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성서에서의 옥중 서간
[정 의] 옥중 서간은 신약성서 중에서 바오로가 수감 생활을 하는 중에 썼다고 간주되는 편지들을 하나로 묶 어 부르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에페소서, 필립비서, 필 레몬서, 골로사이서 등 네 개의 편지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 편지들에는 바오로가 감옥에서 집필했음을 알려 주는 구절들이 있다. "주님 안에 수인이 된 나(바오로)는 권고 합니다" (에페 4, 1). "내가 갇혀 있는 것이 그리스도 때문 이라는 사실이 온 부대와 그 밖의 모든 이들에게도 분명 히 알려졌으며···." (필립 1, 13).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갇혀 있는 나 바오로와 교우 디모테오가 우리의 사랑하 는 협력자 필레몬 그대와···(필레 1, 1). "여러분은 갇혀 있는 나를 기억해 주시오.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있기 를 빕니다)” (골로 4, 18).
그 외에도 편지에 같은 인물들이 교차해서 등장하고 (디모테오, 디키고, 오네시모, 아르킵보, 에바프라 등), 수감된 곳을 정확히 밝히지 않으며, 곧 석방되리라는 희망이 들 어 있고, 특히 골로사이서와 에페소서 사이에는 신학 적 · 문체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는 공통점 이 있다.
[집필 장소와 연대] 바오로가 수감 생활을 했다는 보 도는 사도 행전과 바오로의 친서들에 등장한다. 사도 행 전에 보면 바오로가 필립비에서 수감되었다고 하며(16, 16-40), 가이사리아에서 옥고를 치렀다는 보도도 나오고 (24-26장), 로마에서는 가택 연금 상태에 놓인다(28, 16- 31). 고린토 후서 11장 23절에서 바오로는 자신이 감옥 에 여러 번 갇혔던 적이 있다는 고백을 한다. 그런데 바 오로는 자신이 전도 여행 중에 겪었던 고생을 자주 이야 기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바오로의 친 서에서 이 구절 이상의 정보를 얻어 내기는 어려울 것이 다. 또 한 가지 추측으로, 사도 행전에서 바오로가 에페
소에 한동안(2~3?) 머물렀다는 보도(사도 19, 1-20, 1)와 고린토 전서 15장 32절에 나오는 보도, 즉 "설혹 내가 에페소에서 여느 사람처럼 맹수와 싸운다 한들 내게 무 슨 이득이 있겠습니까?"에 근거해 에페소에서 감옥 생활 을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바오로가 맹수와 싸웠다는 것은 곧 로마 제국의 맹수형에 처해졌음을 의미하고, 따 라서 일정 기간의 수감 생활을 전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네 가지 가능성, 즉 필립비 · 에페소 · 가이사리 아 · 로마 중에서 일단 가이사리아와 로마는 제외시킬 수 있는데, 바오로의 생애 말년에 앞날의 운명이 전혀 보이 지 않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레몬서 22절처 럼 곧 석방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필립비도 가능성이 희박한 데 갇혀 있었던 기간이 워낙 짧아 필립비서와 필레몬서에 나오듯이 여러 사람이 방문할 정도의 충분한 기간을 가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 다. 학계에서는 흔히 에페소를 집필 장소로 꼽는다. 즉, 제3차 전도 여행 중이던 서기 53~58년경에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일정 기간 동안 옥살이를 했으며, 그때 필립 비서와 필레몬서를 집필했던 것이다. 에페소서와 골로사 이서를 여기서 제외시키는 이유는 두 편지가 바오로의 친서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 자] 비록 네 편지 모두에 바오로가 직접 쓰고 있다 는 내용이 들어 있지만, 자세히 보면 바오로의 친서성 (親書性)을 의심하게 만드는 점들도 발견된다. 신약성서 학계에서는 흔히 필립비서와 필레몬서는 바오로의 친서 지만 에페소서와 골로사이서는 바울로의 위서(혹은, 가명 작품)로 간주한다. 말하자면 뒤의 두 편지는 바오로의 제 자들(바울로 학파)이 후대에 스승의 이름을 빌려 교회에 보낸 편지라는 뜻이다.
우선 에페소서는 어휘나 문체나 신학에 있어 바오로의 친서로 여겨지는 서간들과 심각한 차이를 보여준다. 어 휘들을 보면 신약성서에서 오직 에페소서에만 나오는 어 휘가 49개이고, 바오로 친서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어 휘가 51개 정도이다. 바오로와 다른 문체도 상당히 많은 데, 이를테면 동의어 중첩(1, 15-18), 소유격 연결, 대단 히 긴 문장 구성(1, 3-14 · 15-23 ; 2, 1-7 등), 접속사와 전치사를 즐겨 사용하지 않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 에 신학적인 차이점도 있어, 바오로의 것보다 체계화된 그리스도론, 바오로 의화론의 변형, 바오로의 지역적인 교회상이 아닌 보편적인 교회상 등이 에페소서에서 발견 된다.
