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교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초대 교회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 백과 사전과 같은 지식 과 놀라운 창의력을 지녔던 천재적인 인물.
[생 애] 185년 알렉산드리아의 신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가 지도하 던 교리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의 아버지 레오니데스 (Leonides)가 202년에 순교하였다. 이 당시 순교에 대한 열정에 불타있던 오리제네스는 어머니가 밖에 나가지 못 하도록 옷을 감추면서 극구 말리지 않았더라면, 아버지 를 따라 순교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마침 교리 학교의 교장이던 글레멘스가 박해로 피신 중에 있었기 때문에 데메트리오(Demetrius, 189/190?~233?) 주교는 203년에 교 리 학교의 책임을 오리제네스에게 맡겼다.
203~231년까지 교장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지낸 28년 간은 그의 생애에서 전반기에 해당된다. 에우세비 오(Eusebius Caesariensis, 260/265?~339)는 그의 생활과 교 수 방법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그는 가르친 바를 실제 로 실천하였고, 실천한 바를 가르쳤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활을 모방하려 하였다. 그는 가능한 한 학문 연구
에 몸바쳤으며, 때로는 단식의 체조를 하고 때로는 아주 적은 잠을 자고, 침대에서 자려 하지 않고 바닥에서 잤 다. 복음의 말씀을 생각하여 두 벌의 겉옷을 갖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았고, 또 앞날을 걱정하지 말라는 권고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려 하였다"(《교회사》 6, 3). 그리고 마 태오 복음 19장 12절의 말씀을 문자대로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거세하여 고자(鼓子)가 되었다. 오리제네스가 가 르친 내용은 수사학 · 물리학 · 수학 · 지리학 · 천문학 · 그리스 철학 그리고 신학 등 다방면이었다. 혼자서 이 모 든 것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그는 초급반을 헤라클라스 (Heraclas, +248)에게 맡기고, 자신은 상급반을 맡아 철학 과 신학을 가르치는 데에 전념하였다. 212년 로마로 여 행을 가서 당시의 교황인 제피리노(199~217?)를 만났으 며, 당시 로마의 최고 신학자인 폴리토(Hipolylyus, 170~236)와 만나 신학적 교류를 가졌다. 215년에는 아라 비아에 가서 로마 집정관을 가르쳤으며, 세베루스 알렉 산데르 황제(222~235)의 어머니인 율리아 맘메아의 초청 을 받아 안티오키아에 가서 가르쳤다. 216년 카라칼라 황제(198~217)가 동생인 제타의 암살에 격분하여 알렉산 드리아를 파괴하자, 오리제네스는 팔레스티나로 피신하 였다. 이에 당시 가이사리아(Caesarea)의 주교와 예루살 렘의 주교 등 지역 주교들이 그에게 성서 강의와 강론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알렉산드리아 의 데메트리오 주교는 평신도가 주교들 앞에서 가르치거 나 강론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오리제네스는 순명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15년 후 그는 데메트리오 주교의 지시로 그리스로 가던 중 가이사리아를 방문하였 는데, 그의 옛 친구인 예루살렘의 알렉산데르 주교가 그 에게 사제품을 주었다. 그러나 데메트리오 주교는 자발 적으로 거세한 오리제네스가 받은 사제품은 무효라고 선 언하고, 231년에 열린 주교 회의를 통해 그를 파문하였 다. 그리고 오리제네스의 동료였다가 232년에 데메트리 오의 주교직을 계승한 헤라클라스도 그를 같은 이유로 파문하였기 때문에, 그는 할 수 없이 알렉산드리아를 떠 나야 했다.
