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사람의 구원을 미리 정하였다는 견해. 프로 테스탄티즘의 주요 원리 중 하나.
인간의 궁극적인 운명은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느 님의 섭리 안에 있으며, 그 하느님의 행위는 인간의 자기 완성 행위에 선행한다는, 즉 인간의 자기 완성 내지는 구 원에 대한 신적 주도권을 전제하는 견해이다. 이는 하느 님의 인간 사랑에 대한 최고의 긍정이다. 유대교와 이슬 람교 등에서도 신의 예정에 대해 말하지만-이슬람교가 유대교에 비해 인간의 운명적 측면을 더 강조하는 경향 이 있지만, 인간의 행복 · 불행, 선 · 악 등 인류의 전 역 사를 신의 전적인 선택과 주권에 따르는 것으로 받아들 이기는 양쪽 다 마찬가지이다-예정설에 대한 논의가 가장 진지하고 격렬하게 이루어져 온 것은 그리스도교 안에서이다.
예정설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예정이란 하 느님의 자유로운 행위이고, 둘째, 하느님은 피조물들이 당신의 뜻 안에서 살아가도록 협력하며, 셋째, 하느님은 인간이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도록 이끌고 또한 그러한 삶을 이룬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 에 이르도록 정하고 이끔으로써만 인간은 그러한 구원에 실제로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 랑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 죄 때문에 속죄의 제물로 보내셨다 는 것입니다"(1요한 4, 10). 이러한 점에서 예정설은 신 론과 구원론의 핵심과도 연결되어 있다.
[성서적 근거] 구약성서에 의하면, 하느님은 모든 것 의 근원이다. 멸망이나 재앙까지도 야훼로부터 온다(아 모 3, 6 ; 이사 45, 7). 하느님은 태초부터 어떠한 일을 하 기로 정하고 사람을 통해 그것을 이룬다(이사 37, 26 ; 14, 24). 인간의 모든 일은 하느님이 결정함에서 온다(잠 언 16, 33). 야훼는 진행되어 가는 모든 것이 그렇게 벌어 지도록 정하였다(16, 4). 이러한 언급들이 예정설의 신학 적인 근거이다.
신약성서에는 "예정하다" (προορίζω)는 동사가 등장한 다. 특히 바오로에 의하면, "하느님의 심오하고 감추어 져 있던 지혜로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현 세 이전에 예정하신 것입니다"(1고린 2, 7). “그분께서는 미리 알아 (택하신) 이들을 당신 아드님 모습과 한 모양 이 되도록 예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드님이 많은 형제
들 중에서 맏아들로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로마 8, 29). "그분은 또한 당신 뜻의 그 호의로 예수 그리스 도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아들되는 자격을 얻 도록 예정하시어 사랑받는 그이 안에서 우리에게 선사하 신 당신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에페 1, 5-6). 요약하면, 예정이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형제적 관 계가 되도록 하려고 하느님이 당신의 오묘한 지혜로 현 세 이전부터 정한 행위인 것이다. 예정의 목적도 하느님 의 자녀가 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한마디로 말해 구원 으로의 예정이다. 바오로가 예정을 "호의"(에페 1, 9), "은총"(로마 11, 5 ; 에페 1, 5-7 ; 2, 5-7), "사랑"(1데살 1, 4 ; 2데살 2, 13 : 로마 11, 28 : 에페 1, 4) 등과 관련 지으 면서 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이것을 반영해 준다.
[신학적인 논쟁] 아우구스티노와 펠라지우스의 논쟁 : 하느님의 예정 사상은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 하느님께 있으며, 하느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신앙을 반영해 준다. 그러한 신앙의 눈으로 보면, 현재의 삶마저 하느님이 미리 그렇게 정해 놓은, 하느님의 선택 위에서 이루어진 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으로 인 해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가장 구체적이고 결정적으로 제기한 인물은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 430)이다.