골로사이서도 바오로의 친서로 보기 힘든데, 이는 무 엇보다도 에페소서와의 관계 때문이다. 에페소서는 골로 사이서와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비슷한데, 편지 서문, 디 키고의 파견(에페 6, 21-22 ; 골로 4, 7-8), 기도 요청(에페 6, 18-19 ; 골로 4, 2-4), 가훈(에페 5, 22-6, 9 ; 골로 3, 18-4, 1), 같은 주제들(그리스도의 신비, 교회의 머리인 그 리스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새것과 옛 것 등) 등이 있다. 따라서 두 편지는 같은 필자이거나, 에페소서의 저자가 골로사이서를 집필 자료로 사용했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에페소서가 골로사
이서를 확장시킨 것이라는 해설이 지배적이다.
마지막으로 바오로는 편지에서 신상 발언을 곧잘 하는 편인데, 에페소서와 골로사이서에서는 신상 발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두 편지가 바오로의 위서라는 근거가 된다.
[평 가] 옥중 서간은 그 발상 자체가 단순히 수감 생활 을 하던 사도 바오로가 썼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네 편 지를 하나의 끈으로 묶어 두기에는 개연성이 너무 약하 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성서 비평이 발전하면서 에페 소서와 골로사이서는 바오로의 친서가 아니라는 주장이 대두되자, 그 끈의 탄력이 더욱 느슨해졌다. 사실 요즘의 신약성서 개론서들은 '가톨릭 서간' 이나 '사목 서간' 처 럼 '옥중 서간' 이라는 항목을 따로 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옥중 서간의 매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편지들에서 바오로의 인간적 인 모습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통 중에서도 자신을 도와 주었던 이들의 배려를 마음속으로 부터 떠올렸고(필립 4, 10-20 ; 필레 1, 4-7), 자신을 돌보 아 준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했으며(필레 1, 8- 23),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깊은 사색을 노래(필립 2, 6-11)에 담아낼 수 있었다. 옥중 서간을 통해 우리는 고 통을 당하는 존재로서 진정한 신앙인이었던 바오로의 진 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 골로사이인들에 게 보낸 편지 ;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 참고문헌 김영남 역주, 《에페소서》, 200주년 기념 성서, 분도 출판사, 1998/ 정 양모, <사도 바울로의 생애>, 진토마스 역주, 《데살 로니카 전 · 후서》, 200주년 기념 성서, 분도출판사, 1981, pp. 43~671 K.H. 셀클레, 박상래 외 5인 역, 《신약성서 입문》, 분도출판사, 1976/ 《한국 기독교 대백과 사전》 2권, 기독교문사, 1980/ R.E. Brown, A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New York, 1997/ W.G. Kümmel, Einleitumg in das Neue Testament, Heidelberg, 1964. [朴泰植]
II . 한국 천주교회에서의 옥중 서간
박해 시대 옥에 갇혀 있던 순교자들이 그곳에서 가족 이나 동료들, 성직자들에게 보낸 글들은 여러 종류가 있 다. 갖가지 소식이나 신심 내용을 적은 '옥중 서간' 을 비 롯하여 자신이 겪은 일들을 기록한 일지 즉 '수기' (手 記)나 '일기' (日記)라고 알려진 글들, 그리고 성 이문우 (李文祐, 요한)가 옥중에서 작성하여 보낸 천주 가사(天 主歌辭) <옥즁뎨성>(獄中提醒)도 있다. 이 중에서 서간 은 수신자나 작성 시기가 분명하지만, 수기(일기)나 천주 가사는 이러한 경우가 드물다.
박해 시대의 옥중 서간 중에서 그 내용의 대개가 알려 지고 있는 것으로는, 우선 1793년에 사망한 이윤하(李 潤夏, 마태오)의 아들과 딸들이 옥중에서 보낸 편지를 들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앞선 것은 1801년의 신유박 해(辛酉迫害) 순교자 이순이(李順伊, 루갈다)가 <1801 년 9월 27일(양력 11월 3일)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와 <1801년 11월에 두 언니(친언니와 올케 언니)에게 보낸 편지> 2통이다. 또 그녀의 오빠인 이경도(李景陶, 가롤
로)도 <1801년 12월 25일(양력 1802년 1월 28일) 어머니 에게 보낸 편지> 1통을 남겼으며, 이들의 막내 동생으로 1827년 윤 5월 4일(양력 6월 27일) 전주 옥중에서 순교 한 이경언(李景彥, 바오로)도 <1827년 5월 14일 어머니 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 <1827년 5월 15일 아내에 게 보낸 편지> · <1827년 5월 25일 명도회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 등 3통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이경언은 순 교 직전인 1827년 5월 말에 옥중 수기 <경히년 니봐로 일괴>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들 서간과 수기는 이후 신자들 사이에서 전승 · 필사되어 왔는데, 1965년에는 교회사가 김구정(金九鼎)이 이경도 · 이순이의 서간 3통 과 이경언의 수기 전사본이 담겨 있는 《누갈다초남이일 긔남매》를 경상도 순교자 김종륜(金宗倫, 루가)의 후손 집에서 발견하여 공개하였다.
