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토리오

[라]Oratorio · [영]Orato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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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악보.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악보.

종교와 관련된 내용을 다룬 독창 · 합창 · 관현악을 위 한 대규모 악곡. 대본은 보통 성서에 기초를 두며, 장면 에서 장면으로 옮겨 가는 데 필요한 해설을 다양한 성부 (聲部)들에 의한 레치타티보(rectaivo, 낭송)가 담당하며, 레치타티보에 이어 아리아와 합창이 나온다. 오라토리오 가 가장 활발했던 곳은 종교 오페라적인 성격을 띠었던 이탈리아이다. 한편 독일 오라토리오는 그리스도의 수난 사를 다루었고, 영국에서는 헨델(G.F. Händel, 1685~1759) 이 여러 형식을 종합한 오라토리오를 만들어 냈다.
[용 어] 본래 '오라토리오' 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성당 이 아니라 수도원이나 신학교와 같이 특수한 시설에 사 는 사람들을 위한 경당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네리 (Filippo Neri, 1515~1595)가 교구 소속인 동료 사제들과 함 께 청년 사목에 주력하면서 영적 권고와 고해성사를 베 풀기 시작했는데, 이 모임이 오라토리오에서 이루어졌 다. 1575년에 이 모임이 교황 그레고리오 13세(1572~ 1585)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아 오라토리오회(Congregatio dell'Oratorio)가 된 후, 이 용어는 음악 용어로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이 오라토리오 모임에서 성서를 감 동 깊게 느끼게 하는 방법으로 일종의 신비극을 공연하 면서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를 불렀다. 이것이 발달하여 하나의 '성 극음악' (聖劇音樂)이 되었다.
그런데 교회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전례극(典禮劇, Liturgical drama)이 있었다. 5세기 중반부터 복음서 가운 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Pasio) 부분을 몇 명이
역할을 분담해 낭송하는 관습이 있었고, 이는 지금까지 도 가톨릭 전례 안에 전승되고 있다. 그 밖에도 전례 가 운데에 간단한 연극이 있었는데 이런 전례극들은 흔히 '대화' (Dialogus)라고 불렸고, 이런 전통에 따라서 오라 토리오도 초기에는 '디알로구스' 라고 불렸다.
[발전과 종류] 필리포 네리 이후의 오라토리오는 크게 이탈리아어로 공연하는 '통속 오라토리오' 와 라틴어로 하는 '라틴 오라토리오' 로 나누어진다. 통속 오라토리오 는 라우다(Landa)라는 노래 형식에서 싹텄는데, 이는 성 지롤라모(San Girolamo) 성당이나 발리첼라(Vallicella)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겨울의 주일마다 있었던 저녁 기도 모임에서 불려졌다. 여기서는 주로 즉흥 연주가 있었는 데, 이곳에 모인 이들은 기도와 강론과 함께 영적인 힘을 더 굳게 하기 위해서 라우다를 즉흥 연주하였다. 그러나 연극적인 동작은 없었다. 하지만 청중들에게 줄거리를 잘 전달해 주기 위하여 숙련된 사람을 한 명 활용하였는 데, 그 이야기는 '히스토리아' (Historia)라 하고 이야기꾼 은 '히스토리쿠스' (Historicus, 해설자)라고 불렀다. 라틴 오라토리오는 성서 본문을 갖고 지어진 전례용 모테트 (Motett)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성서 가운데서 극적 인 대목들을 중세 전례극 · 대화식의 라우다, 그리고 전 통적인 수난곡 등의 형식을 빌려서 노래하였다.
