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간

[라]organum · [영]or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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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을 연주하는 수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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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을 연주하는 수도승.

공기 울림 악기에 속하는 건반 악기. 손과 발로 작동시 키며, 크기 순서대로 배열한 파이프 안을 지나가는 공기 의 압력으로 소리를 낸다. 가톨릭 교회에서 전례 거행시 사용되는 공식 악기로 인정받은 교회 악기이다. 일반적 으로 교회나 연주회장에 고정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 (PipeOrgan)을 의미한다.
오르간은 '연장' · '도구' 를 뜻하는 그리스어 '오르가 논' (ὄργανον)에서 유래되었다. 전신은 구약성서에 등장 하는 우갑(Ugab) , 한국의 전통 악기인 생황(笙簧)처럼 길이가 다른 몇 개의 파이프나 갈대를 묶어 입으로 불던 관악기이다. 공기를 일정한 압력으로 유지 · 저장하는 통 풍 상자 · 파이프군(群) · 공기를 파이프로 보내는 건반 과 밸브 시스템 등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르간 은 공기가 낱개의 파이프를 공명시키며, 다양한 음색의 소리를 산출하는 공기 악기이다. 또한, 건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건반 악기로도 분류된다. 오르간은 때와 장소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설계 · 건축된다. 현재도 스톱 (Register) 장치의 보완 등 지속적으로 개량되고 있으며, 음량과 음색의 변화 폭을 확대하고 있다. '악기들의 왕' (Praetorius, W.A.Mozart)이라 일컬어진다.
[역사와 교회의 입장] 역사 : 최초의 오르간은 기원전 265년에 알렉산드리아의 크테시비오스(Ktesibios)가 만 든 물 오르간(Hydraulus)으로 물의 압력으로 공기를 조절 하는 것이었다. 이 오르간은 독창적이고 거의 완전한 장 치였다. 로마 시대에는 물 오르간의 구조가 상당히 발전 되어 네로 황제(54~68) 때에는 경기장에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구조의 완벽한 형태는 비트루비우스(Vitruvius, 60 년경)와 알렉산드리아의 헤로(Hero, 120년경)에 의해 이루 어졌다. 한편, 그리스도교 지역에서 첫 몇 세기 동안 오 르간의 크기는 계속 커졌으며, 이 기간 동안 오르간은 지 나치게 화려한 외형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예로니모 (347~420)는 400년경 예루살렘의 오르간이 매우 큰소리 를 내며, 올리브 산에서 약 1마일 이내까지 들린다고 전 하였다.
바람을 공급하는 송풍기는 4세기경에 등장하였다. 그 런데 이 송풍기는 사람의 힘으로 공기를 공급했다. 이 당 시의 파이프수는 15개에 불과하였다. 오늘날 풍금(風琴, Harmonium)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오르간이 757년에 만 들어졌으며, 동로마 제국 황제의 즉위식 때 사용되었다. 이후 교회에 오르간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오르간은 피핀 3세(741~768)와 카를 대제 (768~814)를 위한 선물로 프랑스에 전해졌다. 서방 교회 에서는 오르간을 처음에는 초대 신자들의 박해 때 사용 된 이교도의 악기로 규정했으나, 우렁차고 장엄한 소리 때문에 곧 교회 악기로 수용했다. 서양의 첫 교회 오르간 은 아헨 주교좌 성당에 812년 설치되었다. 이어서 스트 라스부르(9세기) 주교좌 성당, 950년에는 런던 웨스트민 스터 주교좌 성당에 세워진다. 후자는 파이프 400개, 풍 구 26개의 큰 규모였으나 기능 면에서는 아직 느린 곡만 을 연주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오르간은 계속 발전되었다. 누른 건반을 원 위 치로 되돌리는 스프링 건반이 개발되고(11세기) 반음 건
반들이 추가되었으며(13세), 15세기에는 2,500개의 파이프와 2단 건반의 페달 오르간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헨리 8세(1509~1547)가 교황청과의 관계를 단절 하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한 후 수도원을 폐쇄하고 오르 간의 연주를 금지시켰다. 후에 정권을 잡은 청교도들은 오르간을 파괴할 것을 입법화하여 교회에서의 오르간 연 주는 물론이고 성가를 못 부르게 하였다. 그러나 대륙에 서는 스톱(Stop)과 풀무를 장착한 16~17세기의 대규모 의 오르간 개발로 적은 인력으로도 더 힘차고 다양한 소 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빠른 연주도 가능해졌다. 이때부터 독자적인 오르간 음악이 창작되었으며,오르간 은 성악 반주의 범주를 벗어난 본격적인 독주 악기로 변 신하였다. 그래서 성당의 오르간 반주자는 작곡과 지휘 를 겸한 성가대장을 의미하게 되었다.
