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승천

昇天

[라]ascensio Dominii · [영]ascension of Our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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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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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승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한 후 하늘로 올라간 것.
[성서에서의 의미] 본래 예수 승천 이야기는 신약성서
에서 루가 복음서와 사도 행전에만 기록되어 있다(루가 24, 50-53 ; 사도 1, 9-11). 그리고 2세기경 마르코 복음 서에 추가로 덧붙여진 내용에 간략히 언급되고 있다(마 르 16, 19). 예수의 승천 장면은 루가 복음서에서는 짧게 언급되어 있지만, 사도 행전에는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 어 있다.
성서가 전하는 본래적 의미 : 승천 이야기는 단순히 예 수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보는 이들, 곧 제자들의 시야에 서 사라진 것이 아님을 알려 준다. 승천 기사에 그 최종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즉 루가 복음사가는 자신의 두 작품 안에서 예수 승천 장면을 가시적으로 묘사함으 로써 부활하신 분이 지금 중간 상태, 곧 새로운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한편 으로는 예수가 지금까지 살았던 이 세상으로 되돌아온 것도 아니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그가 도달해야 하는 궁극적 영광에 이미 도달한 것도 아님을 말해 주고 자 한다.
루가 복음서와 사도 행전 두 작품에서 유념해야 할 부 분은 예수 승천 후에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왔다 는 사실이다(루가 24, 52-53 : 사도 1, 12-14). 제자들의 예루살렘 귀환 목적은 그곳에서 성령 강림을 준비하며 기다리기 위함이었다(사도 2, 1-4). 사도 행전에 따르면, 성령 강림은 예수의 현양을 뒤따르는 사건이다. 즉 부활 한 예수가 궁극적 영광에 도달한 다음에, 곧 성부 오른편 에 앉은 다음에 성령 강림 사건이 발생하였다(사도 2, 33). 이렇게 볼 때 예수 승천의 목적은 예수가 성부 오른 편에 오르심에 있다. 곧 승천은 부활하신 분의 현양을 위 한 하나의 중간 사건 또는 그 준비 과정으로 이해된다.
루가 복음서와 사도 행전 승천 기사를 바탕으로 쓰여 진 것으로 간주되는 마르코 복음서에서도 승천은 부활한 예수가 현양되기 전에 거치는 과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마르 16, 19). 여기서도 승천은 루가의 두 작품과 마찬가 지로 부활하신 분이 궁극적으로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시 기 전에 도달하는 중간 단계로 이해된다. 예수 부활과 현 양 사이의 중간 과정 묘사로 이해되는 표현은 요한 복음 서에서도 나온다(요한 20, 17).
루가 복음서와 사도 행전 승천 이야기의 차이점 : 같은 루가 복음사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의 묘사에 는 차이점이 드러난다. 루가 복음서에서 예수 승천은 예 수가 제자들과 헤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묘사된다(루가 24, 51). 부활 후 제자들에게 발현한 예수는 그들을 베다 니아 부근으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그들에게 축복한 후 승천한다. 이에 제자들은 엎드려 절한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24, 52). 반면, 사도 행전의 승천 기사에서는 특히 '구름' 을 중심으로 한 천상적 · 상징적 표현을 통하 여 예수의 재림이 강조되고 있다(사도 1, 11). 이같이 구 름 속에 휩싸여 공중으로 사라지는 장면은-당시 사람 들에게-지상의 모든 차원을 뛰어넘는 초월적 사건으로 서 그분이 바로 궁극적 심판주라고 깨닫게 해 주기에 충 분했다.
루가의 두 작품에 나타나는 승천 시기도 다르다. 루가
복음서에서는 이야기 흐름으로 보아 부활 다음날 아침에 예수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난다(24, 50-53). 반 면 사도 행전에서는 구약성서로부터 전통적 준비 과정으 로 이해되는 40일 동안의 활동 시기를 가진 다음에 승천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1, 2-3. 9-11). 부활한 예수는 이 기간 동안 제자들과 더불어 지내면서 그들을 격려하고 가르친다.
구약성서와 그 밖의 문헌에서의 승천 이야기 : 승천 이 야기는 구약성서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에녹의 경우(창 세 5, 24)와 예언자 엘리야의 경우(2열왕 2, 11 ; 참조 : 집 회 48, 9. 12)를 예로 들 수 있다. 루가 복음서의 축복 묘 사(24, 50-51)는 집회서의 축복 이야기(50, 20-24)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유대교 문헌에 따르면 에 녹과 엘리야 외에 모세와 에즈라의 승천기도 있다.