17세기의 통속 오라토리오의 발전에는 발두치(F. Bal- ducci)의 역할이 컸다. 반면 라틴 오라토리오는 카리시미 (G. Carissimi, 1605~1674)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어떤 것은 '역사' (Historia)라고 표기하였 고, 어떤 것은 그냥 '오라토리움' (Oratorim)이라고 썼는 데, 둘 사이의 차이점은 없다. 해설자도 때로는 역사가 (Historicus)로, 때로는 '증인' (Testo) 등으로 혼용하여 표 기하였다. 그는 구약성서에 근거하여 라틴어 대본을 사 용하였으며, 엄숙한 분위기의 오라토리오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들은 길이가 짧은 것부터 긴 것까지 다양하며,
단순하고 과장이 없으며 합창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 다. 또한 가장 기억할 만한 장면이 되면 해설이 그 사이 에 끼여들었으며, 등장 인물들이 감정을 잘 표현하였다. 이 시대에는 많은 오라토리오 대본 작가들이 활발한 활 동을 하였다. 오페라적인 접근은 차차 세속적인 사랑 이 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성서 주제 중에서도 주로 수산나, 에스텔, 바세바, 타말, 디나 등의 여성 이야기를 주로 선택하였으며, 이후 '사랑 오라토리오' 라는 것도 생겨났다. 1700~1730년경에는 오라토리오 소재의 선 택과 설계 구상에 하나의 과도기가 나타난다. 통속 오라 토리오가 라틴 오라토리오를 몰아냈고, 라틴 오라토리오 는 고급 교육을 받은 소수 계층에서만 명맥을 유지한다.
이탈리아에서 성숙 과정을 거친 오라토리오는 비엔 (Vienne)을 거쳐 독일 지방으로 퍼져 나간다. 독일 사람 들은 오라토리오를 '오라토리오적 연기' 또는 '오라토리 오적 형식' 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오라토리오라는 용어 는 '기도 소리' 라는 뜻보다는 단지 '말' 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이 오라토리오적 연기는 당시 독일의 고등 학교에서 흔히 있던 학교 연극을 지칭했다. 이 연극에서 일부는 말로 또 일부는 장면 연출로 구성되었고, 음악은 장식 정도였다. 여기서 출발하여 발달한 독일의 첫 오라 토리오는 쉬츠(H. Schütz, 1585~1672)의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이야기>(Historia der Geburt Jesu Christi, 1664)이다. 여 기서는 이탈리아 오라토리오의 '대화' 라는 형식을 벗어 나 복음사가의 서창 · 등장 인물들의 아리아적인 노래들 과 합창단의 노래 등이 등장한다. 그러나 바흐(J.S. Bach, 1685~1750)의 오라토리오는 칸타타 수준을 크게 넘지 못 하였다. 그의 오라토리오 <예수 승천>은 하나의 칸타타 로 이루어졌고, 유명한 <성탄 오라토리오〉(Weihnachsora- tirium, 1734)는 6개의 칸타타로 이루어졌다. 다른 칸타타 와의 차이는 복음사가(Evangelist, 혹은 Erzähler)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 이후에 하이든(J. Haydn, 1732~1809)의 오 라토리오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Die sieben letzten Worte, 1787)은 합창만으로 구성된 오라토리오로 유명하다. 그 리고 <천지 창조>(Die Schopfung, 1798)는 다양한 음악 형 식이 동원된 대작이며, <사계>(Die Jahrezeiten, 1801)에서 는 세속적인 경향이 나타난다.
