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 수기

獄中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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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델 주교의 옥중 수기.

리델 주교의 옥중 수기.

천주교회의 '옥중 수기' 는 신자들이 박해로 체포된 후 옥중에서 기록한 수기를 말한다. 일명 '옥중 일기' (獄中 日記) 혹은 '순교 전기' (殉教傳記)로 불리며, 수신자가 분명한 '옥중 서한' 이나 한 순교자의 행적을 다른 이가 기록한 순교 전기와는 구별된다. 이들 수기에 대한 명칭 은 작성자의 이름을 앞에 붙여 부르는 것이 보통인데, 그 내용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원본은 거의 전해지고 있지 않다.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가장 시기적으로 앞선 수기는 초 기의 신자들이 '죄인지츙일긔' (罪人持忠日記)라고 부르 던 윤지충의 옥중 수기이다. 이 수기는 1791년 11월 13 일(양력 12월 8일) 전주에서 순교한 윤지충(尹持忠, 바오 로)이 전주 감영의 옥에서 한문으로 기록하여 신자들에 게 전한 것으로, 이후 한글로 번역되고 여러 차례 필사되 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죄인지츙일긔' 는 한글로 번역되면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1858년 무렵 성 다 블뤼(A. Daveluy, 安敦伊) 주교는 아마도 전문으로 추정 되는 수기를 수집하여 자신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에 요약문을 수록하고 수집된 원본을 파리로 보냈으며, 이 후 달레(Ch. Dallet) 신부는 이 수기의 전문을 《한국 천주 교회사》에 수록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다블뤼 주교가 수 집한 수기를 찾아볼 수 없으므로, 그것이 한문 원본이었 는지 한글 역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수기에는 1791년 10월 26일(음력) 윤지충이 진산(珍山) 관아에 자수한 때로부터 11월 초 전라 감사 앞에서 있은 최후 진술까지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의 사건 전개 과정은 물론 초기 신자들의 교리 이해, 순교 신심 등을 잘 이해할 수 있다.
1827년 윤5월 4일(양력 6월 27일) 전주 옥중에서 순교 한 이경언(李景彥, 바오로)도 3통의 옥중 서한과 함께 1827년 5월 말에 작성한 옥중 수기를 남겼다. 이 수기 는 이후 신자들 사이에서 전승 · 필사되어 왔으며, 1965 년에는 교회사가 김구정(金九鼎)이 경상도 순교자 김종 륜(金宗倫, 루가)의 후손 집에서 이 옥중 수기가 함께 수 록된 수택본 <누갈다초남이일긔남매>를 발견하여 공개 하였다. 이 수택본에는 수기의 이름이 <졍해년 니반로 일 긔>로 기록되어 있다. 다블뤼 주교는 1859년 이후 추가 자료를 수집하던 중에 이 수기를 서간들과 함께 수집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현존 수택본에는 《조선 순교사 비망 기》와 《한국 천주교회사》에 수록되어 있는 추신(追伸)이 들어 있지 않다. 수기의 내용은 이경언이 한양에서 체포 된 1827년 4월 21일부터 옥사하기 이전인 5월 19일까 지의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다.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1839년의 기해박해(己亥 迫害) 때 전주에서 순교한 이태권(李泰權, 베드로)의 옥 중 수기이다. 이 수기는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자주 인용된 자료 중의 하나라고 하며, 성 샤스탕(Chas-
tan, 鄭) 신부의 명에 따라 전주 감영의 옥 중에서 작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조선 순교사 비망 기》에 수록한 수기의 일부만을 알 수 있을 뿐이고, 그 내용도 대 부분 이태권의 가족 들이 당한 박해 사실 들이다.
네 번째로 1839년 의 전주 순교자 신태 보( 申太甫, 베드로) 가 남긴 옥중 수기 또
한 천주교회사를 밝히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된 것으 로 알려져 있다. 이 수기는 신태보가 샤스탕 신부의 명에 따라 전주 감영의 옥에서 작성한 것인데, 그는 이외에도 옥중 서간과 1801년의 순교자 최필공(崔必恭, 토마스) 의 순교 전기까지 기록으로 남겼다. 신태보의 옥중 수기 중에서 《조선 순교사 비망기》와 《한국 천주교회사》에 인 용된 것은 주로 그가 당한 문초와 신앙 증거 내용들이다. 그러나 실제의 수기 내용은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 부의 입국 전후인 1785년경부터 1838년까지의 내용으 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순교자들의 옥중 수기를 대본으로 하여 작 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순교 전기들도 전한다. 이에 속하 는 것으로는, 우선 1797년의 정사박해(丁巳迫害)로 체 포되어 이듬해 6월 12일(양력 7월 24일) 정산(定山) 장터 에서 순교한 이도기(李道起, 바오로)의 전기를 들 수 있 다. 다블뤼 주교는 1855년에 이를 입수하여 《조선 순교 사 비망기》에 수록한 다음 파리로 보냈는데, 제7대 조선 교구장 블랑(Blanc, 白圭三) 주교의 소장본 《뎡산일긔》 (定山日記,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필사본)가 현존하는 것 으로 볼 때, 이 전기는 훗날 신자들이 일정 부분을 개 삭 가미하거나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1799 년의 해미 순교자 박취득(朴取得, 라우렌시오)과 이보현 (李步玄, 프란치스코), , 인언민(印彥敏, 마르티노), 1798 년의 홍주 순교자 방 프란치스코, 1799년의 청주 순교 자 원시보(야고보) 1827년의 순교자 박보록(朴甫錄, 바오로) 부자, 1839년의 순교자 최해성(崔海成, 요한) , 1846년의 순교자 임군집(林君執, 요셉)의 전기 등도, 그 내용으로 볼 때 옥중 수기나 서간을 바탕으로 하여 작성 된 것 같다.
한편 제6대 조선교구장 리델(Ridel, 李福明) 주교가 남 긴 회고록이 '옥중 수기' 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옥중 수기라 할 수 없다. 그는 1877년 9월 23 일 조선에 재입국하여 활동하다가 다음해 1월 18일에 체포되어 옥중에 갇혔으며, 6월 24일에는 중국으로 송 환되었다. 그러자 1878년 10월 20일 요동 챠쿠(岔溝) 의 '성모설지전(聖母雪之殿) 성당' 에서 자신의 체험기
를 회고록 형태로 작성하였는데, 여기에는 옥중 생활과 고초, 신문 내용과 석방 경위, 중국 송환 과정 등이 자세 히 수록되어 있다.
박해 시대 신자들이 남긴 옥중 수기나 전기는 다블뤼 주교가 수집한 자료들이 1863년의 화재로 소실되면서 함께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이경언의 수기를 제 외하고는 프랑스어 역본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들은 한국 천주교회사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특히 윤지충 · 이경언의 수기가 당 시의 신자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 그 안에 담긴 순교 신심은 오늘날의 교회에도 일정한 교훈을 주고 있 다. (→ 옥중 서간, 한국 천주교회에서의)
※ 참고문헌  A. Daveluy, vol. 4, Notes pour l' Histoire des Martyrs de Coree(필사본) <달레 교회사》 상 · 중 . 하/ 《邪學懲義》 金九鼎, 〈敎 會史에서 내가 發見한 珍貴한 資料〉, 《가톨릭靑年》 19권 6 · 7호, 1965. 6~71 崔奭祐, <달레著 韓國天主教會史의 形成過程〉, <교회사 연구》 3집, 1981/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순교자와 증거자들》, 한국 교회사연구소, 1982/ 차기진, <박해 시대 신자들의 수기>, 《교회와 역사》 203호, 1992. 4. [車基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