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 5리 281 소재. 1929년 5월 가실(현 낙산) 본당에서 분리 · 설 립되었으며, 주보는 천주의 성령. 관할 구역은 왜관 4~9리, 11~15리, 삼청리, 매원리, 봉계리 전 지역과 왜관 2 · 10리, 금산리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삼청 1개소. [교 세] 1929년 282명, 1935년 808명, 1940년 1,190명, 1945년 1,414명, 1950년 1,009명, 1955년 1,575명, 1960년 3,352명, 1965년 5,086명, 1970년 5,091명, 1975년 4,823명, 1980년 2,745명, 1985년 3,258명, 1990년 3,257명, 1995년 3,739명, 2000년 3,907명. [역대 신부] 초대 카다스(Cadars, 姜達淳) 요셉 (1929. 5~1931.6), 2대 리샤르(Richard, 李東憲) 로베르토 (1931. 6~1939. 5) , 3대 를뢰(Leleu, 盧) 베드로(1939. 5~1943. 3) 4대 베르트랑(Bertrand, 韓) 율리오(1943. 3~1945. 4), 5대 이명우(李明雨) 야고보(1945. 4~1948. 8), 6대 김영제(金永濟) 요한(1948. 8~1949. 9), 7대 김재석 (金在石) 요셉(1949. 10~1950. 1) 8대 이기수(李己守) 야 고보(1950. 2~1952.6) 9대 노규채(盧奎彩) 아우구스티노 (1952. 6~1955. 1), 10대 김영근(金永根) 베다(1955. 1~1964. 8), 11대 랑(Lang, 張輝) 엘마노(1964. 8~1968. 11), 12대 베르거(Berger, 白) 플라시도(1968. 11~1970. 7), 13대 이덕근(李德根) 마르티노(1970. 7~1972. 5), 14대 이석진(李錫震) 그레고리오(1972. 6~1976. 10), 15대 서상 우(徐相瑀) 요한(1976. 10~1986. 7), 16대 라스터(Raster, 라현승) 스테파노(1986. 7~1992. 1), 17대 김태규(金泰奎) 요셉(1992. 1~1995. 9), 18대 이준건(李俊鍵) 막시밀리아 노 마리아 콜베(1995. 9~2001. 9), 19대 최연환(崔年煥) 이시도로(2001. 9~현재). (단, 왜관 본당에서는 1928년에 왜 관 본당이 가실 본당에서 분리되었고, 가실 본당의 투르뇌 신부 가 왜관 본당의 초대 주임을 겸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왜관 지역에는 1908년경 금산동에서 이문(李汶, 베난 시오)이 이주해 옴으로써 처음으로 천주교 신자가 존재 하게 되었다. 이후 김치견(金致見, 필립보, 1910년 이 주) · 이만원(李萬元, 요한, 1917년 이주) · 정재문(鄭在 文, 안드레아, 1920년 이주) · 서석배(徐錫培, 프란치스 코, 1921년 이주)의 가족이 이주하면서, 이곳에도 1920 년을 전후한 시기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듯하다. 당시 가실 본당 관할이었던 왜관 공소는 1920년경 김치견의 집을 공소로 이용하다가 1923년에는 하포에 있던 정재 문의 본가(초가 3칸)를 공소로 사용하면서 정식 공소가 되었다. 이 무렵 공소 회장직을 맡게 된 정재문은 1924 년 다시 상포에 있던 자기 소유의 대지에 공소 건물을 짓 고, 밤에는 야학까지 실시하였다.
이처럼 교회를 위해 전심전력하던 정재문은 장래 왜관 공소를 본당으로 발전시킬 계획을 갖고, 1927년에 왜관 동 322번지에 1,700평의 대지를 매입하였다. 이어 1928년 2월에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1월에 90평 규모의 성당을 준공하였는데, 특히 가실 본당의 투르뇌 (Tourneux, 呂東宣) 신부는 공사비 일부를 부담했을 뿐만 아니라, 자주 공사 현장을 방문하여 공사를 직접 감독하
기도 하였다. 성당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1928년 8월에 는 청년회가, 10월에는 성가대가 조직됨으로써 왜관 공 소는 점차 본당 설립을 위한 기반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 다. 이러한 가운데 왜관 공소는 1929년 5월경 가실 본 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카다스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본당 신부의 부임과 함께 1929년에 사제관이 신축되 었고, 1932년 11월 3일에는 드망즈(F. Demange, 安世 華) 주교에 의해 성당의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또 1933 년에 수녀원과 시료소(施療所) 건물을 신축하였으며 1935년에는 유치원 과정인 '천신 유년부' 를 설치하였 고, 1936년 4월에는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소녀들을 위해 '소화여자학원' 을 개원하였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신자들의 신심 활동도 활성화되어 '예수 성심회' , '복자 안드레아 청년회' , '성모 부인회' , '데레사 소녀회' 등 여러 단체들이 설립되었으며, 1939년 5월에는 구미 지 역에 공소를 설치하여 교세 확장에도 노력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면서, 왜관 본당은 1945
년 4월 4대 주임 베르트랑 신부가 강제 연금되는 등 많 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한 왜관 본당은 광복 후인 1946년 1월에 등사판 주보인 <대건 보>를 발행하였고, 5월에는 '순심여자초급중학교 의 설 립 인가를 받았다. 또 1947년 4월에 '천신 유년부' 를 승 격시켜 '순심유치원' 을 개원하였고, 1950년 11월에는 정행돈(미카엘)의 임야 기증에 따라 '창마 교회 묘지' 를 조성하였다. 이어 1951년 6월에 한국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성당과 사제관의 수리 공사를 완료하였고, 1952년 3월에는 '순심고등학교' 의 설립 인가를 받았다.
