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푸스, 플라비우스 Josephus, Flavius(37/38?~100?)
글자 크기
9권

《유대 전쟁사》의 복사본을 옮기는 요세푸스.
유대교의 호교론자. 역사가. 본명은 요셉 벤 마티아스 (Joseph ben Matthias) . [생 애] 요세푸스는 37년경 예루살렘에서 사제인 아버지 마티아스와 하스모네 가문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 교육을 받았다. 64년 27세 때 유 대인 사절단을 이끌고 로마로 가서 네로 황제의 첩인 사 비나(Poppaea Sabina)를 사귀어 당시 로마에 갇혀 있던 유 대교 사제들을 풀려 나게 했다(《자서전》, 13~16). 유다와 사마리아의 행정관인 알비누스(AIbinus, 62~64)와 플로루 스(Plous, 64~66)의 부패와 불의와 잔인함은 제1차 유대 독립 전쟁(66~70)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로 인해 66년 팔레스티나 전역에서 유대인들이 반 란을 일으켰다. 요세푸스는 갈릴래아 지방 유대인 독립 군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이 갈릴래아로 진격하자 그는 나자렛과 세포리스 북쪽에 있는 요타파타에 진을 치고 성벽 을 방어했으나 47일 만인 67년 7월 20일 함락되었다. 요세푸스는 유대인 40명과 함께 지하 저수장에 숨었다가 이틀 만에 로마군에게 발견되어 투항했다(《유대 전쟁사》 3, 338~344). 그는 로마군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에게 장차 로마 황제가 되리라고 예언을 하였다(《유대 전쟁 사》 3, 393~402). 이 예언이 적중하여 베스파시아누스가 69년 7월 이집트와 유다 주둔 로마군에 의해 로마 황제로 선포되어 로마로 떠났다. 그로 인해 유다 로마군 사령 관직을 그의 아들이며 훗날 황제가 된 티투스(Titus)가 승계하자, 요세푸스는 그의 자문역을 맡았다. 그리고 예 언의 적중으로 자유인이 되었으며, 이름을 베스파시아누 스의 가문 이름인 플라비우스(Favius)로 바꾸었다. 티투 스는 70년 과월절 로마군 4개 여단 2만 4천 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한 다음 8월 29일 성전 구역을 점령 하고 9월에는 예루살렘 서북부 고지대의 헤로데 궁전까지 점령하여 제1차 유대 독립 전쟁을 진압하였다. 요세푸스는 티투스를 따라 로마로 갔다. 그는 베스파 시아누스가 황제로 등극하기 전에 살던 저택을 물려받고 로마 시민권을 얻었으며, 연금을 받아 호화롭게 살았다 (《자서전》, 422~425) . 티투스(79~81)와 도 미티아누스 황제(Do- mitianus, 81~96)도 그를 후대했다(《자서전》, 428~429). 요세푸스 는 100년경 로마에서 사망한 것 같다. [저 술] 그는 《유대 전쟁사》(De Bello Ju- daico, 7권)와 《유대 고대사》(Antiquitates Iudaicae, 20권), 《자서 전》(Vita, 1권), 《아피 온 반박》(Contra Api- onem, 2권) 등을 저술 하였다. 《유대 전쟁사》 : 요세푸스는 서문에서 집필 동기를 명시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제1차 유대 독립 전쟁에 관한 기록이 여러 편 있으나, 모두 그릇된 정보에 의존하거나 편견에 사로잡혀 부실한 까닭에 새로 집필한다고 하였다. 그는 아람어로 이 책을 써서 바빌로니아와 파르티아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하여금 전쟁의 원인 과 경과, 그리고 결과를 정확히 알게 했다고 한다(《유대 전쟁사》 1, 1~8). 그러나 아람어 원문은 전해 오지 않고, 요세푸스가 비서들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어로 번역한 역 문만 전해 온다. 집필 연대는 79년경으로 추정한다. 다만 7권의 내용 중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칭송하는 부분으로 미루어(85~88) 후대 가필이 아닌가 한다. 요세푸스는 갈릴래아 지방 독립군 사령관으로서 또한 티투스의 자문역으로서 직접 경험한 바에 의존하고, 아 울러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의 비망기들도 사료로 이용하였다(《자서전》, 65, 342, 358). 헤로데 대왕의 죽음(1 권, 659~673)과 마사다의 최후(7권, 252~406)에 관한 기록이 돋보인다. 하지만 요세푸스의 과장은 매우 심하다. 《유대 고대사》 :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사》를 쓴 지 10여 년이 지난 90년경에 천지 창조부터 제1차 유대 독 립 전쟁 발발까지의 통사를 그리스어로 펴냈다. 