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본당
廣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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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경안리 84 소재. 1958년 6월 27일 서울교구 신당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안드레아 김대건. 관할 구역은 광주군 광주읍, 초월면, 실촌면, 오포면, 중부면 일부. 〔교 세〕 1964년 1,573명, 1974년 1,700명, 1984 년 1,525명, 1993년 2,894명. 〔역대 신부〕 초대 이삼복 (李三馥) 요한(1958. 7~1959. 9), 2대 이계항(李啓恒) 베 드로(1959. 9~1964. 7), 3대 박지환(朴址煥) 요한(1964.7~1970. 7), 4대 한봉주(韓鳳株) 클레토(1970. 7~1971.3), 5 대 배영무(1英武) 라우렌시오(1971. 3~1976. 11), 6대 박 철(朴喆) 바오로(1976. 11~1977. 12), 7대 류진선(柳眞善) 레오(1977. 12~1980. 8), 8대 서강하(徐康夏) 마태오(1980.8~1983. 2), 9대 최경환(崔敬煥) 마티아(1983. 2~1984. 11), 10대 송병수(宋炳秀) 시몬(1984. 11~1988. 2), 11대 서동찬 (徐東澯) 야고보(1988. 2~1992. 2), 12대 한종훈(韓鍾勳) 스테파노(1992. 2~현재). 〔설립과 발전〕 한국 초기 천주교 수용 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주어사 천진암이 있는 경기도 광주에는 박해 시대부터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890년 현 광주 본당 관할 구역에는 광주면(廣州面, 현 광주읍), 실촌면 (實村面), 오포면(五浦面) 등에 왕림(갓등이) 본당에서 관할하는 공소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광주 본당의 모 태가 된 광주읍 공소, 즉 경안 공소는 1936년 구산 망월 리에 거주하던 김정해(프란치스코) · 하이순(데레사) 부 부가 광주 읍내로 이사 오면서 혜화동 본당 관할로 시작 되었다. 1948년 신설 신당동 본당으로 관할이 변경된 이후, 4세대의 신자들이 8평 규모의 정사각형 초가집 공 소 강당을 건립하였고, 1957년 10월 서울교구의 지원으 로 경안리 36-39의 사가(私家)를 매입하여 본당 설립을 준비하였다. 1958년 7월 8일 경안 공소는 서울교구 경안(京安) 본 당으로 설립되고 2대 주임 이계항 신부 때에 성당 뒷편 대지 340평을 매입하였는데 인근에 시장이 개설되었기에 3대 주임 박지환 신부 때에 1,112평의 현 성당 부지 를 매입하였다. 1963년 서울대교구에서 신설 수원교구 로 본당의 소속이 변경되었고, 서울 근교의 발전으로 신 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1967년 1월 신장 본당을 분할하 였다. 이어 1971년 3월, 골조만 세워진 성당에 스티로폴 로 내부 방음 공사를 하고 의자 등을 준비한 후 미사를 봉헌하였고, 공사 시작 9년여 만인 1975년 12월 연건평 172평의 성당을 완공하여 '광주 본당' 으로 명칭을 변경 하였다. 한편 1971년 5월 24일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사랑의 학교 를 개설하고, 신자수의 증가로 1977년 12 월 도척 본당을 분리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샬트르 성 바 오로 수녀회 분원을 개설하였다. 이어 1982년 3월 유치 원을 개원하고, 1990년 교육관을 증축하였으며, 1991 년 9월 1일부터 새 성당 부지 매입을 위한 모금을 시작 하였다. (→ 수원교구) ※ 참고문헌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교구 30년사》, 1993. 〔尹善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