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플랑드르 악파의 작곡가.
[생 애] 1420년경 플랑드르 지역 동부의 테르몽드에 서 출생한 그의 유년 시절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오케헴은 뱅슈아(G. Binchois, 1400~1460)로부터 음악을 배운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1443/1444년에 안트웨르 펜 주교좌 성당 성가대의 가수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48년에 부르봉가(家) 샤를 1 세 공작의 물랭 궁정 악단 가수가 되었고, 1452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약 45년 간 파리의 프랑스 궁정 신부와 악장으로 활동하였다. 1465년부터는 황제 경당의 수석 악장을 겸임하였다. 샤를 7세(1403~1461)는 1456~ 1459년 사이에 그를 투르에 있는 생 마르탱 수도원의 재무관으로 임명하여 그의 음악적 탁월함을 공인하였다. 이것은 오케헴에게 명예와 부를 가져다 주었다. 그는 1495년 투르에서 사망하였다.
[작 품] 오케헴은 뒤페(G. Dufay, 1400~1474), 뷔누아 (Antoine Busnois, 1430~1492)와 함께 '음악의 인간화' 를 앞세우며 하느님 중심적인 중세 음악과의 차별화를 시도 하였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프랑스의 고딕적 · 신비적 음악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그의 독창성은 여기서 비롯 된다. 그는 수직적 · 화성적 면을 선호하던 뒤페 등 동 시 대 음악가들과는 달리 수평적 · 선율적인 면을 강조하였 다. 그의 선율은 영국과 이탈리아적인 명쾌함을 포기하 고, 작은 음가의 음들과 싱코페이션(syncopation)으로 더 복잡하다. 리듬 역시 불규칙적이다. 이렇게 그의 선(線) 적 진행은 휴지(休止, rest, 쉼표)와 종지(終止, cadence, 마침) 등 뚜렷하게 구분되는 부분들마저 뒤엉키게 하며, 시대의 구조적 투명성을 벗어난다. 그의 폴리포니 음악 은 흐르는 성부들의 비대칭적 구조 안에서 마치 범람하 는 홍수처럼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
오케헴은 교회 음악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의 언어는 대위법이었으며, 핵심 창작 부분은 미사곡이었다. 3개의
미완성 미사곡을 포함하여 <머리>(Caput) · <주님의 여 종>(Ecce ancilla Domini) · <무장 인간>(L'homme armé) · <비율 미사>(Missa Prolationum) 등 17개의 미사곡이 전해 진다. 그리고 최초의 다성 연미사곡 <레퀴엠>(Requiem, 2~4성부) · 그레도(Credo) · 낱개의 미사곡 부분들이 있 다. 주로 4성부로 작곡된 그의 미사곡들은 4종류로 세분 된다. 즉, 고정 선율의 위치에 따라 테너 미사곡과 디스 칸투스(discantus) 미사곡, 상성부에 새로운 노래 선율을 추가한 디스칸투스 테너 미사곡 그리고 고정 선율이 없 는 자유로운 미사곡 등이다. 이 밖에 스승 뱅슈아의 죽음 을 애도하는 <그대는 상처 입었도다>(Tu as navré), 5성부 의 <마리아여 기뻐하소서>(Gaude Maria) , 놀라운 사건으 로 평가된 36성부의 합창곡 등 7곡의 모테트와 <카논 상 송> 등 22곡의 상송이 전해진다. 오케함 전집으로는 1927년부터 플라메낙(D.Plamenac) 펴낸 두 권의 미사 곡집이 있다.
[평가와 의의] 오케헴에 대한 동 시대의 평가는 사뭇 긍정적이다. 그는 권력 앞에 비굴하지 않으며 약자들을 돕는 당당하고 다감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많은 조사(弔詞)들은 그를 탁월한 음악가, 최 대의 상송 작곡가,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 1440~ 1521) 등 많은 제자를 길러 낸 훌륭한 스승으로 평가한 다. 이들은 오케함이 사용한 모티프 선율의 자유 모방 기 법을 폭 넓게 수용하며 폴리포니 양식을 발전시켰다. 특 히 조스캥 데 프레는 몰리네가 쓴 조사로 스승의 죽음을 애도한 5성부의 모테트와 주어진 선율을 모든 성부가 돌 아가며 모방하는 일관 모방 기법의 폴리포니 작품들로 아 카펠라(a cappella) 음악의 첫 절정기를 이루었다. 오케 헴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보다 그가 미사곡들로 교회 음 악의 표본적 구조를 마련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의 진지한 음악 언어와 도덕적 진지함은 젊은 후학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서양의 다성 음악 발전에 결정적 인 역할을 담당했다.
※ 참고문헌 조선우 · 홍정수, 《음악은이》, 음악춘추사, 2000, pp. 230~245/ D. Plamenac, 《MGC》 9, pp. 1825~1838/ L.L. Perkins, 《NGDMM》 13, pp. 489~4961 《RML》, Personenteil 1, 1961, pp. 335~336. 〔趙善字〕
오케험, 장 Ockeghem, Jean(1420~1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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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