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기도

祈禱

[라]preces Jesus · [영]Jesus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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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은총의 선물을 위해 입술과 정신 그리고 마음 으로 고요히 침묵하며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기도. 예수 기도는 초기부터 중세까지 동방 교회, 즉 그 리스와 슬라브 정교회에서 신자들이 바치던 기도이다. 이 기도의 기본적인 형식은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 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이다.
[원천과 역사] 예수 기도는 동방 교회의 영성인 헤시 카즘(Hesychasm)과 '마음의 기도 와 깊이 관련되어 있 다. 헤시카즘은 정신 집중, 고요 그리고 내 · 외적 고독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헤시키아' (ησυχία)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그 어원이 뜻하는 바대로 하느님과의 일치를 살 아가는 수행을 의미한다. 헤시카즘은 침묵의 상태를 가 리키던 말로서 수도 영성의 역사에서 등장한 신학적 용 어이다. 이 용어는 수도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는 수도자
와 비교하여 은수자(隱修者) 혹은 독수자(獨修者)를 나 타내는 외적이며 장소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일반 적으로 내적인 기도를 하며 마음의 고요함을 찾고자 하 는 영성과 수행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예수 기도는 동방 교회의 영성인 헤시카즘을 실천하기 위한 신심의 수행 방법과 함께 전승되어 왔다.
해시카스트(hesychast)라는 용어는 공동 생활을 하는 수도자에 반대하는 은수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예수 기도와 관련된 신체적인 기술을 이 용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헤시카즘은 네 가지 본질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즉, 예수 이름에 대한 열렬한 사랑 (예수 기도) · 죄에 대해 슬퍼하는 민감한 감성 · 잦은 반 복적 수행 · 내적 고요로 이끌어 주는 잡념 없는 기도(마 음의 기도) 등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4세기 수도원 문학 작품에서 나타나지만, 처음으로 실제적인 기도 방식으로 제시한 사람은 425년경 폰티스(Phontice)의 디아도코(Dia- dochus, +474)였다. 그리고 그 후 '예수 기도' 의 표준적 형태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 를 베푸소서" 가 6세기경 이집트 수도자의 책 《사부 필레 몬의 생애》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예수 기도는 7세기에 성 요한 클라마코(Joanness Clamacus, 570~649)와 그 동료들 에 의해 추천되었다. 요한 클라마코의 저서 《신성한 승 천의 사다리》(Lader of Divine Ascent)에서 기도는 단순해 야 하고, 고요함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라야 한다는 가르 침과 함께 '예수 기도' 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였다.
초기 교회 문헌들에서는 예수 기도에 대한 언급이 산 발적으로 분산되어 나타나 있고, 자주 등장하지 않았다. 예수 기도의 낭송을 호흡의 리듬과 연결시키는 신체적 기술에 대한 언급을 처음으로 중요하게 다른 것은 아토 스 산의 수도자인 니체포로(Nicephorus Callistus, 1256~ 1335) 의 저술에서였다. 니체포로는 턱을 가슴에 붙이고, 눈은 배꼽에 집중하면서 앉아 있는 기도 자세를 권했다. 그리 고 호흡의 리듬은 점점 느리게 한다. 그 동안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이 안으로 모아질 때만, 일정한 형식으로 예 수의 이름을 부른다.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마음을 수렴 시켜 주며, 산만한 생각으로 흐르는 경향을 없애 주는 역 할을 한다. 니체포로 이후 시나이의 그레고리오(Grego- rius)는 예수 기도에 '죄인' 의 개념을 첨가하고 "하느님 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 소서"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니체포로의 신체적 기술을 추천하면서, 그 목적은 분심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예수 기도는 잡념 없이기도하기 위해 가능한 지속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분심을 이겨내 기 위해서 모든 감정을 제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 의하면, 예수 기도를 함으로써 '즐거운 슬픔' 의 느낌으 로 인도된다고 하였다. 한편, 시나이의 그레고리오는 예 수 기도가 세례 때 신비롭게 주어진 성령의 현존이 그 기 도하는 사람에게 살아나게 해줄 수 있다고 하면서, 예수 기도와 세례성사의 은총을 연결시켰다. 그는 한 사람이 의식적으로 성령의 현존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신성한 빛의 관상에로 이끌리며, 마음속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
게 된다고 가르쳤다.
한편 마음의 기도는, 고린토의 마카리우스(Macarius, 1731~ 1805)와 아토스 산의 니고데모(Nicodemus)에 의해 18세 기에 편집되어 1782년 베니스에서 출판된 《필로칼리아》 (Philokalia, 아름다움의 사랑)에 상세히 나와 있다. 사막 교 부 시대부터 13~14세기까지 예수 기도를 수행한 영성 가들의 글을 모아 놓은 이 책에서는, 마음의 기도가 단계 적으로 예수 기도와 밀접히 관련을 맺게 되었음을 명시 하고 있다. 5~13세기까지 예수 기도가 선호되었고, 그 후 13~14세기에는 아토스 산에서 기도의 방법으로 실 행해 오던 앉는 자세, 호흡법 등 기도를 위한 외적이며, 신체적인 자세와 기술 그리고 정신적인 내적 요인이 예 수 기도에 결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 기도는 1337~1347년 사이에 칼라브리아(Cala- bria)의 발람(Barlaam)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발람은 헤 시카스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창조되지 않은 하느님 의 빛"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더욱이 그는 그들이 추천하는 신비주의적인 기술들이 유물론적이며, 미신적인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팔라마스(Grego- rius Palamas, 1296~1359)는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 (Dionysius Areopagitae)의 저서들을 해석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이해 불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내적 본질과 에너지를 구별하였다. 팔라마스는 창조에 스며드 는 '신성한 힘의 작용' , 다시 말해 '창조되지 않은 에너 지' 를 통해 하느님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에 너지들은 하느님과 창조 사이를 상호 매개하는 것이 아 니라, 하느님이 실제로 창조 안에서 활동하는 것을 가리 킨다. 팔라마스는 창조 안에, 그리고 자신 안에서 활동하 는 하느님을 봄은 곧 하느님을 직접 보는 것이라고 말하 였다.