그 밖의 고대 문헌에서 승천 사화는 많이 발견된다. 한 예로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Titus Livius, 기원전 64/59~ 서기 17)는 로마를 창건한 로물루스(Romulus)의 승천기 를 전해 준다. 그 외에도 헤라클레스(Heracles) · 엠페도 클레스(Empedocles, 기원전 490?~430) · 알렉산드로스 대 왕(기원전 356~323)의 승천기 등을 꼽을 수 있다.
예수 승천 단락의 형성 과정 : 오늘날 성서 학자들은 루가 복음서와 사도 행전에 나오는 두 가지 예수 승천 기 사의 뼈대가 모두 루가 복음사가에 의하여 직접 형성되 었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한다. 다만 학자들이 던지는 물 음은 루가가 부활한 예수가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창
작하여 두 작품에 넣었는가, 아니면 전승에서 무언가를 받아들여 그것을 발전시켰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 본문들 외에 신약성서 다른 어느 곳에서도 예수 승천에 관한 언급은 없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 승천 기사는 부활 한 예수에 관한 가장 오래된 전승 속에는 들어 있지 않았 음을 시사해 준다.
루가 복음사가의 신학적 의도 : 루가 복음사가가 예수 승천 이야기를 통하여 전하려고 하는 것은 부활한 분이 역사적으로, 곧 실제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술 된 대로 그렇게 하늘로 올라갔다는 사실 보고가 아니다. 루가 복음사가는 승천 기사를 통하여 부활한 예수의 현 양을 그리스도론적으로 더욱 선명하게 조명하고자 할 뿐 이다.
신약성서에는 예수 부활과 현양을 연결해 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이러한 관념이 루가 복음사가에게 나름 대로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로마 1, 4 ; 필립 2, 9 : 에페 1, 20-23 : 히브 1, 3-4. 13-14 등 참조). 특히 예수가 개선하여 하늘에 올라 전권을 부여받는 장면(골로 2. 15 : 에페 4, 8-10)은 승천 이야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여겨 진다. 이러한 장면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알리고 선포 하는 신앙 고백문들이지 역사적 사실 보고가 아니다.
루가의 두 작품 안에는 '사람의 아들' [人子]인 예수가 구원자요 심판자로서 '구름을 타고' 오리라는 내용이 나 온다. 루가 복음 21장 25-28절에서는 구름을 타고 오는 분의 모습이 강조되며, 사도 행전 10장 42절에서는 심 판자로서의 모습이 강조된다. '구원자' 로서의 모습은 루 가 복음 2장 11절에서 '주님' 및 그리스도' 와 함께 명 시적으로 등장한다. 예수를 '궁극적 심판자' 로 고백하는 이러한 장면이나 사상이 예수 승천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직접적 바탕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스도론적 측면에서의 승천] 예수 승천은 초대 교 회의 예수 부활 신앙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예 수 승천의 본래적 의미는 예수 부활에 대한 신앙 고백, 즉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이 궁극적으로 본래의 영 광을 차지하셨다는 믿음에서 찾아야 한다. 예수 승천은 인간의 가장 비참한 처지, 곧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 지 자신을 낮추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드디 어 하느님 아버지의 권능에 찬 본래의 삶으로 귀환하셨 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원을 원하시는 성부의 뜻에 순명하심으로써 자신을 낮추어 사람이 되셨다(필립 2. 6- 11). 그분은 이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인류 구원 을 위해 자기 비하(自己卑下)의 과정을 마치고 본래의 처지로 돌아가심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의 모든 여정을 마치고 하늘 나라로 돌 아가는 마지막 과정을 승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승천하신 분 안에서 온 인류는 하늘의 모든 피조물과 하 나되어 궁극적으로 또 영원히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상속 을 얻게 된다.
하늘 나라에, 곧 그분이 베푸시는 상속에 한몫 차지할 수 있기 위한 기준은 복음서 곳곳에 제시되어 있다. 형제
들과의 나눔(마태 25, 31-46)을 비롯하여 주님 앞에 가난 한 자세(루가 4, 18-19), 예수의 모범을 따르는 삶(요한 13, 1-17) 등을 예로 들 수 있다(다른 측면에서 로마 1, 17 ; 3, 21-26 참조).
