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0년 11월 22일 십자가의 바오로(Paul of the Cross, 1694~1775)가 당대의 악을 파악한 뒤, 가장 효과적인 구 제 수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 스도 고난 기억" (memoria passionis)을 증진할 목적으로 이 탈리아 북부 카스텔라초(Castellazo)에서 설립한 수도회. 총본부는 로마에 있으며, 한국 준관구는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245-4번지 소재.
[설립과 성장] 1694년 1월 3일 이탈리아 제노바 공국 의 오바다(Ovada)에서 태어난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1713년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사랑을 받기에 부 당한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하여 자각' 하게 되는 첫 번째 회심을 체험하였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평생을 하느님 께 바치기로 결심하였고, 1720년 여름 '가슴에 흰 십자 가가 있고 그 밑에 예수님의 이름이 하얀 글씨로 쓰여진 수도복' 을 입고 계신 성모님을 보는 두 번째 체험을 하 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수도회 창립을 준비하게 되었다. 1720년 11월 22일 바오로가 수도복을 착복하고 오바다 의 주교 가티나라(Arborio di Gattinara)의 지도로 카스텔라 초의 산 카리오(San Cario) 성당에서 40일 간의 피정을 시작함으로써 예수 고난회는 설립되었는데, 바오로는 이 기간 동안 수도회의 회칙을 작성하였다. 1721년 몬테 아르젠타리오(Monte Argentario)에 정착한 바오로는 여러 교구에서 선교와 봉사 활동을 하면서 공식적인 수도회 창립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를 거 듭하였다. 그러나 바오로의 지칠 줄 모르는 활동의 결과, 1927년부터 바오로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 젊은이 들이 점차 모이기 시작하였고, 1737년 9월 14일 몬테 아르젠타리오에 첫 수도원이 개원되었다. 1741년 5월 14일에는 교황 베네딕도 14세(1740~1758)로부터 교황
면속 수도회로 인준받았다. 교황은 회칙을 인준하면서 "교회에서 제일 먼저 설립되었어야 할 성질의 수도회가 이제야 설립되었다" 고 수도회의 사명을 선포하였다. 이 어 6월 11일 몬테 아르젠타리오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 던 6명이 첫 서원을 하였고, 수도회 명칭을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십자가와 고난의 맨발 성 직 수도회' (Congregazione dei Minimi Chierici Scalzi sotto 1' invocazione della S. Croce Passione di Gesù Cristo)로 바꿨다.
〔발전과 활동〕 바오로는 이후 30년 동안 신비가 · 교 황들의 영적 지도 · 고해 신부로 활동하면서 생전에 12 개의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1775년 설립자가 선종한 뒤 수도회는 명상과 고행을 강조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하였 다. 1800년대 초에는 나폴레옹(N. Bonaparte, 1769~1821) 의 종교 탄압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교황 비오 7 세(1800~1823)의 재건 노력에 의해 다시 발전하기 시작 하였다. 이후 이탈리아 · 벨기에 · 미국 · 스페인 · 오스트 레일리아 · 프랑스 등 각국에 수도회가 진출하였다. 예수 고난회의 고유한 사도직은 창립자의 사목 활동이기도 했 던 순회 설교이다. 순회 설교란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들
을 둘씩 짝지어 마을에 파견하였듯이, 둘씩 짝을 이루어 고을마다 다니면서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설교를 행하는 사도직 활동을 말한다. 바오로는 이를 통해 자신을 변형 시키고 사랑에 빠지게 한 '하느님 체험' 을 다른 사람들 과 함께 나누고자 하였다. 순회 설교 사도직은 시대가 변 하면서 피정의 집을 통한 피정 사도직으로 발전하였다. 이와 함께 시대적 요구에 따라 다양한 사도직에 참여하 기 시작하여 2000년 현재 56개 국에서 2,400여 명의 회원들이 피정과 순회 설교, 본당 사목과 출판 활동 그리 고 군종과 특수 사목 활동을 통해서 그리스도 고난의 신 비를 선포하고 있다.
