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907년 11월 5일 경기도 화성군 안용면 오목천리에서 오상렬(吳尙烈)과 유동옥(柳東玉, 아나타시아) 사이의 13남매 중 4남으로 태어났다. 11세에 갓등이[旺林] 본당에서 운영하는 신 명의숙(新明義塾)을 거쳐 신풍보통학교를 마치고 1920 년 9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 12월 17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1933년 중림동(中林洞) 본당 보좌에 임명되었고, 1936년 5월 백동(柏洞, 현 혜화동) 본당의 3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37년 4월 혜화유치원 을 개원하였다. 오 신부는 1937년 9월 28일 프란치스코 제3회(재속 형제회)에 입회하여 이듬해에 허원을 하였는
데, 본당 구역 내에 거 주하던 지성인들을 제 3회에 입회시켜 그 해 12월 25일 40여 명이 프란치스코 재속 형제 회 회원으로 첫 착복식 을 하고, 혜화동에 형 제회도 창설하였다. 1939년 7월 교구장 라 리보(A. Larribeau, 元亨 根) 주교의 비서로 발 령된 오 신부는 교구장 을 일본인으로 교체하 고자 하는 일제의 계획
을 막기 위하여 1941년 12월 도일하여 교황 사절 마렐 라(P. Marella) 대주교를 설득하여 서울교구장에 한국인 의 임명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1941년 3월 23일에는 그의 동생인 오기순(吳基順, 알베르토)이 일본 도쿄(東 京) 대성당에서 서품을 받아, 한국 최초의 형제 신부가 되었다. 이듬해 2월 평북 신의주(新義州) 본당 7대 주임 으로 부임하여 부설 성심학교(聖心學校) 교장을 겸임하 다가, 그 해 5월 평남 안주(安州) 본당 5대 주임으로 전 임되어 안주 성모학교(聖母學校) 교장을 겸임하였다. 1944년 12월 충남 대흥동(大興洞) 본당의 9대 주임으 로 전임된 그는 해방을 이곳에서 맞았고, 1947년 10월 에는 충청남도로부터 대전학원(大田學院)을 인수하여 충남애육원(忠南愛育院)으로 이름을 바꾸어 원장으로 운영을 맡았다. 한국 전쟁 중에는 애육원 고아들을 데리 고 부산으로 피난하여 송도(松島) 허름한 판잣집 고아원 을 짓고 아이들을 보살폈다. 광복 후의 혼란과 한국 전쟁 의 소용돌이 속에서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 를 받자 오 신부는 사회가 돌볼 수 없었던 사회적 소외 계층을 종교적 사랑으로 수용하여 3천여 명에 이르는 고 아들을 돌보았다. 이러한 공로로 1963년 8월 15일에 대 한 민국 문화 훈장을 받았다. 1965년 6월 약 20년 동안 사목한 대흥동 본당을 떠나 서울 대방동 본당의 5대 주 임으로 부임하면서1966년부터 2년 동안 순교자 현양 사 업회 회장을 겸임하였고, 1971년 6월 3일 일선 사목에 서 은퇴하였다.
은퇴 이후 오 신부는 순교자 현양 사업에 진력하였다. 이미 1920년대부터 한국 천주교회사에 관심을 보인 그 는 오랫동안 사료들을 수집하고 소개하였으며 성지를 발 굴하였다. 1973년부터 복자 103위의 시성 운동을 시작 하였고, 1983년 4월에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위원회 위원으로 1984년 103위 순교 성인의 시성식을 준비하였으며, 1988년 올림픽과 1989년 세계 성체 대 회를 준비하면서 성지와 유적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준비로 1987년 3월 2일 한국 천주교 성지 연구원 을 설립하여 초대 원장이 되었다. 연풍(延豊) 성지와 삼 성산(三聖山) 성지의 기초를 닦은 그는 1985년 10월 4일 마카오와, 1986년 5월 22일 필리핀 롤롬보이(Lolombey)
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을 세우기도 하였다. 1990년 82 세의 노령에도 김대건 신부와 이승훈(李承薰, 베드로)의 발자취를 따라 14박 15일의 중국 여행을 강행한 오기선 신부는 귀국 후 18일 만인 1990년 7월 30일 선종하였 다. 유해는 경기도 용인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오 신부의 저술로는 성모 성심에 관련된 《세기의 승리자》, 《성모 마리아와 기적의 패》, 그리고 《성체》(Eucharistia) , 《교리실화》 등의 번역서와 《곡예사 같은 인생》 · 《다시 태어나도 사제의 길을》 《순교자들의 얼을 찾아서》 등이 있다.
※ 참고문헌 오기선,《곡예사 같은 인생 : 司祭生活半生記》, 서광 사, 1978/ -, 《다시 태어나도 사제의 길을》, 성황석 두루가서원, 1986/ -,《순교자들의 얼을 찾아서》 上 · 下, 한국천주교성지연구 원, 1988/ 평양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天主教平壤教區史》, 분도출 판사, 1981/ 김영걸, 《다시 보고 싶은 오기선 신부》, 오늘의 말씀, 1992/ 천주교 혜화동 교회, 《백동 70년사》, 1997. [崔起榮]
오기선 (1907~1990)
吳基先
글자 크기
9권

오기선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