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직

預言職

[라]munus propheticum · [영]prophetic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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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예언직은 삼위인 하느님의 위격적인 일치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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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예언직은 삼위인 하느님의 위격적인 일치에서 시작되었다.

하느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전하는 예언자의 직무. 그 래서 "예언자직"이라고도 한다. 이 직무는 성부께서 성 령으로 기름 부어 "사제이고 예언자이며 왕" 으로 세운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 중 하나이며, 하느님 백성 전체가 신앙과 세례로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써 이 세 가지 직분에 참여하며, 거기에서 나오는 사명과 봉사의 책임을 진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783~785항).
I . 교의 신학에서의 예언직
예언직은 한마디로 예언자의 직무이다. 성서에 등장하 는 예언자들의 본질적 임무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 주는 것〔豫言)이 아니고, 과거 · 현재 · 미래에 관계 없이 하느님의 뜻을 맡아서 [預] 백성들에게 전하는[言] 것이다. 따라서 예언직은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고 하느 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로서, 구원 역사의 필수적인 직 무이다. 이런 예언직은 세습되는 것도, 선출되는 것도 아 니다. 오직 하느님의 자유로운 부르심에 의하여 출현하 는 것이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순수한 선물이며, 참된 약 속의 대상으로 자유로이 보내진 사람이다(신명 18, 14- 19). 그는 성스러운 제사를 주관하는 사제와는 다르다. 제사는 전통에 의해 그 정당성이 수립되고, 제도적 방식 으로 새로운 사제에게 전수될 수 있는 것으로 어느 정도 정해진 용어이며 동작이다. 하지만 예언자는 항상 새로 운 메시지를 들고 나온다. 예언자는 그 자신의 신임장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따라서 예언은 제도화될 수 없다.
이렇게 예언자는 제도에 의하여 취임하는 것이 아니 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서(요엘 3, 1) 출현하는 사람이다.
그는 하느님의 사절(使節)로서 자신이 주장하는 것은 하 느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신령한 힘의 도구가 아니라 자유롭게 당신을 드러내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구이다. 그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단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위임받아 보내어진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말씀' 은 예언자의 구성분이며 임 무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함께하신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이며, 그 사건에 깊이와 진실을 부여하고, 그 사건들 이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게 하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들 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예언자는 신탁의 의미에서나 천리안을 가진 자라는 의 미에서 단순히 미래를 예견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예언자라는 개념의 이차적인 제한된 의미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예언자는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구세사 에서 새롭게 앞을 내다보는 상황을 창출하기 때문에 본 질적으로 약속과 미래로 연결된다. 더구나 예언자의 말 은 단순한 교의적 제안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 는 것이기에 그는 항상 종교적 · 사회적 변화의 주도자이 며 조직자일 것이다. 따라서 예언자의 직무인 예언직은 부족한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와 사회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없어서는 안될 구원 역사의 누룩이다.
[의 미] 성서적 고찰 : 성서는 예언에 대한 정의를 내 리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사용 용도로 예언의 성서적 개념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성서에서 예언이라는 용어의 주된 의미는 미리 알려 주는 예보가 아니라, 하느님의 이 름으로 말하도록 하느님에 의해 영감을 받은 어떤 사람 의 말이다. 비록 그 안에 예보 성격의 내용이 다분히 들 어 있을지라도, 우선 그것은 계시요, 훈계이다. 그래서 그것은 성서적 계시가 진행됨에 따라 더욱더 중요하게 되었다. 히브리어로서의 예언은 예보라기보다는 하느님 으로부터 예언자에게 주어진 계시였으며, 예언자는 그것 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구약의 예언은 열왕기에서 보여지듯이 하느님 말씀의 작용으로서 이스라엘 역사를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기본 적 부분이다. 이사야는 야훼가 다른 나라들의 어떤 신들 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 야훼의 예언이 달 성되었음을 노래할 때 하느님 말씀의 미래 언급을 전한 다(이사 41, 26-29 : 42, 9 : 43, 12). 다른 신이 아닌 야훼 가 미리 알려 주셨고, 미리 가장 잘 일러준 자만이 자취 를 남기는 자이며, 야훼만 이미 일러주셨던 것들을 이루 셨기에 야훼만이 유일하고 참된 하느님이라는 논지이다. 바로 이런 관념이 구약의 예언에 관한 신학적 개념을 가 장 정교하게 드러내는 부분일 것이다.
구약의 마지막 시기에 사람들은 더욱더 예언의 달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다니 11, 14 ; 집회 36, 14-17). 그 렇기에 이 마지막 시대에는 예언서만이 아니라 구약의 모든 부분에서 예언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예언 자의 동 시대인들을 겨냥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계시와 훈계의 고전적 관념은 상실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구약 의 예언직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하느님께서 함 께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르게 해석하여 하느님의 뜻을
구현하는 직무였다.
반면, 신약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교회의 출현을 예언 의 명백한 달성으로 본다. 마태오 복음은 이 개념을 가장 철저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예수는 세례자 요 한이 선언한 예언 말씀의 실현으로 등장한다(마태 3, 1-3. 11-12). 모든 예언자들이 예수에 관하여 말한 것이, 요한 을 통하여 마무리된다(마태 11, 13). 예수는 여러 가지 면 에서 예언자적 특성을 드러내고(마태 9, 14), 시대의 징표 를 알려 주고(마태 16, 2-3), 그것이 성취되는 것을(마태 24-25장) 일러준다.
