 고 난 뒤에 '새 계약' (31, 32)을 세우고자 하신다. 이 '새 계약' 은 시나이에서 주신 계명의 갱신이 아니다. 오히려 '새 계약' 은 이제부터 계명이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내 면 안에 새겨지고, 그 이행 자세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말한다. 32-35장은 예루살렘 함락(기 원전 587) 직전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다루고, 36 장은 연대를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605년경에 예레미야 가 어떻게 자신의 예언과 신탁을 두루마리에 옮겨 적었 는지를 밝힌다. 37-45장에는 유다의 멸망과 그 후의 팔 레스티나 상황을 다룬다. 이 장들에서 예레미야서의 저 자는 이스라엘의 운명에 관한 신명기계 역사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제3부(46-51장) : 46장의 머리글은 이 대목이 이방 민족들에게 관한 신탁임을 분명히 밝힌다. "이방 민족들 을 두고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내린 주님의 말씀" (46, 1). 이집트를 거슬러 나온 신탁(46장)을 시작으로 불레셋을 거슬러(47장) · 모압을 거슬러(48장) · 암몬 · 에돔 · 다마
스커스 · 케달과 하솔 · 엘람을 거슬러(49장) · 바빌론을 거슬러(50-51장) 나온 신탁들이 차례로 이어진다. 이런 신탁들을 통하여, 더 나아가 예언서 전체를 통하여 강조 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역사를 관장하신다는 사실이다. 제3부에 열거된 민족은 10개이다. 이 가운데 바빌론이 가장 나중에 나오면서도 가장 길게 다루어진다. 이는 바 빌론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그 어떤 민족보다 깊은 영향 을 미쳤기 때문이다. 각 민족을 거슬러 나온 신탁들은 형 식과 내용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몇 가지 공통된 요소가 있다. 첫째, 이사야서 13-23장처럼 예레미야의 신탁은 각 민족의 오만함을 단죄한다. 이 오만함은 그들이 소유 한 부 · 무용(武勇) · 민족적 지혜 · 군사력 등을 과신하 는 것으로 드러난다. 둘째, 예레미야의 신탁은 각 민족의 우상 숭배를 단죄한다.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을 지적한 이사야 예언자처럼(이사 44, 9-20), 예레미야도 이 대목 에서 우상을 섬김으로써 자기 자신들을 섬기는 이방 민 족들을 단죄한다. 사실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은 그들 자 신이 만든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제4부(52장) :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장은 열왕기(2열 왕 24, 18-25, 30)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반복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레미야서에서는 열왕기에 나오는 그달리 야의 살해 사건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유 배자들의 수를 밝힌다(예레 52, 28-30). 칠십인역 예레미 야서에서는 이 수의 언급이 없다. 그 밖에는 서로 일치하 는데, 둘 다 예루살렘의 함락 · 시드키야의 운명 · 기원전 560년경에 여호야긴에게 베풀어진 바빌론 임금의 은전 을 다룬다. 이 대목은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어렴풋한 희망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희망은 열왕기보 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예 레미야서(예레 30-33장 ; 46-51장)에서 더 강조된다.
[예레미야의 봉사직과 역사적 상황] 서로 뚜렷이 구별 되는 세 시기에 예레미야는 예언자의 소명을 수행하였 다.
첫 번째 시기 : 소명에서 기원전 605년 가르그미스 전 투까지이다. 요시야 치세하에서 유다는 처음에 번영을 구가하는 안정 시대를 맞는다. 아시리아는 주변 국가들 에 대한 폭정을 그치고, 유다는 폭 넓은 독립을 누리게 된다. 이를 계기로 요시야는 영토를 확장하고 온갖 종류 의 개혁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가 죽자 왕국은 몇 년 지 나지 않아 이집트인들의 지배하에 들어가는데 그 속박이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한편 유다의 국운은 요시야를 전 사하게 했던 므기또 전투(2열왕 23, 29) 이후 몇 년 동안 점차 기울어져만 갔다. 바로 이 기간에 예레미야는 완전 히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도록 강력하게 요청받는다. 매 우 도발적인 어휘를 사용한 운문 신탁을 통하여 그는 북 쪽에서 일어난 불가항력적인 군대가 쳐들어와 유다 전역 과 예루살렘을 초토화시킬 것이라고 단정한다(4-6장) . 이 무자비한 군대는 패배자들이 너무 늦기 전에 하느님 께 돌아오지 않는 한 그들에게 어떤 희망도 남겨 놓지 않 는다. 예레미야는 자기 동족에게 회심을 촉구할 책임을 맡았지만 그들이 회개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 백성은 자기네 길만을 너무 고집하고 그들이 세운 체제가 언제나 변함없이 유지될 것으로 믿어 의심 치 않았다(18, 18 ; 8, 8). 유사시에 그들은 최후의 피난 처요 세속의 힘이 범접하지 못할 성전에 피신하면 되는 줄로 여겼다(7, 4. 10).