음 증폭 기술(18세기)과 전기 송풍 장치(1863) 개발은 거대한 오케스트라 오르간과 첨단의 전자식 오르간(Th. Cahill, 1900)을 생산하게 하였다. 후자는 소리 내는 방식에 따라 떨혀, 철판 등을 사용하는 기계적 전자 오르간과 발 음기를 사용하는 전자식 전자 오르간으로 나누어진다. 20세기에 들어서서 금속 · 기계 · 전기 등 과학의 발전으 로 더욱 정교한 오르간이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바로크 시대의 옛 오르간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이는 옛 음악을 당시의 악기로 연주하는 정격 연주가 새로운 의미를 갖 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건축 규범에 따라 옛 성 격의 파이프 오르간도 제작하는 경우가 있다.
교회의 입장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헌장>(Sacro- sanctum Concilium)에서 "라틴 교회에서 파이프 오르간은 전통적인 악기로써 크게 존중되어야 한다. 그 음향은 교 회 의식에 놀라운 광채를 더하고 정신을 하느님 및 천상 에로 힘차게 들어올릴 수 있다" (120항)고 규정하였다. 또한, 전례 안에서의 성음악에 관한 훈령인 <무지캄 사 크람>(Musicam sacram, 1967. 3. 5)의 서문 4항 2번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교회 음악은 아래와 같이 이 해되고 총괄한다. 즉, 그레고리오 성가, 여러 가지 종류 의 고전 및 현대의 종교적 다성 음악들, 파이프 오르간과 전례 안에 합법적으로 허용된 그 밖의 악기들을 위한 교 회 음악, 그리고 또한 종교적 대중 노래, 즉 전례적이며 종교적인 대중 노래 등이다."
[종 류] 파이프 오르간은 용도에 따라 특수한 형태를 갖는다. 첫째로 포지티브(Positiv)는 전동 장치로 바람을 공급받는 작은 입식(立式) 오르간이다. 8세기 이후에 나 타난 이것은 대부분 건반이 한 단이고 페달이 없다. 그리 고 플루트 음색이 지배적이다. 바로크 시대에는 저음 악 기로 교회 음악뿐 아니라 세속 음악에도 사용되었다. 우 리 나라에는 삼각지 성당과 성 라자로 마을 성당에 있다. 둘째로 포르타티브(Portativ)는 이동하며 연주할 수 있는 작은 오르간이다. 8세기 이후에 등장하여 12~15세기에 주로 교회 행렬에 사용되었다. 연주자는 악기를 메고 오 른손은 건반을, 왼손은 풀무를 작동한다. 플루트 음색이 지배적이다. 셋째 레갈(Regal) 또는 성경 레갈(Bibelregal) 은 들고 다닐 수 있는 최소형의 편평한 오르간을 의미한
다. 15~18세기까지 사용된 이 오르간은 8 · 4 · 16인치 의 설관(舌管)을 사용, 날카로운 콧소리가 특징적이다.
한편, 풍금은 파이프 없이 떨혀(리드)만을 사용한다. 소수의 스톱, 1~2개의 건반(C→c4), 셈여림을 위한 무 릎 조절기, 발로 작동시키는 풀무를 갖추고 있다. 파이프 오르간의 대안으로 사용되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 한 국 가톨릭 교회의 오르간은 명동 본당과 원산 본당, 덕원 수도원의 파이프 오르간을 제외하면 모두 풍금이었다.