[영 성] 바오로의 영성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랑' 인 그리스도께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 예수 그 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과 '고난의 기억' 에 대 하여 묵상함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회원들은 창립 자의 뜻에 따라 정결 · 청빈 · 순명의 3대 서원 외에 네 번째 서원, 곧 '예수 고난에 대한 헌신' 의 서원을 한다. 예수 고난에 대한 '은혜로운 기억' 을 증진하도록 위임된 이 '특별 서원' 은 회원들의 영성과 사도직 활동에 있어 서 역동적인 원리가 된다(회헌 5항). 그러나 예수 고난에 대한 체험은 설명을 통해 느끼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그는 체험을 촉진시키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 었고, 이것이 지금의 피정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창 립자의 의도에 따라, 예수 고난회 회원들은 하느님과의 내적 친교를 이루기 위해 '고난의 기억' 을 묵상하고, 묵 상 안에서 얻은 하느님의 메시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나 누기 위해 피정 사목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한국 진출과 성장] 예수 고난회의 한국 진출은 1964 년 5대 광주대교구장 헨리(H.Henry) 대주교가 골롬반 외 방선교회 사제들의 연례 피정을 지도하러 온 웨스토븐 (W. Westoven) 신부를 통해 미국의 성 십자가 관구장 화 이트(J.P. White) 신부에게 예수 고난회의 한국 진출을 요 청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같은 해 9월 15일, 미국 성 십 자가 관구에서 파견된 맥도너(R. Mcdonough) 신부와 오 멜리(P. O' Malley)신부가 광주시 서구 화정동에 터전을 마련하였다. 이들은 1969년 4월 28일 광주 화정동에
'피정 센터' 가 건립되기 전까지 벌교(筏橋), 보성(寶城) 등의 본당과 대건신학대학(大建神學大學, 현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서 영적 지도 신부로 활동하였으며, 피정 센터 가 건립된 후에는 광주교구 신부들의 도움을 받아 피정 사도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969년 9월에는 김수 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초청으로 서울에 진출하 여 성직자 · 수도자들의 피정을 위한 '복자 도미니코 바 베리 수도원' 을 서교동에 개원하였다. 1971년 한국의 예수 고난회는 '한국 순교자들의 지부' 로 승격되었고, 초대 지부장에 맥도너 신부가 임명되었다. 1977년에는 두 번째 피정의 집인 '서울 명상의 집' 을 우이동에 개원 하였는데, 이후 수도회의 피정 사도직은 점차 뿌리를 내 리게 되었다. 피정 사목의 활성화에 따라 1985년 광주 화정동의 피정 센터를 일곡동으로 이전하면서 이름을 '명상의 집' 으로 바꾸었고, 1987년에는 서울 돈암동에 지부청 겸 신학원을 개원하였다. 1988년 지부는 '한국 순교자들의 준관구' 로 승격되었고, 초대 준관구장에 바 르토제크(J. Bartozek, 朴道世)가 임명되었다. 1997년부터 제주교구 표선 본당에서 사목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1999년에는 춘천교구 양양에 오상영성원(五傷靈性院) 겸 수련원을 개원하였다. 2000년에는 중국 선교를 위해 세 명의 회원을 파견하였다.
예수 고난회는 다양한 사도직 활동 중에서도 설립자의 영성에 따라 피정 사도직을 중심 활동으로 수행하고 있 는데, 대부모 피정 · 대자녀 피정 · 새 신자 피정 · 노인 피정 · 어린이 피정 · 수도자의 부모들을 위한 피정 등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과 광주 명상의 집은 매년 약 20,000명의 신자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최근 신자들의 피정에 대한 요구가 커짐에 따라 침묵 피정 등 다양한 피 정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2001년 현재 4명의 선교 사(사제 3명, 수사 1명)와 25명의 종신 서원 수도자(사제 14명, 수사 11명), 3명의 유기 서원자, 4명의 수련자, 8명 의 지원자가 생활하고 있다. (⇦ 수난회 ; → 바오로, 십자가의)
※ 참고문헌 예수 고난회 편역, 《울려 퍼지는 고난의 신비》, 계성 출판사, 1986/ 《교회와 역사》 315호(2001. 8)/ 예수 고난회 편역, 《십자 가의 성 바오로의 생애와 영성》, 1994. 〔金善美〕
예수 고난회
苦難會
[라]Congregatio Passionis Jesu Christi · [영]Congregation of the Passion of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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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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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십자가의 성 바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