그리고 예언의 달성에서 나온 논쟁은 처음부터 신약 복음 선포의 근본이었다(사도 2, 14-36). 예수 그리스도 는 천주 성부께로부터 파견된 최고의 예언자, 즉 최고의 계시자이다. 그리고 그 계시의 핵심적 내용이었으므로 사도 시대의 종료와 더불어 인간 구원의 공식적 계시는 완결되었고, 다른 계시를 새롭게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 다. 성령은 주께서 가르치지 않은 새로운 진리를 가르치 지 않고, 그리스도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 26). "그분 은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니, 이는 내 것을 받아서 여러분에게 알려 주시겠기 때문입니다"(요한 16, 14).
따라서 신약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계시에 어떤 다른 요소를 가감할 수는 없고, 다만 이 계시 내용을 모든 사 람에게 해설하고 전파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 범주 내에 서 신약의 예언 직무는 사람들을 키워 주고, 격려해 주 고, 위로해 주는 기능도 가진다(1고린 14, 3). 이러한 과 업들은 설교 직무에 가깝다.
끝으로, 신약의 교회는 복음 선포를 위한 예언자들의 예언이 미래를 일러주는 것만이 아니라(사도 11, 28), 공 동체의 화합과 성장을 위하여(1고린 14, 3. 31) 공동체 내 구성원들의 존재를 충분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도 주목해야 한다.
신학적 해석 : 일반적으로 예언직은 구원을 향한 인류 를 가르치기 위해 주어지는 지식의 사회적 카리스마직이 다. 지식의 카리스마는 예언자의 의지가 아니라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이 지식은 예언자의 마음에 숨겨진 진리 에 관계되며 본질에 있어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습 득의 방식에 있어서는 초자연적이다(Sum. Theo. Ⅱ-Ⅱ, q. 171, a. 1-2 ; q. 173, a. 1 ; q. 174, a. 3).
예언자가 하느님으로부터 지시를 받는 방식은 두 가지 요인을 지닌다. 첫째는 그 지시에 대해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지적인 빛이고, 둘째는 그 지시에 대한 진술이다. 예언자에게 부여된 계시의 정도는 예언자가 지적인 빛과 진술을 얼마만큼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엄밀한 의미로서의 계시는 예언자가 지적인 빛과 새로운 사상의 진술, 둘 다 받을 때 생겨난다(예를 들면 구약 예언 자의 신탁 : 예레 28, 16-17). 광의의 계시는 요셉이 파라 오의 꿈을 해석하는 빛을 받았듯이 예언자가 빛만 받는 경우이다.
예언은 단지 계시만이 아니라 영감도 포함한다. 토마 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는 예언에 대해 베드로 롬바르두스(Petrus Lombardus, 1095~1160)의
정의를 인용했다. "예언은 신적인 영감이거나 불변의 진 리를 가지고 어떤 문제의 핵심을 공포하는 계시이다" (Sum. Theo. Ⅱ-Ⅱ , q. 171, a. 6). 이 정의에서 보면 계시와 영감은 상보적인 관념이다. 계시는 지적인 빛과 진술을 통해 신적 진리를 인식하는 데 관계되며, 영감은 성령의 움직임에 의해 초자연적 수준으로 마음이 고양됨을 의미 한다. 이렇듯 토마스는 진리에 대한 사변적이고 추상적 인 그리스 전통으로 예언을 보았다.
유대 전통에서 드러나는 예언적 계시와 영감은 더 광 의적이다. 성서에서의 계시는 창조주와 구세주로서, 진 리와 생명이신 하느님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현시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탁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이나 "들음" 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당 신 백성들에게 보이도록 만드시는 역사적 사건의 다양한 현시를 통해 일어난다. 예언자의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계시는 성령의 초자연적 빛에 의해 불러일으켜진 사색적 지식의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영감은 예언자가 이런 계 시된 진리를 전달함에 관여할 때 예언자의 모든 실질적 활동을 이끈다. 이 영감은 또한 예언자의 판단을 밝게 해 준다.
신약의 예언의 카리스마는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이 공 유하는 것이다. 세례받은 모든 비가톨릭인들, 심지어 하 느님을 향한 비그리스도인들조차도 어느 정도는 여기에 동참한다. 예언자 개인의 영감과 계시는 공동체적 혹은 교회적 정황을 지닌다. 물론 이들의 예언이 공동체 안의 일반 계시와 영감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지만, 예언자들은 하느님 백성들의 공통적인 이해와 태도와 욕구를 대변하는 대변인으로서 그들의 카 리스마를 누린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 작용 하는 자발적 카리스마는 예언적이다. 이런 카리스마는 비록 중대한 갈등을 대가로 치를 수도 있지만, 교회의 질 서 안에 남아 있으면 그것은 참된 하나의 예언직 수행이 다. 교회 내의 카리스마적 예언은, 예수의 메시지가 모든 변화하는 시대에 새롭게 또 적절하게 실제적인 것이 되 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교계 조직의 역할은 신앙을 보호하고 보존하며 예언적 영을 식별하는 데 있다. 교계 제도는 이 식별의 은총을 지니는 한 결코 그 영을 꺼 버려서는 안된다. 하느님 백 성의 제안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바로 교계 제도의 의 무이다. 교회는 카리스마적이고 제도적이나(에페 2, 20), 어느 한 면을 과장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 이다. 예언의 영이 교계 제도와 공동체 내에서 그 자체를 조화롭게 드러내는 데에는 상호 이해와 절제가 필요하다 (1고린 14, 33). 교계 제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 고 그리스도의 권위로 가르침으로써 그리스도의 직무를 지속한다. 평신도의 예언직은 세상에 그리스도를 사회적 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그들의 살아 있는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일상 삶에서 특별한 힘을 갖는다. 이런 목적을 위 해 하느님은 그들에게 신앙을 이해시켜 주셨고, 말의 능 력을 주신다(사도 2, 17-18).