이때부터 오리제네스의 생애의 후반기(232~253)가 시 작된다. 그는 가이사리아에 가서 그곳 주교의 배려로 약 20년 간 신학 연구와 제자 양성을 계속하였다. 기적자 그레고리오(Gregomius Thaumaturgus, 213~270?)라는 특출한 제자가 이때 배출되었는데, 그가 학업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기 전에 스승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남긴 《오리제 네스에게 드린 사은가》를 통해 오리제네스의 인품과 교 육 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데치우스 황제(249~251) 박해 때에 오리제네스가 체포되어 극심한 옥고를 치른 사실을 에우세비오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 의 말씀 때문에 오리제네스는 감옥에 감금되어 온몸에 고문을 당하고 감옥 제일 밑바닥에서 족쇄에 묶여 고문 을 당하는 등 얼마나 잔혹하고 수많은 형벌을 당해야 했 던가! 여러 날 동안 그의 발은 고문할 때 사용하는 통나 무로 된 네 번째 굴에 묶여 있었으며, 태워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원수들이 자기에게 자행하
는 그 밖의 다른 모든 형벌도 용감하게 견디어 냈다. 한 편 재판관은 자기의 재량권을 다 동원하여 오리제네스의 목숨만은 구하려 하였다. 그 후 그는 위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요긴한 많은 글들을 남겼는데, 그가 써 보낸 많은 편지들은 이 모든 사실이 참되고 명확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교회사》 6, 39, 5). 출옥 후에 오리제 네스는 옥고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253년 68세의 나 이로 사망하였다.
그는 엄청난 양의 저서들을 남겼다(《PG) 11~19). 경제 적 후원자인 암브로시오라는 친구는 그에게 7명의 속기사 를 주어 그의 말을 모두 받아쓰게 하였다. 예로니모(Hie- ronymus, 347~419)의 증언에 의하면(《루피누스 반박》 2, 22), 그의 저서가 2천 권에 이른다고 하지만 그중에 많 은 저서들이 유실되었다. 오리제네스는 이처럼 많은 저 서들을 통해 창조적인 신학 사상들을 남겼지만, 생전에 시기와 질투로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듯이 사후에도 논 란이 된 몇 가지 학설 때문에 몇 세기를 두고 소위 '오리 제네스주의 논쟁' 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오랫동안 가르 친 알렉산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가이사리아에는 그를 열렬히 따르는 추종자들이 많았으며, 그래서 이 두 곳은 오리제네스 신학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신학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에 못지 않게 많았으므로 양편의 신학 논쟁은 세기를 두고 계속되었다. 사실 동방 교회의 신학 발전은 이런 논쟁들에서 나온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서] 구약성서 본문 비판 : 오리제네스가 평생을 바 쳐 이룩한 방대한 역작은 구약성서에 대한 최초의 본문 비판서인 《헥사플라》(Hexapla)이다. 그는 여섯(hexa) 개 의 본문 즉 히브리어 원문 · 히브리어 원문 발음의 그리 스어 표기 · 아퀼라의 그리스어 역본 · 심마쿠스의 그리 스어 역본 · 70인역(Septuaginta) · 테오도시우스의 그리 스어 개역본을 여섯 난으로 배열하였다. 그리고 다섯째 난에 배열한 70인역에는 첨가된 부분을 '÷' 로 표시하 고, 누락된 부분을 '*' 로 일일이 표시하였다. 엄청난 노 력과 인내가 필요했던 이 작품은 체계적인 성서 연구를 위한 최초의 성서 본문 비판본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성서 주석 작품들 : 오리제네스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성서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첫 번째 주석가이다. 그는 구 약성서와 신약성서 거의 모두를 주석하였으며, 그 방식 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스콜리아' (Σχολία, 발췌 해설)는 성서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발췌하여 해설한 것이다. 예로니모(서간 33)에 의 하면, 오리제네스는 출애굽기 · 레위기 · 이사야서 · 시편 1-15장 · 집회서 · 요한 복음서에 대해 스콜리아를 저술 하였다고 한다. 루피누스는 오리제네스의 민수기 강론집 을 라틴어로 번역하였는데, 그 서문에서 오리제네스가 민수기에 대한 스콜리아를 저술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오리제네스의 이런 스콜리아 본문들이 유실되어 하나도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고, 다만 몇 개의 단편이 바실리오 (329~379)와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329/330-389/390)가
편집한 《필로칼리아》(Philocala)와 6세기 이후의 《성서 선집》(Catenae biblicae)에 보존되어 있다.
