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히]זית · [그]ελάια · [라]olea · [영]o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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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올리브 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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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올리브 산 전경.

성서에 나오는 중요 식물 가운데 하나. 목서과(木犀 科)에 속한 상록 과수(常綠果樹)로 지중해 연안이 원산 지이며, 학명은 '올레아 에우로패아' (Olea europaea)이다. 올리브 나무는 이미 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있었다. 팔레 스티나에서 올리브가 기원전 3700년경의 청동기 층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재배되었 음을 알 수 있다. 올리브는 10~15m 정도까지 자라며, 수명이 길기 때문에 수백 년 간 수확할 수 있는 경제성이 높은 작물이다. 올리브 열매는 소금에 절여 먹기도 하고 기름을 짜서 식용뿐 아니라 향료 · 의료용 · 공업용으로 도 사용한다. 한편, 올리브 나무는 건축 자재로 이용된다 (1열왕 6, 23-33).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경기에서는 우 승자에게 올리브 가지로 관을 만들어 씌워 주었다.
올리브 나무를 한국 프로테스탄트의 《개역 성경》에서 는 '감람(橄欖) 나무' 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번역이다. 감람 나무는 감람과에 속한 상록 교목 (常綠喬木)으로 중국 남부와 베트남이 원산지이며, 학명 은 '카나리움 알붐 래우쉬' (Canarium Album Raeusch)이 다. 그런데 이를 혼동하여 오역하게 된 원인은 아마도 감 람 나무를 '중국 올리브 나무' (chinese olive)라고 한다는 것과 둘 다 열매를 식용한다는 데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서의 올리브] 올리브가 지중해에 흔한 작물이었기 에 성서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된다. 홍수가 끝나 뭍이 드 러났는지 알기 위해 노아가 비둘기를 날려 보내자 비둘 기는 "저녁때가 되어 돌아왔는데 부리에 금방 딴 올리브 이파리를 물고 있었다"(창세 8, 11)고 한다. 서양 사회에 서는 올리브 나뭇잎을 입에 문 비둘기가 종종 평화의 상 징으로 사용되는데, 이는 노아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 다. 그 외에도 판관기 9장 8-9절에 보면 갖가지 나무들 이 찾아와 올리브 나무에게 왕이 되어 달라는 청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올리브 나무는 "내 기름은 모든 신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 이라 기름 내는 일을 마 다하고 왕이 될 수 없다는 대답을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왕이나 제관 등의 관직에 오를 때 기름을 붓는 의식이 있 었는데, 아마도 이 구절은 올리브유가 '기름 부음' 이라 는 종교 의식에 사용되었음을 암시한다(출애 40, 13-15 참조). 또한 올리브유는 상품성이 높은 품목으로 여겨졌 고(1사무 8, 14 : 2열왕 5, 26),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 재료로 송백나무와 전나무를 수입했을 때, 그 대금 으로 올리브유를 지불했다(1열왕 5, 23-25).
신약성서의 로마서 11장 17-24절에는 올리브 나무에 접붙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올리브 나무의 원 가지(유대
인)를 잘라 내고 야생 올리브 나무의 가지(그리스도인)를 접붙여도 잘 자랄 수 있지만, 언제라도 다시 잘려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이는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을 비유적으 로 알려 주는 내용이다.
[올리브 산] 그리스도인들에게 친숙한 것은 올리브보 다는 예수의 활동 장소였던 올리브 산(הר הזיתים, όρος των Ελαιών)이다. 올리브 산의 위치는 예루살렘 동쪽의 키드론 골짜기를 지나 약 3.2km 지점에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서쪽으로는 예루살렘이 있고, 동쪽으 로는 예리고와 요르단 계곡과 사해가 있다. 이 산은 약 820m 정도의 높이이다. 올리브 산이라 부르는 이유는 글자 그대로 올리브 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 르코 복음서에 보면 올리브 산기슭, 예루살렘 성전 맞은 편의 게세마니(Γεθσημανί)라는 곳에서 예수가 기도를 올리는 장면(14, 32)이 나온다. 게쎄마니는 '기름 틀 이 라는 뜻인데, 올리브 산에서 나는 올리브로 기름을 짜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올리브 산은 구약성서에 단 두 번만 등장한다. 사무엘 하권 15장에 보면 다윗이 압살롭을 피해 올리브 산으로 피신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윗은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맨발로 올리브 산 등성이를 걸어 올라갔다. 백성들도 모 두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뒤따랐다" (15, 30). 그리고 32 절에 보면 다윗이 하느님에게 경배를 드렸다고 하는데, , 올리브 산에 성소가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 다. 또한, 즈가리야서에도 언급되는데, , "그날, 그가 예루 살렘 동편에서 마주보고 있는 올리브 산에 우뚝 서시면, 올리브 산이 갈라져 절반은 북쪽으로, 절반은 남쪽으로 물러나 큰 골짜기가 동서로 뻗을 것이다" (14, 4)라고 한 다. 이는 '야훼의 날' 에 벌어질 일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올리브 산은 주로 예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는 아마도 올리브 산에 올 라가 예루살렘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루가 19, 41-44)고 여겨진다. 그리고 예수는 올리브 산에 올라가 종말 설교 를 했고(마르 13, 3 ; 마태 24, 3), 낮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서 가르치고 밤에는 올리브 산에 올라가 쉬었다(루가 22,
37-38). 최후의 만찬을 마친 후 예수와 제자들은 올리브 산으로 향했고(마르 14, 26),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 후 (14, 32-42), 그곳에서 체포된다(14, 43-50). 그리고 부 활한 예수는 올리브 산에서 승천하였다(사도 1, 6-12).
