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아산시 권곡동 553-9 소재. 1948년 7월 공세리(貢稅里) 본당 관할의 방축리(防築 里) 공소에서 온양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온천1동, 권곡동, 모종동, 신동, 음봉 동 전 지역과 실옥동, 염치읍 일부 지역. 〔교 세] 1949 년 1,108명, 1955년 1,354명, 1965년 2,857명, 1970 년 3,700명, 1975년 2,329명, 1981년 3,683명, 1985 년 1,403명, 1990년 1,926명, 1995년 2,017명, 2000 년 1,947명. [역대 신부] 초대 멜리장(Mélizan, 梅履霜) 베드로(1948. 7~1950. 4), 2대 를뢰(Leleu, 盧) 베드로 (1950. 5~7), 3대 신종호(申宗浩) 요셉(1951.3~1954.9), 4 대 한도준(韓道俊) 마태오(1954. 9~1966. 3), 5대 김영환 (金英煥) 타데오(1966. 3~1970. 2), 6대 주임 김순호(金順 浩) 프란치스코(1970. 2 ~1972. 12), 7대 유재식(俞載植)
안셀모(1972. 12~1977. 10), 8대 유인성(劉寅成) 프란치스 코(1977. 10 ~1982. 9), 9대 유봉운(俞鳳雲) 야고보(1982. 9~1985. 2), 10대 윤인식(尹仁植) 바오로(1985. 2~1990. 8), 11대 김병재(金丙宰) 바오로(1990. 8~1992. 8), 12대 이경열(李京烈) 베드로(1992. 8~1993. 8), 13대 윤인용(尹 仁龍) 바오로(1993. 8~1999. 1), 14대 방윤석(方潤錫) 베 르나르도(1999. 1~2000. 2), 15대 최석영(崔錫永) 이냐시 오(2000. 2~현재).
지금의 온양 본당이 있는 지역에는 본래 공세리 본당 소속의 방축리 공소가 있었다. 이 방축리 공소는 1920 년 3월 설립되었으며, 당시 신자는 다섯 가구 정도였고, 공소 집은 온양 경찰서 앞 10여 칸 되는 함석집이었다. 공세리 본당의 4대 주임 콜랭(Colin, 高) 신부는 장차 온 양에 본당을 설립하기 위하여 현 성당의 남쪽에 성당 부 지 1,007평을 매입해 두었다. 그러나 본당의 설립은 쉽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광복이 된 뒤에는 천주교 신자로 국민학교 교장을 지냈던 일본인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기증해 준 집(현 성공회 건물)으로 공소를 이전하였다. 마 침내 1948년 7월에 방축리 공소를 온양 본당으로 승격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멜리장 신부를 임명하였다. 멜 리장 신부는 1949년에 성당을 전면적으로 개축 · 증축하 였다.
1950년 4월 농지 개혁으로 성당 부지가 1,007평에서 459평으로 축소되자 2대 주임 를뢰 신부가 현 성당 위 치의 밭 1,033평을 매입하여 다시 성당 부지를 늘려 놓 았다. 를뢰 신부는 1950년 7월 공산군이 쏜 총을 맞고 순교하였다. 3대 주임 신종호 신부는 6 · 25 전쟁으로 침체된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폐쇄된 공수리 공소를 모산 공소로 재개하였다. 4대 주임 한도 준 신부는 토지 1,032평을 매입하여 성당 부지를 충분 히 확보한 뒤 1956년 5월에 착공하여 다음해 1월에 현 성당(연건평 250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58년 대전교구가 서울대교구로부터 분리 · 설정됨에
따라 온양 본당은 대전교구에 소속되었다. 한도준 신부 는 1959년에 사제관과 수녀원을 신축하고 서울 성가 소 비녀회 분원을 마련하였으며, 이 수녀회가 1965년에 철 수하자 같은 해 12월에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분원을 두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1962년에는 용화동 산 6,150평을 매입하여 교회 공원 묘지를 조성하였고, 신 언리 산 3,810평도 구입하였으며, 1965년에는 월랑 공 소를 설립하였다.
5대 주임 김영환 신부는 1967년 유치원 교실 48평을 신축하고 같은 해 3월에 선화유치원을 설립하였으며, 12월에는 소동 공소의 강당을 식축하였고, 1969년 10 월에는 도고 공소의 강당을 새로 건설하였다. 6대 주임 김순호 신부는 1970년 모산 공소 강당을 새로 지었고, 같은 해 7월에는 갈산 공소 강당(30평)을 신축하였으며, 11월에는 신자들의 경제 활동을 돕기 위해 신용 협동 조 합을 설립하였고, 1971년 11월에는 월랑 공소 강당(16 평)을 새로 건축하였으며, 1972년 12월 8일에는 본당 주보를 처음으로 발행하였다. 7대 주임 유재식 신부는 1974년 10월에 도고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 분리시켰 으며, 1975년 5월에는 방현 공소 강당을 새로 건설하였 다. 또한 1976년에는 냉정리 산 5,070평을 매입하여 교 회 공원 묘지를 추가로 조성하였고, 1977년에는 사제관 (40평)과 상가(80평)를 새로 지었으며, 모산 공소 부지 519평도 매입하였다.
8대 주임 유인성 신부는 성령 쇄신 운동을 통해 레지 오 마리애를 활성화하여 교세를 확장하였으며, 1981년 5월에는 매곡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고, 1982년에는 동 암 공소를 설립하였다. 10대 주임 윤인식 신부는 1985 년 8월에 모산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하여 분리시켰고, 용화 본당도 설립하여 분리시켰다. 이때 본당의 이름을 온천으로 바꾸었으며, 1988년 9월에는 사제관을 2층 (40평)으로 증축하였다. 11대 주임 김병제 신부는 1991 년 8월 성체 조배회를 설립하고 지속적인 성체 조배를 실시하였으며, 상가를 수리하여 본당 사무실과 회의실로 개조하였다.
13대 주임 윤인용 신부는 성당 내부(1996)와 강당(1997) 등 본당의 여러 곳을 수리하고 정비하였으며, 14대 주임 방윤석 신부는 2000년 2월 본당의 명칭을 온양으로 환 원시켰다. 현재 사목을 맡고 있는 15대 주임 최석영 신 부는 빈천시오회를 설립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 게 하였고, 모든 신자들을 대상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미 사 후 30분 동안 성시간 묵상을 실시하여 신자들의 신심 을 북돋우고 있다. 또한 '내 성서 갖기 운동' 을 전개하여 2002년 5월 모든 신자가 성서를 가지게 되었으며, 성서 읽기 운동을 전개하여 미사 전 성서 읽기를 하고 있다. 아울러 선교 기도문과 선교 노래를 미사 시간마다 바치 며 예비 신자 1명 입교와 냉담자 1명 회두 운동도 전개 하고 있다. (⇦ 아산 온천동 본당 ; 온천 본당 ; → 공세 리 본당 ; 대전교구)
※ 참고문헌 《대전교구 30년》, 천주교 대전교구 홍보국, 1988/ 《공세리 본당 100년사》, 천주교 대전교구 공세리 교회, 1998/ <대전, 온양 본당>, 《경향잡지》 1971. 31/ <온양 성당 낙성식>, 《경향잡지》
1957. 21 《한국 천주교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56, p. 184. [편찬실]
온양 본당
溫陽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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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