'호밀리아니' (Ομιλίαν, 강론들)는 오리제네스가 전례 중 성서 대목에 관해 강론한 것이다. 역사가 소크라테스 (Sokrates Scholasticus, 380?~450?)에 의하면(《교회사》 5, 22), 오리제네스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강론했다고 한다. 반면, 《오리제네스의 전기》를 저술한 팜필로(Euse- bius Pamphilus, 240~309)는 그가 거의 매일 강론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신약성서와 구약성서 모두에 대해 강 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레미아서 강론 20 개와 사무엘 1서 28장 3-25절에 관한 강론 1개, 그리고 근래에 발견된 루가 복음서 제35 강론의 끝 부분과 마태 오 복음서 강론 25개가 그리스어 원문대로 전해 오고 있 다. 한편 루피누스는 오리제네스의 많은 강론들을 라틴 어로 번역하였는데, 창세기에 관한 강론 16개 · 출애굽 기 강론 13개 · 레위기 강론 16개 · 민수기 강론 28개 · 여호수아서 강론 25개 · 유딧서 강론 9개 · 시편 강론 9 개가 라틴어 역본으로 전해 오고 있다. 또 예로니모가 라 틴어로 번역한 강론들도 전해 오는데, 아가서 강론 2 개 · 이사야서 강론 9개 · 에제키엘서 강론 14개 그리고 특히 루가 복음서 강론 39개가 있다. 또 푸아티에의 힐 라리오(Hilarius Pictaviensis, 315~367)는 오리제네스의 욥기 에 관한 제25 강론의 단편을 라틴어로 전해 주고 있으 며, 미상의 역자가 사무엘 1서 1-2장에 관한 강론을 라 틴어로 번역한 것이 전해진다. 그러나 유실된 그의 강론 들은 무척 많다. 오리제네스가 쓴 474개의 강론 가운데 에서 46개만 그리스어 원문으로 전해 오고 있다. 이런 강론들에서 오리제네스는 신자들의 교육과 영혼의 선익 을 위해 성서를 영적으로 해설하였다. 따라서 이 강론들 은 성서학보다는 영성사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주석서' (τόμοι)는 학문적인 주석, 즉 성서 본문에 대 한 철학적 · 본문 비판적 · 역사학적 · 신학적 설명을 한 것이다. 그는 성서의 은유적 주석 방법을 선호하였다. 그 의 주석들이 엄청나게 많지만, 불행히도 대부분 유실되
어 전하지 않는다. 다행히 네 개의 주석서들이 전해 오고 있다. 우선 《마태오 복음 주석》은 224년에 가이사리아 에서 저술되었는데, 25권 중에서 13장 36절-22장 33 절을 주석한 8권(11~17권)만 그리스어 원문으로 전해 오고 있다. 한편 16장 3절-27장 65절을 주석한 것은 라틴어 역본으로 보존되어 있다. 《요한 복음 주석》은 32 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주석서이다. 이 중에서 9권(제 1~2 · 6 10 · 13 · 19~20 · 28 · 32권)만 그리스어 원문으 로 전해 오고 있다. 이 주석서는 오리제네스의 신비 신학 과 내적 생활에 관한 연구에 매우 중요한 저서이다. 224 년 이전에 저술된 《로마서 주석》은 15권으로 되어 있으 며, 그리스어 원문은 대부분 유실되고 단편들만 전해 오 고 있다. 하지만 루피누스가 15권을 10권으로 축소하여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 전해 오고 있다. 10권으로 된 《아 가서 주석》의 그리스어 원문은 유실되었고, 루피누스가 번역한 제1 ~4권만 라틴어 역본으로 전해 오고 있다. 이 주석서는 고대뿐만 아니라 중세의 신비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외에도 유실된 주석서들이 있다. 에우세비오는 오리 제네스가 《창세기 주석》 13권 · 《시편 주석》 41권 · 《이 사야서 주석》 30권 · 《아가서 주석》 5권을 저술하였고 (《교회사》 6, 24, 2), 또 《에제키엘서 주석》 21권 · 소 예 언서들에 관해 적어도 26권 · 《루가 복음 주석》 15권· 《갈라디아서 주석》 5권 · 《에페소서 주석》 3권 그리고 《필립비서 주석》 · 《골로사이서 주석》 · 《데살로니카서 주석》 · 《히브리서 주석》 · 《디도서 주석》 · 《필레몬서 주 석》을 저술하였다고 한다(《교회사) 6, 32, 2). 그러나 이 주석서들은 모두 유실되었고, 6세기의 《성서 선집》과 성 서 사본들 또는 후기 교회 저술가들의 저서에 단편적으 로 인용되어 있을 뿐이다. 오리제네스의 291권의 성서 주석들 중에 275권의 그리스어 원문이 유실되었으며, 라틴어 역본으로 남아 있는 것조차 얼마 되지 않는다.
