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동 본당

玉泉洞本堂

글자 크기
9
춘천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324-1 소 재. 1974년 11월 1일 임당동(林塘洞) 본당으로부터 분 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가정. 관할 구역은 옥천동, 포남1동, 송정동 전 지역과 입암동, 포남2동, 교2동 일 부 지역. [교 세] 1975년 570명, 1980년 729명, 1985 년 1,440명, 1990년 1,719명, 1995년 3,107명, 2000 년 2,622명. [역대 신부] 초대 옥슬리(B.Oxley, 옥) 베르 나르도(1974. 12~1978. 12), 2대 맥마흔(A. McMahon, 안성 도) 아더(1978. 12~1982. 3), 3대 이흥섭(李興燮) 라우렌 시오(1982. 3~1987. 5), 4대 송성식(宋聖植) 토마스(1987. 5~1988. 12), 임시 최원석(崔元錫) 아넬로(1988. 12~1989. 3), 5대 하화식(河華植) 베드로(1989. 3~1994. 6), 6대 오 상철(吳相喆) 토마스 데 아퀴노(1994. 6~1996. 8), 7대 맹 석철(孟石鐵) 바오로(1996. 8~2000. 9), 8대 최일호(崔- 浩) 라우렌시오(2000. 9~현재).
현 옥천동 본당이 있는 강릉 지역은 1955년 시로 승 격된 이래 발전을 거듭하여 1970년에 이르러서는 인구 가 8만을 넘어서고 이에 따라 천주교 신자의 수도 나날 이 늘어났다. 특히 관광 수요의 증가에 따라 동부권 지역 의 인구 유입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이 지역을 축으로 한 일련의 도시 발전 계획이 1970년에 들어와 가시화되 면서 이 지역의 효과적인 사목 활동을 위해 새로운 본당 의 건립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제2대 춘천교구장 스튜어트(T. Stewart, 朴) 주교는 옥천동 324-1번지의 부 지 355평을 구입하여 1973년 4월 성당 건립 공사를 시 작하였다. 스튜어트 주교는 강릉의 갈바리병원에서 기거 하면서 직접 공사를 관장하였으며, 착공한 지 19개월 만 에 완공을 보아 1974년 11월 1일 봉헌식을 거행하고 옥 천동 본당을 임당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하였다. 본 당의 주보는 1973년부터 행복한 가정 만들기 운동을 전 개해 온 스튜어트 주교가 '성가정' 으로 정하였다. 설립
당시 신자수는 450명이었다.
스튜어트 주교는 1개월 동안 직접 미사를 주관하다가 1974년 12월 옥슬리 신부를 초대 신부로 임명하였다. 옥슬리 신부는 본당 활성화를 위해 레지오 마리애 '사도 들의 모후' 쁘레시디움(1975. 1), '망덕 빈천시오 협의 회' (1976.6) 등 각종 신심 단체를 창립하였다. 2대 주임 으로 부임한 맥마흔 신부는 침체되어 있는 예비 신자 입 교를 위하여 신자 배가 운동을 적극 전개하는 한편, 사목 활동 중에 알코올 음주 상습 방지 교육과 예방에 많은 관 심을 기울였다. 미국에 가서 알코올 상습자 특별 교육 프 로그램을 이수하고 이에 관련된 슬라이드와 많은 자료를 가지고 와서 본당 구역뿐 아니라 우리 나라 전역을 대상 으로 알코올 상습 예방 교육에 힘썼다.
