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

聖心傳敎修道會

[라]Missionarii Sacratissimi Cordis Jesu(M.S.C) · [영]Missionaries of the Sacred Heart of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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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사목 활동을 하는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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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사목 활동을 하는 회원들.

1854년 12월 8일 슈발리에(J.Chevalier, 1824~1907) 신 부가 예수 성심께 대한 봉헌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무관 심과 약한 신앙을 쇄신하기 위해 프랑스 이슈뎅(Issoudun) 에서 창립한 선교 수도회. 총본부는 로마(Rome)에 있으 며, 한국 지구 본부는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185-37번 지에 있다. 가족 수도회로는 예수 성심의 어머니 딸회 (Daughters ofOur Lady of the Sacred Heart of Jesus), 예수 성 심 전교 수녀회(Missionary Sisters of the Sacred Heart of Je- sus)가 있다. 이 중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가 한국에 진출 해 있다.
[창립자의 생애와 수도회의 창립] 1824년 3월 15일 프랑스 이슈뎅에서 조금 떨어진 리슐리외(Richelieu)에서 태어나 가난하지만 신앙심이 깊은 가정에서 성장한 슈발 리에는, 1846년 부르주(Bourges) 교구 대신학교에 입학 하였다. 당시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으로 반교 회주의가 팽배해 있었는데, 슈발리에는 하느님께 대한 무관심이라는 영적 병폐, 이기주의로 만연되어 가는 사 회 풍토,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속화의 경향을
'시대 악' 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면서, 시대 악에 의 해 상처받고 병든 이들의 마음은 '연민 가득한 예수 마 음' (성심의 사랑) 안에서 치유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와 함께 세상 안에 예수 성심을 전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사 명이라고 판단한 슈발리에는 예수 성심 공경을 기초로 한 선교 사제 공동체의 창설을 염원하게 되었다. 1851 년 6월 사제 서품을 받은 슈발리에 신부는, 1854년 10 월 대신학교 시절 함께 선교 수도회의 창립을 계획해 왔 던 모지니(S.E. Maugenest) 신부가 보좌 신부로 활동하고 있던 이슈뎅에 보좌 신부로 부임하였다. 슈발리에 신부 와 모지니 신부는 이슈뎅 본당 신부의 도움을 받아 선교 수도회의 창립을 준비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8일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 를 창립하였다. 슈발리에 신부와 모지 니 신부는 창립 첫해를 수련기로 정하였고, 이듬해 성탄 에는 피페롱(C. Piperon) 신부를 증인으로 첫 서원식을 거 행하였다.
[영 성]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 회원들은 "예수 성심 이여, 온 세상에서 영원히 사랑받으소서" 라는 슈발리에 신부의 좌우명에 따라 상처 입은 성심을 통해 하느님 아 버지께 최고의 영광을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관상하고, 예수 성심 안에서 드러난 인간에 대한 하느님 의 깊은 사랑을 끊임없이 새롭게 체험하고 나눈다. 또한 첫 선교사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었 듯이 교회로부터 파견되어 시대 악을 식별하고, 가난하 고 소외된 이들, 인권을 유린당한 이들에게 우선적 관심 을 기울이는 것을 사명(회헌 7조)으로 한다. 이를 통해 십 자가의 죽음을 통해 드러내신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의 참다운 선포자요, 증거자이며 성사가 되고자 한다.
[발전과 성장] 1858년 1월 부르주 교구의 교구장이 모지니 신부를 주교좌 성당 주임 신부로 임명하자 수도 회를 이끌어 가던 동료를 잃게 된 슈발리에 신부는 상심 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1860년 8월 교황 비오 9세(Pius Ⅸ, 1846~1878)가 수도회의 예수 성심 전파를 격려하고 축복함에 따라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1869년 3월 8일 수도회는 교황청 직속 수도회로 승인되었다.
1867년까지 2명에 불과했던 회원은 수도회 창립 25 주년을 맞이한 1879년에는 사제 29명, 신학생 29명, 평수 사 5명으로 증가했으며 로마와 미국 워터타운(Waterown) 에도 분원을 마련하였다. 같은 해 프랑스는 공화국이 정 권을 획득하게 됨에 따라 반교회적인 분위기로 변화되어 갔고, 1880년 11월부터 프랑스에 있던 수도회들은 추방 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는 나날이 발전해 갔으며, 1881년에는 교황 레오 13세(Leo XII 1878~1903)로부터 다른 수도회들이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선교를 꺼리고 있던 파푸아뉴기니에 대한 선교를 요청받고 신부 3명, 수사 2명을 파견하였다. 파푸아뉴기 니 선교를 시작으로 바르셀로나 · 네덜란드 · 오스트리 아 · 독일 · 스페인 · 영국 · 아일랜드 등지에 선교사를 파 견하여 창설자의 영성에 따라 전교 활동을 수행하고 있 으며, 2001년 10월 현재 46개 국에서 2,300여 명의 회 원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 진출과 발전] 한국의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는 1985년 2월 17일, 부산교구장 이갑수(李甲秀, 가브리 엘) 주교의 초청으로 필리핀 관구로부터 아라컬라스(P.C. Araguillas, 길반석) 신부가 파견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수 도회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본부를 마련하고 부산교구 에서 본당 사목 · 해양 사목 · 맹인 사목 · 외국인 노동자 사목을 전개하였고, 1987년 3월 13일 필리핀 관구 소속 한국 지부(Section)로 승격되었다. 1989년 2월부터는 음 성 나환우들이 생활하는 마을인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 1동에 터전을 마련하고 나환우들과 외국인 노동자를 대 상으로 사목 활동을 펼쳐 왔으며, 현재 이곳은 부산교구 해양 사목 본부로 사용하고 있다. 이어 지원자가 증가하 자 1996년 9월 10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넙성리 산 24번지에 회원 양성소와 피정의 집을 마련하였고, 1999년 4월 19일 한국 지부는 한국 지구(Region)로 승 격되었다. 한편 의료 사도직으로 1999년 3월 인천 성모 자애병원을 시작으로, 부천 중앙병원에서도 원목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 정의 회복과 북한 동포 돕기 등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으며, 본회 박창일 (朴昌一, 사도 요한) 신부는 정의 구현 사제단 소속 신부 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1년 11월 현재 사제 10명(외국인 2명 포함), 수사 1명, 유기 서원자 7명, 수련 자 1명, 지원자 3명 등 총 20명의 회원이 있다. (→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
※ 참고문헌  최영철 역, 《줄 슈발리에》,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 1995/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 편, 《줄 슈발리에, 후베르트 린켄스》, 예 수성심 전교 수녀회, 1998/ -, 《줄 슈발리에의 카리스마》, 예수 성 심 전교 수녀회, 1999.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