호교론적 저서 : 오리제네스의 가장 유명한 호교 작품 인 《철수스 반박》(Κατα ΚέλσουΑντίκρουση του Τελλύσου, Contra Celsum)은 8권으 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이교 철학자인 철수스가 178년에 그리스도교를 체계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쓴 《진언》(眞 言, 'Αληθής λόγος)이란 책을 조목조목 반박한 저서이다. 철수스의 《진언》은 유실되었지만, 오리제네스의 이 저서 에 인용된 부분들을 통해 거의 대부분 복원할 수 있다. 246년에 친구 암브로시우스의 부탁을 받은 오리제네스 는 60세가 넘은 말년에 차분한 어조로 박해의 부당성과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피력한 이 저서는 이전 호교론자 들의 글보다 내용 면에서 월등히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이교 사상과 그리스도교 사상 사이의 논쟁을 잘 볼 수 있 어 종교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 저서는 오리 제네스가 얼마나 박학한 인물인지를 잘 보여 준다.
교의 신학 저서들 : 오리제네스의 최고 걸작품인 《원 리론》(Περί ἀρχῶν, De principis)은 가장 오래된 신학 교과 서라 할 수 있다. 전 4권으로 되어 있는데, 하느님(제1권, 신론) · 세상(제2권, 우주론과 종말론) · 자유 의지(제3권, 인 간학) · 계시(제4권, 성서학) 등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들
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모든 진리의 원천과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후계자들인 사도들의 가르침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성서와 성전(聖傳)이 바로 하느님 의 말씀을 전해 주는 교회 가르침의 원천이며 신앙의 규 범이 된다는 것이다. 이 저서는 오리제네스의 독창적인 신학 사상들을 폭넓게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오리제네스 의 신학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장 귀한 글로 여겨졌다. 한편 이 저서에는 영혼의 선재 사상과 종말론에 관해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에 뒷날 '오리제네스주의 논 쟁' 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었다.
《헤라클리데스와 토론》('Οριγένους διάλετοι πρὸς Ἡ- ρακλείδαν καὶ τοὺς σὺν αὐτῷ ἐπισκόπους)은 1941년 카 이로 인근에 있는 투라(Tura)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사본 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이 사본은 6세기 말경의 것으로 《헬라클리데스와 그의 주교들과 벌인 오리제네스 의 토론》이라는 긴 이름으로 되어있는데, 이를 줄여 《헬 라클리데스와 토론》이라고 부른다. 이 저서는 245년에 아라비아의 한 교회에서 오리제네스가 헤라클리데스와 동료 주교들, 그리고 신자들 앞에서 실제로 가졌던 신학 토론을 속기록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한편, 《부활론》 (Περί ἀναστάσεως, De resurrectione)은 230년 이전에 알 렉산드리아에서 저술되었는데, 본문은 유실되고 여러 곳 에 단편으로만 전해 오고 있다.
《스트로마타》(Στρωμάτα)는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 스의 <스트로마타》와 제목이 같은데, '양탄자' 라는 뜻이 다. 이 제목은 일정한 주제가 아니라 여러 문제를 다룬 글들을 한데 모아 엮은 책을 지칭하던 당시의 관습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저서에서 오리제네스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플라톤(기원전 427?~347),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 등 고대 철학의 가르침을 비교하면서 그리스도 교의 우월성을 부각시킨다.
실천 윤리 작품 : 전 33권인 《기도론》(Περί ευχῆς, De oratione)은 기도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인 작품으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영성 신학에 관한 많은 자료를 제 공해 준다. 제1부(서론~17장)에서는 기도에 대한 일반적 인 가르침을 서술하며, 제2부(18~31장)에서는 '주님의 기도' 에 대해 해설하고, 부록(32~33장)에서는 기도의 자세 · 장소 · 종류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오리제네스가 얼마나 깊은 영성과 신심을 갖고 있 었으며,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의탁하는 사람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하는 데에 그 목적 이 있으며, 마귀의 유혹과 그 밖에 자기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유익하며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 다. 또 하느님은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우리에게 사랑과 은총을 주시지만, 은총은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거 저 주시는 선물이라는 점을 역설하였다.
