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레흐트, 야콜 Obrecht, Jacob(1450~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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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레흐트의 16세기 악보.

오브레흐트의 16세기 악보.

신부. 플랑드르 출신의 작곡가. Hobrecht, Hobertus, Obret 라고도 불린다.
[생 애] 오브레흐트는 1450년 11월 22일 베르겐오프 좀(Bergen op Zoom, 현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생의 대부 분을 고향에서 보낸 그의 유년 시절과 음악 교육에 대한 것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버지 빌렘(Willem)이 1480년 이스라엘 성지 순례차 시칠리아 섬에 머물렀고, 1488년 그곳에서 사망했다는 사실 외에는 그의 가문에 관한 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에 관한 첫 공식 기록은 그가 1476년 위트레흐트(Utrecht)에서 합창 지휘자로 활 동하였다는 것이다. 이 활동은 그 후 그의 전생애에 영향 을 미친다. 글라레아누스(H. Glareanus, 1488~1563)의 주장 에 따르면, 이 시기에 에라스무스(D. Erasmus, 1469~1536) 가 오브레흐트의 소년 합창 단원이었다고 하지만 확실하 지 않다. 1479년부터 고향 베르겐오프좀의 합창 지휘자 로 활약하였으며, 또한 이곳에서 1480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1484년에는 캉브레(Cambrai) 주교좌 성당의 악 장으로 활동하였고, 1486년부터 브뤼해(Brugge)에서 합 창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1491년부터 안트웨르펜 (Antwerpen)의 노트르담 주교좌 성당에서 합창 지휘자로 활동하였으며, 이듬해부터는 악장으로 활동하였다. 1496년부터는 다시 고향 베르겐오프좀에서, 1498년에 는 브뤼헤에서 합창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1500년에 지 병으로 브뤼헤를 떠나 1504년까지 안트웨르펜에서 머물 렀다. 지병으로 고통받던 오브레흐트의 1504~1505년 의 생활은 페라라와 피렌체를 여행하며 《화성법》의 저자
아론(Pietro Aron) 등 예술가들을 만난 것 외에는 알려지 지 않고 있다. 그는 1505년에 페라라에서 흑사병에 감 염되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 품] 그는 우선 교회 음악 작곡가였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교회 합창곡들이었으며, 핵심 분야는 미사곡으로 대부분 4성부 편성이다. 오늘날 <사도 베드로>(Petus Apostolus) · <축복받은 육신>(Missa Beata Viscera) . <성 마 르티노〉(De Sancto Martino), · <가시 장미>(Sicut spina rosam) · <당신의 보호 아래>(Sub tuum praesidium) · <하느 님의 어머니>(Salve divina parens) · <하늘의 여왕>(Ave Regina caelorum) · <무장 인간>(L'homme armé) · <포기한 운명>(Fortuna desperata) · <사랑스러운 마리아>(Maria zart 등 26개의 미사곡이 전해진다. 이외에도 <구세주의 어머 니>(Alma redemptoris mater) · <바다의 별>(Ave maris stella) · <구세주 그리스도께 찬양>(Laudes Christo redemp- tori) · <주여 용서하소서>(Parce Domine) 등 교회적인 가 사를 담은 크고 작은 규모의 모테트 32곡과 14개의 세 속 음악이 전해진다.
오브레흐트의 미사곡은 테너 성부에 고정 선율을 넣은 테너 미사곡이 주류를 이룬다. 이 고정 선율은 형식적 요 소로 통상 미사곡 전체를 하나의 음악적 연곡으로 묶어 준다. 특징적인 것은 폴리포니 시대에 '엣 인카르나투 스 (et incarnatus, 사람이 되시어) 등 주요 가사를 호모포니 (homophony)로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곡 전통은 19세기까지 전승되었다. 오브레흐트의 모테트는 조성적 화성의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미사곡보다 진보적이다. 그 의 <마태 수난곡>은 등장 인물들을 다성부적으로 음악화 한 최초의 모테트적 수난곡이다.
오브레흐트는 르네상스의 제3 세대 주자로 특히 뒤페 (G. Dufay, 1400?~1474)의 후기 작품과 동 시대 음악가 밖 누아(A. Busnois, 1430~1492)의 폴리포니(polyphony) 음악 을 수용하여 자신의 언어로 발전시켰다. 그는 민요적인 단순 명쾌한 선율과 규칙적이고 매끄러운 리듬, 부드럽 고 풍요한 음향을 선호하였다. 이러한 그의 미학적 태도 는 서로 다른 선율적 모티프의 고리식 변주 · 오스티나토 (ostinato) · 시퀜스 기법 등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음악에 자연스러움과 생동감 · 통일성을 추구하였다. 오브레흐 트의 첫 전집은1912~1921년 볼프(J. Wolf)에 의해 30 권으로 출판됐다. 새 전집은 1958년부터 사미예(A. Sa- mijers)에 의해 암스테르담에서 작업 중이다.
[평 가] 그의 음악은 동 시대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관 모방 기법에 의한 새 폴리포 니라는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és, 1445~1521)의 시 대 주도적 양식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음악의 첫 발견자' (Coclio) · '미사곡을 하룻밤 사이 에 작곡하던' (Glareanus) · '예술과 재능이 대단히 출중한 학자 음악가' (Sardi)라는 동 시대인들의 다양한 평가를 받 았다. 그의 음악 수준에 대해서는 '옛 음악' (Aron)이라 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지만, 단순성과 고전적 절제를 갖춘 음악' (Erasmus)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 참고문헌  조선우 · ,《음악은이》, 음악춘추사, 2000, pp.
141, 230~243/ L. Finscher, 《MGG》 9, pp. 1814~1822/ E.H. Sparks, 《NGDMM》 13, pp. 477~485/ 《RML》, Personenteil 1, 1961, pp. 333~334. 〔趙善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