예언직은 만인과 만물의 구원을 위한 공식적 계시를
주창하고, 그것을 당 시대의 구체적인 삶에 연관되게 만 드는 직무이다. 이 임무를 완성하기 위하여 모든 예언직 수행자는 계시된 진리를 더욱 완전하게 이해해야 하고, 지혜의 은총을 갈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예언직]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그리스 도의 중개 역할은 우선 그의 예언직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예수는 하느님에 대하여 무슨 말씀들을 하셨는 가? 예수가 하느님에 대하여 새로운 계시를 전한 것은 거의 없다. 구약성서의 내용을 거의 답습한 인상을 줄 뿐 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예언직에 대해서는 예언직의 내 용보다 예언직의 원인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는 자신을 하느님의 계시자라고 소개하기보다 자 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소개한다. 그러므로 예수가 전한 하느님에 대한 특별한 계시의 핵심은 부자 관계에 있다. 그래서 하느님에 대한 예수의 계시는 유대교로부터 평가 받지 못한 채 그 특징은 소멸되고 말았다. 오랫동안 신학 자들까지도 관계보다는 본성, 즉 신성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삼위 일체에 관한 교리는 미개발 상태에 놓여 있 었다. 19세기의 종교 합리화 작업의 영향을 받은 프로테 스탄트 신학자들은 이 부자 관계를 상징으로 알아들었 다. 즉 그들은 하느님을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다운 하느
님으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하느님을 당 신의 아버지로 계시해 주었다. 이 계시는 예수의 자의식 의 결과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자의식은 성부와의 위 격적인 일치의 결과이다. 말씀은 유일한 주체로서 당신 인간성을 통해서도 자기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의식한 다. 그렇기에 예수는 인간들을 위한 하느님의 '초상' (Icon)이다. 그 '초상' 은 하느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시고 자 하는 모든 일을 해준다. 이제 우리가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를 그 '초상' 에게 드릴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그 '초상' 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이시다.
그리스도의 예언직은 삼위인 하느님의 위격적인 일치 에서 시작되었기에 영원토록 지속된다. 따라서 부활한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예언직을 행사한다. 나아가 우리가 "그때에 가서는 하느님을 계시는 그대로 뵈오리 라"(1고린 13, 12 ; 1요한 3, 2 ; 교회 48항)는 사실을 잊어 서는 안된다. 그때에는 신앙이 필요 없겠지만 중개자는 필요할 것이다. 그때에 가도 인간은 하느님이 아니기 때 문에, 즉 우리의 인성이 신성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 문에 한 '위격' (位格, Persona) 안에 신성과 인성을 갖고 계신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을 알 수는 없다. 따라서 예수 는 당신의 인간성을 통해서 우리를 하느님의 신비에 참 여시킨다. 결국 지복직관은 그리스도 예언직의 결과이 다.
[교회의 예언직] 예언직의 당위성 : 신앙은 사색이나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들음에서 생긴다. 즉 전해 주는 사 람이 있어야 형성될 수 있다. 사도 바오로는 "들어 보지 도 않고 어떻게 믿으며,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는가"(로마 10, 14) 하면서 교회의 첫째 임무가 복음을 설교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설교함으로써 세상의 복음화 를 시작한다. 그래서 "주교들의 의무 중에 복음을 설교 하는 의무가 첫째이다" (교회 25항). 자연히 주교의 협력 자인 사제의 첫 의무도 역시 하느님의 복음을 모든 사람 들에게 전하는 것이다(사제 4항). <교회 헌장>(Lumen Gentium) 12항은 그리스도의 예언직을 전제로 하면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그리스도의 예언직에도 참여한 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이 신앙과 사랑의 생활 로서 그리스도께 대한 증거를 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예 언직에 참여한다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따라서 모든 신 자는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하여 구원의 메시지를 세 상에 선포하고, 삶을 통하여 그 메시지가 진리임을 증거 하는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예언직의 본질 : 예수는 공생활 시초에 자신의 임무를 묘사할 때 기쁜 소식의 선포로 시작하였다. "주님의 영 이 내게 내리셨으니, 과연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 도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으니,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는 해방을, 소경들에게는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들을 풀어 보내고 주님의 은혜 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로다" (루가 4, 18-19).
이 복음 구절은 이사야서 61장 1-2절을 인용하고 있 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 주님의 복수의 날
을 선포하기 위하여"라는 말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복 수하는 하느님은 구약 시대 예언적 신탁이 좋아하는 주 제거리였다. 이 점은 세례자 요한에 의해서도 명백히 드 러난다. 그런데 예수는 이 말을 빠뜨리고 구원적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예언직 수행이 자유의 성취를 겨 냥한, 더욱 광범위한 노력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예언적 질타와 비판의 지향점은 언 제나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에 맞춰져 있어야 한다. 다 시 말하면, 오늘날 사목자들의 비판과 질타는 항상 종말 론적 기쁨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 느님의 섭리 안에서의 궁극적인 기쁨을 전하는 것이 예 언직 수행의 본질이다.