그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였는데(18권, 116~119), 복음서와의 차이점 두 가지가 돋보인다. 첫 째, 요세푸스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를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 둘째, 세례자 요한은 왕비 헤로디아의 개인 적 원한 때문에 참수된 것(마르 6, 17-29)이 아니라 헤로 데 안티파스(기원전 4~서기 39)의 정치적 의구심 때문에 처형되었다고 한다. 세례자 요한에 대한 요세푸스의 이런 기록은 역사적 사실들을 잘 반영한다고 여겨진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바리사이파 · 사두가이파 · 에 세네파 · 젤롯당 등에 대한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18권, 11~25). 빌라도 총독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지만 사 흘 만에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는 단락(18권, 63~64, Testimonium Flavianum)은 후에 그리스도인들이 만들 어 넣은 위작(僞作)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서기 62년 대제관인 아나노스가 예수의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를 돌로 쳐죽이게 했다는 기록(20권, 200)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자서전》 : 요세푸스가 갈릴래아 지방의 독립군 사령 관으로서 저지른 잘못을 독립군 출신이며 티베리아 출신 인 유스투스가 책망하자, 자신을 변호할 목적으로 95년 경에 그리스어로 이 글을 집필하여 《유대 고대사》 끝에 첨가하였다. 그는 이 글보다 훨씬 신빙성이 있는 《유대 전쟁사》에서 진술한 내용과 모순되게 자신이 일관된 로마 지지자였으며, 독립 전쟁이 일어났을 때부터 유대인 들의 반대자였다고 진술했다. 또한 그는 이 글에서 자신을 높이고 있는데, 예를 들어 자신이 14세 때 사제들과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계속 자신을 찾아와서 율법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는 식이다(《자서전》 9). 《아피온 반박》 :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피온이 요세 푸스가 《유대 고대사》에서 기술한 유대인들의 오래된 역 사는 거짓이라고 주장을 하였다. 그 이유는 그리스 고전 에 유대인들의 오랜 역사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라 는 것이었다. 이에 요세푸스는 노년에 《아피온 반박》을 집필하여 유대인들의 오랜 역사를 논증하는 한편,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다. 이 책의 첫 번째 권에서 그는 헬레니즘 저자들의 셈 족에 대한 편견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가한 비난을 반박한다. 두 번째 권에서는 유대 교가 헬레니즘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을 제 시하면서 자신이 유대교와 유대 문화에 기여한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 유대교 ; 이스라엘) ※ 참고문헌 H.St.J. Thackeray et al., Josephus with an English Translation(loeb Classical Library), 9 vols., Cambridge, MA : Harvard University : London : W. Heineman, 1926~1965/ O. Michel · O. Bauemfeind Hersg., De Bello Judaico. Zweisprachige Ausgabe, 3 Bände, Darmstadt :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ft, 1959~1969/ L.H. Feldman, 《ABD》 3, pp. 981~998/ 《EJ》 10, pp. 251~265/ Flavius Josephe, Supplément au Cahier Evangile numéro 36, Paris, Cerf, 1981/ 《하바드판 요세 푸스》 8권, 도서출판 달산, 1991/ 김기찬 역, <요세푸스> 4권, 생 명의말씀사, 1987. [鄭良謨]
