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광주시 북구 오치2동 668-90 소재. 1985년 11월 10일 중흥동(中興洞) 본당에서 분 리 · 설립되었다. 주보는 성 바오로 사도. 관할 구역은 매 곡동 전 지역과 오치동, 삼각동, 용봉동 일부 지역, 담양 군 대전면(대치 공소). [교 세] 1986년 440명, 1988년 858명, 1994년 4,606명, 2000년 5,377명. [역대 신 부] 초대 캠피언(L. Campion, 파) 라흘린(1985. 11~1988. 11), 2대 모니건(D. Monaghan, 민) 디오니시오(1988. 11~ 1992. 11), 3대 클리어리(C. Cleary, 신) 고르넬리오(1992. 11~1996.8), 4대 맥고너글(D. McGonagle, 류) 디오니시오 (1996. 8~1999. 7), 5대 강종훈(姜鍾勳) 안드레아(1999. 7~ 현재).
1980년대 초 광산군과 담양군의 양 군에 접경한 오치 동 본당 관할 구역에는 불과 10세대 미만의 신자 가정이 산재해 있었는데, 신자 상호간에 별다른 접촉이 없었고, 신자들은 중흥동 본당의 미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 던 가운데 31사단에 사목상 출장을 다니던 박중신(朴伸 信, 시몬) 군종 신부가 부대 근처 31본당에서 미사를 집 전할 때, 신자들이 미사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성서 공부와 예비자 교리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중흥동 본
당에서 레지오 마리애를 하던 4명의 여성 신자들이 1982년 5월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을 설립하여 새 신 자들을 입단시키고 회합을 가졌는데, 레지오 단원들의 정성 어린 노력과 적극적인 봉사 활동으로 신자수가 증 가하자 중흥동 본당의 버크(M. Bourke, 부) 신부가 적당 한 장소가 마련되면 오치동에서 미사를 집전하겠다고 약 속하였다.
1983년 6월 29일 광산 김씨 대종각 사무소로 건립된 3층 건물 중 1층을 전세 임대하여, 7월 10일 버크 신부 집전으로 첫 미사가 봉헌되고 오치 공소가 설립되었다. 버크 신부는 공소 활성화를 위해 사도회를 조직하고 구 역을 5개 반으로 편성하였는데, 신자수가 증가하여 구역 을 7개 반으로 개편하는 등 본당 승격을 위한 노력을 아 끼지 않았다. 1985년 11월 10일 오치동 공소가 본당으 로 승격되면서 캠피언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 다. 캠피언 신부는 본당의 제반 여건이 미비한 실정을 감 안하여 도시 개발에 맞춘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당을 육 성하기 위해 공소 시절의 사도회 임원을 그대로 임명하 고 사도회 운영을 계속하도록 하였다. 1987년 2월에 초 대 공소 회장 박인동(바오로)이 개인 소유의 대지 400 평을 성당 부지로 봉헌하였으며 교구에서 추가로 200여 평의 성당 부지를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성당 건립이 활 발히 진행되고 있던 시기에 2대 주임 모니건 신부가 부 임하였는데, 신자들은 모금과 경품권 판매, 생활용품 바 자회를 개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1989년 4월 기 공식을 갖고, 대지 600평, 연건평 470평, 지상 2층, 지 하 1층의 성당을 완공하여 1991년 6월 6일 윤공희(尹 恭熙, 빅토리노) 대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3대 주임 클리어리 신부의 재임기에는 아파트 건립과 인 구증가로 교육관과 사제관 및 수녀원 건립의 필요성에 따라 소공동체 조직을 21개 구역 80개 반으로 재편성하 였고, 1994년 12월에 교육관 골조 공사와 수녀원이 완 공되었다. 1999년에 14년 동안 오치동 본당의 설립과 발전에 공헌했던 골롬반회 신부들이 교구의 결정에 따라 철수하게 되었고, 첫 한국인 사제로 5대 주임 강종훈 신 부가 부임한 이후 중단되었던 공사와 건립 공사가 재개 되어 2001년 5월에 소성당과 복지관 · 교육관 · 사제관
이 완공되었다. 오치동 본당은 이 지역의 꾸준한 인구 증 가로 1994년 8월에 서산동 본당, 1999년 2월에 삼각동 본당, 2000년 8월에는 용봉동 본당을 분가하였다.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출판사, 1990. [李恩周]
오치동 본당
梧峙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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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