성령과 예언직 :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영을 받 아 하느님의 뜻을 대변하던 역할이 이제 그리스도를 통 해서 교회에 주어졌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내릴 성령 의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뿐 아니라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들이 될 것입니다" (사도 1, 8)라는 말씀대로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서 그리 스도를 증언하였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영으로 예언한 것처럼 신약의 백성도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한다(마태 3, 11 ; 마르 1, 8 ; 루가 3, 16).
그리스도의 예언자로서의 임무는 이와 같이 성령과 밀 접히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신약의 예언직은 예언자로 서의 그리스도에 연결됨과 동시에 성령과도 연결되어 있 다. 하느님 백성은 그리스도께서 보내 주신 성령에 참여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성령의 임하심으로 교회의 예언직은 그리스도 예언직 의 연장이 된다. "진리의 성령, 그분이 오시면 여러분을 모든 진리 안에 인도하실 것" (요한 16, 13)이고, "모든 것 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고···생각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요한 14, 26). 진리의 성령은 교회가 진리를 믿거나 가르치는 데 있어서 오류가 없도록 보호한다. "그리스도께서 부어 주신 성령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진실하셔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요한 2, 20. 27). 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 서 교회는 신앙의 유산을 잘 간직할 수 있으며(2디모 1, 14), 오류 없이 진리를 선포할 수 있다(1고린 12, 3).
이런 성령과 교회와의 관계를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는 다음과 같이 인간의 영혼과 육신 의 관계에 비겨 설명하였다. "영혼은 육신의 각 지체에 생명을 주고 각 지체의 기능을 준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성령의 관계는 육체에 대한 영혼의 관계와 같다. ··그런데 육체에서 떨어져 나간 지체에 영혼이 없 는 것과 같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지체에 성령은 계시 지 않는다"(Augustinus, Sermo 267, 4, 《PL》 38, 1231). 그래 서 교회 전통은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 성령의 위치 를 인체에 비유하여 교회의 혼이라 부른다. 성령이 교회 의 혼이라 함은 교회가 성령의 힘에 의하여 영성적 생명 체로 존재하고 활동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교회 예언 직의 합당한 수행을 위해서 모든 교회 구성원들은 성령 의 소리를 듣고 성령께 의탁하며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
특수 예언직과 일반 예언직 : 교회 내의 모든 구성원은 신앙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점에서 동등하다. 그러나 신앙과 소명과 희망 안에서 공통되면서도 동시에 서로 구별되는 점도 있다. 즉 각기 특수한 임무가 주어지기도 한다는 뜻이다. 이 여러 가지 임무가 민주적으로 아래에 서부터, 즉 신자들로부터 기능적으로 나뉘어 맡겨지는 것은 아니다. 외적으로 볼 때는 그런 인상을 충분히 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일곱 봉사자의 선출(사도 6, 5), 바 오로와 바르나바의 파견(사도 13, 1-4), 원로들의 안수에 의한 취임(1디모 4, 14) 등이 그런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 임무는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 '성령으로 인하여' 인정되고 집행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특히 사 도 행전은 교회 본연의 지도가 하느님으로부터 오며 영 으로 인하여 모든 일이 집행된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 고 있다. 이에 대해 바오로는 특수 임무란 교회를 위하여 교회에 주어진 은총의 선물, 성령의 선물, 카리스마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교회 안에는 동등한 소명 안에 공통되는 임무도 있고, 특수한 임무의 다양한 구별도 있 다. 일반적인 것이든, 특수한 것이든 둘 다 하느님과 영 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이 특수 임무를 모두 직무라고 표 현할 수 있다. 직무의 이해와 실행을 좀더 확실히 표현하 자면 '봉사' 라고 함이 더 적절하다.
사도 바오로는 서간에서 일반적 예언직 외에 구약의 예언자와 비슷한 특수한 예언자들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 다. 신약성서 중에서 후기에 쓰여진 것을 보면 교회는 사 도와 예언자를 기초로 세워졌다고 되어 있다. 요한 묵시 록은 사도만을 언급하는데(묵시 21, 14), 에페소서는 사 도와 예언자를 꼽고 있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그리스도 예수 자신을 모퉁잇돌로 하여 세워졌습니 다"(에페 2, 20 : 참조 : 3, 5). 여기서 지적된 예언자는 구 약의 예언자가 아니고 신약의 예언자임이 명백하다. 그 런데 신약은 초기 교회 예언자들의 체험에 대해서는 거 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구약 예언자들의 역할인 훈계와 예언을 실행했기에 신약의 예언자 개념은 구약의 것을 그대로 지닌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신약의 예언자들은 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사도 다음가는 위치에 올랐다(1고린 12, 28). 카리스마적 여러 지역 교회들에는 그들의 예언자가 있었고(사도 13, 1), 또 한 떠돌아다니는 예언자도 있었다(사도 11, 29). 초기 교 회 때 예언자들이 빈번히 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언 직은 누가 임명하거나 선출하는 정규 공직은 아니었다. 그것은 영에 사로잡힌 데서 오는 카리스마, 무상의 선물 이었다(1고린 14, 1-5).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얻어 낼 수 없는, 현재의 역사를 규정하고 방향 잡아 줄 미래 에 대한 지식은 이례적인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신비와 나아가 미래 를 알고 있었기에 사도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는 데" 봉 사했다. "이 신비가 (이전의)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들에 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영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에페 3, 5). 그래서 그들은 신자들의 성실성을 점검하였고(1고린
14, 24-25), 신자들을 위로하고 훈계도 할 수 있었다(사 도 15, 32). 신약 예언자들의 업적에 대한 구체적 예는 하 느님의 인도하에서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이방인들에게 파견한 그들의 주도권 행사이다(사도 13, 1-3) .
