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시녀회

聖心侍女會

[영]Handmaids of the Sacred Heart of Jesus · [프]Servantes du Sacré-Coeur de Jé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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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델랑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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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델랑드 신부.

1935년 12월 8일 파리 외방전교회의 선교사 루이 델 랑드(Louis Deslandes, 南大榮, 1895~1972) 신부가 이 땅에 예수 성심의 나라가 하루 빨리 임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경북 영천군 화산면 용평리에 설립한 활동 방 인 수녀회. 총원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9동 475번지에 있다.
[창설자의 생애와 수도회 설립] 예수 성심 시녀회를 설립한 델랑드 신부는 1895년 6월 13일 프랑스 노르망 디(Normandi) 지방의 망슈(Manche) 파리니(Paigny)에서 아버지 레옹 델랑드(Léon Deslandes)와 어머니 빅토린 르 쿠틸레(Victorine Lecourtiller)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신앙이 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사제가 되고자 했 던 델랑드는, 1919년 10월 5일 쿠탕스 교구 대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해외 선교에 뜻을 두고 1921 년 9월 13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함과 동시에 외방 전교회 신학교로 편입하였고, 이듬해 12월 23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1923년 4월 16 일 파리를 출발하여 그 해 6월 5일 부산에 도착한 델랑 드 신부는, 한국어와 풍습을 배운 뒤 1923년 12월 17일 낙산(落山)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면서 사목 활동을 시작 하였고, 부산진(釜山鎮, 현 범일) 본당 주임을 거쳐 1928 년 5월 28일 대구교구 부당가 겸 남산(南山) 본당 주임 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재임 중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 져 1933년 1월 20일 요양차 본국으로 귀국하였다.
1934년 초 한국에 재입국하여 4월 21일 용평(龍坪) 본당 3대 주임으로 임명된 델랑드 신부는, 부임 초부터 배우지 못한 마을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한편, 무료 진 료소를 개설하여 의료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 같은 활동 을 통해 델랑드 신부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로 마음먹은 후, 그들을 위 해 헌신적으로 봉사해 줄 이들을 찾고 있던 중 평생 동정 을 지키며 그의 사목 활동에 협조하고, 하느님 나라를 위 해 자신의 일생을 봉헌할 것을 결심한 6명의 용평 본당 출신 처녀들을 만나게 된다. 델랑드 신부는 1935년 12 월 8일 그들의 봉헌을 받아들여 '삼덕당' (三德堂)이란 수녀원을 짓고 '예수 성심 배종회' 라 부르는 작은 공동 체를 마련해 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예수 성심 시녀회' 의 모체이다. 델랑드 신부와 6명의 동정녀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 특히 가장 불쌍한 사람들 안에 예수 성심의 나라가 임해야 한다는 성소에 따라 그들을 위한 희생과 봉사를 결심하였다. 그리고 1936년 2월, 길에 쓰러져 있는 할머니 한 분과 두 명의 어린이를 데려다 보 살피기 시작하면서 '성모 자애원' 을 설립하고,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점차 확장 해 나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양한 사회 복지 사업을 전개한 결과, 보육원 · 재활원 · 양로원 · 무료 진료소 · 급식소 · 나환우 정착촌 등 그 규모는 날로 확장되었으며 그의 사업에 동참하기 위한 지원자들도 꾸준히 증가하였 다.
1940년 5월 델랑드 신부는 영천(永川) 본당 2대 주임 으로 전임되면서 용평에 있던 17명의 동정녀들과 함께 생활하던 성모 자애원 가족들도 이주시켰다. 당시는 일 본이 태평양전쟁에 총력을 기울이던 때라 여러 가지 면 에서 어려움이 많았으나 델랑드 신부는 "오늘 피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 히시거늘, 하물며 너희에게야 얼마나 더 잘 입혀 주시겠 느냐? 그러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염 려하며 애쓰지 말라" (루가 12, 28-29)고 하신 말씀에 따 라 그에게 의지하는 많은 고아와 노인들을 모두 받아들 였다. 1948년 대구 대목구가 한국 신부의 책임 관할이 되자 델랑드 신부는 영천 본당을 떠나게 되었고, 당시 대 구 대목구 제5대 감목을 겸임하고 있던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는 델랑드 신부가 펼치고 있는 사업의 중요 성을 고려하여 본당 사목의 임무를 면제시켜 주었다. 그 후 1950년 3월 25일 델랑드 신부는 모든 가족들과 함께 포항 영일만의 송정 바닷가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수도 공동체의 성장과 사도직 활동의 확장을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1965년 3월 25일 제1차 총회에서 김장주(벨라뎃다) 수녀가 초대 총원장으로 선출되자, 델랑드 신부는 은퇴 하여 영일군 오천면 갈평리(葛坪里)에 머무르면서 제2 의 성모 자애원을 만들어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 였다.
1962년 8월 15일 델랑드 신부는 50년에 걸친 사제 생활 전부를 사회 복지 사업에 헌신한 공로로 대한 민국 문화 훈장(국민 훈장 동백장)을, 1969년 11월 3일에는 프 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Legion d'Honneur) 최고 훈 장을 받았다. 1972년 10월 24일 사제 서품 50주년을 맞이하여 금경축 행사를 치르기도 하였으나, 한 달이 채 못 된 11월 17일 수녀들의 묵상 지도를 위한 자료를 준 비하던 중 77세의 나이로 심장 마비로 사망하였다.
