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본당

五松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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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소속 본당. 충북 청원군 강외면 오송리 246- 3 소재. 1960년 9월 8일 청주(현 서운동) 본당에서 분 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천사의 모후. 관할 구역은 청 원군 강내면, 강외면 전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사곡 공 소 1개소. [교 세] 1965년 840명, 1971년 1,200명, 1976년 1,265명, 1980년 1,135명, 1985명 1,013명, 1990년 1,381명, 1995년 1,643명, 2000년 1,512명. [역대 신부] 초대 주노(Zunno) 미카엘(1960. 9~1966. 6), 2 대 이종태(李鍾泰) 베드로(1966. 6~1969. 5), 3대 이한구 (李漢求) 라우렌시오(1969. 5~1970. 10), 4대 이중권(李仲 權) 마태오(1970. 10~1972. 10), 5대 김원택(金元澤) 프란 치스코(1972. 10~1976. 5), 6대 윤기국(尹起國) 요한(1976. 5~1979. 12), 7대 정충일(鄭忠一) 안토니오(1979. 12~1980. 8), 8대 서정혁(徐廷赫) 프란치스코(1980. 8~1981. 9), 9 대 송열섭(宋悅燮) 가시미로(1981. 9~1984. 8), 10대 박종 흠(朴宗欽) 스테파노(1984. 8~1985. 1) , 11대 김권일(金權 壹) 도나도(1985. 1~1989. 7), 12대 박영봉(朴英奉) 마태 오(1989. 7~1992. 7), 13대 최광조(崔光祚) 프란치스코 (1992. 7~1995. 11), 14대 오동영(吳東泳) 모세(1995. 11~ 1999.8), 15대 연용모(延龍模) 베드로(1999. 8~현재)
오송 본당의 관할인 강내면 · 강외면 지역에 복음이 전 래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1911~1912년에 강외면
호계리(虎溪里, 혹은 상정리)에 명원당 공소가 설립되고, 1918~1919년에는 강외면 봉산리(蜂山里)에 벌미 공 소가 세워지면서 신앙 공동체가 발전한 듯하다. 그러나 비록 1910년대에 공소가 설립되었지만, 명원당 공소 지 역은 1907년 이전부터 이미 신자들이 생활하고 있었고, 벌미 공소 지역도 1907년에는 신자들에 의해 경당이 지 어지기도 하였다. 당시 이 지역은 장호원(현 감곡) 본당의 관할로서, 대부분의 신자들은 옹기 굽는 일에 종사하였 는데, 1932년 10월 청주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 지역은 청주 본당의 관할로 편입되었다.
한편 청주 본당은 한국 전쟁 이후 신자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이에 1957년에 부강 본당과 내덕동 본당을 분리하였고, 1960년에는 오송 본당의 분리도 계획하였 다. 그 결과 교구에서는 그 해 5월에 성당 부지를 마련한 뒤, 9월 8일에 본당을 설립하고 주노 신부를 초대 주임 으로 임명하였다. 주노 신부가 부임하면서 이듬해에 사 목회와 빈천시오회가 조직되어 본당으로서의 면모를 갖 추어 갔고, 12월 25일에는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1963년에는 수녀원 건물을 매입한 뒤 예수 성심 시녀회를 초청하였고, 같은 해에 사 곡 공소(강내면 사곡리)와 옥산 공소(옥산면 가락리)를 설립 하여 공소 사목에도 힘을 쏟았다. 또 1964년 4월에는 신자 38명의 출자로 '신용 협동 조합' 을 발족시켰고, 1966년 9월에는 쌍청 공소를 설립하였으며, 1967년 8 월에는 본당의 강당을 신축하였다. 그런 가운데 신자수 가 증가하자 1971년 2월에 강서 · 새터말 · 신전 공소를 수동 본당으로 이관하였다.
이처럼 설립 이래 꾸준히 성장해 온 오송 본당은 1970년대 들어 신자들의 교육, 신심 활동 및 지역 선교 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1971년 2월에 '성심유치원' 을 개원하여 무료로 운영하였고, 1973년부 터는 꾸르실료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또 1977년 8월에 성모 동굴을 축성하여 성모상을 새롭게 단장하였고, 1979년 1월에는 울뜨레야를 설립하였다. 1981년에 본 당 사목의 효율화를 위해 구역 분과를 조직하였고, 1982년에는 오송 1구 지역에서 시행되던 '월요 기도 모 임' 과 '월 기도 모임' 을 모든 구역으로 확대 실시하였으 며, 1983년에는 '하늘의 여왕' 꾸리아를 구성하였다. 뿐 만 아니라 오송 본당은 지역 사회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 져, 1986년 3~4월에 농촌 문제와 관련하여 농민 모임 과 농민 교육을 실시하였고, 11월에는 KBS 시청료 거부 운동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1988년 11월에는 수세 납부 의 부당성에 대한 교육도 실시하였다.
1990년대 들어 오송 본당은 신자들의 본당 활동을 적 극적으로 유도하였다. 그리하여 1990년 5월에 청년회를 발족시켰고, 30~40대 남자 신자들의 모임도 정기적으 로 개최하였다. 이와 함께 본당의 시설도 정비해, 1991 년 11월에 수녀원을, 1993년 11월에는 사제관을 신축 하였고, 1996년 7월에는 성당 조경 공사를 완료하였다. 이어 1997년 6월에 옥산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 분리하 였고, 8월에는 대희년맞이 묵주 기도 1,000만 단 봉헌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 1998년 10월에는 강당 보수 공 사를 마치고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1999년 5월에는 민족 분단 55주년을 맞아 '55일 고리 기도' 를 시작하였 다. 그리고 2000년 7월에 8주에 걸쳐 성체 신심 세미나 를 개최하였고, 8월에는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아 《오송 본당 40년사》를 간행하였다.
2002년 현재 오송 본당은 '가정 성화' 라는 사목 지침 아래 전 신자가 신앙의 내실화를 기함은 물론,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통해 지역 복음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본당사 보유편)/ 천주교 청주교구청, 《청주교구 연감》, 1995/ 천주교 청주교구 오송 교회, 《오송 본당 40 년사》, 2000.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