사도들과 바오로를 계시를 받았기에 교회의 기초가 되 었다. 사도들은 계시의 완전한 수령자이지만(요한 16, 12-15 ; 에페 3, 3-4) 예언자들은 계시의 어디까지를 수령 하고 이해하였는지 판단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초기 교회가 사도직과 예언직과 교사직을 특히 중요시한 이유는 그들이 하느님의 계시를 선포하거나 가르침으로 써 교회를 설립하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1고린 14, 1-25).
초기 교회의 예언직은 지도 기관과 함께 오래 계속되 다가 2세기 중엽에 이르러 신뢰성을 잃으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초기 교회 때 계속 밀려드는 거짓 교리를 배격하 고 사도 전래의 교리를 보존해야 할 절박한 요청으로 주 교 직무는 복음 선포와 교리를 위한 직무로 더욱 각광을 받았지만, 특수 예언직은 쇠퇴했다. 또한 개인에게 일어 나는 계시는 자연히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사도 나 교사의 교의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거짓 예언자는 초기 교회의 골칫거리였다(마르 13, 22 ; 마태 7, 15. 22). 그들 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의 태도(마태 7, 19)와 그 들의 사심 없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디다케》 11, 5- 12). 어떤 예언이라도 교회의 정통 교리에 입각하여 교 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1고린 14, 4. 12). 결국 특수 예언직은 교회의 일반 예언직에 종속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예언의 은사를, 이상한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성령의 은혜보다 높이 평가하면서(1고린 14, 1-5) 교회에서 예언의 직무가 소홀히 취급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1데살 5, 20). 지상의 교회는 나그네요, 완전하지 못 하다.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 자체가 아니며, 다만 하느님 나라의 길을 준비하는 처지에 있다. 따라서 교회는 한꺼 번에 하느님의 진리를 장악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 까닭 에 교회는 언제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예언의 진위 기준 : 예언자의 예언이 과연 하느님의 말씀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에 의하여 평가 되어야 한다(1데살 5, 19-20). 교회는 이 기준이 교회의 유산에 충실한 신앙이라 한다.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누 구도 정통 신앙을 고백할 수 없으며, 정통 신앙에 부합하 는 예언이 아니면 결코 하느님의 말씀일 수 없다. 그러므 로 교회의 모든 예언직 수행자는 교회의 판단에 순응해 야 한다.
예언직 수행의 자세 : 예언자들이 실패한 곳에서 예수 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가 그의 양 떼를 알고 있 는 목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양 떼로 하여금 편안 함을 느끼게 만든다. 양 떼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 다. "그가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라갑니다. 그의 목 소리를 알기 때문입니다"(요한 10, 4). 그리고 예수는 "내 가 온 것은 그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어진 목자입니다. 어진 목자는 양들을 위
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습니다"(요한 10, 10-11)라고 하였 다. 이것은 예언직 수행이 희생과 봉사를 통해서만 효력 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의 진리는 생활을 인도하 는 진리이기 때문에 이론의 전개와 함께 실천함으로써 이론을 증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구약의 예언자들이 나 그리스도가 설교뿐 아니라 그들의 업적과 생활로 하 느님의 구원 의지를 선포한 것처럼, 현재의 하느님 백성 도 말씀과 실천 생활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해야 한다.
교회의 예언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하느님의 백성은 기 도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의 말씀과 그분의 인격적 사랑에 대해 성실해질 수 있다. 둘째, 예언직 수행자는 그 시대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 이웃을 이 해해야 한다. 사람들이 쉽게 알아듣는 것이 무엇인지 찾 아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예수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시 대의 징표를 읽어야 함(마태 16, 2-4)을 촉구하고, 율법 학자들의 독선적 태도를 힐난하고(루가 11, 52), 종교적 위선을 책망하고(마태 15, 7), 성전을 정화하고(마르 11, 15-19 ; 루가 19, 45-48 ; 마태 21, 12-19), 물질적 성전이 허물어지고 완전한 영신적 경신례가 이루어지도록 가르 친다.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파견된 사람들 의 공동체, 듣고 순종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성직자 도 가르치기 전에 먼저 듣는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며, 평신도 또한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교회의 일 원이 되어야 한다. (→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운동 ; 교 회 ; 예수 그리스도 ; 예언 ; 평신도)
※ 참고문헌  K. Rahner, Prophetism, 《SM》 3, pp. 110~113/ D.J. McCarthy, Prophecy, 《NCE》 11,p. 861/ R.X. Redmond, Prophecy, 《NCE》 11, pp. 861~866/ 정하권, 《교회론》 I 신학 총서 19, 분도출판사, 1981, pp. 116~120/ -, <교회의 예언직>, 《신학 전망》 51, 광주 가톨 릭대학 전망 편집부, 1980, pp. 111~120/ P. Beauchamp, 예언자,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 전망 편집부, 1984, pp. 425~431/ R. Fisichella, Profezia, 《DTE》 pp. 833~835. [徐炅敦]
II . 교회법에서의 예언직
