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준수 문제 때문에 서기 49년경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들의 모임(사도 15, 1-35 ; 갈라 2, 1-10). 이 회 의는 교회 역사상 최초로 개최된 공의회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의 교회법으로 엄격하게 구분한다면 '회합' 또는 '모임' (conferentia)이었다
[성서에서의 언급] 서기 33년경 스테파노가 예루살렘 에서 순교하자 예루살렘 교회 소속 그리스 유대계 그리 스도인들이 안티오키아로 피신해 유대인들에게뿐만 아 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전교를 하였다. 그리고 45~49년 경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마르코가 제1차 전도 여행을 떠 나서 키프로스 섬과 소아시아(터키) 남부 지역에서 전교 하여 많은 이방인들을 입교시켰다. 그 결과 신생 교회에 큰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방인 출신 신자들에게 그리스 도교 신앙의 실천만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유대교의 율 법 준수까지 요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 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처음 부터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할례의 의무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사도 15, 10). 따라서 할례의 의무화는 새로운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로마 제국과 투쟁하고 있 던 유대 민족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 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아직 유대교 공동체에 속하여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할례받지 않은 이들을 교회에 받아들이는 것은 유대교에 반역하는 행위였다. 따라서 유대 민족주의의 압력에 굴복한 일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그 증표로 할례를 요구하였다. 이에 바오로는 그리스도교가 유대인들의 세속적 목적과 연결될 위험성을 깨닫고 할례의 의무화에 대한 요구를 단호하게 배격하였다. 하지만 쟁점의 중대성 때문에 바 오로와 바르나바가 49년경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과 함께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다음 세 가지 사항에 합의했다. 첫째,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 이 결의로써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로 부터 독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신흥 그리스도교가 기 성 유대교로부터 온전히 독립한 시기는 85년경이다. 85 년경에 야브네(Jabneh)에서 랍비 사무엘(Samuel ha-Katan) 이, 회당의 예배 끝에 모두 일어서서 바치는 18조 기도 문(슈모네 에즈레=Amidah) 중, 이단자들을 단죄하는 제12 조 기도문에 나자렛 사람들, 곧 그리스도인들을 포함시 켰다. 그래서 85년경부터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회당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다. 참석해서 그 기도문을 외운다 면 자기가 자신을 저주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바빌 론 탈무드, 브라코트 28b에 실려 있는 기도문을 의역하 면 다음과 같다. "나자렛 사람들과 이단자들은 사라지게 하소서. 살아 있는 이들의 책에서 그들을 지워 버리시어 의인들과 함께 쓰여 있지 않게 하소서. 무엄한 자들을 굴 복시키시는 하느님, 찬양받으소서." 둘째, 사도들은 동 족 유대인들에게 전교하고,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방인 들에게 전교한다. 셋째, 예루살렘 교우들은 계속되는 흉 년으로 몹시 가난했다. 그래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
방인 교우들에게서 모금하여 예루살렘 교우들을 돕기로 약속했다.
이상의 내용이 바오로가 쓴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예루 살렘 사도 회의의 합의 내용이요, 약속 내용이다(2, 6- 10). 그런데 사도 행전의 합의 내용(15, 7-20)은 상당히 다르다. 요컨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원칙적으로 유대 교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지만,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혐오하는 짓만은 삼가하라는 것이다. "우상에게 바쳐 더 러워진 것들과 음행과 숨막혀 죽은 짐승의 고기와 그리 고 피는 멀리하도록 할 것입니다”(2О절).
여기서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것' 은 성전에서 제사 지낸 다음 장터에 내다 파는 고기를 가리킨다(1고린 8장 ; 10장). 그리고 '음행' 은 근친 상간을 가리킨다. 유대인 들은 근친 상간을 싫어했으나(레위 18, 6-8), 당시 지중해 의 이방인들은 자주 근친끼리 결혼했다. 극단적인 예로 출애급 시대의 파라오인 라므세스 2세(기원전 1279~ 1212)는 장녀와 결혼했다. '피' 는 금기 식품이다(레위 7, 26-27 : 17, 10-14). 제관계 문헌에서는 피를 금하는 까 닭을 이렇게 적었다. "생물의 목숨은 피에 있다. 피는 너 희 자신의 죄를 벗는 제물로서 제단에 바치라고 내가 너 희에게 준 것이다. 피야말로 생명을 쏟아 죄를 벗겨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위 17, 11). '숨막혀 죽은 짐승의 고 기 에는 피가 들어 있기 때문에 금기시한다(레위 17, 1- 16). 유대인들은 짐승을 잡을 때는 목을 자르거나 또는 멱을 딴 다음 거꾸로 천장에 매어 단다. 몸통의 피가 다 빠지게 하려는 것이다. 사도 행전 15장 20절에 나오는 위의 금기 식품법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 스도인들이 공존하는 혼합 교회를 위해서 만든 공존 규 범이다. 두 부류의 교우들이 혼합 교회에서 애찬(agape) 과 성찬을 거행할 때 이방인 교우들은 유대인 교우들의 인습과 심성을 존중해서 유대인들의 금기 식품을 먹지 말고, 또한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근친 결혼을 삼가하라 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원칙적 인 면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되 풍속이나 전통 같은 부수적인 면에서는 서로 형제애를 발휘하고 양보의 미덕 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즉 내 양심의 확신보다 이웃 사랑 이 훨씬 더 고귀한 가치라는 지침이다.
[의 의] 이 사도 회의의 결정은 교회와 세계 역사에 있 어서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야고보의 제의로 결정 사 항을 알리는 편지가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통해서 안티오 키아 교회에 전달되었다(사도 15, 20-31). 이 결정은 그 리스도교와 유대교 공동체 사이에 간격이 생기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으며, 이러한 괴리 현상은 이후에도 더욱 두 드러지게 나타났다. 실상 사도 행전은 사도 회의의 결정 으로 초대 교회 내부에 일어났던 유대교와의 갈등이 완 전히 해소된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갈라디아서(2, 11- 14)를 비롯한 바오로의 서간 곳곳에는 유대교와의 갈등 이 계속되었음을 보여 주는 구절들이 있다. 또한 이 사건 을 통하여 그리스도교가 이방인들 사이에서는 날로 팽창 되고 있는 반면, 예루살렘에서는 유대 민족주의의 영향 으로 힘을 잃어 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참고문헌 정태현 역주, 《사도 행전》, 분도출판사, 1995/ 박영 식, 《자유의 대헌장 사도 바오로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서간》, 분도출판사, 1998/ 김 창락, 《갈라디아서》, 대한기독교서회, 1999. [鄭良謨]
예루살렘 사도 회의
使徒會議
[라]Concilium Apostolicum · [영]The Council of 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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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