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거제시 옥포1동 543-7 소 재. 1983년 7월 1일 장승포(長承浦) 본당 소속 공소에 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옥포1 · 2동 전 지역. [교 세] 1983년 616 명, 1988년 2,075명, 1993년 2,833명, 1997년 3,536 명. [역대 신부] 초대 배진구(裵鎭九) 베드로(1983. 7~1987. 2), 2대 황창건(黃昌健) 타데오(1987. 2~1991. 6) , 3대 서원열(徐元烈) 라파엘(1991. 6~1994. 8), 4대 송재훈 (宋在燻) 라파엘(1994. 8~1997. 8), 5대 진선진(陳善眞) 마태오(1997. 8~ 2000. 1), 6대 허성학(許盛鶴) 아브라함 (2000. 1~현재).
[복음의 전래와 공소 시기] 옥포 지역은 거제도 천주 교 발생지인데, 1877년 윤사우(尹仕佑, 스타니슬라오) 가 박해를 피해 이 지역에 정착함에 따라 신앙의 터전이 마련되었다. 이후 윤사우의 노력으로 복음이 전파되었으 며 그중 진진보(陳進寶)라는 서당 접장(接長)이 1880년 윤사우에게 교리를 받고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로 부터 요한이란 본명으로 세례를 받아 거제도인으로서 최 초로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윤사우의 둘째 아들 윤봉문 (尹鳳文, 베드로)은 진진보의 딸 진순악(陳順岳, 아네 스)과 결혼한 후 진진보의 집에 머물면서 활발한 전교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1887년 옥개(옥포 의 異名) 공소가 설립되었고 지역 주민 15명이 로베르 신 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1888년 그는 박해로 체포되어 진주(晋州)에서 순교하였으며 이후 형 윤경서 (尹京瑞, 베드로)가 윤봉문의 집에 공소를 마련하고 복 음 전파를 위해 노력하였다. 1890년 부산 본당 초대 주 임 조조(Jozeau, 趙得夏) 신부의 거제도 방문으로 옥천 지역 신앙 공동체는 활기를 되찾게 되었고, 기존의 공소 가 진목정(眞木亭, 즉 菊山) 공소로 재설립되어 부산(釜 山)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1899년 거제 지역의 5개 공소는 신자수가 293명에 이를 정도로 전교 활동이 활 발하였으며, 같은 해 6월 진주(晋州) 본당이 설립되자 진목정 공소는 신설 본당 관할이 되었는데 당시 진목정 공소의 신자수는 83명이었다. 이후 1905년 소촌(召村, 현 문산) 본당이 설립됨에 따라 공소는 이 본당 관할이 되 었으며, 1914년 진진보의 아들로서 당시 공소 회장이었 던 진명호(陣明浩, 필립보)는 공소 내에 신학문을 가르 치는 광명(光明)학원을 설립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으로 신자수는 꾸준히 증가하였고, 1917년 12월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가 공소를 방문하였을 당시 고해 성사자는 236명, 새 영세자는 232명, 견진자는 50명이 었다. 1919년 옛 옥포 관사(官舍)를 매입하여 공소 강당 으로 사용하였고, 1923년 9월 25일 공소 강당을 기와집 으로 신축하였다. 소촌 본당 3대 주임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 재임기였던 1926년 5월 30일 옥포 공 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김후상(金厚 相, 바오로) 신부가 부임하였다.