그리스도교 신자의 세 가지 직무 개념은 초대 교회의 교부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지만, 중세기 교회에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세 가지 직무 개념을 그리스도의 사명뿐만 아니라 교 회의 사명을 묘사하는 신학적 개념으로 채용하였다. 1983년 교회법전도 이 세 가지 직무 개념에 따라서 교 회의 교도 직무(예언직)는 교회법 제3권에서 다루고, 교 회의 성화 직무(사제직)는 제4권에서 다루며, 교회의 통 치 직무(왕직)는 교회법전 전체에서 다루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어 "사제 이고 예언자이며 왕" 으로서 세우신 분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기름 부음을 받아 그분 안에서 '그리스도들' 곧 '기름 부 음받은 이들' 이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세 례로 그리스도께 합체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성 되고, 또한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 직에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하느님이 교회에 이 세상에서 성취하도록 맡긴 사명을 각자의 고유한 조 건에 따라 실행하도록 소명받은 자들이다"(교회법 204조 1항 ; 교회 31항 참조)
[그리스도 신자의 예언직]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기의 고유한 조건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살며(교회법 210 조), 하느님의 구원의 소식이 전 인류에게 전파되도록 노 력하여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211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예언직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하 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그리스도의 예언직에도 참여한다. 특히 신앙과 사랑의 생활로써 그리스도께 대한 산 증거 를 널리 전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입술의 열매를 찬 미의 제물 삼아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그 예언직에 참 여한다. 성령의 도유를 받는 신자들의 총체는 믿음에 있 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니, '주교로부터 마지막 평신 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같은 견해를 표시할 때에 백성 전체의 신앙의 초자연적 감성 에서 이 특성이 드러난다. 과연 하느님의 백성은 진리의 성령께서 일으켜 주시고 지탱해 주시는 이 신앙심으로 성스러운 교도직의 지도를 받으며, 탈선함이 없이, 신자 들에게 일찍이 전해진 신앙에 충실하여, 바른 판단으로 그 신앙에 더욱 깊어지며 더욱 충만히 그 신앙을 실생활 에 적응시키는 것이다"(교회 12항). 본래 사도직은 그리 스도의 파견(1고린 1, 1)과 그 참여를 통하여 수행되며, 교계적 사도직은 서품과 파견으로 이루어지고, 공통 사 도직은 세례와 견진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교회 안에 는 여러 가지 직무가 있지만, 그 사명은 오직 하나뿐이 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주님의 이름과 권한으로 가르치고, 성화하며, 다스리는 임무를 맡기셨다. 평신도도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며 교회와 세속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 전체의 사 명을 자기 나름대로 분담하고 있다(평신도 2항). 그리고 "이 양편(성직자와 평신도)의 신자들 중····복·적 권고의 선서로써 특별한 양식으로 하느님께 축성되고 교회의 구 원 사명에 이바지하는 이들"(교회법 207조 2항)도 있다.
1983년 교회법전은 공의회 문헌을 바탕으로 하여, 교 회의 교도 임무, 즉 예언직을 제1장에서는 '하느님 말씀 의 교역' 에 관한 것으로서 '하느님 말씀의 설교 (762~ 772조)와 교리 교육(773~780조)을 열거하고 있고, 제2 장과 제3장에서는 각각 교회의 선교 활동과 가톨릭 교육 을 규정하고 있다. 교회의 예언직에 대한 기본적 내용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면 첫째는 복음 선포에 관한 천부적 인 의무와 권리이다. "주 그리스도께서 신앙의 위탁을 교회에 맡기시어 교회로 하여금 성령의 도우심으로 계시 된 진리를 거룩하게 보전하고 더 깊이 연구하며 성실히 선포하고 해설하도록 하셨기에, 교회는 자기에게 고유한 사회 홍보 수단도 활용하면서 어떠한 인간 권력에서도
독립하여 온 인류에게 복음을 전파할 천부적 의무와 권 리가 있다" (747조 1항). 또한 교회의 예언직은 삶의 증거 와 사회 질서 복음화에 관한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교 회는 윤리 원칙들을 사회 질서에 관한 것까지도 언제나 어디서나 선포하고, 인간의 기본권이나 영혼들의 구원에 요구되는 한도만큼 어떠한 인간 사항들에 대하여서도 판 단을 내릴 소임이 있다"(747조 2항)
[성직자의 예언직] 주교의 예언직 : 주교들은 사도들 의 지위를 계승하여 교리의 스승들이요 거룩한 예배의 사제들이며, 통치의 교역자들이 되도록 교회 안에 목자 로 세워졌다(375조 1항). 주교는 주교로 축성됨으로써 성 화하는 임무와 함께 가르치는 임무와 다스리는 임무를 받는다(375조 2항). "주교들은 새로운 제자들을 그리스 도께로 인도하는 신앙의 전달자이며" 사도들로부터 전해 오는 신앙의 "진정한 스승, 즉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 받는 스승" (교회 25항)이다. 스승으로서의 주교들의 첫째 임무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마르 16, 15)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사제 서품 예식서》 4항). 교구장은 직접 자주 설교함으로써 믿어야 하고 도덕에 적응시켜야 할 신앙의 진리들을 신자들에게 제시하고 설 명하여야 한다. 또 말씀의 교역 특히 설교와 교리 교육에 관한 교회법의 규정들이 성실히 준수되어 그리스도교 교 리 전체가 모든 이에게 전수되도록 힘써야 한다. 이를 위 해 그들의 협력자인 사제들의 도움을 받는다.
신부와 부제의 예언직 : "탁덕들은 주교들의 협력자들 이므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고유한 소임이 다. 특히 본당 사목구 주임들 및 그 밖의 사목이 위탁된 이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백성에 대하여 이 의무가 있다. 부제들도 주교 및 그의 사제단과의 친교 안에서 하느님 의 백성을 위한 말씀의 교역에 봉사할 소임이 있다" (757 조). 따라서 거룩한 교역자들은 설교의 임무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며(762조), 강론은 설교의 여러 형식 중에서 탁 월한 것으로 전례의 한 부분이며 신부나 부제에게 유보 된다(767조). 그리고 영혼의 목자들의 고유하고 중요한 직무는 신자들의 신앙이 교리 학습과 그리스도교인 생활 체험을 통하여 활기 차고 뚜렷하며 생산적인 것이 되도 록 교리 교육에 힘써야 한다(773조).
