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소속 본당. 군산시 옥서면 옥봉리 74-12 소 재. 1984년 9월 17일 월명동(月明洞) 본당 소속의 옥봉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조윤호 요 셉. 관할 구역은 군산시 옥서면 옥봉리, 선연리 전 지역 과 옥구읍 어은리, 수산리, 이곡리, 오곡리, 상평리, 선 제리 전 지역. 관할 공소는 수산 1개소. [교 세] 1985년 798명, 1990년 1,111명, 1995년 1,091명, 2000년 1,154명. [역대 신부] 초대 이재후(李載厚) 토마스(1984. 9~1987. 1), 2대 김병환(金柄煥) 사도 요한(1987. 1~1990. 5), 3대 박종상(朴鍾祥) 가브리엘(1990. 5~1993. 2), 4대 왕수해(王壽海) 세례자 요한(1993. 2~1994. 1), 5대 김태 윤(金泰潤) 안드레아(1994. 1~1998. 1) 6대 이동(李東) 아우구스티노(1998. 1~2001.8), 7대 양석현(楊錫顯) 세례 자 요한(2001.8~현재).
[공소 시기] 현 옥봉 본당이 있는 지역은 원래 군산(群 山, 현 둔율동) 본당의 관할 구역이었다. 이 지역에서 맨 처음 형성된 신앙 공동체는 1940년에 설립된 수산 공소 이다. 이 수산 공소는 이종대 가족과 이이명 가족이 용안 과 어은에서 이사 와 이석기 집에서 모임을 가지면서 시 작되었다. 그리고 옥봉 공소가 1942년 4월 신설되었는 데, 이 공소는 신자 4세대 32명이 어은 공소에서 분리되 어 설립한 것이다. 이 가운데 수산 공소는 1957년 강당 을 건립하였다. 이들 두 공소는 1961년 11월 8일 월명 동 본당이 군산 본당에서 분리 · 신설되면서 관할 본당이 바뀌어 수산 공소는 둔율동(屯栗洞) 본당에, 옥봉 공소 는 월명동 본당에 각각 소속되었다. 수산 공소는 1979 년 1월 30일 오룡동(五龍洞) 본당의 신설로 관할 구역 이 조정되면서 다시 팔마(八馬) 본당에 소속되었다.
옥봉 공소는 설립된 지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강당 마련에 나섰다. 공소 회장 이동춘(바오로)과 공소 신자들은 1964년 2월 강당 건립에 뜻을 모으고, 월명동 본당 주임 김이환(金二煥, 스테파노) 신부와 미 군종 신 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들의 재정적 지원으로 같 은 해 2월 옥봉리 장전 마을에 소재한 대지 320평을 구 입한 다음 40평의 건물을 건축하여 공소의 강당과 유치 원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 해 3월 인보 성체 수도회 수녀들이 파견되어 전교와 유치원 운영을 담당하였다. 이 유치원은 3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만 운영되었지만 사 회 계몽 · 유아 교육 · 부녀자 교육 등 지역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또한 착한 목자 수녀회도 1966년 5월 옥봉리 수라 마을에 분원을 마련하였다. 이 수녀들은 비 행장 근처의 윤락 여성 선도 사업과 지역 내 미취학 아동 의 교육 사업을 전개하였다. 이를 위하여 중등 교육 3년 과정의 무료 직업 훈련소를 운영하였는데, 목공 · 양재 · 편물 · 미용 기술 등을 가르쳤다. 1975년까지 약 1,120 명을 수료시키고, 약 670명을 검정 고시에 합격시키는 성과를 올렸으나 그 해 철수하고, 1976년에 거룩한 말 씀의 회가 진출하여 양로원 성언 복지원을 개원하였다.
〔설립과 발전] 1980년부터 매주일 공소를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고 예비 신자 교리를 실시해 온 월명동 본 당 이재후 신부와 신자들의 적극적인 전교 활동에 힘입 어, 2년 만에 신자수가 200명을 넘고 다시 2년 후에 400명을 넘게 되었다. 이렇게 신자수가 증가하면서 양 로원을 겸한 공소가 비좁아 불편을 겪게 되자, 신자들은 각 본당을 순회하며 물품을 파는 등 자발적으로 본당 설 립 기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렇게 수년 간 모금한 재원으로 옥구군 옥구읍 옥봉리 74-12번지에 소재한 전 답 800평을 매입하여 본당 설립 부지를 마련하였다. 그 러자 1982년 11월 월명동 본당과 공소의 신자들도 옥봉 본당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한 기도 운동을 전개하였다. 교 구에서도 1984년에 있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 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옥봉 본당 설립을 추진하였다. 마침내 1984년 9월 16일 교구장 박정일(朴正一, 미카 엘) 주교 집전으로 옥봉 본당 건립 기공식이 거행되었으 며, 그 다음날 교구에서는 옥봉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그 동안 본당 설립을 위해 노력
해 온 월명동 본당의 이재후 신부를 임명하였다.
이재후 신부는 1984년 10월 옥봉리 74-36번지에 있 는 집을 매입하여 임시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신자들 이 400여 명밖에 되지 않고 모두 가난하였기 때문에 성 당 건축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재후 신부는 교구 내 여러 본당과 서울의 여러 본당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성당을 완공하여 1985년 5월 봉헌식을 거 행하였다. 2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병환 신부는 1987년 2월 까리따스 수녀회 분원을 본당에 마련하여 사목 활동 을 돕게 하였고, 3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종상 신부는 1992년 10월 소룡동(少龍洞) 본당이 신설됨에 따라 관 할 지역 가운데 미성동과 산북동을 소룡동 본당으로 이 관하였다. 4대 주임 왕수해 신부가 사목하고 있던 1993 년 6월에 까리따스 수녀회 분원이 본당에서 철수하였다. 5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태윤 신부는 1995년 2월 성모 성심 수녀회 분원을 두어 사목 활동을 돕게 하였다. 또한 본당 설립 12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 5월 본 당에 나눔의 방을 신축하여 축복하였고, 같은 해 10월 수산 공소 강당(대지 150평 · 건평 39평)을 신축하여 축복 한 데 이어 11월 18일에는 서수면에 성언 복지원(대지 1,900평 · 연건평 399평 · 지상 3층)을 신축하여 1997년 12 월에 준공하였다. 관할 구역 조정으로 성언 복지원은 다 음해 3월 대야(大野)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7대 주임으 로 부임한 양석현 신부는 사회 복지, 그중에서도 장애인 들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사목 활동을 전개하 고 있다. (→ 월명동 본당 ; 전주교구)
※ 참고문헌 《천주교 전주교구사》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徐鍾泰]
옥봉 본당
玉峰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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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