나아가 예레미야는 계층별로 백성을 심문한 뒤 증거를 대며 백성을 질책한다. 백성 전체가 잘못된 길로 빠져 들 고 있다. 억압하는 자들도 억압받는 자들도 모두가 잘못 을 저지르고 있다(5, 1-6). 이제 멸망은 불가피하다. 검 은 피부를 가진 사람이 그 피부를 바꿀 수 있겠는가? 표 범이 얼룩을 지울 수 있겠는가? 그처럼 악에 젖어 사는 유대인들이 선을 행할 수 있겠는가?(13, 23)
백성은 예언자의 통렬한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 지 않는다. 예언자의 생각이 그들에게는 너무 추상적이 고 현실과 거리가 멀다. 현실은 완전히 검은 것도 완전히 흰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의 메시지는 하느님에 대한 전 통적인 가르침과도 맞지 않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 을 버리지 않으시는 가까운 분, 친밀한 분이시다(23, 23). 믿기지 않는 내용이 담긴 두루마리를 한 조각 한 조 각 침착하게 찢어 불에 태우는 여호야킴 임금의 행동은 예레미야의 설교가 첫 번째 시기에 완전히 실패로 끝났 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36장).
두 번째 시기 : 기원전 605~587년, 곧 느부갓네살의 부상(浮上)부터 예루살렘의 파괴까지이다. 이 시기는 예 레미야의 예언직 수행 가운데 가장 괄목할 만한 시기로 평가된다. 군사적 도발과 관련된 그의 예언들은 갑자기 현실로 나타난다. 바빌론 임금은 자신의 군대로 여러 차 례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를 휩쓸었고 그 안에 있는 작은 나라들을 자신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통제하기로 마음먹 었다. 이런 형편인데도 유다의 정치를 책임진 자들은 국 제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다. 대다수 백성의 지도자들은 결연히 유다의 정치적 독립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언제나 바빌론을 근동의 패권 다툼 에서 멀리 떼어 놓으려는 이집트와, 바빌론의 진출로 위 협을 느낀 주변의 약소 국가들과 동맹을 맺고자 하였다. 이런 정책은 유다의 통치자인 다윗 왕가가 중심이 되어 펼쳐졌다.
그러나 일부 지도자들은 느부갓네살 제국의 속국이 되 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행사할 희망 속에서 바빌론을 종주국으로 받들 것을 제안하였다. 예레미야서 덕분에 친바빌론파의 여러 거물급 인사들이 누구인지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예레미야의 강력한 보호자인 아히감(26, 24),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 그 지방의 통치자로 임명된 그의 아들 그달리야, 예레미야가 자신의 신탁을 기록으 로 남길 때 결정적 도움을 주었던 네리야의 아들 바룩 등 이 그들이다. 마지막에 언급된 인물 바룩에 대하여 그를 예레미야의 단순한 비서로 생각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예언자가 자신의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하여 고용한 일종의 속기 필경사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 룩은 유다 왕궁의 재무 대신이었던 그의 형제 스라야처 럼(51, 59) 나라의 관료로 서기관직을 맡고 있었다. 바룩
의 특별한 위치는 사람들이 그를 친바빌론파의 거두 가 운데 하나요, 예레미야의 신탁을 사주한 자로 여긴 사실 에서 잘 드러난다(43, 3). 다른 제3의 제안은 완전한 독 립을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외세에도 의존하지 말고 완 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극단적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집트와 동맹을 맺어 보았자 나중에 다시 그들 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들을 '자유파' 로 분 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실패할 경우 완전히 멸망하 거나 아니면 바빌론의 정치 제도에 합병될 것을 각오한 다.
예레미야도 어쩔 수 없이 정치적 논쟁에 휘말려 들었 다. 그의 입장은 매우 모호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는 바 빌론의 패권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그가 기회에 따라 행 동하는 정치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인 정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는 유다가 독립된 강국으로서 정치와 종교의 이중 통치 질 서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부성적 사랑에 충실하 게 응답하는 백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3, 22-4, 4). 또한 그분께서는 이 백성이 마음으로부터 정의를 수호하 고 화목하게 살아가길 바라신다(5, 1-3 : 22, 13 : 23, 5- 6) .