또한 교회 전체가 본성상 선교적이고, 복음 전파 사업 은 하느님 백성의 기본적 직무인 만큼 신부들은 "온 세 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시오"(마르 16, 15)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행하며, 하느님의 백성을 증가 시킨다. 신부의 예언자적 생활과 활동은 예언자인 그리 스도의 삶과 활동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깊이, 그리고 철저하게 완전히 물들어 사목 생활 에서 새로운 방법을 구현할 수 있는 신부들이 필요하고 (<현대의 사제 양성> 18항), 신부들이야말로 제3 천년기의 새로운 복음화에 대해 일차적 책임을 지고 있다. 따라서 신부는 새로운 복음화를 수행하려는 전체 교회의 노력에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연루되어 있다. "믿음은 들음에서 비롯하고 전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로
마 10, 17)임을 명심하는 신부들은 자신의 직무에 있어서 으뜸가는 이 사명에 임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사실 신부들은 신앙의 증인일 뿐 아니라 신앙의 사절이 며 전달자이기도 하다" (사제 4항). 그러므로 신부의 예언 자적 직무는 신부로 하여금 가톨릭 신앙을 권위 있게 표 현하고 교회의 신앙을 공식적으로 증거할 수 있게 해주 므로, 신부는 신적 메시지의 내용을 변조하거나 축소하 거나 왜곡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도록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 45항).
교회의 목자들은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교회의 고유한 권리를 사용하여 사회 홍보 매체들을 활용하도록 힘써야 한다(교회법 822조). 그리고 신앙과 도덕의 진리 가 온전히 보전되도록 저술이나 홍보 매체들의 사용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이나 도덕에 해독을 끼치지 못 하도록 감독해야 한다. 또한 신앙이나 도덕을 다루는 그 리스도교 신자들이 출판할 저술은 목자들의 판단을 받도 록 요구되며, 아울러 올바른 신앙이나 선량한 도덕을 해 치는 저술을 배척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823조)
[평신도의 예언직] "그리스도께서는··당신의 예언직 을 교계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을 통해서 수행하신다. 그 러므로 평신도들을 증인으로 삼으시어 그들에게 신앙에 대한 감성과 말씀의 은총을 주신다" (교회 35항). 그리스 도의 예언자적 사명에 대한 평신도의 참여는 세례의 도 유에서 그 근원을 찾고, 견진성사로 더욱 발전하고 성체 성사 안에서 실현되고 역동적으로 유지된다.
평신도들의 예언직은 먼저 생활의 증거로 이루어진다 (<교회의 선교 사명> 42항). "복음은 모든 것에 앞서 증거로 서 선포되어야 한다"(<현대의 복음 선교> 21항). "생활의 증거와 말씀의 힘으로 성부의 나라를 선포하신"(교회 35 항) 그리스도를 따라 평신도들은 신앙으로 복음을 받아 들이고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선포하며, 주저하지 않고 용기 있게 죄악의 정체를 밝히고 죄악을 고발할 수 있는 역량과 책임을 부여받는다. "위대한 예언자" (루가 7. 16) 그리스도께 결합되어 성령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된 평신도들은 "믿음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는" (교회 12항) 교회 신앙의 초자연적 감성에 참여
하며, 또한 말씀의 은총(사도 2, 17-18 : 묵시 19, 10)에 참여한다. 평신도들은 또한 가정과 사회의 일상 생활에 서 복음의 힘과 그 새로움을 빛내도록 부름받고 있으며, "세속 생활 구조에 있어서도" (교회 35항) 자신의 희망과 미래의 영광을 현 시대의 반대 속에서도 인내로이 용기 있게 표명하도록 부름받고 있다(〈평신도 그리스도인> 14 항). 그러므로 평신도 "각자는 자기의 고유한 조건에 따 라 현세 사물의 질서를 복음 정신으로 적시고 완성시켜 특히 현세 사물을 처리하거나 세속 임무를 집행하는 중 에 그리스도를 증거할 특별한 의무도 있다"(교회법 225조 2항).
이런 사도직은 생활의 증거만으로는 부족하다(<현대의 복음 선교> 22항). 참된 사도는 미신자들에게나 신자들에 게 말로써 그리스도를 전할 기회를 찾는다(평신도 6항 : 선교 15항). 즉 평신도들은 그들의 예언자적 사명을 인류 의 내적 쇄신과 문화의 복음화를 위해 인류의 희망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여야 한다. 평신도들이 하는 "이러한 복음화 활동은 세속의 일반 조건하에서 수행된 다는 점에서 독특한 특징과 특수한 효과를 얻게 되는 것 이다"(교회 35항). 즉 "평신도들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 들처럼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하느님께로부터 사도직에 로 위임되느니 만큼 개인으로서나 단체의 회원으로서나 하느님 구원의 소식이 온 세상 어디서나 모든 사람들한 테 인식되고 수용되도록 노력할 전반적 의무와 권리가 있다. 이 의무는 사람들이 그들 평신도들을 통하여서만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인식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더 욱 절실하다"(교회법 225조 1항)
평신도들 중에서 자질과 역량을 갖춘 사람들은 법 규 정에 따라 말씀의 교역을 집행하고(230조 3항), 교리 교 육(774조, 776조, 780조)과 거룩한 학문 교육(229조), 사 회 홍보 매체(823조 1항)에 협력할 수 있다. 또한 "신자 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학식과 능력과 덕망에 따라 교 회의 선익에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자기의 견해를 거룩 한 목자들에게 표시하며 또한 이것을 그 밖의 그리스도 교 신자들에게도 알릴 권리와 때로는 의무까지도 있다. 다만 신앙과 도덕의 보전과 목자들에게 대한 존경 및 공 익과 인간 품위에 유의하여야 한다" (212조 3항).