아우구스티노 이전의 그리스 교부들에게 예정 개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자 유 의지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의 운명을 결 정론적으로 파악했던 그노시스주의에 대한 초기 교회의 투쟁을 반영해 준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는 모든 의지 적 결정에는 하느님의 은총이 선행하고, 인간은 그 은총 안에서만 자유롭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하느님의 은총 이 인간 구원의 선행 조건인 셈이다. 당연히 은총은 구원 의 은총이며, 예정도 기본적으로 구원으로의 예정이다. 원죄론에서 말하듯이, 인간은 구원되어야 할 상황 속에 처해 있으며, 하느님의 은총은 구원받지 못할 상황 속에 서도 구원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와 동 시대인인 펠라지우스(Pelagi- us, 354?~418)는 예정설이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든다며 비판하였다. 또 특정인에 대한 편애처럼 여겨지는 예정 설은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펠라지우스는 하느님의 선택보다는 인 간의 자유 의지와 책임을 강조하였다. 여느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의 선택에 의해 신적인 의지 를 성취시킬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그는 보았던 것이다. 당연히 인간 행위의 책임도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 있 다. 그는 아담의 죄가 유전된다는 견해를 비판하면서, 인 간에게는 어떤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것을 행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그에 의해 실현된다고 주장하 였다.
그렇지만 펠라지우스 역시 인간이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하느님의 은총에서 온다고 보았다. 이러한 은총 위에서 그렇게 하려는 의지가 발동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적으로 타락해 있는 인간의 구원은 하느
님으로부터 오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아우구스티노의 시 각과 인간의 자유 의지와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그 기초 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보는 펠라지우스의 시각은 근본적 으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우구스티노의 예정설 역시 인간의 자유 의지와 대립적인 차원이라기보다는 스 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구원의 소망을 품 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느님 안에서의 자유" 라는 표현에서,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의 안" 을 강조하였다면, 펠라지우스는 "자유"를 강조한 셈이다. 후대에 종교 개혁자들은 아우구스티노의 예정설을 명시적으로 드러냈다.
종교 개혁 시대의 논쟁 : 종교 개혁자들은 교회의 권위 에 반대해 하느님의 전권으로서의 선택 사상을 강조하였 고, 이것을 하느님의 예정 사상과 연결시켰다. 대표적으 로 루터(M. Luther, 1483~1546)는 인간의 구원이 전능한 하느님의 의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인 간이 지닌 어떤 것도 하느님에게서 구원을 가져올 수 있 는 것은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칼뱅(J.Calvin, 1509~1564) 에 의하면, 하느님의 영원한 선택은 시간 이전에, 세계의 기초 이전에 행해진 영원한 행위이다. 이 행위는 하느님 의 독자적이고 불변적인 행위로서, 인간의 구체적인 경 험 이전의 행위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의지를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그에 맞게 행동하려 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 한 행동의 가장 구체적인 증거가 신앙이다. 신앙은 그가 영원부터 하느님께 선택되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신앙 을 가진 이는 선택된 것이고, 선택된 이는 신앙에 따라 생활하게 된다. 결국 지상에서의 생활은 영원한 생명으 로 선택되었다는 확신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끝까지 거부하는 이는 어떻게 되는 가? 칼뱅에 의하면, 그에게는 선택의 은총이 없으며, 그 는 영원부터 하느님으로부터 거부된 자이다. 그래서 칼 뱅은 하느님의 예정을 구원과 저주의 이중적 측면으로 나누어 보았다. 이른바 '이중 예정' (double predestination) 이다. 하느님이 어떤 사람들은 구원으로, 어떤 이들은 저 주로 예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칼뱅을 계승한 베자(Theodore Beza, 1519~1605)를 비롯하여 그와 같은 의 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서 더욱 극단적으로 드러나면 서, 정죄(定罪)로 예정됨 안에서도 하느님의 영광이 드 러난다고 보았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예정 및 개별적 선 택 사상에 대해 네덜란드의 개혁 신학자 아르미니우스 (Jacobus Arminius, 1560~1609)를 계승한 아르미니우스주 의(Amminianism)는, 하느님은 믿으려는 사람들을 선택한 다는 조건적인 예정설과 보편적인 구원설을 내세웠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예정설이 부정적이고 염세적이 라는 비판에 대해 하느님의 예정이 구원 획득을 위한 투 쟁과 그에 대한 지속적인 염려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줄 가르침이라는 입장을 펼쳤다. 구원은 하느님의 손 에 달려 있기 때문에 개개인은 걱정할 것 없이 하느님만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입장 :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본격 적으로 제기된 예정설은 종교 개혁자들을 통해 프로테스