예레미야와 독립파들을 구별하는 기준은 후자가 주님 에게 소중한 가치를 모두 경멸한다는 데 있다. 특히 임금 이 주범이었다(22, 13-17).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국가를
없애 버리기로 작정하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느 님께서는 바빌론 제국 한복판에서 완전히 새로운 계획을 꿈꾸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한때는 심판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변화된 공동체, 자신의 영광을 찾지 않고 오히려 모든 이의 안녕을 돌보기 원하는 공동체를 창조하고자 하신다.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다른 이의 행복을 자기 행복의 조건으로 삼는다(29, 5-7). 이 공동체는 마침내 조상들의 나라로 행복하게 돌아온 뒤에, 옛날 주님과 맺 은 계약을 더욱 심화시켜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 더 이 상 어떤 계급을 지닌 중재자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31, 31-34). 이 메시지는 이미 다른 부분(3, 15 ; 23, 6) 에서도 언급된 것으로서 이 대목에 보면 주님께서는 당 신께 온전히 성별된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 백성을 인도 하신다.
세 번째 시기 : 기원전 587년, 곧 예루살렘의 함락 이 후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별로 중요하게 다 루지 않는데, 그것은 바빌론 유배자들이 전체 유다 인구 의 일부 계층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대로 본국에 남았다는 사실을 망각한 데 있다. 버려진 이 대중 은 크게 세 가지 세력으로 분류된다. 그달리야를 중심으 로 한 친바빌론파는 바빌론의 보호 아래 나라를 재건하 고자 했다. 예레미야도 이 그룹에 속하였다. 두 번째 그 룹은 마구잡이 폭력배 이스마엘이 이끌었는데 이들은 암 몬 왕에게 의존하면서 폭력을 사용하여 독립을 쟁취하려 고 하였다(41, 1-10). 세 번째 세력은 카레아의 아들 요 하난이 이끄는 무리로서 이집트에 망명하기를 원하였다. 이 망명 길을 만류하는 예레미야의 신탁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실천에 옮겼고, 이 과정에서 예 레미야를 인질로 끌고 갔다. 예레미야의 흔적은 이 이집 트 망명 길에서 끊어지고 만다.
[신학적 주제] 예레미야서의 신학적 주제는 신명기의 정신과 잘 어울린다. 그래서 예레미야서를 신명기계 역 사가가 최종 편집한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이 책에서 대비되는 것은 약속과 계약에 충실하신 하느님과 이스라 엘 백성의 계속되는 반역이다. 구약성서에서는 이스라엘 에 대한 하느님의 성실하신 사랑을 '헤셋' (חֶסֶד, 보통 자 애' 로 옮긴다)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이스라엘의 반역을 징벌하시는 하느님의 정의를 '미쉬팟' (מִשְׁפָּט, '정의' 또 는 '공정' 으로 옮긴다)이라고 표현한다. 이 단어들은 구약 성서에 각각 500번 이상 사용될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 다. 예레미야서에서도 계약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하느님 의 자애와 이스라엘의 잘못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으시 는 하느님의 정의가 강조된다. "나는 과연 자애를 실천 하고 공정과 정의를 세상에 실천하는 주님으로서 이런 일들을 기꺼워한다"(9, 23).
예레미야의 고독 : 예레미야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사 로잡힌 이들이 당하는 고독과 고통을 가장 깊이 표현한 다. 예레미야는 소명을 받을 때 모세처럼 몹시 주저하였 다.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1, 6).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때 닥치게 될 시련이 엄청나겠 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전하라는 말씀은
백성에게 닥칠 재앙이었다. 태평 성대를 외치는 다른 예 언자들의 메시지와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내 백성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다루면서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 롭다, 평화롭다!' 하고 말한다"(6, 14=8, 11). 또한 유다 왕실이 듣고자 하는 내용과도 달랐다(36, 21-24). 그는 독신으로 지내야 했고(16, 1-2), 기존의 질서도 거부해야 했으며(7, 2-5),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단절되고(16, 5. 8- 9) 심지어 친척들마저도 그를 멀리하였다. 철저한 고독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께 불평과 항변을 늘 어놓는 일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수난 :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하느님 을 배반하였다. 백성 전체가 하느님의 성실하신 사랑을 저버리고 풍산신 숭배에 빠져 들었다. "나는 오래 전에 네 멍에를 부러뜨리고 그 줄을 끊었다. 그런데도 너는 더 이상 섬기지 않겠다!' 하고는 온갖 높은 언덕 위에서 온갖 푸른 나무 밑에서 드러누워 창녀 짓을 하였다"(2, 20 ; 참조 : 2, 24-25). 여기서 '창녀 짓' 은 이스라엘의 풍 산신 숭배를 고발하는 예언자들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그들을 질책해야 할 사제들과 예언자들마저도 제 잇속 차리는 데만 급급하였다(8, 10-12). 이제 하느님의 징벌 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유다는 철저히 파 괴될 것이다(4, 5-9).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유다의 성 읍들에는 주민들이 사라진다(9, 9-11). 들리느니 여인들 의 울음 소리와 장송곡뿐이다(9, 16-21).