《순교에 대한 권고》(Εις μαρτυρίου πραροτρεπτικός, Exhor- tatio ad marytrium)는 전 50장으로 되어 있는데 235년 팔 레스티나의 가이사리아에서 있었던 박해 초기에 저술되 었다. 부친을 따라 항상 순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오리제네스는 박해의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
지 않고 굳센 믿음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만이 하느 님을 만나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하 여 신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순교는 구체적으로 그 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는 길이며, 하느님은 이 지상 의 것을 버리고 희생한 사람들에게 응분의 상급을 주실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서간들 : 오리제네스는 엄청난 양의 편지를 썼다. 예 로니모는 오리제네스의 서간이 네 개의 모음집으로 정리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9권이라고 한다. 이것은 에우세비오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오리제네스의 편지 들을 모아 편집한 것으로 100개 이상의 편지들이 수록 되어 있었다(에우세비오, 《교회사》 6, 36, 3) 그러나 완전 하게 전해 오는 것은 그의 옛 제자인 《기적자 그레고리 오에게 보낸 편지》와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에게 보낸 편지》 두 개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유실되었다.
[신학 사상] 신론 :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가 '로고 스-그리스도론 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중심주의' 에 신 학적 기초를 두었던 것과는 달리 오리제네스는 '하느님 중심주의' 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로고스-그리스도 론 에서는 모든 인식의 원천을 그리스도에게 두지만, 오 리제네스의 하느님 중심주의에서는 모든 신학의 출발점 을 성부에 두고 있다. 사실 오리제네스 신학의 대표작인 《원리론》은, '하느님은 영이시며 빛이다' 라는 말로 시작 된다. 하느님만이 낳음을 받지 않으시고(αγέννητος), 어 떠한 물질에서도 자유로운 분이시다(《원리론》 Ⅰ, 1, 6). 절대적 원리이신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 며 다스리시는 분으로서 위격적 방법으로 행하신다. 하 느님 아버지는 절대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에게 인식 될 수 없는 분이시다. 따라서 그분은 로고스, 즉 '하느님 의 본체 또는 실체의 표상이신' (《원리론》 Ⅰ, 1. 8) 그리스 도의 중재를 통해 인간에게 인식될 수 있다. 또한 우리 는, 태양과 광채의 관계처럼, 피조물들을 통해 그분을 인 식할 수 있다(《원리론》 I . 1, 6). 또 오리제네스는 하느님 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 의인화된 신성을 언급하지 않 으려고 무척 조심했다. 그는 특히 스토아 철학자들의 범 신론과 그노시스주의자들 또는 마니교도들의 이원론을 거슬러 하느님의 불변성을 강변했다(《켈수스 반박》 4, 14).
성삼론 : 오리제네스는 '성삼' (τριάδα, Trinitas)이란 용 어를 즐겨 사용한다(《요한 복음 주석》 10, 39, 270 : 6, 33, 166 ; 《예레미아서 강론》 1, 4, 1). 그는 성삼위 사이의 구 별을 부인하는 모달리즘을 따르는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 고 거부하였다. 오리제네스는 성자 하위론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논란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예로니모 는 오레제네스를 그렇게 비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반 면, 기적자 그레고리오와 아타나시오는 그에 대한 어떠 한 비난에도 변호하고 정당화하였다. 오리제네스는 성자 께서 성부께로부터 발하시는 것은 성부께로부터 분리되 는 방식이 아니라, 의지가 정신에서부터 나오는 것과 같 은 방식으로 발하신다고 분명하게 밝혔다(《원리론》 Ⅰ, 2, 6). 하느님 안에는 모든 것이 영원하기 때문에 성자의 나 심도 '영원무궁한 나심' 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예레미
아서 강론》 9, 4 ; 《원리론》 1, 2, 4). 같은 이유에서 성자에 게는 시작이 없으며 '계시지 않았던 때가 없다' (οὐκ ἔστιν ὅτε οὐκ ἦν)는 것이다(《원리론) 1, 2, 9 ; 4, 4, 1 : 《로 마서 주석》 1, 5). 이 주장은 약 백 년 후에 발생하여 니체 아 공의회(325)에서 단죄된 아리우스 이단을 앞당겨 반 박한 셈이다. 사실 아리우스는, 성자가 성부의 첫 번째 피조물이며, 낳음을 받기 이전에는 계시지 않았기 때문 에 '계시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ἦν ὅτε οὐκ ἦν)라고 주 장하였다. 또 오리제네스는 성자 입양설을 정면으로 반 박하기 위해 성자는 '성령의 입양으로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니라 본성적으로 아드님이시다' 라고 강변하였다(《원리 론》 1, 2, 4) 따라서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 일한 본성(ὁμοούσιος)을 지니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 하여 사용한 '호모오우시오스' (ὁμοούσιος)는 니체아 공 의회와 그 후의 그리스도론 논쟁들에서 정통 교리의 핵 심적인 용어가 되었다(《히브리서 주석 단편》 24, 359).
