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 토마스 Ohm, ,Thomas(1892~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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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옴.

토마스 옴.


신부. 선교학자.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수 도자. 수도명은 토마스. 세례명은 필립.
[생 애] 1892년 10월 18일 독일 베스트팔렌 주의 베 스트홀트(Westholt)에서 태어난 옴은 1912년 성 오틸리 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1913년 7월 6일에 유기 서원을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뮌헨 대학교와 뮌 스터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20년 7월 20일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24년 뮌헨 대학교에서 그라프만(Grafmann) 교수의 지도로 신학 박 사 학위를 받았다. 1925년부터 다음해까지 성 오틸리엔 수도원 내의 '수도자 대학' 에서 선교학을 강의하였다. 1927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교수 자격 논문을 썼고, 1932년까지 같은 대학교 신학부에서 기초 신학을 가르쳤다. 이후 1932~1940년까지 밖르츠 부르크 대학교 신학부 선교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자로 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41년 나치 정부에 의해 교 수직을 박탈당하였다가 1946년 복직되었다. 옴 신부는 가톨릭 선교학의 창시자이며 가톨릭 신학부에 최초로 선 교학과를 신설한 슈미들린(J. Schmidlin 1876~1944)의 교 수직을 이어받아 당시 선교학의 중심지인 뮌스터 대학교 가톨릭 신학부에서 1946~1961년까지 선교학을 가르 치며 많은 저술을 남겼다. 옴 신부는 선교학 연구 국제 협회(Internationale Institut für Missionswissenschaftliche For- schungen)의 주요 학술 출판물인 《선교학과 종교학에 관 한 잡지》(Zeitschrift für Missionswissenschaft und Religionswi- ssenschaft)와 단행본으로 출판되는 《선교학 연구 논문 총 서》(Missionswissenschaftliche Abhandlung und Texte), , 연구소 의 자체 출판물인 《선교학 연구소 발행 총서》(Veröffentli- chungen des Instituts für Missionswissenschaft)의 편집인으로 일하였다. 1962년 9월 25일 니더라인 지방 죄히텔른 (Süchteln)에서 사망하여 쾌닉스뮌스터 수도원 묘지에 묻 혔다.
[연구 여행] 옴 신부는 1927~1928년에 한국을 방문 하여 서울, 평양, 봉천(奉天), 북경 등지의 본당들과 유 적들을 돌아보았다. 그 후 1930년에 인도, 1933년에 아 프리카 탄자니아, 1936년 9월에는 두 번째로 한국을 방 문하였다. 이때 덕원 수도원의 사제 정기 모임에 강사로 초빙되어 당시 유럽에서 연구되는 선교학의 동향과 아시 아 교회와 학계의 저명 인사들을 만난 인상과 체험을 소 개하였다. 그는 자신이 여행한 지역의 교회 현안과 선교 활동 및 민간 신앙에 관하여 논문이나 여행 보고문 형식 으로 학술 잡지나 교회 잡지에 소개하여 선교학과 선교 활동에 대한 관심을 널리 불러일으켰다.
[한국 관련 주요 저술 및 논고] 그의 수많은 저서와 논 고 가운데 한국을 위시한 아시아의 교회와 종교 및 문화 에 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한다. 《서양 그리스도교에 대
한 아시아인의 비판》(Asiens Kritik am abendlindischen Chris- tentum, 1948)과 《아시아적 관점에서 본 그리스도교 신학》 (Die christliche Theologie in asiatischer Sicht, 1949)은 아시아, 특히 한국적 토착화 신학의 가능성을 일찍이 시사하였다 는 점에서 주목된다. 전자의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번역판과 《서양 그리스도교에 대한 아시아인의 긍정과 부정》(Asiens Nein und Ja zum westlichen Christentum)이라는 제목의 증보판이 1960년에 출판되었고 그 중판이 1966 년에 나왔다. 자신의 정년 퇴임을 맞이하여 연구 업적을 정리할 목적으로 기획된 《논문 선집》(Ex Contemplatione Loqui)이 1961년에 민스터에서 출간되었다. 《논문 선 집》 말미에 그의 논저 및 기고문 목록이 수록되어 있는 데, 다수의 한국 관련 글들이 있다. 즉 <한국의 서원과 사찰>(Die katholische Missionen=KM 56, 1928), <극동에서 의 불교의 전파>(Das neue Reich=NR 11, 1928) , <한국 유 교에 관하여>(KM 58, 1930) , <한국 불교>(ZMR 21, 1931), <한국 최초의 종교 교육>(Ostasitische Rundschau 15, 1934) , <한국의 교회 건축>(Werkbliater 11, 1938), <한국인의 하늘 숭배>(Anthropos 35, 1940), <비그리스도교 종교에서의 신 에 대한 사랑〉(Theologie und Glauben 34, 1942) 등이다.
[연구 방향] 옴 신부는 독일 가톨릭 선교학을 태동시 킨 슈미들린 교수의 학맥을 이어받아 선교학의 과제와 영역을 탐구하였다. 그의 활동 시기에 선교학은 신생 학 문이었다. 그는 '선교란 교회를 이식하는 것(plantatio Ec- clesiae)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것' 으로 이해했다. 이 는 '선교는 교회를 이식하는 것' 으로 보았던 루뱅 학파 의 주장에 반하는 뮌스터 학파의 학통을 이어받은 것이 다. 옴 신부는 그 시대가 허락하는 최대한의 범위 안에서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의 신학적 가치를 인정하였다. 그의 이론과 연구는 항상 종교와 선교라는 두 가지 현상에 집 중되어 있었다. 그는 선교학 분야에 종교학, 인류학, 민 속학, 언어학 등의 다양한 인접 학문의 방법론을 접목하 였다. 그의 선임자인 슈미들린이 사망한 후 뮌스터 학파 와 루뱅 학파와의 선교학 관점 차이로 논쟁이 일어났으 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선교 교령》을 통하여 이를 자연스럽게 해결하였다. 옴 신부 역시 1960년 공의회
《선교 교령》 준비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 선교학 ; 선 교학 연구 국제 협회 ; 슈미들린, 요제프)
※ 참고문헌  《LThK》 6, p. 1009/ Thomas Ohm, Die Gebetsgebirden der Volker und das Christentum, Leiden 1948/ -, Die christliche Theologie in asiatischer Sicht, Miinster 1949/ -, Die Liebe zu Gott in den nichtchristlicher Religionen, Krailling 1950/ -, Ex Contemplatione Loqui, Gesammelte Aufscize, Miinster, 1961/ -, Machet alle Völkern zu Jingerm, Freiburg i.Br., 1962. 〔宣智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