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姉妹 - 友愛會

[영]Little Sisters of Jesus · [프]Petits Soeurs de Jé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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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예수의 마들렌 작은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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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예수의 마들렌 작은 자매.

1939년 9월 8일 예수의 마들렌 작은 자매 (Sister Ma-
deleine of Jesus, 1898~1989)가 사막의 유목민들 한가운데서 형제이며 친구로서 그들을 사랑하고 하느님께 기도하며 열정적으로 나자렛 예수의 삶을 살아갔던 샤를 드 푸코 (Charles de Foucauld, 1858~1916)의 영성에 따라 사하라 투 구르트(Touggout)에 설립한 수녀회. 총 본원은 로마의 트레폰타네(Tre Fontane)에 있으며, 한국 지부는 서울 은 평구 신사동에 자리잡고 있다.
[설립자의 생애와 수녀회의 설립] 1889년 4월 26일 프랑스 파리의 독실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난 마들 렌 위탱(Madeleine Hutin)은, 아랍 소년의 생명을 구하는 등 편견 없는 사랑을 실천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 려서부터 아프리카와 아랍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키워 왔다. 이와 함께 유목민들의 삶을 동경하였던 마들 렌은 1921년 사하라 사막의 성자로 불렸던 샤를 드 푸 코의 전기를 읽은 후 "나는 푸코 신부에게서 내가 꿈꾸 는 삶의 이상 전부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삶으로 실 천되는 복음, 실천적인 가난, 버려진 사람들 가운데 숨어 들어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철저한 사랑이었다" 라고 말 하였는데, 그녀는 푸코 신부를 통해 비로소 오랫동안 자 신이 소망해 왔던 삶의 이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가정의 시련과 건강의 악화로 그 뜻을 실현하지 못하다가 1936년 동료 한 명
과 알제리 남부 지방 에 터전을 마련하고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 면서 유목민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였다. 무료 진료 · 급식 ·수 공예 교육 · 이웃 방문 등의 활동을 전개하던 마들렌은, 1938년 자 신의 성소를 식별하기 위해 푸코 신부의 무 덤으로 순례를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사하라 교구장 누에 주교를 통해 수도회 설립이라
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백의회 수도원(Congréga- tion de Soeurs Blanches)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수도회 설립 을 준비하였다. 이어 1939년 9월 8일 첫 서원을 하였는 데, 바로 이날이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의 설립 일이다.
[수도회의 발전과 영성] 1939년 10월 마들렌 작은 자 매는 사막 투구르트에 '우애의 집' 이라고 불리는 작은 공동체를 만든 후 하느님이 주신 이 작은 불씨를 온 세계 에 퍼뜨리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두려움 없이 노동자· 장인 · 농민 · 환자(결핵 · 나병 · 정신적 질환) · 목동 · 집 시 · 소수 민족 · 노점 상인 · 곡예단 사람 사이에 우애의 집을 창설해 나갔다. 195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 해 온 수도회는 1956년 보편 교회의 중심에서 살기 위 하여 우애의 집 총본부를 로마 트레폰타네에 마련하였 고, 1964년 3월 25일에는 교황청 직속 수도회로 인가받 았다.