하느님의 고통 : 계약이 깨졌을 때 상처를 더 많이 받 는 쪽은 계약을 어긴 쪽보다는 충실하게 지킨 쪽이다. 하 느님은 당신의 약속과 계약에 충실하셨다. 반면에 이스 라엘은 계약의 의무 조항인 계명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끊임없이 계약을 위반하였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를 간절히 바라신다(3, 11-14 : 4, 1-2). 그러나 그들 은 돌아올 생각을 안 하니 하느님께서는 탄식하신다(8, 7). "하늘을 나는 황새도 제철을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 와 두루미도 때맞춰 돌아오는데 내 백성은 주님의 법을 알지 못하는구나" (8, 7).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법을 지키 는 데 필요한 지성을 분명히 갖추고 있는데도, 이 법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일에서, 본능에 따라 해서는 안될 짓 을 하지 않는 날짐승들보다도 못하다. 이제 하느님은 그 들을 징벌하실 수밖에 없다. "그들은 역겨운 짓을 저질 렀으니 부끄러워해야 하는 데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얼굴을 붉힐 줄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은 쓰러지는 자 들 가운데서 쓰러지고 내가 그들을 징벌할 때 넘어지리 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8, 12). 당신의 백성을 징벌하 심으로써 하느님은 편안해지셨는가? 아니다. 그분이 징 벌로 인하여 상처를 받은 백성 때문에 고통을 당하신다. "내 딸 내 백성의 상처 탓에 내가 상처를 입었다. 나는 애도하고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길르앗에는 유향도 없 고 그곳에는 의사도 없단 말이냐? 어찌하여 내 딸 내 백 성의 건강이 회복되지 못하는가? 아, 내 머리가 물이라 면 내 눈이 눈물의 샘이라면 살해된 내 딸 내 백성을 생 각하며 밤낮으로 울 수 있으련만!"(8, 21-23 : 참조 : 9, 1 : 14, 17) 물론 하느님의 슬픔과 고통을 전달하는 예레미
야 예언자 자신도 같은 슬픔과 고통을 당했을 것이다.
탄원과 원망 : 예레미야의 '다섯 고백' 또는 '탄원시' 는 예언자 자신과 백성이 당하는 고통에 대하여 하느님 께 마음껏 불평하고 항변하는 내용이다. 예레미야는 하 느님의 말씀 때문에 고통을 당하였다. 그는 욥처럼 인과 응보의 원리에 대하여 도전한다(12, 1-2). 예레미야는 자 신의 삶이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한다(15, 10 : 20, 14- 18). 그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고 웃음도 친구 도 멀리한 채 그분의 말씀과 손길에 붙잡혀 홀로 외롭게 앉아 있어야 한다(15, 16-17). 그를 지켜 주시겠다는 그 분의 말씀에 속았다는 생각마저 든다(15, 18-20). 그래서 그는 하느님을 원망하고 더 이상 그분의 대변인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뼈 속에 사무친 그분의 말씀이 이 를 허락치 아니한다(20, 7-9). 20장 13절은 경신례를 통 하여 예레미야가 고통에서 해방되는 과정을 시사한다.
예레미야의 삶 역시 호세아의 결혼 생활처럼 하느님의 고통을 그대로 반영하는 의신화(擬神化)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하느님의 고통과 백성의 고통과 자기 자신 의 고통이라는 삼중 고통을 당하였다. 백성의 배반으로 상처를 받으신 하느님의 고통을 전하면서 그 고통에 참 여하게 되었고, 하느님께 벌을 받아 고통을 받는 백성이 자기 겨레였기에 그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며 고통을 당 하였으며,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외톨이가 되고 사면초 가가 되었다. (→ 구약성서 ; 예언서)
※ 참고문헌  정태연 역, 《예레미야 · 바룩》, 구약성서 새 번역 8,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6/ A.S. Van der Woude ed., The World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82/ J. Schreiner, Jeremia 1- 25, 14 ; Jeremia 25, 15-52, 34, Die Neue Echter Bibel, Wiirzburg, Echter Verlag, 1981 · 1984/ J.R. Lundbom, 《ABD》 pp. 706~721/J Mays ed., The HarperCollins Bible Commentary, San Francisco, Harper, 1988/ P.R. House, Old Testament Theology, Downers Grove, 1998. 〔丁太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