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히]יונה · [라]Prophetia Ionae · [영]The Book of Jona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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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에서 발견된 요나서의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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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에서 발견된 요나서의 일부분.

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 중 다섯 번째 자리에 배치 된 예언서.
[특 징] 요나서의 형식이나 내용은 다른 예언서들과 매우 다르다. 예언서는 일반적으로 예언자가 선포한 말
씀으로 이루어진다. 전기나 자서전적인 부분이 전혀 없 지는 않지만, 그 비중은 미미하고 이사야서 36-39장이 나 예레미야서 36-43장의 경우처럼 부록 같은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요나서는 요나(יונה)라는 이름을 지닌 예 언자가 한 가지 사명을 수행하는 이야기만 전한다. 그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말은 고작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무너진다!" 라는 한마디이다(3, 4)
요나서의 특이성은 예언자의 사명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는 하느님의 백성과는 전혀 관련 없이 외국으로 파견 된다. 물론 엘리야가 시리아로 가서 그곳의 임금을 예정 하고(1열왕 19, 15) 엘리사가 그것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2열왕 8, 13), 요나처럼 먼 나라까지 가서 그 나라 전체 를 상대로 예언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소명을 피 해 달아나는 예언자의 모습도 요나서의 특수성을 돋보이 게 한다. 그는 고집스럽고 뚱한 성격으로, 심지어 하느님 께도 심술을 부리며 대들기까지 한다. 요나는 그가 만나 는 이교도들보다도 더 못한 인물이다. 그를 배에 태우고 항해하던 선원들은 사려가 깊고, 이스라엘의 야훼가 참 하느님이심을 알고서는 바로 그분을 받아들인다(1장). 그리고 니느웨 임금과 그의 온 백성은 요나의 말 한마디 를 듣고 바로 악한 길을 버리고 회개한다(3장). 반면에 요나는 하느님의 소명을 피하려고 또는 그분이 못마땅하 여 여러 번 죽기를 자청하면서(1, 12 ; 4, 3. 8), 자기의 선입견과 아집을 버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요나는 "자비 롭고 너그러우신" 하느님께(4, 2) 합당하지 않은 예언자 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이에게 요나는 귀감 이 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따라 해서는 안되는 부정적 의미의 본보기로 치부할 수 없는 면도 있 다. 특히 하느님이 요나를 나무라고 타이르시는 질문으 로 이 예언서가 끝난다는 사실도, 주인공 요나가 한 개인 의 차원을 넘어서고 또 이야기 자체도 예언자의 전기나 단순한 역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내 용] 요나 예언자는 주님으로부터 니느웨로 가서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니느웨 반대쪽으로, 당시 사람들이 세상 서쪽 끝이라고 생각하던 다르싯으로 달아나려고 배를 탄다. 주님은 바 다에 큰 폭풍을 일으키신다. 뱃사람들은 겁에 질려 저마
다 자기 신에게 부르짖으면서, 재앙을 피하려고 애를 쓴 다. 모든 것이 소용없자 그들은 변고의 원인이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주사위를 던진다. 배 밑창에서 잠을 자다가 끌려 나온 요나에게 주사위가 떨어진다. 그는 자기에게 모든 탓이 있음을 순순히 고백하고, 자기를 바다에 던지 라고 권고한다. 선원들은 뭍으로 돌아가려고 마지막 노 력을 기울이지만 사태는 나아지지 않는다. 그들은 마침 내 주님에게 용서를 청하며 요나의 말대로 한다. 그러자 바다가 조용해진다. 사람들은 주님 곧 요나의 하느님에 게 희생 제물을 바친다.
주님은 큰 물고기를 시켜 바다에 떨어진 요나를 삼키 게 하신다. 사흘 뒤에 그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뱉어 내는데,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을 때에 하느님께 감사 의 시편을 노래한다.
이렇게 주님은 요나를 살려내신 다음 처음과 똑같이 사명을 부여하신다. 이번에는 요나도 주님의 지시를 순 순히 따른다. 니느웨로 가서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 느웨는 무너진다!" 하고 외친다. 그러자 니느웨의 임금 을 비롯하여 모든 주민이 나서서 참회하며 하느님께 열 심히 기도한다. 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신 하느님은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신다.
