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 본당

廣安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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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남구 광안4동 556-1 소 재. 1956년 12월 20일 부산진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 다. 주보는 처음에 예수 성심(1956~1968)이었으나, 이어 순교 복자(1968~1984)였고, 1984년 시성식이 있은 후부 터 한국 순교 성인으로 변경하였다. 관할 구역은 광안3 동, 광안1 · 2동 일부. 〔교 세〕 1972년 1,306명, 1977년 4,159명, 1982년 4,483명, 1988년 5,386명, 1993년 6,314명. 〔역대 신부〕 초대 김동욱(金東旭) 마티아 (1956. 12~1957. 11), 2대 김재석(金在石) 요셉(1957. 11~1959.2), 3대 정수길(鄭水吉) 요셉(1959. 2~1961.4), 4 대 김기봉(金基奉) 필립보(1961. 4~1964. 5), 5대 장주민 (張周民) 발타사르(1964. 5~1966. 12), 6대 김성지(金聖 智) 시몬(1966. 12~1969. 3), 7대 박흥섭(朴興燮) 세바스 티아노(1969. 3~1969. 11), 8대 김유재(金有宰) 그레고리 오(1969. 11 ~ 1971. 10), 9대 정행만(鄭行萬) 프란치스코 (1971. 10 ~1972. 11), 10대 김준필(金俊弼) 아우구스티노 (1972. 11~1975. 12), 11대 안달원(安達遠) 베드로(1975.2~1979. 2), 12대 장병룡(張丙龍) 요한(1979. 2~1981.2), , 13대 이홍기(李洪基) 요한(1981.2~1982.2), 14대 이병만 (李炳萬) 요셉(1982. 2~1985. 11), 15대 배상섭(裴尙變) 요한(1985. 10~1989. 1), 16대 김승주(金承柱) 그리소스 토모(1989. 1~1991. 2), 17대 이영묵(李英默) 안드레아 (1991.2~현재). 〔공소 시대〕 광안 본당 관할 구역에는 일찍이 신앙 공 동체가 형성되어 1868년의 무진박해(戊辰迫害) 때는 동 래 수영(水營) 장대(將臺)에서 이정식(李廷植, 요한)을 비롯한 8명의 신자들이 군문 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 후 이 지역에는 신자가 없었는데 1896년 밤대(현 연 산동)에서 수영으로 이주한 한 마르코의 전교로 20여 명 의 신자 집단이 형성되었다. 이에 1901년 부산진(현 범 일동) 본당 로(Jean Rault, 盧若望) 신부가 한 마르코의 집 에서 수영 공소 설립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후 수영 공소 는 신자들의 전출로 교세가 크게 약화되었으나 1917년 초가 한 채를 공소 건물로 매입하고 1927년 김태일(베 드로) 공소 회장의 기증으로 초가 4칸을 마련하였으며, 6 · 25 동란 중에는 전입 인구가 증가하면서 신자수도 크게 증가하였다. 뿐만 아니라 케이 나인(K-9) 기지에 배속된 미 공군 군종 월리엄(William) 신부의 방문으로 주일 미사를 드리면서 1952년 11월에는 성당 신축 기성 회(회장 : 김정용 시메온)를 구성하였는데 건축비를 모금하 는 동안 1954년 3월 전(前) 공소 회장 김태일이 수영동 273번지의 밭을 비롯한 3개 필지의 토지 675평을 기증 하고, 월리엄 신부가 수영동 234번지의 토지 306여 평 을 기증하였다. 그리하여 1955년 4월에 성당 신축 기공 식을 하고 월리엄 신부의 주선으로 미 공군 한국 지원단 (A.F.A.K.)에서 건축 자재를 제공받아 그 해 6월에 건평 86여 평의 성당을 준공하였다. 〔설립과 성장〕 수영 공소는 성당 건립으로 공소 설립 55년 만인 1956년 12월 수영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그 러나 수영 지구는 인구도 많지 않고 성과도 부진한 반면 광안 지구는 인구가 증가하고 신자수도 많았기 때문에 곧 광안동에 새 성당을 건립하고 본당 소재지를 옮기면서 본당 명칭을 '광안동' 으로 변경하였다. 이어 본당에 서는 교구에 요청하여 광안동 556번지의 대지 999평을 매입하고 1964년 4월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 해 3월 12일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1967년 8월 에 강당을, 같은 해 12월에 수녀원을, 1978년 10월에는 본당 회관을 신축하였다. 한편 1957년 가톨릭 구제회 (N.C.W.C)의 구호 물자로 무료 급식소를 개설하여 관할 구역 내의 극빈자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혜성유치원(현 샛별유치원)을 설립하여 유아 교육을 시작하였으며 1962 년 9월에 한 · 미 합동 성체 대회를 하였고, 1968년 꾸 르실료 운동을 도입하였다. 1976년 10월 성 안드레아 김대건을 비롯한 3위 성인의 유해를 성당에 안치하였고, 이듬해까지 순교를 주제로 특강을 하였다. 아울러 1977 년 수영 장대골에서 장대석(將臺石) 8개를 발견 보존하 였고, 1987년 장대골 순교지 일부(161평)를 매입하였 다. 뿐만 아니라 5주 동안 미사 해설을 집중 강의하여 전 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였고, 1977년 사순절에 는 주일마다 전신자를 대상으로 피정을 하였는데 평신도 들이 피정 강론을 분담하였다. 또한 1981년부터 1984 년까지 매년 3, 5, 10월을 전교의 달로 정하고 입교 안 내 전단의 배포, 특별 강연 개최, 예비자 봉헌 제도의 운 영등 다채로운 계획을 수립 실천하였다. 이 무렵 본당에 서는 1982년 2월 망미 성당, 1984년 10월 야음 성당의 건립비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그 동안 본당에서 분리된 자본당으로는 해운대 본당(1963. 3), 남천동 본당(1979. 7), 민락동 본당(1988.2) 등이 있다. (→ 부산교구) ※ 참고문헌  천주교 부산교구 편, 《敎區 三十年史》, 1990. 〔尹善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