한편 오리제네스의 로고스론은 후대의 신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성자를 존재적인 면과 기능적인 면 에서 구별하였다. 그는 로고스의 신성을 역설하면서, 다 른 한편으로는 '둘째 하느님' (δεύτερος Θεός)이라는 표 현을 사용하였다(《cpf수스 반박》 5, 39 ; 《요한 복음 주석》 6, 39, 202). 성부만이 '자존적 하느님' (αυτοΘεός)이며 순 수하게 선하신 분' (απλώς ἀγαθὸς)이신 반면, 성자는 성 부의 이러한 '선하심의 형상' (εικών ἀγαθότητος)이다(《첼 수스 반박》 5, 39 : 《원리론》 1, 2. 13). 성자를 '둘째 하느 님' 이라고 하는 표현은 성자 하위론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지만, 존재론적 하위론이 아니라 기능적 하위론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오리제네스에 의하면, 성자와 성령은 성부와 피조물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신다.
그리스도론 : 오리제네스가 로고스론을 육화한 예수와 연결시키는 방법이 매우 흥미롭다. 그는 예수의 영혼의 개념을 도입하고, 이 영혼을 통해 로고스의 무한한 실존 과 그리스도의 유한한 육신 사이를 연결시킨다(《원리론> II , 2. 3). 이때 그는 '신-인' (神-人, θεόςθρωπος)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하며(<에제키엘서> 강론 3,3), 이것은 후대 그리스도론의 중요한 용어로 정착된다. 육화에 관 해 그는 그리스도의 영혼이 들어간 육신은 "죄로 더럽혀 지지 않은 동정녀에게 취해졌고 성령의 깨끗한 역사하심 에 의해 형성되었다"라고 한다(《로마서 주석》 3, 8). 그리 스도의 영혼은 로고스와 밀접하게 일치하여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다(《원리론》 II , 2, 5).
그리스도 안에는 하느님의 로고스인 신성(神性)과 예 수의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된 인성(人性)이 매우 밀접하 게 일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오리제네스는 그리 스도론 발전에 매우 중요한 개념이 될 '신인 속성 교환' (神人屬性交換, communicatio idiomatum) 이론을 설파하였 다. 이 이론에 따르면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때, 신성을 지칭하는 특성을 인성에게 적용시켜 말할 수 있는가 하 면, 반대로 인성의 특성을 신성에게 적용시킬 수도 있다 는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라 불린다. 하느님의 아들이 죽
으셨다고 하는데, 이 표현은 물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 는 본성 때문이다. 또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그분은 장차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 안에서 거룩한 천사들과 함 께 오시리라고 예언되어 있다. 이 때문에 모든 성서에는 (그분의) 신성이 인성과 연관된 용어들로 언급되는가 하 면, 그분의 인성은 신성을 나타내는 표현들로 수식되기 도 한다' (《원리론》 II , 2, 3). 사실 이 '신인 속성 교환' 의 이론에 따라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 (Θεοτό- κος)라고 부를 수 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마리아는 인 간 예수를 낳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한 위격 안에 밀접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두 성에 속한 속성들 을 서로 교환하여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다.