요나는 이러한 하느님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니느웨를 용서하시는 하느님과 그러한 하느님을 받아들 이지 못하는 요나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다. 요나는 주님 이 자비하신 하느님이심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느님이 그들을 용서하시는 일이 벌어지자, 화를 내며 자기를 차라리 죽여 달라면서 하느님께 대든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려 고 성밖으로 가서 초막을 치고 앉는다. 주님은 그 위로 아주까리를 자라게 하시어 그늘을 드리워 주신다. 그래 서 요나는 기분이 매우 좋았는데, 이튿날 벌레가 아주까 리를 쓸아 시들게 한데다가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뜨 거운 바람까지 불자, 다시 죽는 게 낫다고 하느님께 투덜 거린다. 그러한 요나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 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너 는 그토록 가엾이 여기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느웨를 내가 어찌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요나서는 하느님의 이 질문과 함께 끝난다.
[문학 유형] 예전에는 요나서를 실제의 역사 이야기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 예언서에 나오는 초자연적인 현 상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 다. 그러나 요나서를 '역사서' 로 보는 데에는 많은 어려 움이 있다.
열왕기에 따르면, 요나 예언자는 북부 이스라엘 왕국 의 여로보암 2세(기원전 787~747) 때에 활동한다(2열왕 14, 25). 그런데 이때에 니느웨는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가 아니었다. 수십 년 뒤 산헤립(기원전 705~681) 시대에 수도가 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다. 더구나 단순히 도시 왕국으로 서술되는 이 니느웨로 이스라엘의 예언자가 파견되어 예언을 하고, 그곳 주민 들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야훼를 참 하느님으로 받아 들이고 회개한다는 것은 역사를 넘어서는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돌연한 폭풍, 사람을 집어삼켰다가 산 채로 육 지에 내뱉는 거대한 고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순식 간에 말라 버리는 식물 등, 이어지는 기적들도 이 이야기 가 역사 서술이 아님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요나서가 주인공의 이후 행동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이 질문으로 끝난다는 사실도, 실제 역사 이외의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요나서가 역사서가 아님을 거의 모든 학자가 동의하는 데, 문학 유형이 무엇이냐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전설, 민간 설화, 풍자 소설, 단편 소설, 교훈 이야기, 그 리고 유대교 랍비들의 분류에 따라 '마샬' (מָשָׁל, 조롱 · 수수께끼 · 우화 · 속담 · 애도가 등) · 미드라쉬' (מִדְרָשׁ) 등 이 제시된다. 학자들은 또 요나서의 많은 구절과 요소들 이 성서의 다른 부분에서 빌려 온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요나서의 유형을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교 훈을 목적으로 신화와 설화적 요소에 성서의 자료까지 합쳐 저술한 단편 소설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시편 구절을 상기시키는 표현들로 구성된 2장의 감사 시편은 내용상 요나 이야기와 부합되지 않는 부분 이 많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대드는 4장의 요나가 이 러한 기도를 바쳤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저자 자신 보다는 후대의 편집자가 이 책의 종교성, 특히 불경스럽 게 보이는 요나 예언자의 신앙과 신심을 부각시키려고 기존의 것이나 자기가 만든 시편을 삽입한 것으로 보인 다.
[저자와 저작 시기] 요나서에는 저자나 저작 시기를 규정하는 데 직접적인 단서가 될 수 있는 사항이 하나도 제시되지 않는다. 우선 저작 시기의 하한선은, '열두 예
언자' 를 언급하는 집회서의 완성 시기를 기준으로 하여 기원전 200년이다. 그리고 아람어의 영향이라든가 구원 의 보편주의 등을 바탕으로, 유배가 끝나고(기원전 538) 상당 기간이 흐른 뒤에 제2 이사야의 영향을 받은 것으 로 여겨지는 어떤 무명의 유다인이 이 책을 저술하였다 고 볼 수 있다.
물론 제2 이사야서의 배타적 유일신론이나 우상 숭배 에 관한 신랄한 비판 등이 요나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 러나 대양과 깊은 바다 속이라든가 당시 세계 최대의 대 도시 니느웨와 같은 넓은 배경 속에 여러 부류의 많은 사 람이 등장하는 요나서는, '넓은 세계' 를 경험하게 만든 유배 이후의 시대에 잘 맞는다. 저자는 이러한 배경에서, 요나서라는 특수한 예언서를 가지고 제2 이사야서와 조 금 다른 방향에서 동포들에게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 지를 보여 준다.
