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본당
光陽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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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광양군 광양읍 목성리 716 소재. 1975년 10월 29일 저전동 본당으로부터 분 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바오로. 소속 공소로 는 금호도 공소가 있으며, 관할 구역은 광양면 광양읍, 옥곡면, 봉강면, 옥룡면, 진상면, 진월면, 다압면. 〔교 세〕 1980년 484명, 1984년 1,012명, 1988년 2,339명, , 1993년 1,681명. 〔역대 신부〕 초대 코로나(Juan Corona, 고) 요한(1975. 10~1976. 12), 2대 카스타네다(Severiano Castaneda, 강) 세베리아노(1976. 12~1980. 1), 3대 나바로 (Jose Navarro, 남) 요셉(1980. 1~1983. 9), 4대 프라몰 (Maurilio Framol, 김) 마우릴리오(1983. 9~1985. 1), 5대 알바레즈(Pablo Juan Albarez, 안명철) 요한(1985. 1~1988.4), 6대 최형락(崔炯洛) 바오로(1988. 4~1991.2), 7대 최 기원(崔箕元) 에밀리오(1991. 2~1994. 2), 8대 김재기(金 在基) 안드레아(1994.2~현재). 〔설립과 발전〕 1931년 4월 순천(현 저전동) 본당 정수 길(鄭水吉, 요셉) 신부의 지도로 광양읍 칠성리에 설립 된 광양 공소는 얼마 되지 않아 폐지되었고, 그 후 광양 서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한 안병호(베네딕도)의 노력으로 1933년 8월 인서리 그의 집에 재개설되었다. 1935년 9월 26일 박현수가 광양 공소에서는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박현수는 이듬해 3월 공소 회장으로 임명되었 다. 1937년 8월부터는 전 프란치스코가 공소 회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듬해 2월 취업을 위해 도미(渡美) 한 후에는 신자수가 줄어들어 광양 공소는 다시 폐지되었다. 그 후 1954년 7월 1일 광양 중 · 농고의 교장으로 부 임한 박현수(스테파노)의 집에 공소를 재개하고, 1956 년 8월 저전동 본당 망간(Kevin Mangan, 만 가비노) 신부 의 도움으로 현 성당 대지와 밭 864평을 매입하여 1958 년 6월 경당(43평)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1965년 10월 부터는 저전동 본당에서 사목을 시작한 과달루페회 신부 들이 매주일 방문하여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교세가 많이 확대되었다. 1975년 10월 29일 광양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신자수가 계속 증가하자 1981년 3 월 공소 때의 경당을 성당으로 개축하고, 1985년 9월 30일에는 성당을 20여 평 증축하고 창고를 유아실로 개 축하였다(총 건평 63평). 한편 1983년 3월에는 광양제철 에 근무하는 신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하여 광양제철 동 백 아파트 4동 202호에 금호 공소를 개설하고, 이듬해 3 월에는 광주교구청 후원으로 광영리에 공소 부지 403평 을 매입하여 1990년 2월 광영동 본당을 분리하였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천주교 광주대교구 편,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 을 출판사, 1990. ② 제주교구 소속 본당. 제주시 이도1동 1256-1 소 재. 1970년 5월 20일 중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 으며, 주보는 착한 목자. 관할 공소로는 김녕 공소가 있 으며, 관할 구역은 제주시 이도1 · 2동, 삼도1동 일부, 아라동. 〔교 세〕 1972년 506명, 1980년 1,303명, 1989 년 3,179명, 1993년 4,399명. 〔역대 신부〕 초대 사비지 (Sean G. Savage, 원) 요한(1970. 12~1972. 9), 2대 크로프 트(Joseph Crofts, 길) 요셉(1972. 9~1974. 12), 3대 컨(John Quinn, 고) 요한(1974. 12~1979. 4), 4대 뮤레이(Aidan Murray, 함) 예단(1979.4~1983. 12), 5대 이종원(李鍾源) 토마스(1983. 12~1985. 2), 6대 임문철(林文喆) 시몬(1985. 2~1990.7), 7대 고승헌(高昇憲) 마르코(1990.7~현재). 〔설립과 발전〕 1960년대 말 남문로가 확장되면서 삼 성혈을 중심으로 이도동 지역의 주민수와 신자수가 증가 하여 교회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당시 광주교구장으 로 제주 지목구장을 겸하고 있던 헨리(Harold Henry, 玄 海) 주교가 제주시 이도1동 1256-1에 교회 부지 725평 을 매입하였다. 그리고 1970년 5월 20일, 380명의 신자 들로 제주 시내에서는 세번째 본당인 광양 본당이 설립 되어 그 해 9월 20일 성당 신축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12월 24일 초대 사비지 신부가 부임하여 성탄 자정 미 사로 광양 본당의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어 1971년 5 월에 벽돌 슬레이트 성당 73평과 사제관 37평을 완공하 고, 6월에는 종각 공사를 마무리하였으며, 성모회 · 청년 회 · 안나회 등 각종 신심 단체를 조직하여 본당 기틀 확 립에 주력하였다. 또한 본당 설립 이후 교구청과 골롬반회의 후원에 의지했던 본당 재정을 1980년 1월부터 본당 스스로 해결 해 가기 시작했으며, 계속되는 신자수의 증가로 1980년 1월부터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원을 개설하였는 데 수녀들이 상주하면서 여교우들의 본당 활동이 활발해 졌다. 이어 신자 재교육과 신심 앙양을 위해 1982년 5월 교리실을 증축하고, 1985년 9월 29일에는 제주교구의 첫 본당 주보로 <별소식>을 창간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 자수 증가로 성당이 협소해졌기에 성당 증축을 시작하여 1988년 11월 27일 439평의 성전을 축성하였다. 성전 건립 후 신자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져 청년회에서는 부활 대축일 바자회를 주관하고, 성모회에서는 미역과 김 등의 판매 수익금으로 6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한 경로 잔치와 도(道) 일주 관광을 마련하였으며, 성모 성심회 에서는 연중 미사 제병을 봉헌하였다. 1991년 5월 제주 공설 운동장에서 본당 설립 21주년 기념 행사를 하였다. (→ 제주교구)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