[봉헌 생활의 예언직] 봉헌 생활은 가난 · 정결 · 순명 의 복음적 권고를 선서하고 실천함으로써 하느님의 영광 과 교회의 건설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기꺼이 하느님께 봉헌하는 이들(수도회, 은수자, 동정녀, 재속회)로 서 봉헌 생활회 회원들은 하느님께 봉헌됨으로써 특별한 양식으로 복음을 증거하고(758조), 선교 활동에 특별히 열중할 의무가 있다(783조)
교회의 역사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느님 께 특별히 봉헌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령의 특별 한 은사로써 모든 사람들, 심지어 교회의 목자들에게까 지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며 성실하게 예언직을 수행 하였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가슴속에서 하느님의 거룩하 심에 대한 불타는 열망을 느꼈고, 교부들의 전통은 용감 한 예언자요 하느님의 친구였던 엘리야에게서 봉헌된 사
람들의 수도 생활의 전형을 발견하였다.
봉헌 생활의 예언자적 성격은 성령께서 하느님의 모든 백성에게 나누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직무에 동 참하는 특별한 형태를 취한다. 봉헌 생활 자체에 속하는 예언자적 차원은 바로 그리스도의 추종과 봉헌 생활의 특유한 사명에 수반되는 헌신의 근본적 성격에서 기인한 다. 봉헌 생활의 예언자적 증거는 하느님의 뜻, 자기 봉 헌, 교회 안의 신뢰에 찬 친교, 영적 식별과 진리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꾸준한 열정으로 추구하도록 요구한다. 예언자적 증거는 또한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모든 것 을 고발하고,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며, 복음을 역사에 적용시키는 새로운 방법들을 개발하는 데서 나타 난다(<봉헌 생활> 84항). 경계선 없는 형제애를 깊이 갈망 하는 사회 안에서 수도 공동체 생활은 그 자체로써 예언 자적 역할을 한다. 봉헌된 사람들은 자기 목숨까지도 걸 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예언자의 용기를 가지고 어디에서 나 진리를 증언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리고 예언은 선 포와 생활의 일치에서 특별한 설득력을 끌어내므로 봉헌 된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끊임없이 자신을 쇄신할 때, 교회와 세상 안에서 그들의 선교에 충실한 자 들이 된다(85항).
봉헌 생활의 예언자적 임무는 교회 자체에 제기되는 세 가지 주요 도전들에서 그 역할을 한다. 이 도전들은 새로운 형태를 띠지만 사실은 항상 같은 것으로서 정 결 · 청빈 · 순명의 복음 권고와 관련되어 있다(87항). 첫 째 도전은 향락 문화의 도전이다. 향락 문화는 성을 윤리 규범과 분리시키고, 소비 상품으로 여기며, 성적 본능에 대한 일종의 우상 숭배를 정당화시킨다. 봉헌 생활의 응 답은 무엇보다도 완전한 정결의 삶을 기쁘게 사는 것이 다. 하느님 사랑을 증거하는 봉헌 생활은 오늘의 세계에 조화, 자제, 진취성, 심리적 · 정신적 성숙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 구현한 정결의 모범을 제시하여야 한다(88항).
둘째 도전은 소유를 탐하는 물질주의의 도전이다. 이 러한 탐욕은 미약한 사람들의 요구와 고통을 못 본 척하 며, 자연 자원의 균형 유지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에 대한 봉헌 생활의 응답은 복음적 청빈 서원에서 찾 을 수 있으며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는데, 흔히 연 대성과 애덕 증진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로 표현된다(89 항). 사실 복음적 청빈의 근본적인 의미는, 인간의 진정 한 부요는 하느님이심을 증언하는 것으로서 금전에 대한 우상 숭배에 강력히 도전하는 것이다(90항).
셋째 도전은 그릇된 자유의 개념에서 온다. 그것은 인 간의 근본선인 자유를 진리와 윤리 규범과의 본질적인 관계를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이며, 자유의 남용에서 오 는 비정상적인 결과들은 개인과 민족들이 당하는 불의와 폭력이다. 이에 대한 효과적인 응답은 봉헌 생활을 특징 짓는 순명이다. 이 순명은 아주 단호한 방법으로 성부께 대한 그리스도의 순명을 거듭 제시하며, 이 신비를 출발 점으로 삼아 순명과 자유는 서로 모순되지 않음을 제시 한다. 봉헌된 사람들이 이 독특한 순명 서원을 통하여 천 명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신비이다. (- 사제, 교회법
에서의 ; 수도 생활 ; 수도자 ; 평신도)
※ 참고문헌  교황 바오로 6세, 이종흥 역,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강 대인 역,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9/ 교황 바오로 2세, 정하권 역,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한국천 주교중앙협의회, 199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윤민구 역,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후속 교황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 한국천주교중앙 협의회, 1993/ 교황청 성직자성, 최영철 역,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 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권고 <봉 헌 생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7. [宋悅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