[목 적] 저자가 왜 아미때의 아들 요나를 주인공으로 선택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히브리어에서 요 나' 는 비둘기를 뜻하고, 비둘기는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 엘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쓰인다. "에브라임은 비둘기처 럼 어리석고 지각이 없다" (호세 7. 11 ; 11, 11 : 시편 74, 19). 저자가 이러한 의미를 지닌 '요나' 로 백성 전체를 지목하는지, 또는 그 가운데 특정 부류만 한정하는지, 둘 중 어느 한 가지로 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 이야 기를 듣거나 읽는 하느님의 백성은 누구든지, 하느님이 요나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저마 다 그 질문에 나름대로 대답을 해야 한다. 저자의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저자는 하느님의 백성이 관습적으로 그냥 받아들여 온 것들, 전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 온 사항들을 뒤집어 보 여 줌으로써 그들에게 반성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스라 엘에서 '예언자' 는, 자기를 파견하시는 하느님께 순종하 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며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요나는 자기를 파견하신 하느님을 피 해 정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는 것도 모자라, 하느님의 뜻 이 아니라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분께 죽여 달 라고 생떼까지 쓴다. 이러한 요나가 만나는 이민족, 이교 도들도 이스라엘인들이 생각하던 전형적인 모습과는 반 대로 등장한다. 이교도 선원들은 매우 인간적으로 요나 를 대하고, 가능하면 그를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그 리고 요나 말대로 폭풍이 멈추자 그 요나의 하느님께 합 당한 경배를 드린다. 니느웨는 3년 동안의 포위 끝에 기 원전 721년 사마리아를 점령하여 북이스라엘 왕국을 파 멸시킨 아시리아의 수도이다. 무수한 이들의 피를 흘리 며 잔혹한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민족을 억압하여, 바 빌론과 함께 악명을 떨치던 도시이다(나홈 3장 참조). 이 러한 니느웨가 요나의 한마디 말만 듣고, 죄악이 하늘까 지 치솟아 오르던(1, 2) 과거를 청산하고 회개와 참회 속 에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용서를 청한다. 니느웨인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신 하느님은 그들을 가엾이 보시어, 내 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신다. 이는 니느웨가 저지른 죄악 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극적이고 도
발적인 일이다.
이렇게 이 예언서의 주인공들인 요나와 이교도 선원들 과 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니느웨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이야기의 참 주인공인 하느님만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을 보이신다. "하느님 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신·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 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다"(4, 1-2 ; 출애 34, 6 ; 민수 14, 18 ; 느헤 9, 17 ; 시편 86, 15 ; 103, 8 ; 145, 8 ; 요엘 2, 13 ; 나훔 1, 3 참조).
1장과 3장에서 요나는 선원들과 니느웨인들이 어떠한 지를 보여 주는 부차적인 구실만 한다. 4장에 가서야 비 로소 그와 하느님 사이에 본격적 대화 또는 논쟁이 벌어 진다. 요나서의 문제는 하느님의 예언자인 요나가 뱃사 람들, 특히 니느웨인들로 대표되는 이민족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이다. 이 예언서는 관습과 선입관의 색안 경을 벗어 던지기를 요구한다. 지금까지의 좁은 안목을 버리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대양과 해심과 니느웨처 럼 전망을 넓혀 세상과 하느님을 생각할 것을 촉구한다. 과거와는 다른 시각으로, 곧 바다와 뭍을 창조하시고(1, 9) 이민족들의 하느님도 되시는(3, 8 참조) 한결같으신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촉구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정의를 초월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따른 보편적 구원을 이 세상에 구현하는 사명을 수행하라고 그분의 백성을 부른다. 이렇게 볼 때 요나서는 독특한 의 미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예언서로서 다른 예언서들과 자 리를 같이할 수 있게 된다. (→ 구약성서 ; 예언서)
※ 참고문헌  L.C. Allen, The Books ofJoel, Obadiah, Jona and Micah,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T, Eerdmans, 1976/ H.W. Woff, Dodekaprophetom 3. Obadja, Jona, Biblischer Kommentar AT XIV- 3, Neukirchener Verlag, 1977/ J. Magonet, (ABD) 3, pp. 936~942. [任承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