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아, 월리엄 O'Shea, William(1884 ~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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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주 교. 제3대 평양 지목구 장. 세례명은 굴리엘 모. 한국 성은 오(吳). 1884년 미국 뉴욕에 서 출생하여 1917년 메리놀회 소속으로 사 제 서품을 받고 총장 비서로 10여 년 간 재 임하였다. 1938년 6 월 일본에서 잠시 사 목 활동을 하다, 그 해 10월 23일 평양 지목
구장에 임명되었다. 1939년 7월 11일 평양 지목구가 대 목구(代牧區)로 승격됨에 따라 오세아 신부는 그 해 10 월 29일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비오 12세의 주례로 주교로 서품되었고, 아시아의 여러 성지(聖地)를 순례한 뒤 1940년 1월 말에 귀환하였다. 평양교구에서는 환영 회와 축하식을 거행하려고 했으나, 오세아 주교가 비상 시국임을 강조하고 이를 사양하여 모든 경축 행사를 생 략하였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평양교구 내 메 리놀 외방전교회 성직자와 수도자 전원이 구속되었고, 교구장인 오세아 주교는 보좌 수사와 함께 서포(西浦) 주교관에 감금되었다. 그 뒤 오세아 주교로부터 본국 철 수를 약속받은 일본 경찰은 비밀리에 평북 지방에 주재 하던 메리놀회원들을 신의주 진사동 본당 사제관에, 평 남 지방 회원들을 평양 시내 양촌에 감금하였다. 오세아
주교는 사태의 긴박함을 예측하고 1941년 12월 13일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 장정온(張貞溫, 앙네다) 수녀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의 초대 원장으로 임명하였는 데, 이를 계기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메리놀회 로부터 분리 · 독립 되었다. 총독부의 교회 탄압이 점점 심해지면서 1942년 6월 1일 오세아 주교를 비롯한 메리 놀 외방전교회 선교사 전원이 미국으로 강제 추방당하였 다. 오세아 주교는 미국에서 사목 활동을 하던 중 1945 년 2월 27일 사망하였다. (→ 메리놀 수녀회 ; 메리놀 외 방전교회 ; 평양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平壤教區史 編纂委員會 編, 《天主 敎 平壤敎區史》, 분도출판사, 1981/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50년사 편찬위원회 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50년사》,분 도출판사 1983.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