팔라마스의 입장은 1341년 콘스탄티노플 교회 회의 에서 인정되었고, 발람은 시칠리아로 유배되었다. 팔라 마스와 발람의 교의적 쟁점은 하느님 안에서 본질과 에 너지를 구별함이 신적 단일성을 갈라놓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각각의 주장들이 어느 정 도까지 교부들의 저서에 바탕을 둔 것인지를 놓고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이루어졌 다. 그러나 1453년 터키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 자, 이후 19세기 초까지 동방 교회 신학과 영성은 경직 된 전통주의에 매달렸다. 이 시기에 영성적 측면에서 중 요한 운동은 18세기 후기의 '헤시카스트 르네상스' 였 다. 이 시기에 《필로칼리아》가 편집되었다. 모든 그리스 도인들을 위한 작품으로 고안되었던 《필로칼리아》의 편 집자들은 영적 지도의 필요성, 영성과 교의의 연결, 그리 고 고요함과 지속적인 기도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예수 기도를 강조하였다. 《필로칼리아》는 그리스어에서 동방 교회와 서방의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그 덕택에 현 대의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 안에서 예수 기도의 전통이 매우 넓게 자리잡게 되었다.
[기도 내용] 기도의 주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름을 부르고 그분의 자비와 도우심을 간구하는 짧은 기
도문을 거듭 반복하여 외움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하 느님이며 메시아라는 신앙을 고백하는 것으로 이루어졌 다. 오랜 세기 동안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해 왔고, 러시아에서 '저를' 앞에 '죄인인' 이 첨가되었다. 이 기도는 신약성 서의 여러 구절(예수 호칭 : 사도 16, 31 ; 마태 14, 33 : 16, 16 ; 26, 63 ; 자비의 간구 : 마태 15, 22 : 20, 31 ; 마르 10, 46 ; 루가 17, 13 ; 18, 13. 38)을 결합시켜 엮은 것으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Kyrie Eleison)를 변형시킨 기도 형식이다.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러한 예수 기도를 그리스, 러시아 의 수도자들은 묵주의 기도와 함께 바쳤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예수 기도는 11세기 중반까지 그리 보편적이지 않았지만 14세기에 와서 널리 퍼졌다. 은수자 테오판(Theo- phan the Recluse, 1815~1894)은 사부 필레몬(Philemon)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반복하였다. "열정을 가지고 그분 을 불러라.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것을 교회에서나, 여행할 때나, 일할 때나, 책상에 앉아 있을 때나, 잠을 잘 때나, 한마디로 말해서, 네가 잠에서 일어났을 때부터 다시 잠 자리에 들 때까지, 항상 행하여라. 이것은 태양 아래서 하나의 물체를 잡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것은 자기 자신을 영적인 세계의 태양이신 주님의 면전 에 붙잡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영성 서적 《순례자의 길》은 서방 교회 독자 들에게 예수 기도를 알려 주었다. 이 책에서 단순한 농부 인 한 순례자가 "어떻게 멈추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가?" 라고 묻는다. 이 물음에 '영적 사부' (Staretz)가 그에 게 단순한 방법을 제시해 준다. 영적 사부의 가르침을 따 라 순례자는 반복되는 예수 기도를 하기 시작하는데, 하 루에 300번에서, 600번, 그리고 12,000번까지 하게 된 다. 그 이후에 그는 더 이상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하게 되었다. 그의 혀는 저절로 그 기도를 낭송하여 서두르지 도 않고 잠을 잘 때조차도 계속하게 되었다. 얼마 후에 그는 두 번째 단계로 들어갔다. 그의 기도는 그의 입술로 부터 혀로 옮겨 갔다. 그리고 다시 그 기도는 혀로부터 마음(심장)으로 옮겨 갔다. 순례자는 기도가 심장의 고요 함 속에서 암송되고 있음을 느꼈다. 이 책의 결론은 기도 를 자신의 심장 박동과 일치시킨 사람은 결코 기도하기 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가 그의 생명 작용과 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완전한 기도인가? 순례자는 그렇게 결론짓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하느 님의 은총으로 완전한 기도에 다다르는 올바른 길 위에 서 있다고 믿는다. (→ 헤시카즘)
※ 참고문헌  Tomas Spidlik, The Spirituality ofthe Christian East, Michigan, 1986/ Ronald J. Zawilla, The New Dictionary of Catholic Spirituality, Minnesota, 1993/ Constantine N. Tsirpanlis, Hesychasm : Introduction to Eastern Patristic Thought and Orthodox Theology and Life, vol. 30, Minnesota, 1991/ F.X. Murphy, 《NCE》 7, p. 971/ V. Lossky, The Mystical Theology of the Eastern Church, New York, 1976/ Theophan the Recluse, Letters on the Spiritual Life, Moscow, 1903/ 곽승룡, 《아름다움 의 사랑》, 도서 출판 만남, 1997. 〔郭承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