교회론 : 오리제네스는 교회를 일컬어 '그리스도 백성 의 모임' (《에제키엘서 강론》 1, 11), '모든 성도들의 모임' (《아가서 주석》 1), '믿음의 백성' (《출애굽기 강론》 9, 3)이 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본 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바오로 신학에 따라 그리스도는 교회의 영혼과 같으며, 교회가 지닌 생명의 원천과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첼수스 반박》 6, 48). 따 라서 그리스도의 몸은 바로 교회이며, 우리는 교회를 구 성하는 일원이 되는 것이다. 오리제네스는 교회가 이 지 상에 있는 하느님의 나라[神國]라고 말한 첫 번째 교부 이다(《예레미아서 강론》 9, 2 : 《요한 복음 강론》 8, 7). 교회 가 하느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 미치는 보편적 성격을 띠며, 그 법은 각 지역에서 정해진 주권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첼수스 반박》 4, 22). 교회가 지금은 다른 나 라 안에서 하나의 나라로 있지만,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 는 로고스의 능력은 마침내 세속의 제국에 승리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로고스로부터 비추임을 받아 "우주의 우 주(κόσμος τοῦ κόσμου)가 된다(《요한 복음 주석》 6, 59). 따라서 이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요한 복음 강론》 3, 5). 교회 안에서만 그리스도께서 인류에게 주신 가르침과 법뿐만 아니라, 우리 구원을 위해 흘리신 피를 찾을 수 있다. 또 이 교회 밖에서는 올바른 믿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단자들의 믿음에는 '믿음' 이라 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로마서 주석》 10, 5). 또 그는 "내 어미가 나를 죄 중에 배었나이다"라는 시편 50장 7절의 말씀을 원죄(原罪)의 근거로 제시하면서 유아 세례의 필 요성을 역설하고, 교회가 죄 사함의 세례를 어린이들에 게 베풀어 온 것은 사도적 기원에 따른 오랜 전통이라고 강조하였다(《레위기 강론》 8, 3 ; 《로마서 주석》 5, 9).
종말론과 영혼의 선재 사상 : 오리제네스는 하느님께 서 세상 마지막 날에 우주 만물을 당신 안에 수렴시켜 '우주의 복원' (ἀποκατάστασις)을 이루실 것이라 하면 서, 잘못을 저지른 영혼은 정화의 불길을 거친 다음 기쁨 의 나라인 낙원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오리제네스는 '영원한 불' 또는 '지옥의 영원한 벌' 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모든 죄인이 구원받게 되며 악마와 사탄까지도 언 젠가는 로고스에 의해 정화되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 였다(《철수스 반박》 8, 72 : 《원리론》 Ⅲ, 6, 3-6). 그런데 이 우주적 복원은 세상 종말이 아니고 지나가는 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플라톤 철학에 영향을 받은 오리제 네스는 이 세상이 있기 전에 다른 여러 세상이 있었으며, 또 앞으로도 세상들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가르쳤 다. 인간이 하느님을 저버리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는 과정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원리론》 Ⅲ . 5, 3). 또 하 느님께서 이성적인 존재들을 미리 만드셨는데, 그 행실 에 따라 천사 · 악마 · 인간 영혼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 은 인간의 영혼이 한 개인 안에 들어가기 전에 선재(先 在)한다는 것을 뜻한다(《원리론》 II , 9, 3-4 : 《첼수스 반박》 1. 32). 그는 영혼들이 전생에서 살았던 상태에 따라 서 로 다른 신분으로 현세에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데, 이것 은 일종의 윤회 사상을 뜻한다. 그의 '우주적 복원' 과 영 혼의 선재 내지 윤회 사상은 정통 교리와는 분명히 배치 된다. 이 주장들은 뒷날 '오리제네스주의 논쟁' 의 핵심 대상이 되었다.