탄티즘의 주요 원리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토마 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 1274)를 통해 가 톨릭 교회 안에서 프로테스탄티즘과는 다른 각도로 반영 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 지와 예정설을 연결 짓고,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사물의 선의 원인이 됨을 강조하였다(Amor Dei est causa bonitatis rerum)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는 예정설을 반대하 는 펠라지우스에 다시 반대하여 원죄설과 은총론을 강조 하였고, 예정설을 극단적으로 계승한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해서는 인간에게 악을 거스르고 선을 택할 수 있는 자 유 의지가 있음을 천명하였다. 또한 당시 은총과 자유의 일치를 강조한 극단적인 몰리나주의자들도 등장하였지 만, 이와는 달리 수아레스(F. Suárez, 1548~1617)와 벨라르 미노(R.F.R. Bellarminus, 1542~1621)와 대부분의 예수회 신 학자들은, 구원의 과정 속에서 인간의 공적이나 책임에 앞선 하느님 예정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들 은 인간의 자발적인 동의와 모든 인간이 구원되기를 바 라는 신적 의지를 간과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은총 의 우위성을 본 아우구스티노보다는 은총과 본성의 일치 를 논리적으로 전개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사회학적 · 신학적 반영] 사회학자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앞서 말한 칼뱅의 입장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정신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하였다. 구원에 대한 예정 여부는 예정된 자의 건전 한 지상 생활로써만 입증될 수 있는데, 베버가 분석한 칼 뱅의 입장에 의하면, 지상 생활 가운데 진지한 노동이야 말로 구원으로 예정되었음을 뜻하는 불가결한 표시이다. 노동 자체가 구원의 수단은 아니지만, 진지한 노동을 통 해 비구원의 공포를 극복하고, 그러한 노동으로 인해 자 본주의 정신이 발흥하는 기초가 닦였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칼뱅의 예정설은 오랫동안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원리로 작용해 왔다. 종교 개혁의 정신을 이어 가 려는 바르트(K. Barth, 1886~1968)는 예정 주체의 문제와 이중 예정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 는 영원부터 하느님과 함께 있다가 인간의 몸을 입은 말 씀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예정의 주체이자 대 상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예정의 주체라는 점에서, 하느 님의 예수 그리스도 선택은 모든 인간의 구원, 생명의 선 택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택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 되는 것이라고 바르트는 말한다(에페 1, 4 참조).
동시에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함으로써 자신 에 대해서는 부정, 즉 죽음을 결정하였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된 자이면서 버림받은 자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에 대한 하느님 진노의 구체 화이다. 그래서 죄를 거부하는 하느님에 의해 거부되었 다. 여기서 하느님의 선택에 담긴 정죄적 측면이 드러난 다. 하느님의 이중적 예정이 성취된 것이다. 이것이 바르 트가 칼뱅을 비판하며 재해석한 이중 예정이다. 칼뱅의
이중 예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수단으로 하여 두 종류의 인간 집단에 대해 일어난 것이라면, 바르트는 하느님의 예정을 철저하게 그리스도론적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예 수 그리스도를 수단처럼 파악했던 칼뱅은 자신도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과 분리시켜 놓고 말았던 것이 다. 그러나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적으로 계 시되었기에 하느님의 예수 그리스도 선택은 결국 모든 이의 구원으로의 선택이라는 그리스도론적 사고 방식은 20세기 신학, 특히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기초를 다졌으 며, 그 핵심에 예정론이 놓여 있는 것이다. (→ 구원 ; 루 터, 마르틴 ; 몰리나주의 ; 벨라르미노, 로베르토 프란체 스코 로물로 ; 수아레스, 프란시스코 ; 아우구스티노, 히 포의 ; 은총 ; 장로교 ; 칼뱅, 장 ; 펠라지우스주의 ; 프 로테스탄티즘)
※ 참고문헌 J.N.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London, Adam & Charles Black, 1965, pp. 353~3721 P. Tillich, Systematic Theology, Chicago, Univ. of Chicago Press, 1967, vol. 1, pp. 285~286/ K. Barth, Church Dogmatic, vol. 2, 1959/ K. Rahner, 《LThK》 8, pp. 668~670/ -, 《SM》 5, Pp. 88~91/ A.S. Martin, 《ERE》/ Wallace Jr. · C.T. McIntire . W.M. Watt, Free Will and Predestination, (ER) 5, pp. 422~4331 빌헬름 니 이젤, 이종성 역, 《칼빈의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1990, pp. 159~181/ M. Weber, 양회영 역,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의 정신》, 을유문 고, 1985, pp. 116~166. (李贊洙〕
예정설
豫定說
(라)Praedestinatianismus · [영]Predest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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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