그 외에도 신약성서에서 올리브 산이 나오는 곳으로는 구절들(마르 11, 1 : 요한 8, 1 : 루가 19, 29)이 있다. 이 구 절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던 범위를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마르코 복음 11장 1절(=루가 19, 29) 은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이동 경로를 보여 준 다. 당시의 갈릴래아 사람들은 (죄인의 땅인) 사마리아 지역을 거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돌아갔다가(마르 10, 1), 다시 강을 건너와 예리고를 지나 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경로를 택하곤 했다(마르 10, 46). 따라서 북쪽으로 돌아 올리브 산을 거쳐 예루살렘에 들 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 부근 올 리브 산 (기슭)의 벳파게와 베다니아에 가까이 왔을 때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 둘을 보내시며···(마르 11, 1).
[유 적] 올리브 산에는 많은 유적들이 있다.
게쎄마니 성당 : 예수가 죽음을 앞두고 기도한 곳에 1919~1924년에 지어진 것이다. 일명 '고뇌의 성전' 이 라고도 한다.
마리아 무덤 성전 : 게쎄마니 성당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당이다. 이 성당에는 11세기의 유물로써 성모 마리아의 무덤으로 내려가는 성전 안의 약 50개의 대리석으로 만든 웅장한 층계가 보 존되어 있다. 이 층계들 양 옆에는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 킴과 안나의 묘가, 그리고 요셉의 묘도 있었다고 한다. 층계 끝의 오른편에는 성모 마리아의 무덤이었다는 곳에 빈 석관과 제단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신빙성은 아주 희박하다.
게쎄마니 동굴 경당 : 예수가 홀로 기도할 때 제자들 이 모여서 잠을 자던 곳이라고 한다. 게쎄마니 대성전과 는 150m쯤 떨어져 있다.
도미누스 플레빗(Dominus flebit) 경당 : 예수가 예루살 렘을 내려다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곳에 지어진 성당으 로 올리브 산 중턱에 있다.
예수 승천 경당 : 루가 복음서와 사도 행전의 구절에 따라 예수가 승천했다고 여겨지는 곳에 지은 성당으로, 올리브 산 정상에 있다. 이곳에는 383년에 귀족인 포이 메니아가 성당을 지었다고 하지만,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 후 다시 건축되었으나 파괴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성당은 1152년 십자군에 의해 건축된 성당이다. 팔각형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서 관리하였으나 1198년 이슬람교의 사원으로 개조되었다. 이 경당 안에는 예수가 승천할 때 남겨 놓고 갔다는 예수의 오른쪽 발자국이 찍힌 바윗돌이 잘 보관 되어 있으나, 역사적 신빙성은 없다.
파테르 노스테르(Pater Noster) 성당 : 예수가 '주님의 기도' 를 가르쳐 주었던 곳으로 여겨지는 곳에 지어진 성 당이다. '파테르 노스테르 는 '주님의 기도' 의 첫 구절 이다. 따라서 이는 '주님의 기도 성전' 이라고 부를 수 있
다. 이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곳에 처음으로 성당을 건축한 사람은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였다. 헬레나는 326~333년에 이곳에 성당을 건축하였다. 그런데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 후 1106년 십자군 시대에 경당이 건축되었다. 이 경당 안에는 히브리어 · 그리스어 · 라틴 어로 된 주님의 기도가 적힌 대리석판이 장식되어 있었 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경당 역시 누군가에 의해 파괴되었 고, 1874~1875년에 작은 기념 성당과 가르멜 수녀원 이 건축되었다. 이 기념 성당 위에 자리잡은 기념 대성전 의 회랑 벽에는 똑같은 크기로 60여 개 언어로 된 주님 의 기도판이 걸려 있다. (→ 게쎄마니 ; 기름 부음 ; 성유)
※ 참고문헌  《기독교 대백과 사전》 1권, 기독교문사, 1980/ 최영 천 엮음, 《성서의 식물》, 아카데미 서적, 1996/ 정양모 · 이영헌, 《이 스라엘 성지》, 생활성서사, 1988/ 정양모 역주,《마르코 복음서》, 200 주년 기념 성서, 분도출판사, 1981/ W.J. Heard, Jr., 《ABD》 5, pp. 13~15/ 《TDNT》 Ⅱ Michigan ,1982. [朴泰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