[정착과 성장] 포항 송정리에 터전을 마련한 수도회는 1952년 9월 8일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 라는 명칭의 대구 대목구 소속 수도회로 정식 인준을 받고 7명의 회 원이 첫 수련을 시작했으며, 1955년 10월 3일에는 포항 죽도(竹島) 성당에 처음으로 수녀를 파견하였다. 1956 년 1월 9일 프란치스코회 수도 3회로 등록되었고, 이듬 해 5월 나환우를 위한 '다미엔 피부병 치료소 를 개설하 여 나환우 치료 및 무료 이동 진료 봉사 활동을 시작하였 다. 1963년 교황청의 심사를 거쳐 대구대교구 교구장 서정길(徐正吉, 요한) 대주교로부터 회헌을 승인받아 그 해 9월 15일 첫 종신 서원식을 거행하였다.
그 후 수녀원 대지가 포항 제철 부지로 선정되자, 1968년 10월 수녀원은 포항 대잠동으로, 수련소는 대구
대명동으로 이전하였다. 회원이 증가함에 따라 1988년 4월 9일 제6차 총회에서 본원을 대구로 이전하기로 결 정하고, 수련소 옆 부지에 새 수녀원을 건축하여 1992 년 3월 대구로 이전하였다. 이와 함께 지역성을 배제하 기 위하여 수녀회의 명칭도 지금의 '예수 성심 시녀회' 로 변경하였다. 2001년 현재 종신 서원자 458명, 유기 서원자 68명, 수련자 27명, 청원자 18명, 지원자 11명 으로 총 583명이다.
[영 성] 예수 성심 시녀회의 영성은 예수 성심, 섬김, 대기하는 시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으로 나 누어 볼 수 있다. 회원들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 하니 나에게 배우라"(마태 11, 29)고 하신 말씀대로 인간 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충만하신 예수 성심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그분을 온전히 닮은 제2의 그리스 도로서의 삶을 지향한다. 이와 함께 "사람의 아들도 섬 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마태 20, 28) 고 하신 예수 성심을 본받아, 겸손되이 자신을 "부스러 기"(마르 7. 28)와 같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기며 현 사 회에서 불우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이들 안 에 예수 성심의 나라가 임하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 성심께서 언제 어디서든지 쓸 수 있는 '주님 손안의 연 장' (Tanquam Instrumentum in Manu)이 되도록 소박하고 겸 손한 마음으로 대기하고 있는 시녀로서의 자세를 갖춘 다. 동시에 회원들은 프란치스코회 수도 3회 회원으로서 가난을 사랑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에 따라, 작은 자로서의 단순한 마음과 신뢰를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한다.
[사도직 활동] 수녀회는 "가난하고 불우한 형제들을 섬김으로써,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예수 성심의 사랑을 전한다"(회헌 3조)는 회헌에 따라 1936년 성모 자애원을 설립한 이후, 보육원 · 재활원 · 양로원 · 무료 진료소 · 급식소 · 나환우 정착촌 등을 설립 운영하였으 며, 현재 무료 급식소, 부랑인 생활 시설, 노인 생활 시
설 및 전문 요양 시설, 아동 교육 시설, 종합 복지관 등 을 운영하며 사회 복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수녀회는 사회 복지 법인 성모 자애원 산하의 성인 여 자 지체 장애인 생활 시설 마리아의 집' (1936), , 노인 생 활 시설 '요셉의 집' (1936)과 '엘리사벳 집' (1991), 부랑 인 선도 시설 영천 '나자렛 집' (1988), 무료 급식소 '대 구 요셉의 집' (1989) , 경북 성주의 무의탁자를 위한 평 화 계곡 (1994), 경북 경산의 장애 청소년을 위한 '루도 비코 집' (1995), 노인 전문 요양 시설 '햇빛 마을' (2001) 과, 재단 법인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 산하의 무료 급식 소 '울산 요셉의 집' (1990), 뇌성 마비 조기 치료 교육 기관 '요한 바오로 2세 어린이 집' (1985), 일반 아동 및 자폐 아동의 통합 교육 기관인 청주 갈릴리 어린이 집 (1992), 서울 '중곡 종합 사회 복지관' (1998), 경북 포항의 장애 아동을 위한 '색동 어린이 집' (2002)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부랑인 시설 '대구 시립 희망원' (1980)과 대 구의 '본동 종합 사회 복지관' (1996), '서부 종합 사회 복지관' (1998), 대구 SOS마을의 '정서 장애 아동 복지 센터' (1999), 포항 '장애인 종합 복지관' (2000)에 파견되 어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아의 발생이 급격히 줄어들자 1977년 6월 3일 옛 보육원 자리에 '포항 성모병원' 을 개원하여 의료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대구 정신
병원' (1980)과 '칠곡 가톨릭 병원' (1996)에서도 의료 및 원목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대구 '효성유치원' , 포항 '성심유치원' 과 15개의 본당 소속 유치원 등 17개의 유치원에서 유아 교육 사업에 투 신하고 있으며, 본당 사도직으로 1955년 파견을 시작한 이후 2001년 현재 14개 교구의 75개 본당과 2개 공소 에서 전교하고 있다. 이외에 교정 사목 · 군종 사목 · 경 찰 사목 활동과 '갈평 피정의 집' (1999) 운영을 통해 그 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있으며, 1982년 미국에서의 활 동을 시작으로, 일본 · 필리핀 · 대만 · 프랑스 · 볼리비아 에 진출하여 선교사인 창설자를 본받아 다양한 선교 활 동을 펼치고 있다. (⇦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 ; → 영천 본당 ; 포항 성모병원)
※ 참고문헌  《주님 손안의 연장》, 분도출판사, 1996/ 《맨 끝자리 에 앉으시오》, 분도출판사, 1995/ 《맨 끝자리에 앉으시오》 Ⅱ, 대건 인쇄출판사, 2000/ 《맨 끝자리에 앉으시오》 Ⅲ, 대건인쇄출판사, 2001/ 《교회와 역사》 293호(1999. 10) ; 309호(2001. 2). [예수 성심 시녀회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