[한국 가톨릭 교회와 오르간] 오르간은 홍대용(洪大 容, 1731~1783)에 의해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다. 그 는 1766년 1월 8일부터 2월 2일까지 북경의 남당(南 堂)을 4차례 방문하여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대 · 바람 궤 · 바람통의 구조 · 음률 제도 · 음색 · 연주 원리 등을 분석한 기록을 남겼다. 여기서 파이프 오르간이 생황의 원리를 확대한 악기로 이해하였다. 그는 한국인 처음으 로 파이프 오르간을 '시연' (試演)하였다
1858년 10월 3일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1821~ 1861) 신부는 프랑스에 오르간을 주문하였다. 스승인 르그레즈 와(P.L. Legrégois, 1801~1866)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는 "서 양 음악을 여러 가지 음향으로 잘 연주할 수 있는 견고하 게 만들어진 오르간 하나를 보내 주십시오. 약 30프랑 정도의 것으로 골라 주셨으면 합니다. 열쇠는 여러 개가 필요합니다"라고 적고 있다. 이것은 최양업 신부가 박해 의 와중에도 오르간 반주의 장엄한 전례를 준비하고 있 었음을 보여 준다. 사실 최양업 신부는 오르간 연주를 포 함하여 폭 넓은 음악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여 겨진다.
1886년 한불조약 비준과 함께 시작된 신앙의 자유 이 후 한국 교회는 발전적인 변화를 가속화하였다. 성가는 성당과 학교에서 자유롭게 불려졌다. 한국 교회의 오르 간 역사는 1890년부터이다. 첫 오르간은 뮈텔(G.-C.-M. Mutel, 閔德孝, 1854~1933) 신부가 파리에서 구입하여 살 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보내 준 풍금이다. 이 시기의 교회 간행물들은 조아요(A. Joyau, 1877~1907) 신부의 〈훌 륭한 오르간 연주>(1901) · <오르간 반주와 근사한 성가 대>(1903) · <풍금을 사용하여 정신을 잃을 뻔한 안(F.
Demange, 安世華, 1875~1938) 주교와 민 주교의 성성식> (1911) · <신학생들에게 풍금 연주를 가르치는 알렉시오 (A. Brandl, 張) 신부>(1927) 등 당시의 풍금 보급과 연주 상황을 알려 준다. 1906년 정부가 제1차 교육령으로 보 통학교 체조 시간에 풍금 사용을 권장하고, 1910년대에 이의 확대 실시를 지시한 것은 사회가 교회의 변화를 반 영한 것으로 보인다.
풍금은 지방의 공소에까지 보급되기 시작한 1930년 대에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 악기로 정착하였다. 풍금은 1930년대 초까지 적어도 용산의 예수성심신학교 (1914) · 약현 성당(1919) · 평남 진남포 성당(1913) · 강 원도 풍수원 성당(1921) · 인천 제물포 성당(1921) · 행주 본당(기증받음) · 계성보통학교(1925. 기증받음) · 내평 성 당 · 회령 성당(1928) · 청진 성당(1930) · 황해도 신막 공 소(1932)에 있었고, 파이프 오르간은 명동 성당(1924) · 원산 성당 · 덕원 수도원(1934)에 설치되었다. 후자의 두 파이프 오르간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의 격동기를 지나며 기존의 많은 풍금들과 함께 파괴 소실되었다. 1960~1970년대에 인천 복자 성당(1966) · 고성 성당 (1971) · 두메 공소(1971) · 대구 남산 성당(1976) · 신령 본당(1977) · 삼덕동 본당(1977) · 거제 성당(1978) · 마 산 중앙 본당(1978) · 그리스도 성혈흠숭 수녀회(1979) 등이 풍금을 다시 비치하며 교회 악기로의 기능을 회복 하였다.
