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을 공경하고 성체성사를 세우신 은혜에 감 사하며, 죄인들이 은혜를 저버리고 성체성사를 욕되게 함을 보속할 목적에서 세운 신심회. 1673~1675년 사이 에 '성모 방문 수녀회' (Ordo Visitationis Beatae Mariae Vir- ginis)의 알라코크(Margarita-Maria Alacoque, 1647~1690) 수
녀가 체험한 '예수 성심의 발현' 에서 유래한다.
[설 립] 예수 성심회는 예수의 성심을 공경하는 신심 단체이고, 예수 성심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구성하는 심장과 강생의 신비, 수난과 죽음, 성체성사의 설정을 통해 보여 준, 예수의 사랑의 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 나, 이것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세계적으로 보급된 계 기는 알라코크 수녀에게 내린 예수 성심의 메시지였다. 즉 1673~1675년 사이에 그녀가 받은 메시지는 '예수 성심' 신심에 대한 교회의 공인 및 이 신심의 보급과 권 장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17세기 이후 역대 교황들은 교회의 공식 문서들을 통해 이 신심을 공 인하고 널리 보급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1765년 이래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단체가 생겨나 조직적인 신심 활동이 이루어졌고, 1801년에는 로마에도 설립되었다. 로마에 생긴 이 회가 2년 뒤인 1803년에 교황 비오 7세(1800~1823)에 의해 예수 성심 총회(總會)로 승격됨으로써 예수 성심회는 이제 체계를 갖춘 본격적인 신심 단체가 되었다. 이 단체는 설립 이후 급속히 성장하여 1822년까지 1,962개의 지역 회가 생 겨났고, 19세기 후반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역 회가 존재했다. 중국의 경우에는 라자로회(Lazaris- tae)가 관리하던 북경의 남당(南堂)이 예수 성심회의 본 부였다.
예수 성심회의 설립 목적은 첫째 예수 성심 공경 및 예 수 성심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고, 둘째 성체성사를 세우 신 예수 성심께 대한 보답이며, 셋째는 성체에 대한 모독 과 기타 대죄에 대한 속죄와 보속이다. 이 회에 입회하고 자 하는 자는 먼저 본당 신부에게 입회 허가를 받고, 회 책(會冊)에 그 이름을 등록하여야 하며, 입회 후에는 날 마다 예수를 사랑하고, 온전히 그 계명을 지키며, 그 덕 행을 본받아야 한다. 또 마음과 뜻을 오로지하고 진실되 게 하여, 천주경 · 성모경 · 사도 신경을 각각 한 번씩 외 운 뒤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 성심이여! 내가 항상 당신 을 간절히 사랑하게 하소서" 라는 경문을 외워야 한다. 이와 함께 회원들에게는 예수 성심 축일을 정성껏 지내
고 고해 영성체할 것, 매월 첫 금요일에 고해 영성체할 것, 매년 예수 성심에 대한 공적 예식에 반드시 참석할 것, 살아 있는 회원과 죽은 회원을 위해 자주 기도할 것 등을 권고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회원들은 '예수 성심회' 에 인정된 수많은 특은(特恩)과 대사(大赦)를 얻 을 수 있다.
[한국의 예수 성심회] 1803년에 공식 단체로 발족한 예수 성심회가 언제 한국에 도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865년과 1866년의 <첨례표>에 예수 성심회의 규 구(規矩)가 수록되어 있는 점에서, 예수 성심회는 1865 년 이전에 이미 한국에 설립되었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 《은사약설》(恩赦說) · 《예수성심회요》(耶穌聖心會 要) · 《미과수원》(美果收園) 등 예수 성심회를 소개하는 한역 서학서가 1876년에서 1886년 사이에 한글로 번역 필사됐고, 1887년에 간행된 《한국 교회 지도서》(Cout- mier de la Mission de Corée)에는 조선 전교를 위해 승인된 신심회의 하나로 예수 성심회를 인정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6대 조선교구장 리델(Ridel, 李福明) 주교는 예수 성심 축일인 1878년 6월 28일에 한국 교회를 예수 성심께 봉헌하려 하였고, 1885년 10월 28일에는 예수 성심께 봉헌된 신학교가 부엉골(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에 설립되었다. 또 1888년 6월 8일에는 7대 조선 교구장 블랑(Blanc, 白圭三) 주교가 한국 교회 전체를 예 수 성심께 봉헌하였는데, 이것은 1899년 교황 레오(Leo) 13세가 전 인류를 예수 성심께 봉헌한 것보다 훨씬 빠른 것이며, 이 봉헌은 1899년 9월 17일 레오 13세의 정신 에 따라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에 의해 갱신되었다. 이처럼 '예수 성심' 에 대한 신심은 한국 교회의 대표적 인 신심 중의 하나로 자리잡아 갔고, 이에 따라 예수 성 심회도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 으로 생각된다.
이후 예수 성심회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1910년대 이후 《경향잡지》 · 《회장직분》 등 교회의 간행 물에 지속적으로 예수 성심회가 소개된 점에서, 이 회는 꾸준히 존속되어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 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범일 본당의 성심회가 1950년을 전후한 시기에 유사한 단체들로 통합 혹은 해체되었고, 언양 본당의 경우도 1960년대 초에 해체된 사실에서, 예수 성심회는 1960년대를 전후하여 그 활동이 축소되 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아울러 오늘날에도 각 본당에는 예수 성심회가 조직되어 있는데, 예수 성심의 사랑을 본 받는다는 취지 외에는, 이들이 19세기에 도입된 예수 성 심회의 정체성을 계승한 단체라고는 할 수 없다. (→ 알 라코크, 마르가리타 마리아 ; 예수 성심)
※ 참고문헌 田類斯, 《耶穌聖心會要》, 1878/ 晁德苻, 《敬禮聖心 月》, 1865/ 《美果收園》/ 《恩赦說》/ 《가톨릭사전》 한국교회사연구 소 역주, 《뮈텔 주교 일기》 II , 천주교 명동 교회, 1993/ 천주교 범일 교회, 《부산 선교 90년사》, 1979/ 이홍근, <예수 성심 신심의 신학적 고 찰>, <사목> 159 · 160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2/ 언양 천주 교회, 《신앙 전래 200년사》, 1993. [方相根]
예수 성심회
聖心會
[라]Sodalitas SS. Cordis Je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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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