3대 주임으로 이흥섭 신부가 부임하면서부터 성 골롬 반회 소속의 외국인 신부 대신에 한국인 사제가 사목을 맡게 되었다. 평신도들의 커다란 기대를 받으며 부임한 이흥섭 신부는 1984년 4월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의 분원을 마련하여 사목 활동을 돕게 하였다. 또한 평신 도들의 적극적인 전교 활동과 포남동 지구의 택지 개발 로 신자수가 급격하게 늘어나 공간이 부족하게 되자 지 상 2층 지하 1층의 교육관 · 수녀원 건물(총 건평 120평) 을 1983년 6월에 완공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이 밖에도 성당 내 앰프 시설 등 각종 비품 교체(1982. 4), 성당 유 리창 썬팅 공사(1982. 8~9), 종탑 높임 공사(1985. 4), 제 대 벽 새 단장 공사(1985. 10) 등을 통해 본당의 내외부 시설을 일신하고자 노력하였으며, 관할 공소에도 관심을 기울여 안인 공소의 안내판과 십자가를 교체하였고, 정 동 공소도 수리하였다. 또한 성령 쇄신과 신앙심의 내실 화를 기하고자 피정을 활성화하고 기도회를 자주 개최하 였으며, 평신도 단체의 활성화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애덕의 모후 꾸리아' 를 창설하였고(1986. 6), , 남성 단체
인 '대건회' (1983. 10)와 '성심회' (1984. 4)도 만들었다. 그리고 1984년 11월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신자들에 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신용 협동 조합을 창립하였다.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송성식 신부는 불우 이웃과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한순옥(아네스) 할머니 등이 기탁한 기금을 바탕으로 1988년 1월 '아녜 스 장학회' 를 발족하여 소년 소녀 가장들이 어려운 가운 데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 었고, 본당 신자인 공광찬(알로이시오) 내과 의원의 협 조를 받아 경제적으로 곤란한 불우 이웃들이 건강한 삶 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또한 천주교 정의 구현 사 제단의 일원이었던 송성식 신부는 1987년 대통령 직선 제 쟁취를 위한 6월 민주화 항쟁을 강릉에서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강릉 국민 운동 본부 공동 의장을 역임하는 등 민주화 운동의 불모지였던 강릉 지역에 민 주화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아울러 송석식 신부는 1987년 7월 어린이들 중심의 '은총의 시 장 을 모든 신자가 참여하는 행사로 확대 개최하여 신자 들에게 그리스도 안의 한 형제 자매라는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켜 주었고, 또한 여름 성경 학교를 비롯한 어린이 를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어린이들과 함께하고 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1987년 9월에는 신자수의 증가 등으로 노암동 본당을 분리 · 설립함에 따라 관할 구역의 일부를 이관하였다. 그러나 송성식 신부는 지병인 당뇨 병으로 1988년 12월 25일 성탄 자정 미사를 마지막으 로 선종하였다.
5대 주임으로 하화식 신부가 부임하면서 본당은 새로 운 도약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화식 신부는 신자수가 크게 증가하여 기존 성당 시설이 부족하게 되자 사제관 과 수녀원(26.4평) 등을 증개축하고 부드럽고 쾌적한 분 위기가 나도록 성당 내부를 목재로 꾸며 1990년 10월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송성식 신부가 선종하면서 남긴 희사금 일천만 원을 아네스 장학 기금과 통합하여 1990 년 7월 '도아(도마+아네스) 장학회' 로 개명하여 새롭게 발족하였고, 1992년 1월에는 가난하고 병들어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하여 기금 일천만 원을 토대로 '프란치스코 사회 복지회' (FRC)를 설립한 뒤 특별 헌금과 기부금 등을 통한 기금 확충 사업을 계속 벌여 1994년 2월에 그 보금자리가 될 강릉시 청량동 산 49-1번지 일대 2,300여 평의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또한 성서 공부를 활성화시키 기 위하여 성서 공부를 위한 다양한 모임을 활발히 운영 하였으며, 신자들의 교양과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각종 음악회와 교양 강좌와 피정 등을 실시하였고, 사목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각종 신심 단체와 평신도 단 체를 잇달아 창설하였다. 아울러 1990년 4월에는 그간 발전을 거듭해 온 신용 협동 조합을 법인으로 등록하여 본당에서 분리 · 독립시켰으며, 1992년 3월에는 가톨릭 관련 서적과 성물의 구입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신용 협동 조합이 있던 자리에 '성 바오로 서원' 을 개원하였 고, 그 해 8월에는 전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하여 조광
호(趙光鎬, 엘리지오) 신부의 지도로 제대 및 십자고상 등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한편 1993년 10월에는 유급 사무장제를 신설하여 초대 사무장으로 김세중(스테파 노)을 임명하였고, 이듬해 5월에는 《옥천동 본당 20년 사》를 엮어 간행하였다.
6대 주임으로 부임한 오상철 신부는 1994년 7월에 그 동안 계속 확충되어 온 '도아 장학회' 를 재단 법인으로 등록하여 본당에서 분리 · 독립시켰으며, 1996년 2월에 는 도중에 사업을 포기한 프란치스코 사회 복지회의 건 물과 대지를 교구로 이전시켰고, 그 해 3월에는 포남· 송정 지구의 계속적인 개발로 교세가 날로 커져 초당 본 당을 분리 · 설립함에 따라 관할 구역을 조정하였다. 8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일호 신부는 2000년 12월에 사제관 을 수리하였고, 2001년에는 사무실(5월) · 본당 옥상(7 월) · 화장실(12월) 등을 잇따라 보수하였다. 이 밖에도 최일호 신부는 본당의 발전을 위해 신자들과 더불어 다 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 춘천교구 ; 임당동 본당)
※ 참고문헌  옥천동 본당 20년사 편찬위원회 편, 《옥천동 본당 20년사》, 천주교 춘천교구 옥천동 본당, 1994/ 천주교 춘천교구 옥천 동 본당 편, <본당 연혁>, 2002. 〔徐鍾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