성서의 의미 : 오리제네스는 성서를 단순히 교리나 윤 리적 가르침을 주는 책으로 보지 않고, 비가시적 세상을 반영하는 보다 생생하고 차원 높은 것으로 보았다. 성서 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성서는 과거에 갇혀 있는 죽은 말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직접 건네시는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더구나 신약성 서는 구약성서를 비추어 주지만, 신약성서 자체는 구약 성서의 빛에 의해 그 깊은 의미가 밝혀진다. 둘 사이의 이러한 관계를 결정지어 주는 것이 은유(allegona)이다. 또 오리제네스는 성서의 세 가지 의미 즉 역사적 의미 · 신비적 의미 · 윤리적 의미를 구별한다. 이러한 구별은 '육신' · '영혼' · '영' 이라는 인간의 세 가지 구성 요소 와 상응하며, 완덕에 이르는 세 단계와도 상응한다. 신비 적 의미는 신비의 총체적 또는 우주적 의미를 나타내며, 윤리적 의미는 개인의 내적 의미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한편 오리제네스는 성서의 말마디가 모두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고 강변하였다(시편 스콜리아 1 : 《예레미아서 강론》 21, 2) 그러므로 자구적(字句的) 해석에 어려움이 있을 때 상징적 해설을 하게 되더라도 놀랄 필요가 없다는 것 이다(《원리론》 4, 16). 따라서 오리제네스는 성서의 모든 대목이 다 자구적 의미를 지니지는 못하지만 모두 영적 의미는 갖고 있다' (《원리론》 4, 3, 5)라고 한다. 이 대목은 중세에 성행하는 과장된 은유적 주석 방법에 빌미를 제 공하였다. 필로(Philo, 기원전 20~서기 45)의 성서 해석에 깊이 영향을 받은 오리제네스는 성서의 문자적 의미를 때로는 거부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성서의 모든 대목에 서 영적 의미를 지나치게 찾으려 하였다.
영성 사상 : 오리제네스는 뛰어난 영성 이론을 갖고 이를 실천한 신앙인이었다. 그의 영성 사상은 그리스도 교 영성과 수도자들의 수덕 발전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는 영성의 출발점을 창세기 1장 26절의 말씀에 두고 있는데,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 (Imago Dei)대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닮을 수 있다' (Similtudo Dei) 는 것이다(《원리론) Ⅲ, 6, 1). 더구나 하느님이신 로고스 께서 인간 육신을 입고 육화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 스도를 본받음으로써 하느님과 닮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마태오 복음 주석》 11, 4). 이러한 이중 (二重)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먼저 자아 인식 즉,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방향 정립을 해야 한다(《아가서 주 석》 2. 141-145). 삶의 방향을 올바로 정립한 사람은 자 기의 죄와 악습을 고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여 자신 을 정화시켜야 한다(《민수기 강론》 24, 2). 예를 들면, 교 만의 악습을 고치기 위해 겸손의 덕을 닦으며, 더 나아가 기도와 순례 또는 매일 성서 읽기 등을 하는 것이다(《창 세기 강론》 10, 3). 둘째 단계로, 죄에서 정화된 영혼은 부 활의 희망을 갖고 그리스도와 더욱 닮아지려는 영적 갈 망을 통해 영적 상승을 얻게 된다(《루가 복음 강론》 29 : 《창세기 강론》 1, 7). 마지막 단계로, 영혼은 신비적인 체 험을 통해 그리스도와 신비로운 일치를 이루게 되는데, 그는 이것을 '영적 혼인' · '영적 포옹 이라고 표현한다 (《아가서 주석》 1).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일치하 기 위해 그분의 고통까지 함께 나누어 받으려는 사랑 때 문에 기쁘게 순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요한 복음 주 석》 2. 8). 따라서 순교자와 수덕자는 모두 그리스도의 완 덕을 닮으며 그분과 일치되려는 같은 이상을 갖고 있다 는 것이다. (→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 ; 그레고리 오, 기적자 ; 그리스도론 ; 디디모 ; 디오니시오, 알렉산드리아의 ; 선재)
※ 참고문헌 H. Crouzel, Bibliographie critique d'Origène, Steenbrugge-La Haye, 1971/ The Literature on Origen 1970~1988, Theological Studies 49, 1988, pp. 499~516/ R. Farina, Bibliografia origeniana, Salesianum 32, 1970, pp. 617~702/ P. Nautin, Origène, sa vie et son ocevre, Paris, 1977/ H. de Lubac, Histoire et Esprit, Paris, 1950/ R. Gögler, Zur Theologie des biblischen Wortes bei Origenes, Diisseldor, 1963/ H. Crouzel, Théologie de l'images de Dieu chez Origène, Paris, 1956/ H.U. von Balthasar, Parole et Mystère chez Origène, Paris, 1957/ W. Gessel, Die Theologie des Gebetes nach Oratione> von Origenes, Miinchen, 1975/ M. Harl, Origène et lafonction révelatrice du Verbe Incarné, Paris, 1958. [李瀅禹]
오리제네스 Origenes (18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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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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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오리제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