한편 1952년 6월 베네딕도 수도원이 왜관에 정착하면 서, 왜관 본당과 가실 본당은 베네딕도회의 관할지로 위 촉되었다. 이에 이때부터 본당 주임은 베네딕도회 신부 들이 부임하게 되었고, 왜관 본당은 왜관 감목 대리구의 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왜관 본당은 공 소의 증설과 관할지의 확대로 교세가 급성장(선산 공소 : 1952. 10 설립, 용대 · 금구 공소 : 1953. 5 이관, 한티 공소 : 1954. 12 이관)하였다. 뿐만 아니라 1955년 9월에 지역
사회를 위해 삼청동에 나환우 정착지(베타니아원)를 마련 하였고, 1957년 1월에는 대구교구 내에서 최초로 '종도 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설립하였다. 또 1965년 2월에 성서 교리반을 상설하여 신자들의 성서 지식을 함양하였 으며, 그 해 사순절부터는 교회의 결정에 따라 우리말로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965년 말 본당의 신자수가 5,000명 을 넘게 되자, 본당에서는 새 성당 신축 문제를 본격적으 로 논의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듬해 12월 현재의 위치 에 새 성당을 신축하였고, 12월 24일에 본당을 이전하 였다. 성당 신축과 함께 1967년 4월에 '신용 협동 조합' 의 설립과 '본당 회보' 를 창간하였고, 5월에는 '천주 성 령' 에게 봉헌된 새 성당의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1968년 1월에 왜관 청년회를, 7월에 부인회를 발족시켜 신자들의 자발적인 본당 활동을 유도하였으며, 12월에 는 성서의 올바른 이해와 그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성서 연구 그룹' 을 조직하였다.
또 1970년 9월 아동들의 교리 교육을 위해 '왜관 천 주교회 아동 주일 학교 를 발족시켰으며, 이듬해 1월에 는 구역 회장과 반장 제도를 도입하여 본당 운영의 효율 화를 꾀하였다. 그리고 1973년 10월에 성모상의 제막식 을 거행하였고, 1977년 2월에 순심유치원을 정식 유치 원으로 재개원하였으며, 1978년 9월에는 본당 설립 50 주년을 맞아 《왜관 반세기》를 발간하였다. 1981년 12월 에 본당에서 발행하던 주보를 종료(626호)하고 대구대교 구의 공동 주보를 채택하였으며, 이듬해 4월 지하실을 개축하여 '나눔의 집' 을 개관하였고, 5월 30일에는 제1 회 '본당의 날' 행사를 거행하였다. 그런 가운데 1986년 3월 1일 왜관 감목 대리구가 해체됨으로써 본당은 대구 대교구 직할 본당이 되었고, 11월에는 수녀원 건물을 신 축하였다.
1990년대 들어 본당에서는 신심 활동과 신앙 교육을 좀더 강화해 갔다. 그 결과 1992년 2월 '원죄 없으신 모 후' 꾸리아가 창단되었고, 9월에 성모 신심 세미나가 9 주에 걸쳐 진행되었다. 또 1993년 9월에 성체 신심 세 미나를, 1994년 10월에는 '가정 성화 세미나' 를 개최하 였고, 1997년 2월에는 가두 선교단의 발대식을 거행하 여 적극적인 선교 활동에 나섰다. 이어 그 해 3월 교리실 과 교사실을 수리하여 교육 환경을 개선하였으며, 1998 년 3월에 본당 설립 70주년을 기념해 '70가정 70일 가 정 고리 기도' 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9년 3월에 노 인 대학을 설립하여 노인 문제에도 관심을 쏟았고, 2001년 9월에는 본당의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인터넷을 통한 복음화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2월에는 교육관을 신축, 축복하였다.
2002년 현재 왜관 본당에는 명도회를 비롯하여 15개 의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설립 이래 성주 본당(1950. 3) · 구미 본당(1956) · 군위 본당(1956) · 칠곡 본당(1959. 4) · 신동 본당(1967. 10) · 약목 본당(1973. 11) · 석전 본당 (1978.7) · 인동 본당(1979.1) 등을 분리하였다.
※ 참고문헌 <천주교회보>, 1929. 7. 1/ 《경향잡지》 663호(1929. 1.
15)/ 《교구 연보》, 천주교 부산교구, 1984, p. 171/ 보드뱅, <카다스 신 부 약전>/ 천주교 왜관 교회, 《왜관 반세기》, 1978. [方相根]
왜관 본당
倭館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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