같은 독일어권이지만 오스트리아는 오라토리오 형식 의 음악으로 '성 무덤극' (das Sepolcro)을 발전시켰다. 파 스카 목요일의 주님 만찬 미사가 끝나면 성체를 수난 감 실(locus repositionis sanctissimi sacrament)i)에 모시고 밤을 새 워 기도하는 관습이 있다. 이 수난 감실 앞에서 이루어지 는 금요일 연극을 '성 무덤극' 이라 하였고, 그 전통은 오 늘날까지도 오스트리아와 남부 독일 지방에서 수난극 (Passionsspiel)의 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차르트 (W.A. Mozart, 1756~1791)도 이런 '성 무덤극' 성격의 몇 가지 작품을 남겼고, 하이든의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 도 이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베토벤(L. van Bee- thoven, 1770~1827)의 유일한 오라토리오 〈올리브 산의 예 수>(Christus am Ölberg, 1802)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 세기 동안 독일과 영국의 대규모 연주회나 합창제 · 음악
제에서 연주되던 일부 오라토리오도 대부분 성공하지 못 했다. 멘델스존(B.F. Mendelssohn, 1809~1847)의 <엘리야> (Elijah, 1846)는 지금도 연주되는 19세기 오라토리오 가 운데 하나이다. 그는 바흐 음악을 부활시키고자 노력했 으며, 헨델 음악에 대한 경험도 있어서 이 두 양식을 혼 합하고자 했다. <엘리야>는 합창의 뛰어남으로 주목받는 작품인 반면, <성 바오로>(St. Paulus, 1836)는 수준급 작품 이지만 별다른 종교적 정서를 표현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영국의 오라토리오는 지나치게 헨델 한 사람에게 의존 적이었다. 그의 반대파들이 이탈리아 오라토리오에 몰두 하는 동안, 그는 12개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하였다. 하지 만 당시에 <메시아>(Messiah, 1741) 이외에는 다른 작품들 이 특별히 연주되지 않았다. 근대에 와서 엘가(E. Elgar, 1857~1934)의 <제론티어스의 꿈>(The Dream of Gerontius, 1900), 본 월리엄스(R. Vaughan Williams, 1872~1958)의 <거룩한 도성>(Sancta Civitas) 정도가 남을 뿐이다.
반면, 프랑스의 초기 오라토리오는 이상할 정도로 저 조하다. 이탈리아 오라토리오의 거장인 카리시미의 제자 였던 샤르팡티에(M.-A. Charpentier, 1636~1704)가 라틴어 가사로 많은 성서적 소재를 오라토리오들로 작곡하였지 만 호응을 못 받았다. 그러나 후기 낭만 시대에 들어서면 서 많은 대작들이 나타났다. 이 시기의 프랑스 독자적인 오라토리오는 '성극' (Mystère)이라 부르며, 베를리오즈 (H. Berlioz, 1803~1869)의 <그리스도의 소년기>(L'Enfance du Christ, 1854), 혹은 생상스(C.C. Saint-Saëns, 1835~1921) 의 <성탄 오라토리오>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프랑크(C. Franck, 1822~1890)의 <구속>(Redemptio) · <진 복 팔단>, . 마스네(J. Massenet, 1842~1912)의 <동정녀>, 구 노(C.F. Gounod, 1818~1893)의 <구속>, 드뷔시(A.C. De- bussy, 1862~1918)의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 등이 프랑 스 낭만주의 시대의 오라토리오로 주목받는 작품들이다.
근대 이탈리아에서는 교황청 작곡가였던 페로시(L. Perosi, 1872~1956)가 많은 오라토리오를 썼는데 그의 <나 자렛 사람>은 필리포 네리 시기의 옛추억을 불러일으킨 다. 그 밖에도 체코 출신 드보르자크(A. Dvořák, 1841~ 1904)의 <성녀 루드밀라> 등이 잘 알려진 작품이다.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같은 극음악 장르이지만 연극 의 연기가 빠진 오라토리오와 칸타타는 서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오라토리오가 성서적인 내용을 소 재로 하였고, 칸타타는 세속적인 내용을 다루었었다. 그 러나 세속 오라토리오도 생기고 교회 칸타타도 생기면서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문근(李文根, 요한, 1917~1980) 신부 같은 이는 둘 사이의 차이를 복음 사가(혹은 해설자)가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하였다. 복음 사가가 있으면 오라토리오이고, 빠졌으면 칸타타라는 것 이다. 이러한 구분은 어느 정도 가능한 설명이다. → 수 난곡 ; 오라토리오회 ; 전례극)
※ 참고문헌  P. Damilano et al.,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newart 10, Deutsche Taschenbuch Verlag, B ärenreiter-Verlag, PP. 120~168/ W.C. Holmes, 10, pp. 716~719/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ians, MacMillan Publisher, 1980. [白南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