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특별시 성동구 옥수1동 511-12 소재. 1973년 10월 1일 금호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부활. 관할 구역은 옥 수동 전 지역. [교 세] 1973년 945명, 1978년 1,471 명, 1983년 2,084명, 1988년 3,270명, 1993년 3,522 명, 1997년 3,466명, 2000년 4,016명. [역대 신부] 초 대 이건(T.R. Egan, 도명헌) 토마스(1973. 10~1978. 1), 2대 플레밍(J.A. Fleming, 현안신) 야고보(1978. 1~1988. 8), 3대 정월기(鄭月基) 프란치스코(1988. 8~1991.8), 4대 이홍근 (李洪根) 스테파노(1991. 8~1996. 9), 5대 송영준(宋榮峻) 비오(1996. 9~2001. 2), 6대 한영만(韓榮萬) 스테파노 (2001. 2~9), 7대 박선용(朴先用) 요셉(2001. 9~현재).
옥수동 본당의 신설은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의 이건 신부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건 신부는 1973년 초 본당 신설의 뜻을 가지고 본부에서 지원해 준 자금으로 옥수 동 385번지의 대지 468평을 매입한 다음 같은 해 10월 1일 서울대교구의 승인을 받아 옥수동 본당을 금호동 본 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하였다. 초대 주임으로는 그 동안 본당 설립을 준비해 온 이건 신부가 임명되었다. 이건 신 부는 1974년 6월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여 완공한 뒤 그 해 9월 봉헌식을 가졌으며, 1976년에는 레지오 마리 애 쁘레시디움 '바다의 모후' 를 처음으로 발족하였다. 그리고 1977년 3월 임시로 본당 주임을 맡고 있던(1976. 4~1977. 12) 매키니스(D. MacInnis, 마진학) 신부는 한국에 서 처음으로 매리지 엔카운터(M.EE) 운동을 시작하였다.
2대 주임으로 부임한 플레밍 신부는 1979년 9월 청소 년을 위한 베리타스 야간 학교의 문을 열어 학생 40명을 입학시켰고, 1980년 3월에는 본당 지역 안의 노인들을 위한 노인 학교 '불로대학' 을 설립하였다. 또한 지하철 3호선과 동호 대교의 건설로 성당 이전이 불가피하게 됨 에 따라 1980년 3월 기존의 성당 부지를 팔고 그 다음 달에 옥수동 511-12번지에 위치한 현 성당의 대지(350 평)를 매입하였다. 1984년 5월 경갑룡(景甲龍, 요셉) 주 교의 집전으로 새 성당 기공 미사를 가진 데 이어 1985 년 4월 28일에 이를 완공(총 건평 513평)하고 김수환(金 壽煥, 스테파노) 추기경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아울러 1984년 9월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 원을 마련하여 사목 활동을 돕게 하였다.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홍근 신부는 1992년 7월에 교 리실 건물을 증축하여(연건평 190평) 준공 검사를 마쳤으 며, 1993년 3월에 컴퓨터를 설치하여 본당 업무를 전산 화하였고, 같은 해 10월에는 본당 설립 20주년을 맞아 체육 대회 및 야외 미사를 개최하였다. 5대 주임으로 부 임한 송영준 신부는 성모 신심 묵상회를 개최하여 신자
들의 신심을 북돋아 주었고, 1998년 10월에는 본당 설 립 25주년을 맞아 '공동체의 날' 행사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정진석(鄭鎭奭, 니콜라오) 대주교가 미사를 집전하 였다. 또한 2000년 4월에는 대지 45.5평을 매입하여 본 당의 부지를 확장하였고, 6대 주임 한영만 신부 때인 2001년 5월에 본당 부속 건물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같 은 해 9월에 완공하였다. 7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을 맡고 있는 박선용 신부는 새 천년기 교구의 발전과 쇄신 을 위해 시작한 시노드에 전 본당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고, 또한 신자들이 더욱더 친밀하게 친 교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데 사목 활동의 중점을 두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옥수동 본당의 개황 및 약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옥수동 성당, 2002. [편찬실]
옥수동 본당
玉水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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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