다른 한편, 예수 승천은 예수 재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여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현양되신) 예수가 세상에서부터 잠시 동안 도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분은 부활하여 현양되 심으로써 이미 모든 피조물을 그 최종 목표로 인도하여 하느님과 궁극적 화해를 이루셨기 때문이다. 이로써 예 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궁극적 다스리심에 온전히 참여 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교회론적 측면에서의 승천] 예수 승천은 여기서 특별 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는 예 수 그리스도의 활동은 하느님 백성인 교회 안에서 가시 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은 일 차적으로 성령을 보내심에서, 이어서 그분의 영인 성령 의 활동 안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나눔과 친 교의 성사인 성체성사를 비롯한 교회의 모든 성사 집행 을 비롯한 성령의 작용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 활동은 지속된다.
루가 복음사가가 부활과 승천 사이에 은총과 구원을 위한 준비 과정을 상징하는 숫자 40을 두는 데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부활을 통하여 이미 영광에 도달한(현 양되신) 그리스도는 한편으로는 지상에 남아 있는 믿는 이들에게 전과 변함없이 아직도 체험할 수 있는 분으로 머문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부활한 그리스 도는 세상의 유한성과 하늘 나라의 영원성 사이를 넘나 드는 분임을, 곧 지상과 천상을 하나로 묶는 분이심을 강 조하고자 한다.
[교리에서의 의미] 예수가 십자가 위에 높이 들리심 은, 그가 승천으로 하늘로 높이 오르실 것임을 의미하고 예고한다. 그래서 요한 복음서는 "내가 땅에서부터 들려 올려지게 되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입니다" (요한 12, 32)라고 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승천 의 시작(《가톨릭 교회 교리서》 662항)이었다. 부활한 이후 승천하기까지의 40일 동안 부활한 예수의 영광은 가려 져 있었다. 이는다음의 말씀에서 엿볼 수 있다. "나는 아 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내 형제들에게 가 서 말하시오. '나는 나의 아버지이시며 여러분의 아버 지, 나의 하느님이시며 여러분의 하느님(이신 그분)께로 올라간다' 고"(요한 20, 17). 이 말씀은 부활한 예수의 영 광과 하느님의 오른편으로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가리킨다. 역사적이며 동시 에 초월적인 성격을 지닌 승천 사건은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가는 표지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60항).
그렇기에 예수 승천은 예수의 인성이 하느님의 천상 영역으로 결정적으로 들어감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그 곳에서부터 다시 올 것이지만, 그때까지는 사람들의 눈 에 띄지 않을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65항). 그러나 예수가 바오로를 사도로 임명하는(1고린 9, 1 ; 갈라 1, 16) 마지막 발현에서, '배냇병신 같은' 그에게 나타난 것(1고린 15, 8)은 온전히 예외적이고 유일한 일일 뿐이 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59항).
사실 승천은 육화로 실현된 강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버지로부터 떠나 오신' 분, 곧 그리스도만이 '아버지께 가실' 수 있다(요한 3, 13 : 16, 28). 인간은 자 신의 자연적 능력만으로는 '아버지의 집' (요한 14, 2)과 하느님의 생명 · 지복에 다다를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 만이 인간에게 이 길을 열어 주시어, '우리의 으뜸이 되 시고 머리가 되시어 앞서가시면서, 당신 지체들인 우리 도 당신이 가신 데로 따라가게' (승천 감사송) 하실 수 있 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61항). 그렇기에 예수 승천으 로 인간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 승천 ; → 골고타 ; 예수 그리스도 ; 주님 승천 대축일)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p. 8491 민영진 외 다수, 《성서 백과 대사전》 6, pp. 700~704/ G. Lohfink, 신교선 · 이석재 공역,《죽음이 마 지막 말은 아니다》, 성바오로출판사, 1986/ 《LThK》 5, 1950, pp. 358~ 362/ 《LThK》 5, 1996, pp. 122~123/ A. Weiser, 《TRE》 15, pp. 330~334/ G. Lohfink, Die Himmelfahrt Jesu. Untersuchung Zu den Himmelfahrts und Erh hungstexten bei Lukas, 《SEANT》 26, 1971. [辛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