다음으로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 집안의 옥중 서간도 유명하다.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김대건 신부의 둘째 종조부인 김종한(金宗漢, 안드레아, 보명은 漢鉉)이 1815년의 을해박해(乙亥迫害)로 체포된 후 대 구 옥중에서 쓴 <형에게 보낸 편지> 2통, <교우 이 씨와 유 씨에게 보낸 편지> 1통이 있고, 김대건 신부 자신의 서간으로는 <1846년 6월 8일 베르뇌 · 매스트르 · 리부 아 ·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 <1846년 8월 26 일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편지>, '조선 교우들에게 보낸 마지막 회유문' 으로 잘 알려진 <1846년 8월 말 조선 교 우들에게 보낸 편지> 등 3통이 있다. 김 신부의 서간 중 에서 앞의 두 서간은 각각 라틴어 원본과 프랑스어 번역 본으로 파리 외방전교회 고문서고(정리 번호 vol. 577 및 vol. 1261)에 소장되어 있다가 1984년 한국 천주교회로 이관되었으며, 현재 절두산 순교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 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는 원본이 없어진 채 1885년 로 베르(Robert, 金保錄) 신부가 필사한 사본만이 절두산 순 교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밖에도 1839년의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성 이문우(요한)가 <1839년 12월 22일(양력 1840년 1월 26 일) 양부모에게 보낸 편지> 1통의 전문 내용이 알려져 있 다. 또 기해박해 순교자 신태보( 申太甫, 베드로)는 옥중
서간과 함께 샤스탕(Chastan, 鄭牙各伯) 신부의 명으로 전주 옥중에서 작성한 수기를 남겼다고 하는데, 그중 서 간 내용은 일부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1799년의 해미 순교자 박취득(朴取得, 라우렌시오)은 가족들에게 보낸 옥중 서간 2통을 남겼고, 1801년의 청 주 순교자 김사집(프란치스코)도 옥중에서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의 증언에 따르면, 기해박해와 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들 가운데서도 가 족이나 교우들에게 옥중 서간을 보낸 경우가 많지만, 그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현재 이순이의 서한 2통, 이경도의 서한 1통, 이경언 의 서한 3통, 이문우의 서한 1통, 김대건 신부의 옥중 서 한 1통, 김종한의 서한 3통은 프랑스어 역본이 성 다블 뤼(A. Daveluy, 安敦伊) 주교의 《조선의 주요 순교자 약 전》(비망기 제5권)과 《조선 순교사 비망기》(비망기 제4권) 에 수록되어 있다. 신태보 · 박취득 · 김사집의 서한 내용 도 이 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으며, 달레(Ch. Dallet) 신부 의 《한국 천주교회사》에 수록되어 있는 프랑스어 역본들 도 이를 토대로 한 것이다. 다블뤼 주교는 1859년 이후 추가 자료를 수집하던 중 이경도 · 이순이의 서간들을 발 견하였는데, 이를 전후하여 여타의 서한 원본들도 직접 수집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1863년 봄 그가 수집한 자료들을 보관해 놓았던 집이 화재를 당할 때 대 부분 소실되었던 것 같다. 이처럼 현존하는 옥중 서간은 대부분 원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체 포 당시의 상황이나 옥중에서의 수난상, 순교에 대한 열 정과 교리에 대한 믿음은 물론 가족이나 교우들에 대한 애정 등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이들 서간은 박해 시대의 신자들이 남긴 문학 작품이요 신앙 고백서로, 당시의 순 교 신심과 교회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 누갈다 초남이 일기 남매)
※ 참고문헌 A. Daveluy, vol. 4, Notes pour l' Histoire des Martyrs de Coree(필사본)/ -,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필 사본)/ 《달레 교회사》 상 · 중 . 하/ 金九鼎, <敎會史에서 내가 發見한 珍貴한 資料>, 《가톨릭靑年》 19권 6 . 7호(1965. 6~7) 崔奭祐, <달레 著 韓國天主教會史의 形成過程〉, 《교회사 연구》 3집, 1981/ 한국교 회사연구소 편, 《순교자와 증거자들》,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 河
聲來, <한국 순교자들의 문학 작품에 나타난 영성>, 《한국 순교자 영 성의 어제와 오늘》, 한국순교자영성 연구소, 2000. 9. 大學院 [車基真]
옥중 서간
獄中書簡
[영]Imprisonment Epistles
글자 크기
9권

조선 신자들에게 보낸 성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편지(절두산 순교 기념관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