한국의 파이프 오르간은 1924년에 처음으로 명동 성 당에 세워진다. 프랑스 카바예 콜(Cavaille-Col) 회사가 제작한 이 파이프 오르간은 뮈텔 주교가 면세 통관을 요 청하는 공문서를 발송한 1924년 5월 15일부터 같은 해 6월 말 사이에 성당의 후면 발코니에 설치되었다. 송풍 장치는 사람이 연주대 뒤쪽의 풀무를 상하로 움직이는
수동식이었다. 그러나 설치 후의 시연회 여부는 알려지 지 않는다. 오르간 연주자는 훈련받은 보댕(J. Bodin, 邊若 瑟, 1886~1945) 신부가 유일했고, 1945년에 그가 선종하 자 이문근(李文根, 요한, 1917~1980) 신부가 그 자리를 이 었다. 그러나 이 첫 파이프 오르간은 1949년 이문근 신 부의 유학과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상태가 점차 더 악 화되면서 서서히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1960년에 명동 성당은 이 오르간을 혜화동 대신학교 (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성당으로 이전하고, 전동 송풍 장치와 액션을 기계식 구조로 개조한 파이프 오르간(중 고)을 미국에서 도입하였다. 1972년 프란츠 본 신부가 내한, 연주회를 가졌다. 점차 오르간 음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품위 있는 새 파이프 오르간의 필요성이 대 두되었다. 1985년 북미주 한인 교회 신자들과 독지가들 의 도움으로 서독 베르느 보쉬 회사가 제작한 파이프 오 르간이 명동 성당의 세 번째 오르간으로 설치되었다. 현 재 한국의 파이프 오르간은 명동 성당 이외에도 중림동 성당(1976) · 서울대교구 종교 음악 연구소(1978) · 혜화 동 성당(1987) · 부산 중앙 성당(1990) · 대구 계명동 성 당(1991) · 목5동 성당(1994) · 성남 신흥동 성당(1997) . 대방동 성당(1998) · 분당 요한 성당(2001) 등 10여 대가 서울과 근교에 집중 · 설치되어 있다.
오르간의 증가에 따른 연주자 양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회의 체계적인 노력은 교구 차원의 오르간 교육 기관이 설립하도록 하였다. 1981년에 설립된 종교 음악 연구소(소장 차인현 신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가 톨릭 교회 음악의 역사와 실제에 관한 연구 교회 반주 자의 교육 · 나아가 그레고리오 성가와 성가대 지휘자 과 정 등을 개설하여 교회 음악 전문가 양성에 기여하고 있 다. 대구 가톨릭 음악원(1987. 소장 김종헌 신부)과 부산 가 톨릭 음악원(1990. 원장 김승주 신부, 2000년부터 윤용선 신부) 도 지역의 오르간 연주자와 교회 음악가를 양성하고 있 다. 한편, 대학에서의 오르간 교육은 1988년 대구 가톨 릭대학교가 처음으로 종교 음악과를 개설하였다.
오르간 독주회는 1956년 12월 21일 이문근 신부의 서울시 공간 연주가 처음이다. 이 첫 독주회에서 사용된 페달 전자 오르간은 명동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 불가 상 황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전해진다. 오르간 연주회는 1970년대 이후 페달 전자 오르간의 보 급과 함께 활발해졌다. 특히 종교 음악 연구소와 대구 및 부산의 가톨릭 음악원이 주관하는 여러 형태의 오르간 연주회, 명동 성당 반주단의 정기 연주회, 그리고 몇몇 본당의 비정기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들은 가톨릭 교회 음악의 발전과 한국의 복음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 참고문헌  노동은, 《한국 근대 음악사 1》, 한길사, 1995/ 조선 우 · 최필선,《한국 가톨릭 교회 음악 사료집 1》, 세종출판사, 1994/ 조선우 · 최필선 · 서우선 · 주은경,《한국 가톨릭 교회 음악 사료 집 2》, 세종출판사, 1996/ 조선우 · 홍정수, 《음악은이 1》, 음악춘추 사, 2000, pp. 58~65/ 김건정, 《교회 전례 음악》, 가톨릭출판사, 1999/ 차인현,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 가톨릭출판사, 1991/ 주은경, <한 국 가톨릭 교회 음악의 오르간 역사>, 《신앙과 음악》 4호(2001. 겨 울), 부산 가톨릭대학교 성음악연구소, 2001, pp. 33~571 J. Schmidt- Görg, 《MGG》 1, pp. 603~607/ P. Williams, 《NGDMM》 13, pp. 710~7791
W. Gurlitt(ed.), Riemann Musik Lexikon, Personenteil 1, Schott' s Söhne, 1959, p. 47. [趙善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