[본당 설립과 공소 격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후 상 신부는 1928년 윤봉문의 초가를 개조하여 성당으로 사용하였으며, 10월 1일에는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와 함께 전교에도 힘써 관 할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고, 1929년 통영(統營, 현 충무 태평동 본당의 전신) 본당, 1935년 명진(明珍, 현 거제) 본 당을 신설하였다. 한편 1933년 8월 31일에는 콘크리트 성당(50평)과 사제관 및 부속 건물을 완공하는 등 본당 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거제도 복음 전 파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신자들은 이곳을 유적지로 보존하기 위하여 1,000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본당에 기증하였다. 1941년 12월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유선이(柳善伊, 요셉) 신부는 신부수의 부족으로 신부가 파견되지 못한 명진 본당이 준본당으로 격하되자 명진 본당 신부를 겸임하며 1948년 5월까지 활동했다. 뒤를 이어 3대 주임으로 김준필(金俊弼, 아우구스티노) 신부 가 재임하였고, 1949년 4대 주임으로 베네딕도회 소속 의 최영호(崔榮浩, 비안네) 신부가 부임하였다. 1950년 4월 5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문선(朴文善, 야고보) 신부 는 1953년 장승포(長承浦) 본당이 설립되자 초대 주임 을 겸하면서 본당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1958년 6월 부터 6대 주임으로 재임한 강영철(姜永哲, 프란치스코) 신부가 1960년 9월 장승포 본당으로 전임된 후 주임 신 부가 부임하지 않아 본당은 장승포 본당 관할이 되었다. 1965년 1월 7대 주임 김영제(金永濟, 요한) 신부의 부 임으로 본당은 다시 활기를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현 본 당 소재지의 부지를 매입하는 등 본당 활성화를 위해 노 력한 김 신부가 1966년 5월 선종한 후 신부가 부임하지 못하여 본당은 다시 장승포 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본당 설립과 발전] 1970년대 옥포 대우 조선소가 건 립되면서 옥포 신도시가 개발되자 유입 인구 증가로 1980년대 초부터 신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교구와 관할 장승포 본당에서는 본당 신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 다. 1982년 봄 장승포 본당 11대 주임 정순구(鄭淳九, 요한) 신부는 '옥포 본당 설립 준비위원회' 를 발족하였
고, 본당에서 소유하고 있던 옥포 공소 토지 매각과 신자 들의 정성, 교구청의 지원을 통해 본당 건립 재원을 마련 하였다. 1982년 11월에는 성당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7월 1일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마산교구 200주년 기념 제1호 성당(382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 으며, 옥천 공소는 본당으로 재승격되었다. 초대 주임으 로 부임한 배진구 신부는 공동체의 소속감을 증대시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대우 가톨릭 교우 회, 청년회, 대건회, 성가대, 요셉회, 성모회, 꾸리아, 데 레사회 등 다양한 신심 단체를 결성하고 체계화하여 본 당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어 2대 주임으로 부임 한 황창건 신부는 1988년 5월 윤봉문 순교자 순교 100 주년을 맞아 거제도 지역 4개 본당과 충무 지역 2개 본 당과 함께 순교 100주년 현양 대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레지오 마리애와 구역 반 공동체 활동을 중심으로 지역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고, 지역적 특성을 고려 하여 직장 복음화를 위해 조선소를 방문하여 월례 미사 를 집전하였다. 3대 주임으로 부임한 서원열 신부는 1992년 2월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를 창설하였고, 1993 년 6월에는 소말리아 어린이 돕기 자선 음악회를 개최하 는 등 이웃과 함께하는 본당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였 다. 5대 주임 진선진 신부는 신자들의 신심 강화를 위해 성체 조배실을 마련하였고, 1999년에는 교육관 부지 200평을 매입하였다. 이에 6대 주임으로 부임한 허성학 신부는 마련된 부지에서 교육관 공사를 시작하였다. 대 우 조선소 직원이 신자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옥 포 본당은 유사한 직종에 근무하는 젊은 연령대의 신자 가 많아 본당 활동이 활기 차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허성학 신부는 대부분이 외지인이고 토착 신자들이 거의 없는 특성을 고려하여 신자간의 유대감 형성과 지 역 주민 선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거제 본당 ; 김 후생 ; 마산교구 ; 윤봉문)
※ 참고문헌 金後生, 《거제도 천주교 연혁》, 1939/ 한국천주교중 앙협의회,《한국 천주교 연감》, 1956/ 천주교 부산교구 편, 《교구 연 보》, 1984/ 천주교 마산교구 옥포 교회 편, 《옥포 본당 10년사》, 천주 교 마산교구 옥포 교회, 1993. 〔金善美〕
옥포 본당
玉浦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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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