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동 본당

五龍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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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군산시 오룡동 856-1 소 재. 1979년 1월 30일 둔율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 으며, 주보는 바다의 별. 관할 구역은 오룡동 · 문화동 · 신풍동 · 송풍동 전 지역과 나운동 · 삼학동 · 서흥남동 일부 지역. [교 세] 1979년 972명, 1985년 2,344명, 1990년 2,493명, 1995년 2,850명, 2000년 1,894명, [역대 신부] 초대 이태주(李泰柱) 알로이시오(1979. 2~ 1983. 12), 2대 박창신(朴昌信) 베드로(1984. 1~1988. 1), 3 대 엄기봉(嚴基奉) 베드로(1988. 1~1992. 2), 4대 고경훈 (高暻勳)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92. 2~1995. 8), 5대 문 정현(文正鉉) 바르톨로메오(1995. 9~1999. 2), 6대 양재철 (楊載喆) 안토니오(1999. 2~현재).
1970년대 중반 둔율동 본당의 교세가 확장되자, 본당 내에서는 새로운 성당의 설립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 에 둔율동 본당에서는 1976년 6월에 '새 성전 건립 추 진위원회' 를 구성한 뒤, 8월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였고, 1978년 7월에는 신축 성당의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그 결과 교구에서는 1979년 1월 30일에 오룡동 본당을 둔 율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하고, 이태주 신부를 초대 주 임으로 임명하였다.
오룡동 본당은 1979년 2월 9일 성당 봉헌식을 거행한 후, 레지오 마리애 · 청년회 등 여러 단체들을 설립하였 고, 4월에는 관할 지역을 구역별로 편성하여 본당의 체 계를 잡아 나갔다. 이어 묵상회 · 피정 등을 통해 신자들 의 신심 활동을 장려하는 한편, 1984년 9월에는 어은 공소를 옥봉 본당으로 이관하였다. 그리고 1986년 2월
에는 효율적인 신자 관리를 위해 구역을 40개 반으로 재 편성하였으며, 이듬해 6월에는 성당과 사제관을 증축하 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성당의 증축에도 불구하고 교세의 확장이 계속 되자, 본당에서는 1988년 1월 나운동 본당을 분리 · 신 설하고 275세대 831명을 이관하였다. 이처럼 설립 10 년 만에 자(子) 본당이 생길 정도로 성장한 오룡동 본당 은 1989년 1월 5일 성당이 화재로 전소되면서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군산 · 옥구 지구 사목 협의 회의 도움과 전 신자가 노력한 결과, 4월 30일에 성당 복구를 완료하고 축복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한편 오룡동 본당은 1990년대 들어 지역 사회의 문제 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0년 7월부터는 동양화학(T.D)의 군산 공장을 철거하기 위해 반공해 운동(反公害運動)에 적극 나섰고, 이듬해 2월에는 '성 요셉 노동자의 집' 을 마련하여 노동자들의 쉼터를 제공 하였다. 그런 가운데 1992년 6월에 관할 구역의 조정에 따라 28세대 77명을 월명동 본당으로 이관시켰다. 1996년 4월에는 '본당 설립 20주년 기념 사업 추진위 원회' 를 구성하였는데, 추진 위원회에서는 1997년 4월 에 '본당 설립 20주년 기념관' 의 건립을 결의하였고, 10 월에는 새로운 사목위원회가 발족되면서 본당의 사목 진 단을 우리 신학 연구소에 의뢰하였다. 그 결과 20주년 기념관은 1998년 8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11월에 축복 식을 거행하였고, 1998~1999년에는 사목 진단의 결과 에 따라 교적을 재정리함으로써 교세의 현실화를 도모하 였다. 아울러 2000년 1월에는 108세대 261명을 나운2 동 본당으로 전출시켰고, 2001년 2월에는 매월 셋째 주 일을 전 신자 친교의 날로 정하여 신자들간의 유대를 강 화하였다. 이처럼 설립 이래 꾸준히 성장해 온 오룡동 본 당은 2002년을 '선교의 해' 로 정한 뒤, 미신자에 대한 선교는 물론 냉담자의 권면에도 힘을 쏟아 지역 사회의 복음화에 노력하고 있다.
※ 참고문헌  천주교 전주교구, 《천주교 전주교구사》 II 1998. [편찬실]
② 대전교구 소속 본당. (⇨ 천안 오룡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