모든 사람들의 형제와 자매가 되고자 했던 샤를 드 푸 코 형제와 마들렌 작은 자매의 뒤를 이어 가는 예수의 작 은 자매들의 우애회 회원들은 '사람 서리' (사람들 사이)에 서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성체를 중심으로 한 기도의 삶, 곧 세상에서의 관상 생활을 지향한다. 마들렌 작은 자매는 '반죽 속의 누룩' 처럼 인간 대중 속에 섞여 예수 님의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으며, 이에 따라 작은 자매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 가운데서 '그들 중의 한 사람' 이 되어 살아간다. 이와 함께 작은 자매들은 예수 탄생의 신비에서 영감을 받은 '복음적 어린이 영성' 을 추구하고자 노력하는데, 마들렌 작은 자매는 이 영성을 하느님 손에 자기를 전적으로 내어 맡긴다는 의미에서 "그분이 내 손을 잡아 이끌고 나는 눈을 감고 따를 뿐이 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작은 자매들은 서민들이 사는 지 역에서 이웃과 같은 집에 거주하며 그들이 하는 공장 노 동이나 파출부, 농촌의 밭일을 하면서 삶의 현장에서 그 들을 만나고 기쁨과 아픔, 하느님의 사랑을 함께 나눈다. 투구르트의 우애의 집을 시작으로 동방 교회 전례에 속 하는 지역과 이슬람 지역을 포함하여 2002년 2월 현재, 68개 국에 우애의 집들이 설립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약
1,30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 진출과 회원 현황]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 회의 한국 진출은 1954년 4월 마들렌 작은 자매의 한국 방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 방문 중 그녀는 몇몇 나 환우 마을을 둘러보았는데, 이 중 깊은 산중에 위치한 왜 관 삼청동의 작은 나환우 마을이 나환우들 사이에 우애 의 집을 짓고자 했던 자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듬해 6월 1일 대구대교구 최덕홍(崔德弘, 요한) 주교의 초청 으로 정식으로 한국에 진출한 수녀회는 파리 근교의 나 환우 요양소에서 교육받은 2명의 작은 자매를 한국으로 파견하였는데, 이들은 6월 9일 삼청동 나환우 정착촌에 한국의 첫 '우애의 집' 을 열었으며, 대구 남산동 남문 시 장 옆에도 우애의 집을 설립하였다. 1957년 6월 3일에 는 명동 주교관 뜰 병원용 응급차에 첫 수련소를 마련하 고 수련을 시작하였고, 이듬해 12월 13일 혜화동에 지 부를 마련하였다. 1959년 나환우들을 보살피던 수녀회 는 나환우들이 더욱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의료 해택을 받을 수 있도록 오스트리아의 봉사 활동 팀에 마을을 연 결시키고 우애의 집을 철수하였다. 이후 수녀회는 대구 남산동 우애의 집과 서울 명동 성당 응급차를 근거지로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고, 1975년 4월 22일에는 강서구 목동 무허가 동네에 '우애의 집' 을 설립(1978년 철거됨) 하여 철거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어려움을 나누었다. 이 듬해 4월 20일 경기도 고양군 일산에 기도의 집을 겸한 수련소를 설립하였으며, 1978년 9월 8일 관악구 사당동
산동네에 우애의 집을 다시 설립하였으나, 1981년 11월 지역 개발로 이 우애의 집 또한 철거되었다. 1982년 8 월 마포구 상암동(난지도)에 우애의 집을 다시 설립하였 고, 1991년 신도시 건설로 인해 일산에 있던 수련소를 충청남도 조치원으로 이전하였다. 그 동안 시대의 변화 와 함께 여러 차례 철거 또는 이동된 우애의 집은 2002 년 2월 현재 6개 교구에 설립되어 있으며, 외국인 3명 (프랑스인 2명, 일본인 1명)과 외국 선교사 8명을 포함하여 종신 서원자 20명, 유기 서원자 3명, 청원자 1명 등 총 35명의 회원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 푸코, 샤를 드)
※ 참고문헌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한국 수도자 장상 연합회 양성위원회 편, 《오늘의 수도자들》, 분도출판사, 1992/ 《사막의 성자》, 분도출판사, 1976/ Jean-Frangois six, 안응렬 역, 《오늘의 샤를르 드 푸코》, 분도출판사, 1976/ R. Voillaume, 강우일 역, 《사람 서리에서》, 분도출판사, 1982/ Charles de Foucauld, 조안나 역, 《사하라의 불꽃》, 성바오로출판사, 1996/ 예수 의 작은 형제회 편, 《세상 속의 사막》, 분도출판사, 199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