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본당

烏川本堂

글자 크기
9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세계 4리 822-1 소재. 1988년 7월 1일에 구룡포(九龍浦) 본 당의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주보는 성 정하상 바오로. 관할 구역은 포항시 남구 오천읍 전 지역과 포항 시 남구 청림동,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일부 지역. [교 세] 1989년 878명, 1994년 1,702명, 1999년 1,891명, 2001년 1,847명. [역대 신부] 초대 장영일(張永 日 그 리산도(1988. 7~1991. 6), 2대 이정효(李丁孝) 예로니모 (1991.6~1993.9), 3대 손무진(孫武辰) 사도 요한(1993.9 1995. 2), 4대 김두신(金斗信) 세례자 요한(1995. 2~1998. 8), 5대 정성우(鄭聖羽) 바오로(1998. 8~현재).
1958년 심우택(미카엘, 초대 공소 회장)의 개인 사택 (현 龍德里)에 죽도(竹島) 본당 소속 오천 공소가 설립되 었고, 1963년부터는 오천 면사무소 공회당을 임시 오천 공소로 사용하였다. 그러던 중 현 본당 부지의 주인인 김 남수로부터 땅을 개간해 준 대가로 100평을 희사받았 고, 이후 갈평 수녀원에 부임한 델랑드(L. Deslandes, 南大 榮) 신부가 주변의 땅을 매입하여 성당 부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사 및 건물 신축에 필요한 자재 구 입 비용의 부족으로 7~8년 동안 부지를 방치해 두다가 죽도 본당 신자들의 협조로 공사를 시작하여 1977년 8 월 15일에 공소 건물(60평)을 완공하여 준공식을 치렀 다. 그 후 오천 공소는 1984년 2월 12일에 대해(大海) 본당 공소로, 1986년 5월 13일에는 구룡포 본당 공소로 이관되었다.
1988년 7월 1일 오천 공소가 구룡포 본당에서 분리되 어 오천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장영일 신 부가 부임하였으며, 1989년 5월 수녀원과 사제관이 건
립되었다. 그리고 공소 시절부터 사용하던 건물 내부의 협소함으로 성당의 증축이 불가피한 실정이었기 때문에 1989년 8월에 성당 증축 공사를 시행하였고, 1990년에 는 기존의 건물을 이용하여 청년회 회합실과 교리실로 만들었다. 2대 주임 이정효 신부는 전 신자 가정 방문을 실시하여 신자 배가 운동에 힘을 기울였고 신자들의 화 합과 일치를 도모하는 한편, 1991년 8월에 가난하고 소 외당한 사람들을 돕는 등 사회 봉사에 기여하는 취지에 서 '인성회' 를 재조직하였다. 1993년에 새 성당 건립을 위한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3대 주임 손무진 신부는 1994년에 기도하는 가정 공동체라 는 사목 지침을 가지고 가정 사목에 매진하였다. 4대 주 임 김두신 신부는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노력으로 지 속적인 소공동체 교육과 영상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성 전 건립 기금 조성 및 장기적인 본당 운영 계획을 세웠 다. 김두신 신부 재임기에는 본당 사무 행정 업무의 체계 화와 전산화가 본격화되었고, 1997년 3월에는 전 신자 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가 실시되어 '오천 성당 발전 계 획안' (단 · 중 · 장기)을 마련하였다. 한편 본당에서는 포 항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본당 10년사' 의 편찬을 계획하였고,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본당사 편찬 작 업을 '포항 복음화 100년사' 로 확대하여 1998년 8월 《포항 선교 100년 오천 성당 10년》을 발간하였다. 5대 주임 정성우 신부는 신자 재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신앙 성숙을 위한 피정 · 특강 · 성서 쓰기 및 성지 순례를 실 시하였으며 친교의 명찰 달기 운동 등을 통해 신자 상호 간 교류 및 일치를 도모하고 있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오천 교회, 《포항 선교 100년 오천 성당 10년》, 199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