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교구 소속 본당. 경북 예천군 예천읍 서본리 235 소재. 1932년 5월 22일 공평(孔坪) 본당에서 분리 · 설 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관할 구역 은 예천군 예천읍 상리면, 하리면, 감천면, 보문면, 용문 면, 유천면, 지보면, 개포면, 호명면. [교 세] 1969년 1,702명, 1973년 1,390명, 1977년 1,420명, 1981년 1,571명, 1985년 1,909명, 1989년 1,721명, 1993년 1,815명, 1997년 1,505명, 2000년 1,640명. 〔역대 신 부] 초대 이기순(李基順) 도미니코(1932. 5~1937.4), 2대 권영조(權永兆) 마르코(1937. 4~1943. 2), 3대 김동언(金 東彥) 베드로(1943. 2~1948. 7), 4대 김태호(金兌浩) 알로 이시오(1950. 4~1952. 3), 5대 신현옥(申鉉玉) 치릴로 (1952. 3~1958. 5), 6대 노엘(R. Noël, 노광명) 로제리오 (1958. 5~1962.3) 7대 독(R. Doc, 박로제) 로제리오(1962.
3~1966. 11), 8대 메시니(P. Mésini, 매기석) 베드로(1966. 11~1973. 4), 9대 오키프(L. O'Keefe, 기리암) 굴리엘모 (1973. 4~1977. 4), 10대 조종율(趙宗泊) 베르나르도 (1977. 4~1981. 2), 11대 이영길(李映吉) 가롤로(1981. 2~ 1986. 1), 12대 전장호(全壯鎬) 프란치스코(1986. 1~1989. 2), 13대 남학현(南學顯) 스테파노(1989. 2~1991. 1), 14 대 김영필(金榮弼) 바오로(1991. 1~1995. 6), 15대 차호철 (車昊哲) 세례자 요한(1995. 6~1998. 2), 16대 김영식(金 英植) 요셉(1998. 2~현재).
[전 사] 예천 지방에 천주교가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 은 신유박해 때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피난 오면서부터 이다. 그중 일부는 여러 차례의 모진 박해를 피하여 1850년 경북 칠곡군 지천면 연화도의 신나무골로 옮겨 가면서 목숨을 부지했다. 박해를 피해 예천 고을의 곤악 이라는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충청도 내포 사람 전 사베리오와 역시 충청도 사람인 이 요한은 신자 촌을 침입하여 불을 지르고 도둑질을 하고 아녀자를 납 치한 누명을 쓰고 예천 군수에게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 한 후에 공주 감영으로 압송되어 갔다. 누명 사실을 확인 한 공주 감사는 석방 조건으로 배교할 것을 권유하였으 나 그들은 차라리 순교하기를 원하노라고 많은 군중들 앞에서 분명하게 말하였다. 이에 그들은 1866년 정월 스무 이튿날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는데 이들이 예천 최초의 순교자이며, 1866년의 첫 번째 순교자들이었다. 한편 같은 해 음력 정월, 박해를 피해 용궁군 내하면 도 경리(현 예천군 지보면 도장리)에 살고 있던 신태보 요셉 가족과 지씨 성을 가진 가족들은 도경리에 사는 동네 아 이 세 명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받게 하였 는데, 이 아이들이 예천에서 맨 처음으로 천주교에 입교 하여 영세한 김경수(타데오)와 정인진(루가), 권도수(마 티아)이다.
조선교구에서 대구교구가 1911년에 분리됨에 따라, 전라도 지역에서 사목하던 투르뇌(V. Tourneux, 呂東宣) 신부가 경상도 지역으로 옮겨 와 가실(현 낙산) 본당의 5 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예천 지역까지 사목 활동을 하 였다. 그리고 1914년 10월부터는 김천읍 본당의 2대 주 임인 김문옥(金紋玉, 요셉) 신부가 예천 지역을 사목하 였다. 그 후 김문옥 신부는 1922년에 문경군 호서남면 공평 본당을 창설하고, 그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예 천면, 용궁면의 신자촌들은 자동적으로 김문옥 신부의 사목 구역이 되었다.
[본당 설립과 발전] 김문옥 신부는 1929년에 지금의 예천읍 서본동의 성당 대지 4,877.4㎥ 중 일부인 2,208 ㎥서본본동 235번지)를 개인 재산으로 사들였는데, 이는 본 당 설립 기지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1932년 5월 22일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기순 신부 는 부임 직후 안동 본당에 기거하면서 성당 및 부속 건물 을 신축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14일 대구교구장 드망 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의 집전으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 후 2대 권영조 신부, 3대 김동언 신부, 4 대 김태호 신부, 5대 신현옥 신부의 노력으로 예천 본당
에서 관할하는 지역이 6개 군(예천 · 영주 · 봉화 · 안동 · 상 주 · 의성), 관할 공소가 20개에 달하는 교세로 성장하였 다. 1957년 서본동 74번지의 밭 2,925평을 매입한 신 현옥 신부는 161평의 성당 건물을 신축하는 공사를 시 작하여 같은 해 가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 후 원학 공소(1959), , 용촌 공소(1960), 오천 공소 (1963), 본현 공소(1965) 등을 설립하였고, 1975년 12월 사제관 신축 낙성식을 거행하였으며, 1976년에 본당 진 입로 포장 공사 · 담장 보수 공사 및 상수도 공사를 함으 로써 본당 환경을 조성하였다. 이후 여러 신심 · 봉사 단 체들이 창설되면서 본당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1990년 6월 교육관 개축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1992년 1월 본당 설정 60주년 기념 사업으로 성당 지붕 수리 및 사 제관 · 수녀원의 개축을 결의한 후 같은 해 11월 사제 관 · 수녀원 · 교리실 신축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하지만 1994년 2월 18일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성당 건물 이 전소되었다. 화재 발생 후 본당 신자들의 노력과 전국 에서 보내 온 성금으로 같은 해 5월 성당 신축 기공식을 가진 뒤 1995년 6월 3층 건물의 성당을 재건하여 제2대 안동교구장 박석희(朴石熙, 이냐시오)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6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영식 신 부는 과거 화재의 어려움을 닫고서 더욱더 활발한 사목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평 본당 ; 안동교구)
※ 참고문헌 천주교 안동교구, 《교구 전사》, 안동교구사 자료 4 집, 1997/ -, 《교구 25년》, 안동교구사 자료 5집, 1997/ -, 《본당, 활동 수도 단체, 교구 단체 · 기관》, 안동교구사 자료 6집, 1997/ 一, 《기타 자료》, 안동교구사 자료 7집, 1997. [白秉根]
예천 본당
醴泉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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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